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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세미나를소개합니다

[우.세.소] 사이재의 <융 세미나>를 소개합니다!

by 북드라망 2024. 4. 12.

사이재의 <융 세미나>를 소개합니다!

 

한스(세미나원)

 
2020년 시작된 코로나는 나에게 큰 변화를 일으켰다. 내가 소위 ‘공부’란 걸 시작한 것. ㅎㅎ 맞다. ‘공부’다. 코로나로 인해 저녁 모임, 술자리 등이 없어지고, 주말에 야외도 안 나가니.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신기하게도 『동의보감』이 읽고 싶어졌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병을 치료해 왔는지 내가 너무 무지했다는 느낌이 언뜻 들었다. 코로나로 인한 격리지만 고립, 혼자 있음은 확실히 사람을 철들게 한다. 아무튼, 고미숙 선생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란 책을 읽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내가 공부했던 서양의학은 질병을 우리 몸으로부터 분리시켜서, 질병을 치료와 퇴치의 대상으로 생각해 왔는데, 『동의보감』은 ‘질병을 삶의 과정 및 일부’로 보았다. 질병을 다룬 책인데 한 인간, 우주를 말한다. 나는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찾다보니, 책 표지 날개부분에 남산강학원, 감이당이란 말이 보였다. 나는 남산강학원이란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원이 있고, 그 옆에 빵과 커피 등을 파는 감이당이란 곳이 있는 줄 알고 찾아갔다. ㅎㅎ 결과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아니, 원래 공부하는 학원이 있으면, 그 옆에 커피와 달달한 빵집이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혹시 빵집을 내실 분이 있다면, ‘감이당’이란 빵집 이름을 얼른 사용하시길..) 
 
나의 공부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코로나는 생각보다 훨씬 길어져 3년 이상 지속되고, 나도 고전을 읽는 생활 패턴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나는 심심했을까? 아니다. 아주 바쁘게 지냈다. 책 읽느라고.. ㅋㅋ (아무튼 내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여러 프로그램에 들어가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 2년간 동양 고전인 도덕경, 장자, 맹자, 주역, 동의보감 등과 서양철학인 들뢰즈, 니체, 스피노자, 푸코 등을 읽었다(?).(ㅎㅎ오해는 마시라. 그런 과목들을 지나왔다는 말이니.) 이해하진 못해도, 확실히 고전들이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만약 싫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 나의 빈약한 인문학적 지성은 개발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일(業)에 도움이 되었다. 나의 진료활동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다. 나의 건강에 대한 기본적 생각이 바뀌었다. 즉, 건강과 질병은 대립 개념이 아니라는 것. 건강은 통증과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통증과 질병으로 인해 건강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

그것은 그동안 나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기관지 천식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고, 환자들에게 보다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나의 생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왜 <융 세미나>인가
나는 코로나 다음 해인 2021년 『주역』을 공부하다가 빌헬름이 번역한 『주역』의 독일어판 서문을 칼 융이 쓴 걸 읽으면서 융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칼 융이 누구인가? 분석심리학자이면서 정신과 의사로도 활동했던 분이다. 세미나 같이 공부하는 분들이 나에게 융에 관해 묻는다. 혹시 아는 줄 알고. 하하 당연히 모른다. 의과대학과 정신과 실습 때 융의 정신분석에 관해 잠깐 접하기만 했을 뿐이지 모른다. 
 
그런데, 『주역』과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도무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상징의 신비’, ‘무의식의 신비’라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다. 거기에 중요한 연결고리가 ‘상징(상, 象)’. 『주역』도 괘의 상을 보고 상징적 의미를 유추해내는 과정이고, 그 과정 중에 삶의 위안과 지혜가 생긴다. 칼 융도 우리는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고, 다만 상징으로만 접근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무의식이 충동과 억제, 그리고 격정이 부글거리는 형태로 간혹 분출되어 사고를 치게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나는 요즘 몇 년간 심장내과 외래에 증상만 있고 실체가 없는 환자가 계속 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심각한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부정맥보다는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거림으로 내원하는 사람들이다. 실제 검사해 보면 아무것도 없다. 내면의 신경증, 불안, 두려움 등이 신체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증상만 있는 질병. 실체가 없어서 더 어렵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우리는 지금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세대’에 살고 있다는데 말이다, 적어도 수치상으로 세계 10위의 무역국이고, 각종 지표는 이미 풍족한데, 왜 우리는 특별한 병도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는가? 자살율은 세계 1위이고, 각 지역, 남녀, 나이 곳곳의 혐오감은 유례가 없다. 그 이유는 무얼까? 우리 내면이 궁핍한 탓인가?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여백이 없고 빈곤한 탓일까? 외적인 풍요와 내적인 빈곤의 불일치? 그것이 융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나는 재작년 말부터 융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냥 융에 관해 모르니 융에 관한 책 한두 권만 읽어보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절대로 융의 기본저작집 아홉 권을 다 읽으려고 참여한 건 아니다. 그런 거창한 목표를 갖고 시작했으면 안 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어떤 일이든지 무겁게 큰 결심을 하고 시작한 일은 대부분 낭패를 보았다. 하지만 가볍게 그냥 맛만 보자고 시작한 일은 의외로 결과가 좋았다. 나의 이번 융 세미나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융 세미나>의 방식: ‘읽어오기’에서 ‘올프레스 발제’로! 
세미나는 2022년 10월부터 사이재에서 『한 달에 한 권, 칼 융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시작되었는데, 나는 모르고 있다가 11월부터 융 저작집 2권부터 참여했다. 물론 책이 잘 읽히진 않았다. 우선 ‘정신’에 관한 개념들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서 혼란스러웠다. 정신, 마음, 무의식, 집단 무의식, 심혼 등등.. 어거 다 ‘마음’ 아닌가? 웬 마음이 이렇게 많은지?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림자, 페르소나,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Selbst) 등등.. ‘마음’이 이렇게 많은 거였어?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한 권만 읽자.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 그런 게 위안이 된다. ‘나만 몰랐나?‘가 아니다. ‘다 같이 손잡고 가자’는 분위기..
 
처음에는 정해진 분량을 읽고 이야기했으나, 이야기에 두서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발제 후 토론을 하기로 했다. 어떤 세미나원은 ppt자료, 요약 등 각자의 무의식이 끌리는 방향으로 하다가 수 개월간 입발제(말로 하는 발제 방식)로 진행하였다. 그러다 얼마 전 우리 세미나의 진행자인 다영샘의 제안으로 ‘올프레스 발제‘ 방식으로 진행한다. ‘올 프레스’란 농구나 축구 게임에서 포지션에 관계없이 모든 선수들이 공격과 방어를 하는 전방위 시스템이다. 상당히 역동적이다. 매 세미나마다 각자 맡은 게 있으니 절대 결석할 수 없다. 
 
한편 매주 월요일 오후 4시에 <융 세미나>를 시작하는데, 나는 생계형 의사인 관계로 그 직전까지 외래 환자들을 보다가 세미나에 줌으로 참여한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 바쁘다. 주말에 틈틈이 책을 읽어야 하니, 손에 책을 항상 들고 다니게 된다. 그런데, 다음날 세미나 할 때 책을 보면 새롭다. 너무 새롭다. 책에 밑줄이 그어져 있으니, 읽고 무슨 느낌이 있어서 밑줄을 그었을 텐데, 왜 밑줄이 있는지 생소하다.ㅎㅎ 
 
아무튼, 그리하여 어찌어찌해서 세미나가 끝나면.. 잘 몰랐으니 머리가 무거울까? 아니다. ‘가볍다’, ‘몸이 가벼워진다’ 책에 있는 언어도 다 이해 못했는데? 왜 그럴까? 그것은 무의식의 특성과 관계있는 것 같다. 무의식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상징과 신화로 ‘드러난다’. 그 무의식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치는 것 사이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 맞다.. ’사이‘에 존재한다. 앗! 우리가 공부하는 곳이 어디? 사이재.. 아 이런 동시성..ㅎㅎ
 
하여간, 우리 각자가 사는 이야기 속에(사이에) 스쳐 지나간다. 세미나원들의 솔직한 이야기들은 각자의 무의식을 우리 의식 속에 ‘드러나게 함’으로써 우리 내면에 진정한 통합이 일어나도록 돕는다. 불일치(소외)가 해소된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위안.. 그래서 즐거워진다. 삶의 짐이 가벼워지는 느낌. 지식을 얻기보다 무의식을 탐험하기 때문이리라.
 
1년 넘게 걸려서 9권을 모두 읽어 금년 1월에 마무리되었다. 나는 학창시절 ‘대도무문’이란 무협지 10권짜리 읽은 이후로 전집을 읽은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어렵다는 무의식에 관한 책 9권까지 마쳤다니.. 같이 세미나를 같이 한 멤버들 때문이다. ‘다 같이 손잡고 가자’는 멤버들.
융 저작집 읽기의 세미나를 마치면서, 나는 아쉬웠다. 이렇게 끝날 수는 없다!! 그래서 계속 융에 관한 것이든 의식과 무의식에 관한 탐구를 지속하자고 제안했다. 반장도 아닌데.. 내가 미쳤나? 왜 그랬을까? 나도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내 삶의 짐이 가벼워져서’이다. 오직 무의식의 이끌림 탓일 뿐이다. 
 
요즈음 우리는 『레드북, RED BOOK』을 읽고 있다. 『레드북』은 융의 유고집이고, 융이 펜으로 직접 글을 쓰고 그림까지 그린 책이다. 책에는 신, 악마, 은자, 황소뿔이 난 거인, 악마, 지하세계의 젊은 처녀, 뱀, 알에 갇힌 신, 희생제물 등과 같은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象)들이 가득하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 무의식은 신화나 상징으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레드북』은 융의 영혼의 언어이다. 융의 영혼의 언어는 시공간을 넘어 우리의 영혼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절대 혼자 읽을 수 없다. 우선 뭔 말인지 모르고, 잘못 이해하다가는 삼천포로 빠진다. 
 

<융 세미나>의 사람들
그동안 외부에서 융의 저작집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거나 상담심리 등의 목적으로 자격증을 목표로 하는 분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순수 아마추어들이다. 각자의 ‘마음’이란 게 궁금해서 참여한 분들이다. 아 ‘마음’이란 게 뭔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하니,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다. 부산에서 인기있는 웹툰 만화가로 활동 중인 분(이분 엄청 인기있는 분), 전남 장흥에서 한국 무용가로 활동 중인 분, 직장인, 주부 등 다양하다. 나이도 다양. 무의식에 관한 공부를 하다 보니, 서로에 관해 잘 알아간다. 각자 꿈 이야기도 하게 된다. 꿈에서 각자의 무의식이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최근에는 꿈을 안 꾸는 줄 알았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억을 되살려보니 꿈들을 많이 꾸는 것이었다. 그 꿈을 해석하는 과정에 치유가 있다. 역시 ‘꿈보다 해몽’.. 온-오프라인에 전혀 장벽을 느끼지 않는다. 무의식을 이야기하기에 장점이 많다. 우리 세미나에서는 이야기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고 보니, 오~ 사이재(捨以齋)? ‘사(捨)’는 버리다, 비우다라는 뜻..ㅎㅎ 손(扌)이 집(舍)에 머무는 것을 내버려 두듯이 베푼다. 각자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베푼다? ㅎㅎ 역시 ‘꿈보다 해몽’..

무의식에는 선악이 없다. 우리는 공부하면서 우리 각자의 무의식에 ‘악하고 어두운 부분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악한 면이다. 그걸 뒤집어보면 선한 면이 될 수도 있다. 선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공존한다. 좋고 나쁨도 없다.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을 뿐이다. 각자의 무의식에 관해 말하다 보면 나도 공감이 많이 간다. 우리 각자는 이미 무의식의 내용들을 많은 부분 서로 공유하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더불어 각자의 개인 무의식도 있고 그림자도 있지만, 거기에 선악은 없고 각자의 무의식은 각자의 방식으로 ‘옳다’.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환자들을 진료할 때 좀 더 입체적으로 보게 된다. 모든 무의식에 선악이나 호불호가 없는 것처럼, 질병에도 좋고 나쁨이 없다. 질병의 나쁜 면 속에 좋은 면이 있다. 무의식을 공부하면 왠지 사람이 화를 덜 낼 것 같다. 사람을 보는 시선이 입체적이기 때문일까? 아무튼, 무의식을 통한 마음공부는 우리도 왠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ㅎㅎ 착각은 아닐 것이다. 사이재에서 융과 함께 ‘다 같이 손잡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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