형식으로 하나 되는 우리
최수정(인문공간 세종)
형식이 중요하대
나는 ‘형식’이라는 것을 싫어했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있어 형식이란 어쩐지 빈약한 마음을 부풀리고 애써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쓰이는 화려한 포장지 같았다. 뿐만 아니라 살다 보면 지켜야 할 형식이 또 얼마나 많은지. 그것을 다 지키고 살다 보면 나의 일상이 온통 정체불명의 형식에 붙들려 있게 될 것만 같았다. 이런저런 형식에 신경 쓰는 것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내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도 이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았다. 제도권의 형식을 벗어나 그때그때 마음이 이끄는 대로 공부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좋았다. 어디에 어떤 형식에 묶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 과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그만두면 끝이었다. 취미로 하는 공부는 누군가가 나에게 특별한 형식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들고나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별 형식 없이 자유롭게 공부하는 도서관에서 오선민 선생님을 만났고, 그 인연으로 어쩌다 인문세라는 공부 공동체에 자리 잡게 되었다. 도서관보다 어려운 주제로 공부량이 많았고 꼭 해야 되는 숙제도 있었지만, 도서관 수업과 크게 달라진 형식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작년 겨울 가족 중에 투병하는 사람이 생겨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게 됐을 때, 나는 나의 상황과 관계없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스텝 카톡방을 조용히 나왔다. 모두가 오선민 선생님께 나의 사정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따로 어떤 말이나 형식을 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아 있던 사람들은 내가 단톡방을 나간 사실도 한동안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정말 이것이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사실을 안 사람들이 나를 향해 성토하는 말들이 들렸다. 도대체 함께 공부하는 장을 무엇이라 생각했기에,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야말로 황당했다. 우선 내가 인문세를 들어갈 때 내가 어떤 형식을 치렀었나 떠올려 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기억이 없었다. 그냥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한 것이 전부였다. 함께 일하는 스텝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그러겠다고 한 것이 다였다.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됐던 자리를 나오면서, 이미 알고 있는 말 외에 어떤 형식을 따져야 한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정말 다른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의 절박했던 마음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있던 자리를 돌아보고 제대로 된 형식을 따지고 나올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 말 없이 나간 나에게 섭섭했다 해도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줄 알았다. 인문세 말고 어떤 단톡방도 내가 말없이 나갔다고 문제 삼지 않았다. 어떻게 제대로 된 형식도 없이, 공식적 인사 한마디 없이 나갈 수 있냐고 불쾌해하지 않았다. 형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내가 다시 인문세로 돌아가기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였다. 나는 내가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치렀던 인문세의 ‘범고래 체력장’ 형식을 통해 그것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형식이 뭐길래
형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전에 일단 쉬운 이해를 위해 결혼의 형식을 빌려와 보자. 결혼식은 도대체 왜 할까?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잘 살면 되지 굳이 화려하고 복잡한 과정을 치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결혼식이 뭐길래.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산다고 부부가 아닌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결혼식은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됐다는 것을 많은 사람 앞에서 공표하는 형식이다. 결혼식 배우자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시작하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두 사람은 만인 앞에서 그 의무와 책임을 약속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고, 삶의 온갖 어려움을 이 사람과 내가 감당하겠다고 선언하며 참석자들의 지지를 얻는다. 그렇다고 결혼식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행복하게 산다는 보장은 없다. 단지 부모 형제, 일가친척, 친구들을 모시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잘 살겠다는 자기 선언을 함으로써 자신이 선택한 관계에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할 뿐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결혼식이라는 형식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도 결혼식 형식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든 지금 결혼을 하는 당사자들이 그것을 만들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이렇듯 형식은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채로 다가온다. 형식의 수행자는 일단 주어진 그 형식을 그대로 따른다. 오랜 시간 전통으로 내려오는 형식을 따름으로써 형식을 만든 공동체에 순응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다분히 ‘수동적’이다. 나랑 상관없이 만들어진 형식에 내가 떠밀리듯 참여한다는 것은 나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드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었고 탄생의 조건조차 내 뜻대로 할 수 없었다. 탄생의 형식과 함께 미리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기 삶의 방식을 구성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수많은 형식과 마주치고, 그 무수한 마주침의 관계에서 내가 되어간다. 나는 매번 무수한 형식들 중 하나를 선택하며 그 형식 다음에 있는 관계의 문을 연다. 결혼식을 통해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승낙하고, 누구의 며느리와 사위의 관계로 들어갈 것을 받아들인다. 또한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며 부모 자식 관계에 들어갈지 말지도 결정할 수 있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 관계의 문을 여는 형식을 치르지 못했다는 생각에 어떤 관계에서도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 부부 사이뿐만 아니라 결혼으로 생긴 새로운 가족 관계에서의 책임감도 약하다. 결혼식을 치른 사람들보다 책임 있는 관계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며 떳떳하지 못하다 생각한다.
결혼식이라는 형식을 통해 생각해 본 형식이란 일단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주어진 형식에 적극 참여하면서 형식이 만들어낸 관계를 책임과 의무로 받아들인다. 수동적인 것처럼 보이는 형식에 실천적 행위를 덧붙여 자기 삶의 형식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간다.
인문세 공부 형식
인문세를 나오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좀 나아지자 나는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나에게 섭섭했다던 그들의 마음을 내가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도, 나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그들의 마음이 회복된 것도 아니었지만, 다시 세미나에 참석해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뭘까? 내가 돌아왔다고 격하게 환영해 줄 수는 없다 해도 뭔가 미적지근하고 껄끄러운 분위기였다. 갑자기 나를 어색하고 낯설게 보는 눈빛을 마주하기가 거북했다. 내 돈 내고 듣는 세미나였지만, 나는 내 자리가 없어 엉거주춤 발을 걸치고 문 뒤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아무도 말은 안 했지만 뭔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나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을 느꼈다.
어떻게 어긋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내가 먼저 인사 없이 나가서 미안했다고 사과를 해야 할까? 모두 함께 만나자고 해서 밥이라도 사야 하나? 아니면 그들이 어떤 말을 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온갖 궁리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우리에게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상처받은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나를 인문세 공부 형식에 맞춰보기로 했다. 내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제시간에 숙제를 내고, 주어진 분량을 충족하는 숙제 약속을 지키고 있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모습이 인문세 선생님들에게 내가 돌아왔다는 인사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다.
숙제를 위해서는 우선 책을 잘 읽어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투병환자와 함께 병원을 다니며 불안정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책과 함께 공부를 했다지만 스스로 책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여태 책을 어떻게 생각하고 공부를 무엇이라 생각했는지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 나에게는 아직도 도서관에서 책과 관계 맺던 방식이 남아 있었다. 내 기분이 내킬 때만 ‘자유롭게’ 책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상황에서도 책을 읽고 인문세의 형식을 따라가야 했다. 책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관계 맺을 형식을 찾아야 할 때였다.
그러다 나는 책들도 저마다 독특한 형식이 있음을 생각하게 됐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는 형식이 책마다 달랐다. 인류학 시간에 읽은 『빙하 이후』(스티븐 마이든 지음, 성춘택 옮김, 사회평론아카데미)와 동화인류학 시간에 읽는 『미야자와 겐지 전집』(미야자와 겐지 지음, 박정임 옮김, 너머)의 형식이 다르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형식에 따라 내가 그 책과 관계 맺는 형식도 달라져야 했다. 우선 책의 형식을 파악하기 위해 제목과 목차를 들여다보고, 저자의 의도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다음 형식에 맞춰 서두르지 않고 내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천천히 읽어갔다. 저자가 이 책을 어떤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고, 독자와 어떤 방식으로 만나기를 바라는지를 생각하며 읽어갔다. 『빙하 이후』를 읽을 때는 끝없이 걷는 선사 인류가 어디쯤 와 있는지 지도를 그려보는 형식이 필요했고, 『미야자와 겐지』를 읽을 때는 저자가 어떤 눈으로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지 상상해 볼 수 있어야 했다. 책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나도 안정감 있게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의 형식을 이해하고 따르다 보니 그 형식에 맞는 문장이 나왔다. 책을 읽을 때도 ‘자유로운’ 방식 같은 것은 통하지 않았다. 책의 정해진 형식에 맞춰 읽는 것이 중요했다. 책을 통해 책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의 관계에도 형식이 필요함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인문세 시즌 마지막 숙제 형식도 통과했다.
범고래 체력장
나 스스로 인문세의 공부 형식을 수행하고 넘어섰다지만 아직 인문세를 나간 그 상태에서 멈춰 이도 저도 아닌 존재였다. 스텝들은 이도 저도 아닌 나를 어떻게 대할지 난감해했고, 나 또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 모를 난처함이 계속됐다. 서로 어쩌지 못하는 이런 난제를 풀기 위해 인문세에서 새로운 형식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범고래 체력장’이라는 형식으로 달리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인문세 스텝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체력장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공부를 하려면 체력장을 통과해야 한다는 공부 공동체가 또 있을까? 인문세라는 데는 정말 알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인문세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그 형식을 따라야 한다니 일단 해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인문세가 뭐라고 왜 꼭 거기서 공부를 하겠다는 것인지 스스로 이해되지도 않으면서 그냥 하자고 하니 하기로 했다. 어느새 나는 체력장을 통과하기 위해 그날부터 연습하고, 매일 규칙적으로 가까운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뱅뱅 도는 운동장이 지겨워지면 멀리 도시의 밤거리를 달려보기도 하면서 그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도래했다. 스텝(staff) 모두가 인문세 바깥에 모였다. 모두가 밖에서 위계 없이 동등한 출발점에 섰다. 모두 함께 인문세 밖에서 다시 들어오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해진 형식을 갖추고 ‘범고래 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다.
형식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준다. ‘범고래 체력장’이라는 형식을 치르고 나서 우리는 스텝이라는 지위와 이름을 갖는다. 그것은 꼭 달리기가 아니어도 좋았고, 범고래 부족답게 수영이어도 좋았지만, 오늘은 일단 달리기로 정해졌으니 달리는 것이다. 4km를 50분 안에 들어와야 하는 가벼운 형식이지만 혹시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동안 시간을 재서 통과하는 연습을 여러 번 했으니 별문제 없을 것이지만 혹시라도 발걸음을 위협하는 작은 돌부리라도 주의해야 한다. 혹시 중간에 화장실이 가고 싶을지도 모르니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어떤 돌발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으로 햇빛 아래에 선다. 비로소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인사한다. 이 인사와 함께 동시에 발걸음을 내디디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형식이 시작된다. 그 발걸음으로 새로운 관계 형식에 들어가 관계에 책임을 지고, 스텝으로 공부하는 나를 만들어 갈 것을 약속한다. 함께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며 우리가 하나 됨을 느낀다. 내가 확장된 기분으로 감정이 고양되고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형식이 갖는 힘과 의미였을까? 누군가 나를 떠밀 듯이 주어진 형식이었지만 나는 그 형식에 사로잡혀 즐거웠다.
형식의 문턱을 넘어
그런데 나는 왜 ‘범고래 체력장’을 예전처럼 나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강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처음에는 물론 이것을 왜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그냥 하라고 하니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 형식을 치르겠다고 결단했고, 결심이 선 순간 그것은 꼭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일이 즐거운 것임을 알게 됐다. 심지어 그 형식이 나를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이 기쁘고 놀라웠다.
‘범고래 체력장’을 끝내고 내가 인문세의 스텝이 되었지만, 겉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왜 삶에서 형식이 중요하고 그것을 통과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거대한 형식의 문턱을 넘었다고 느낀다. ‘범고래 체력장’을 통해 나는 어떤 형식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체력장을 하기 전에는 보잘것없어 보이고, 유치하고, 무의미해 보이며, 이것을 도대체 왜 하는지 의문이었던 것이, 나와 인문세의 새로운 관계 형식을 알리는 의미가 되었다. ‘형식이 뭐가 중요해’ 라고 말하던 나는 이제 형식이 나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는 내가 삶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형식은 겪어야 할 그 자리에서 겪어야 할 것을 모두 겪고 자신을 삶의 다음 관계로 밀어 넣는 적극적 행위였다.
인문세는 인류학을 공부한다. 인류학이라는 공부 형식을 통과하며 자기 삶의 새로운 형식을 발견해간다. 공부하기 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던 개념들이 나의 경험과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로 떠오른다. 누군가는 묻는다. 인문세 ‘스텝(staff)’이 뭐예요? 왜 스텝이 되려고 하나요? 그냥 스텝이 아닌 채로 공부만 하면 안 되나요? 사실 나도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스텝이란 관계의 형식을 시험하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다. 주어진 조건의 제한된 형식에서 언제나 그것과 함께 다른 형식을 만들어낸다. 내가 굳이 인문세의 형식의 문턱을 넘어 스텝이 되려고 한 이유는 주어진 조건에서 언제나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만들어내는 능동의 장에 자신을 입문(入門)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입문으로 내 삶의 긍정적 형식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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