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중국 왕의 키는 통치한 기간이다? 숫자에 숨겨진 비밀!

중국사유와 수 1



(夏)나라를 세운 대우(大禹)는 키가 몇이었을까? 힌트. 그는 17년을 통치하였다. 아니, 17년을 통치한 것과 키가 무슨 상관이람? 그러나 고대 중국인들은 이것으로 우임금의 키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자, 우선 완벽한 군주에게 할당된 삶의 기간은 100년이다. 우임금은 죽기 직전까지 17년 동안 통치했으므로, 우임금이 권좌에 오른 것은 정확히 83세. 따라서 이 영웅의 키는 8척 3촌(83촌)이었다!?? 순(舜)임금은 통치기간이 39년이었다. 따라서 그는 61세에 등극했기 때문에 키가 6척 1촌(61촌)일 것이다. 그의 선왕이었던 요(堯)임금은 원래 72촌의 체구였던 탓에 72년간 실질적인 권력을 누리고, 나머지 28년은 은퇴한 군주로서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문왕은 자신의 삶의 총 기간 100년 가운데 일부를 아들에게 양위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나누었기 때문에 딱 반인 50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기록에 따르면 체구가 뚱뚱하고 짤막했다. 같은 방식으로 탕왕(湯王)의 키는 9척 4촌(94촌)이었다. 이게 무슨 괴이한 일인가?

이처럼 고대 중국인들의 심상 속에는 왕조의 시간이 그 왕조를 창건한 군주의 신장에 따라 규정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군주가 키가 크면 왕위에 오르는 나이가 늦어지고, 그래서 통치기간이 짧아진다? 결국 창건자들의 체구가 그들이 창건한 왕조의 시간 척도로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창건자의 키 자체가 ‘시간’이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된다. 도대체 키를 나타내는 수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수는 계산하지 않는다


오늘날 기하학이라고 하는 영어 ‘geometry’는 토지라는 의미를 갖는 ‘geo’와 측량을 의미하는 ‘metry’가 합쳐진 그리스어에서 나온 것이다. 말 그대로 기하학은 ‘토지를 측량하는 기술’이었다. 수학의 기원을 설명하는 수많은 책들은 대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대수학과 기하학을 소개하면서, 수학이 사물들의 측량 경험에서 나온 지식이며, 국가가 이런 지식들을 배수나 관개 시설을 만들고, 경지를 측량하는데 사용하면서 발전시켜왔다고 기록한다. 아울러 이런 수학적 기법들이 과학들과 다양하게 결합되면서 양적 가치를 산출하는 대표적인 도구로 자리매김 되었다고 설명한다. 대수학은 1보다 2가 크고, 3은 2보다 크다와 같은 양적 가치(자연수, 음수, 분수, 무리수, 소수, 허수…)에 기초해서 다양한 방정식을 푸는데 몰두한다. 기하학은 이런 양적 가치를 도형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하학은 수로 표현된 추상세계의 양적 가치들을 직선과 곡선으로 이미지화한다. 이 도형은 저 도형보다 넓거나 길다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몬드리안의 구성 위에 있는 고양이


그러나 고대 중국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수를 양적 가치로 사용하지 않았다. 음양, 오행, 구주(九疇), 십간, 십이지지, 십진수, 육율(六律), 육여(六呂), 24절기 등등 중국사유는 모두 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때의 수들은 기수와 서수의 의미라기보다(그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징-값을 보여주려는데 더 의미가 있었다. 흥미롭게도 고대 중국인들은 수를 이용해서 그것이 상징하는 사물들을 표상으로 불러 들였다. 수를 ‘부르면’ 온갖 사물들이 함께 불려나온다는 발상이었다. 예컨대 1은 수(水)다. 2는 화(火)다. 화가 두 번째이거나(서수) 혹은 1보다 한 개 더 많아서 2라기보다(기수), 그 본성이 “2”로 포착되었기 때문에 “2”이다. 다시 말하면 화(火)를 2라고 특정화시키기 위해서 2라는 수를 붙였다. 또한 1(一)과 하늘(天)은 완벽한 등가를 이루었던 까닭에 고대 중국인들은 별도의 계사(繫辭, 설명해주는 말)없이 천일(天一)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1을 부르면 하늘을 연상하고, 당연히 하늘에 대한 이야기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1은 수(水)이고, 하늘(天)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81은 80과 1로 나누어지고, 그 중 1이 태양을 다스리기 때문에 태양(=하늘)의 수인 10을 의미했다. 즉 고대 중국인에게 81은 그대로 10이다. 81이 10보다 71이 더 많다는 식의 양적 판단은 여기에 아무런 작용력을 갖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81은 자연스럽게 10으로 변이될 수 있었다. 1은 10이고, 10은 81이다. 따라서 81이 불러오는 사물들은 10이 불러오는 사물들과 같았다. 다시 말하면 81이라는 숫자가 불러오는 사물들은 10이 불러오는 사물들로 아무런 의심 없이 변이할 수 있다. 81이라고 하면 수, 하늘을 부르고, 태양을 다스렸다. 이로부터 사람의 배태기간이 열 달임을 알게 되는데, 『회남자』는 “하늘은 1, 땅은 2, 사람은 3에 해당하고, 3을 3번 하면 9이고, 9를 9번 하면 81이고[=80과 1], 1은 태양을 다스리며, 태양의 수는 모두 10이고, 태양은 사람을 다스린다. 따라서 사람은 임신 10개월 만에 태어난다”고 역설했다. 약간 복잡하긴 하지만 ─복잡한 이유는 81이 80+1이라는 데 있다. 81은 80과 1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데서 그 본성이 1과 같아진다!─어찌되었든 1, 10, 81은 어떤 조건 하에서 상징적인 등가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떤 조건하에서 하늘, 수, 임신기간으로 변이된다. 사람의 탄생은 하늘이 다스렸고, 10달 간 물을 품으며, 그것은 가급적이면 겨울철에 이루지면 좋았다.

수는 수를 부르고 ―1은 10, 81을 부른다―, 또한 사물을 부르는―하늘, 물, 임신을 표상한다―마술인 셈이다. 이처럼 고대 중국인들에게 수를 다룬다는 것은 ‘계산하는 능력’을 넘어서서 ‘사물을 불러오는 기술’이고, 아울러 ‘그 사물들을 다른 사물로 변이시키는 능력’이었다. 오로지 수는 이 사물들을 의식으로 불러들이고(형상화), 변이시켜서 자신들이 원하는 세계를 구축하고 무너뜨리는데 활용하는 아주 탁월한 재료였다. 여기서 양적으로 많고 적음, 첫 번째 두 번째 순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기수, 서수의 규칙이 중대하게 끼어들 틈은 없다. 설사 그런 것(계산)이 필요해서 그렇게 사용할 수는 있어도,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지는 않았다. 오로지 그것들은 사물을 부르는 연쇄적 작용력으로서만 존재했다.


어떤 줄도 더하면 15가 되는 마방진


이런 상징들은 책의 목차를 구성할 때조차 강한 영향을 끼쳤다. 하늘이 우(禹)에게 주었다는 『홍범(洪範)』은 황제라면 숙지해야 할 모든 통치술을 다루었는데, 그것들은 아홉 개의 항목, 즉 구주(九疇)로 나뉘어 기술되었다. 그런데 그 항목마다 그 항목에서 말하는 속성에 부합하는 하나의 수-번호가 매겨져 있다. 이를테면 ‘제5항’에서는 ‘황제의 완전무결한 법도(皇極)’가 언급된다. 왜냐하면 5라는 수는 ‘중앙’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황제는 그의 거처인 황도(皇都)에서 내적 수양을 완벽하게 쌓아 만백성에게 지복을 베풀어야 한다. 따라서 완전무결하기 때문에 가운데 항인 제5항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아울러 이 황제가 베푸는 지복은 오복(五福)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것은 완전한 형식, 총체적 프레임이다. 그런데 먼저 황제의 지혜를 생각하다보니 9개가 나왔고 그래서 기왕에 있던 9개의 십진수-상징에 연결한 것이 아니다. 거꾸로다. 먼저 9개라는 수가 먼저였고, 그 수의 속성에 따라 황제의 지혜들을 그 프레임에 맞추어 구성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생각해본다면, 수는 모든 영역에 우주의 빛을 밝히는 등대 같은 것이고, 손으로 펼친 지도 같은 것이다. 고대 중국인의 수는 계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로 ‘생각’하였다.


 수는 세계를 만든다


사람들이 대개 수가 사물의 가치를 ‘재현’한다고만 생각한다. 사과가 두 개가 있으니까, 2라고 쓰고, 여기에 한 개가 늘어나니까 +1이 되어 3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는 상업수학이 근대 수학의 발달을 주도했기 때문에 강렬하게 자리 잡은 감각일 뿐이다. 상업수학은 사물들의 양적 가치를 정확하게 재현해서 사물 간에 가치를 비교하는데 특히 이용되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인들의 사유 속에 존재하는 수는 『홍범』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양적 가치의 ‘재현’ 그 자체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대 중국인들은 사물들을 움직이게 하고, 구성하기 위해서 수를 이용했다. 다시 말하면 ‘사물 이전’에 수는 존재한다. 수는 사물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사물 이전에 존재한다. 계산 목적을 위한 재현은 아주 지엽적인 기능이었다.

사실 『홍범』이 전달되는 신화적 장면 자체가 대단히 문제적이다.


아! 상천(上天)은 신비롭게도 아래 백성들에게 영역을 점지하시어 서로의 조화 속에 살게 하셨나니, 허나 나는 그 상도(常道)의 펼 바를 알지 못하니!...옛날 곤(鯤)이 큰물을 막아 오행을 어지럽힌 탓에, 황제는 진노하여 곤에게 『홍범』 구주(九疇)를 내리시길 거부하셨으니, 이로 인해 상도가 타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곤이 세계의 변방에서 처형되고 우가 그를 이어 권좌에 오르자, 마침내 상천은 우에게 『홍범』 구주를 하사하셨다. 이에 사람들은 다시 만물의 법도를 되찾게 되었다.


—마르셀 그라네, 『중국사유』 - 『홍범』의 서언


이 서언에 따르면 우임금도 구주라는 수가 없었으면 상도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나라를 다스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을 아는 하늘은 오행을 어지럽힌 곤에게 『홍범』 구주를 내리시길 처음부터 거부했다. 결국 곤에겐 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시대에 상도가 타락하고 만다. 수 자체가 인간과 사물의 배치를 구성하는 힘으로 제시된다. 『홍범』의 각 항목들은 우주질서를 상기시켜주는 범주들의 배치를 현실에 일깨워주고, 그런 정신을 구성하는 힘이었던 것이다. 즉 그것은 인간과 사물들의 존재를 구성하는 작용력이었다. 한낱 계산만을 위해 존재하는 재현의 수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마르셀 그라네(Marcel Granet, 1884~1940)의 말은 정당하다.


하늘이 우에 내린 것은 글에 대한 주해가 아니다. 그것은 문자로 된 글 자체였거나 숫자로 된 글이었다. 그것은 해독해야 할 본보기며, 수(數)로된 형상으로서 세계 그 자체였다.


—마르셀 그라네 『중국사유』 강조는 인용자


우임금의 모습

실제로 우임금은 아홉 개의 삼각대를 가졌고, 그 가마솥(정鼎)에 구주(九州)의 모든 존재의 표상들을 그려냈다. 이 표상들에 의해 권위를 부여받은 구정(九鼎)은 ‘세계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이 구정에 힘입어 우주 전체에는 질서와 평화가 군림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각자 자신의 영역에 묵묵히 머물렀고, 아무런 위험없이 구산과 구하와 구택의 편력이 가능했으며, ‘상하의 화합’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천혜’를 얻을 수 있었다.  영웅은 하늘로부터 수를 받음으로써 세계를 구성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지배하게 되었다.

우는 많은 창건자와 조물주들이 그러하듯, 대장장이나 측량의 달인으로 전해진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구산(九山)과 구하(九河)와 구택(九澤)을 측량했다고 한다. 여기서 우는 세계를 구성하는 총체적 지식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역사는 실질적인 체험을 통해 통치의 원리를 9개로 나누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체득하였다. 아울러 그런 경험이 하나의 원리처럼 보편화되어 갔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꾸로 9개로 나누는 시·공간적 감각이 신체화되고, 이 감각이 시·공간적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의미 있는 출발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는 실증적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도 수 9를 통한 지식이 생산된다. 다시 말하면 경험적 체득과 원리적 적용이 뒤섞여 수 9를 통한 지식 프레임 그 자체가 성립한다. 수 9가 불러일으키는 지식들은 오로지 경험만으로도, 오로지 원리만으로도 아닌 체험과 직관 ‘사이’에서 구성된 지식이었다. 그로부터 수 9는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인간과 사물의 배치를 장악한다. 수 9는 인간과 사물 앞에, 옆에, 뒤에 있으면서 그것들의 배치에 관여한다. 


시·공간을 9개 구역으로 나누는 정방형 방위(1,6은 북과 겨울, 3,8은 동과 봄, 2,7은 남과 여름, 4,9는 서와 가을, 5는 중앙)도 그 중 하나다. 사실 9개의 수 중 앞 수인 1,2,3,4와 뒤 수인 6,7,8,9는 본성상 똑같다. 다만 서로가 다른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서사(세계를 구성하는 이야기)에 출현한다. 예컨대, 1-6은 본성상 수(水)이면서 겨울(冬)이고 북(北)에 결부된다. 그런데 『홍범』은 앞의 수를 가지고 자신의 서사를 구성해나가고, 『월령』이라는 책은 뒤의 수를 가지고 자신의 서사를 구성해나갔다. 『월령』은 책력에 대한 글이므로 뒤의 수들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그 수들의 총합, 즉 6+7+8+9이 30이므로 360의 주된 약수들 중 하나여서 그 자체로 한 해의 주행(1년)을 상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시간을 설명하기에 적합했고, 아울러 의도했던 시간 단위를 환기시키는데 더 강력했다.


하지만 『홍범』은 각 범주들의 점진적 전개를 상기시키면서 우주의 구성을 밝히려 했다. 그래서 제1항은 공간장치로서 오행에 배분했다. 즉 배치순서를 알리는데 적합하도록 1,2,3,4를 선호했다. 4까지 나온 수가 4방위를 표현하는데 적합했고, 위치 지정에 더욱 강력했다. 결국 앞의 수(1,2,3,4)는 공간상의 위치를 배치해주고, 뒤의 수(6,7,8,9)는 시간상의 영역[계절]을 통솔한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은 중앙 수 5를 중심으로 만난다. 이렇게 수 5가 중앙을 차지함으로써, 양 옆의 수들(십진수 기준으로 왼쪽의 1,2,3,4와 오른쪽의 6,7,8,9)는 직선적인 배열을 벗어나서 하나의 순환주기로서 접힌다. 수 9는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만들어준다. 수 9 자체가 시간과 공간을 결합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독특한 순환 세계인 셈이다. 어쩌면 9라는 수를 말하는 순간, 시간과 공간 양쪽을 결합해서 구성하고 지배하려는 군주의 완전한 욕망을 드러낸 것일지 모르겠다. 수 9는 군주의 욕망이면서, 그가 지향하는 세계이며, 아울러 그렇게 완성한 세계이다.


9가 만드는 세계, 9가 표현하는 세계는 무엇일까?


이 이야기의 처음에 말했던 우임금 키의 비밀. 우임금의 키는 83촌. 그것은 8과 3이다. 숫자로 본다면 방위상 ‘동(東)’이고 ‘봄(春)’의 세계다. 그것은 선대인 곤이 일으킨 대홍수 이후에 펼쳐진 세계다. 오행(五行) 상 물(水)이후에 나왔다. 당시에는 창건자들이 새 시대의 시간과 공간을 새 책력으로 다스리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력으로―아마도 신장(키)은 창건자의 생명력 자체였을 것이다!―세상을 다스리고 싶어 했다. 자신이 곧 척도가 되었다. 우임금은 곤의 대홍수로 무너진 세상을 서광이 비추는 동쪽 기운으로 봄처럼 다스리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일이다.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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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이웃한의사 2012.10.30 09:36 답글 | 수정/삭제 | ADDR

    과거 동양철학이나 주역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자연의 이치에 부합하며 살아가려 했던 고대인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곤 합니다.ㅎ
    잘 보고갑니다.^^

    • 북드라망 2012.10.30 10:09 신고 수정/삭제

      저도 자연을 바라보고 사유하는 다른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신기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나봐요. 하하하;;

    • 약선생 2012.10.30 16:46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고대인들의 생각을 읽다보면 그들이 우리랑은 완전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아마도 사물을 대하는 감각 자체가 완전 딴판이어서 그럴 겁니다. 특히 고대인들의 '수에 대한 감각' 그리고 '수를 통한 감각'은 저의 큰 관심사입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면 근대과학이 열어 제친 우리들의 감각과 의미있는 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물론 그런 작업을 제가 할 수 있겠느냐는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지요. 쩝. 아무튼 저는 공부도 여러개의 감각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는 역량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고대인들의 지혜'가 그런거 아닐까요? 아무튼 읽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신금이 2012.11.19 14:28 답글 | 수정/삭제 | ADDR

    64괘 공부를 하고 싶으신 이유가 있었네요. 수를 가지고 설명하는 일은 자칫 딱딱하고 재미적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텐데, 약선생님이 관심을 가지신다니 기대가 됩니다.

    • 북드라망 2012.11.19 17:43 신고 수정/삭제

      약선생의 철학관이 더욱 풍성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죠~~~ ^─^
      저도 많이많이 기대됩니다!!

    • 약선생 2012.11.20 12:50 수정/삭제

      제가 워낙 동아시아 사상을 잘 모릅니다. 그렇다고 서양철학을 잘 안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ㅜㅜ 그런 제게 동아시아 사상에 대해 딱 두 번 길이 열렸었죠. 첫 번째는 연암 박지원을 읽었을 때이고, 두 번째는 마르셀 그라네의 <중국사유>를 읽었을 때입니다. 그런데 그라네를 읽으면서 깨달은 게, 중국사유에서 ‘수’가 차지하는 힘이 매우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서구에서 다루는 수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울러 그런 것이 결국 음양오행론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가서, 그것들이 언어의 가능성과 자연학적 사유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제가 관심이 가는 주제들과 연결되니까, 동아시아 책들이 너무 너무 재미있어졌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중국사유에서의 수'에 대해서 하나씩 정리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거죠. 무턱대고 정리하고 있어서 온통 오류투성이일것 같네요. 아무튼 요즘 동아시아 책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혹시 신금샘~ <주역>을 같이 읽으실 생각 없으세요?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