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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세미나를소개합니다

[우.세.소]규문의 <생-기 세미나>를 소개합니다!

by 북드라망 2024. 2. 19.

규문의 <생-기 세미나>를 소개합니다!

 

성민호(생-기 세미나 반장)

 

규문의 이상한 세미나, ‘생-기 세미나’의 탄생

“이 책 좀 봐봐라!” “음... 오오!” 학기가 시작 되었지만 아직 숨 쉴 틈이 있었던 3월 중순,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책을 만났다. 이건 혼자 읽고 말 텍스트가 아니었다. 권해야 했다.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들에게, 친구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모든 지구인에게! 그 책은 제목도 도발적인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였다.


바야흐로 범-디지털 시대다. 몇 년 전 카카오 데이터 화재와 작년 정부의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에서도 확인했듯, 우리는 인터넷이 끊기면 택시도 못 타고 밥값도 못 내며 회사 업무가 마비되는 초-접속 시대에 산다. 24시간을 스마트 기기들과 함께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온라인화한다. 동시에 기후 재난의 시대를 살아간다. 열심히 에코 실천을 하건 체념을 하건, 위기이자 비상 상황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두 사태를 연관 짓는 시도는 좀처럼 없는데, 저 책에 따르면 거대 디지털 기업들이 세심히 감행하는 그린워싱 때문이다. 디지털은 비물질적이고, 그래서 매연과 폐수를 내뿜는 다른 산업들보다 왠지 클린하다는 식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디지털 산업은 물질적이고, 지구를 감쌀 만큼 넓고 거대한 인프라를 동원하며, 그 어떤 산업보다도 무거운 생태 발자국을 남긴다! 그보다 치명적인 것은 IT기업들이 우리의 속도 감각과 소비 욕구를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이다. 디지털의 산업적·정치적·인지적·지리적 배치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이대로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고민은 함께 해야 했다!

 

 


사실 책을 홍보하려는 게 아니다. 디지털을 문제 삼으려는 것도 아니다. ‘생-기 세미나’의 우발적인 탄생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둘러보니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와 같은 책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땅 위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과 밀접하면서도 ‘생태’라는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문제제기를 담은 텍스트들, 그래서 당장 뭔가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떠미는 텍스트들이 도처에 있었다. 허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거리로 나서거나 정치 운동을 조직할 재주가 없는 우리에게 실천은 하나, 세미나였다. 물론 이때의 세미나는 정보 공유 모임 수준에 그칠 수 없었다. 비록 엉성하고 헐겁더라도 분명한 비전이 있었다. 뜨겁고도 유용한 텍스트를 품을 들여 함께 읽고, 우리의 자리에서부터 질문들을 던지고, 이야기를 마구 퍼뜨리고, 머리를 모아 서로의 윤리를 길어 올리기! 생태학과 기술철학을 함께 궁리하는 ‘생-기 세미나’는 이렇게 탄생했다.

 

“생기 세미나에서는 더이상 유예할 수 없는 생태적 문제들과 테크놀로지의 빛과 그림자를 탐구합니다. 나아가, ‘인간’을 다시 생각해보고 ‘인간’과 ‘비-인간’들의 관계를 형성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합니다. 기술철학, 디지털 문화, 젠더, 동물학, 장애학, 포스트 휴머니즘의 담론과 실천들을 종횡무진하면서 ‘인간의 저편’을 사유하고자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그간 의식하지 못했던 낯선 ‘무언가’를 발견함과 동시에 예측불가능한 ‘무언가’를 향해 열리는 ‘미지수–되기’의 여정에 함께하실 분들을 기다립니다!”(생-기 세미나 시즌1 모집글)

 

 

하지만 이는 다소 이상한 세미나였다. 말하자면 ‘규문적’이지 않았다. 흔히 다른 인문학공동체에서 공부를 하시다가 오신 분들에게서 규문의 공부가 좀 학술적이고 하드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정말일까? 다른 곳을 가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어떤 문턱 혹은 규격 같은 것이 있음은 느낀다. 예를 들면, 진행되는 프로그램들 대부분이 1년(혹은 그 이상) 과정이고, 묵직한 동서양 고전을 중심으로 이뤄지며, 탄탄한 문제의식 및 근본적 관점 위에서 ‘인간’을 탐구한다는 점 등이다. 그래서인지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신청하기가 쉽지 않다. 즉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높을 수 있다는 것(기획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경우에 따라 단점으로도 장점으로도 작동한다. 그런데 신생 세미나인 ‘생-기 세미나’는 그런 전통을 거스르며 등장했다.


한 시즌이 한 권 혹은 두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짜였으며, 격주로 그리고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메모를 나누는 과제는 있었지만 기말 에세이는 없었다. 느슨하다고도 가볍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텍스트와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뒤섞는 일이 핵심임을 떠올리면 대단히 필요한 느슨함이었다.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만큼 접속은 풍성해졌다. 다양한 문제의식과 다양한 이야기가 다양한 거리에서 다양한 경로로 흘러들어왔다. 공동체 밖 친구들에게도 함께하자고 권해볼 수 있었고, 세미나 때마다 또래들이나 우리 세대를 떠올리게 되기도 했다. 다른 세미나에선 강의를 맡으셨던 채운샘도 한 명의 세미나원으로 참여하며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들으시고 나누기도 하셨다(물론 어떤 세미나이건 통하는 법칙처럼 많이 생각했기에 많이 말씀하게 되신 건 맞다). 그랬기에 위에서 말한 느슨함이 자유분방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매회 텍스트와 우리의 현실을 관통하는 질문들이 주어졌고 그것을 중심으로 과제를 작성하고 토론을 이어갔다(물론 신나게 세미나를 하다보면 엇나가는 일도 부지기수였지만^^). 가령, 마지막 시즌 <분해의 철학>을 읽을 때의 질문이었다. 

 

1) 우리 자신과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생산이나 창조에서 시작하는 것과 분해와 부패에서 시작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2) 분해나 부패 개념을 통해 생태문제에 접근할 때 뭐가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 실천적 차원에서 생각해봅시다.

 


이렇게 세미나로의 접속에서도, 세미나 진행의 방식에서도 여유와 긴장, 느슨함과 중심잡기가 함께 이뤄져갔다.

 

또한 1년 기획이 아니었기에, 커리큘럼도 더 유동적으로 짤 수 있었다. 작년 여름,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었을 때는 일본 원자력 산업의 역사를 주제로 한 시즌을 기획했고, 기다리던 『세계 끝의 버섯』이 번역되어 나왔던 가을에는 이 책을 읽는 시즌을 마련했다(이 때는 오프라인으로 진행했다). 지극히 현재적인 문제들을 논의하고, 신간 텍스트를 발맞춰 읽어가는 경험은 대단히 ‘생기’ 넘치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주기로 시즌을 열어갈 때마다 새로운 주제와 새로운 분위기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규문에서 생태학 공부를 이어가는 것은 내 소망 중 하나였다. ‘생태적 삶’이라는 질문은 꽤 오래전부터 나를 좌우했던 방향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인문학 공동체에서 어떻게 에콜로지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크고 작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생태’라는 주제를 중심에 두고 선명한 관점이나 근본적 질문을 구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번번이 과학을 주제로 하게 되거나 단발적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하지만 작년 한해 동안의 ‘생-기 세미나’의 경험은 내게 작은 용기를 주었다. 이렇게도 열릴 수 있구나. 기획이 어렵고 비장하기만 한 게 아니구나.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들, 그러나 사각지대에 놓여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문제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과 함께할 사람들이 모이면 되는구나! 제약이나 장벽이 먼저 있는 게 아니다. 시도에 있어서의 절실함과 명랑함, 길은 거기서 생기는 법이다. 이렇게 내가 갖고 있던 어려움 하나가 풀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해동안 세미나를 이어가면서 내게서 ‘생태’라는 주제도 아주 다층적으로 열리고 멀리까지 연결되었다.


우리의 첫 해, 그리고 두 번째 해
우리는 종횡무진 그리고 삐걱삐걱 나아갔다. 전 지구를 감싸고 있는 ‘디지털’의 배치를 공부하면서 그 산업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오염만이 문제가 아님을 배웠다. 컨텐츠의 질과 양상, 말초적 반응 기제의 연구와 우리의 속도 감각, 가속되는 ‘스마트화’ 모두가 생태의 문제였다. 육식과 원자력에 대해서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기를 둘러싼 산업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젠더적, 역사적 담론과 인프라를 탐구하지 않고 온실가스나 삼림파괴에 대해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후쿠시마 사태 또한, 오염수라는 장막 뒤로 150년에 걸친 일본 산업화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강력한 ‘에너지 자립’이라는 뿌리 깊은 환상을 직면하지 않고서는 ‘유일한 피폭국’이자 지구 최대의 지진 발생국이 원자력을 신봉하는 기이한 역설을 이해할 길이 없다. 기술, 감각, 음식, 담론과 마찬가지로 역사와 환상 역시도 생태의 문제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에콜로지는 우리의 가장 밑바닥에 그어진 경계들을 되묻고 허무는 일까지 나아간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물질, 주체와 객체, 문명과 자연, 도시와 야생이라는 이원적 구분들의 타당성을 과학적·철학적 사유를 동원해 헤집어 놓는 일까지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뒤집기를 시도했다. 대부분의 생태 담론이 전제하는 ‘끔찍한 위기’와 그 귀결인 희망/절망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 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염, 교란, 폐허를 어떻게 인간적 자연이 아니라 패치워크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 자연을 조화와 순수라는 생산이 아니라 부패와 해체라는 분해라는 차원으로부터 사유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태 운동의 결론은 애도나 향수만이 아니다. 긍정의 문제,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존재들의 탐구와 발견 역시 에콜로지의 문제였다

 

 


이것이 한 해 동안의 수확이었다. 그리고 올해 생-기 세미나는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 두 번째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시작할 때의 우발성을 내려놓고, 일년 간의 긴 호흡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그리고 종횡무진 가로질렀던 에콜로지로부터 방점을 옮겨서, 테크놀로지의 배치를 탐사하고자 한다. 생-기의 ‘기’에 초점을 맞추는 거다. 사실 인간의 모든 역사 뿐 아니라, 현대의 이 첨단 문명 속에서 우리는 도구와 분리 불가능한 존재다. 주거, 식사, 정치, 예술, 의료, 노동, 심지어 공부에 이르기까지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기술 속을 유영하지만, 기술에 대한 고민은 얇디얇다. 그저 중립적인 편의 정도로 여기거나, 사회문제의 원인이라며 반감을 드러내거나, 인간 해방 및 기후위기의 해결책으로서 희망을 건다. 그리고 우리는 무수한 스마트 기기와 온라인 컨텐츠의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하는(디지털 디톡스) 시대를 맞이했다. 이 시대에 우리 자신을 잃지 않고 인간과 세계를 묻고 탐구한다면, 기술을 공부하지 않기가 어렵다. 어느 누가 생태학과 기술철학을 선명하게 분리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해를 맞이한 ‘생-기 세미나’는 우리의 안팎을 가로지르고 있는, 인간이 만든 것이자 인간을 만들고 있는 장치들이 테크놀로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벌써 기대하게 되는 건 설레발일까? 시작은 미미하였다. 끝이 창대하지는 않았으나, 그 미미한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 예기치 못한 만남들을 기다려본다.

 

 

*작년 생-기 세미나에서 읽었던 텍스트들
시즌1 : “모두를 살리는 접속, 모두를 죽이는 접속”
기욤 피트롱,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갈라파고스
시즌2 : “먹기의 정치와 윤리”
캐럴 제이 애덤스, 『육식의 성정치』, 이매진
시즌3 : “후쿠시마, 누구의 재난인가”
앤드류 레더바로우, 『후쿠시마』, 브레인스토어
이케다 미노루, 『후쿠시마 하청 노동 일지』, 두번째테제
시즌4 : “천지만물-되기”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현실문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산책 외』, 책세상
시즌5 : “버섯들과 함께, 세계의 패치들로서 살아가기”
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현실문화
시즌6 : “세상 끝에서 춤추다”
후지하라 다쓰시, 『분해의 철학』, 사월의책
펠릭스 가타리, 『세 가지 생태학』, 동문선

*올해 생-기 세미나에서 읽을 텍스트들
시즌1 : “‘기술’을 문제화하기 :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이광석 외, 『현대 기술, 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그린비
앤드루 핀버그, 『기술을 의심하다』, 당대
스티글레르,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문학과지성사
주디 와츠먼, 『페미니즘과 기술』, 당대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 그린비

시즌2 : “인간 ‘너머’, 과학 ‘너머’를 사유하기 : 해러웨이 & 라투르”
다이애나 쿨·사만타 프로스트, 『신유물론 패러다임』, 그린비
도나 해러웨이,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아르테
도나 해러웨이, 『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 갈무리
미셸 세르·브뤼노 라투르, 『해명』, 솔
브뤼노 라투르, 『과학인문학 편지』, 사월의책
브뤼노 라투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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