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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

[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 폐경, 다르게 보기!

by 북드라망 2023. 12. 1.

폐경, 다르게 보기!

 

50대 중반의 친구가 ‘폐경’ (폐경(閉經); 여성이 나이가 들면서 난소가 노화되어 기능이 저하되면 더 이상 여성 호르몬을 생산하지 않는다. 이때 나타나는 현상을 폐경이라 한다. 최근에는 폐경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완경(完經)’이라고도 표현한다. 이 글에서는 폐경으로 표기한다.)되니 새벽 4시면 눈뜨고, 4월인데도 추워서 내복을 입는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이제 몸이 변하는 중이니, 커피를 줄이고 내복 입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자고 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31살이 된 딸이 “폐경 증상에 대해 엄마처럼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내 친구의 어머니를 보면 약을 먹어서 추운 것을 없애려고 해. 그러니 엄마가 ‘다르게 보는 폐경’에 대한 글을 쓰면 어떨까?” 

 


폐경, 꼭 치료해야 하나? 
정말 폐경은 꼭 치료해야 할까? 폐경학회가 있다. 이는 명백히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폐경여성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근대의학은 환자의 질병에 대해 관찰과 시선을 통해 비밀을 파악하고 객관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몸에서 질병을 분리하고 환자의 몸에서 질병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간과하면서 환자의 몸을 대상화했다. (푸코. 1963) 이동옥,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여성학적 성찰』, 한국학술정보, 2012, 167쪽 

 

근대의학은 몸의 불편함을 모두 질병의 개념으로 본다. 정상치를 산정해 두고 그곳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치료는 비정상을 모두 정상치에 근접하게 바꾸는 것이다. 이때 약물의 도움을 받는다. 물론 이런 의학적 접근이 많은 사람을 질병의 고통에서 구하였다. 예를 들면 당뇨병의 혈당 수치나, 고혈압 환자의 혈압수치가 그렇다. 이 수치들을 정상치에 가깝게 유지하여 10년 ~20년 뒤 혈관 계통의 망가짐을 예방하여 건강한 삶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폐경은 좀 다르다. 폐경은 노년으로 가는 변화로 이전과 다른 몸이 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좀 불편할 수 있다. 의학계는 이 불편함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기보다는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이렇게 된 데는 1900년대에 미국의 제약회사가 개발한 합성 여성호르몬의 역할이 컸다. 그 당시 슬로건이 ‘여성이여, 영원하여라.’였다. 마치 회춘하여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것 같이 선전하여 그 약은 불티나게 팔렸다. 그러나 곧 이 약은 오랜 기간 쓰면 자궁내막암의 유병률을 높이는 것이 밝혀져 누구나 함부로 복용하지 않게 되었다. 폐경 증상이 ‘상품’이 되는 것을 알아챈 제약회사들은 여러 가지 약을 속속들이 만들었다. 폐경을 질병으로 보고 ‘약’을 개발했던  것이다. 

 

여성의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를 이렇게 보는 데는 남성 의사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각이 개입한 바도 크다. 자궁이나 난소가 아기를 낳고 나면 더 이상 쓸모없다고 여기는 서양 의학의 시각도 여기에 기여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폐경 때 먹어야 할 약을 선전하는 쏟아져 나오는 광고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아! 폐경은 치료해야 할 질병이구나.’라고 당연시한다. 동양의학에서는 자궁을 서양 의학과 다르게 본다. 이를 한 번 살펴보자.

 


  


작은 텃밭에서 넓은 평야로 

월경이 달의 주기와 비슷한 까닭은 여성의 몸에 음의 시간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도균, 『양생의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작은길, 2015, 293쪽

 

한의학에서 남자는 양, 여자는 음의 기운으로 본다. 양은 발산하는 기운이고 음은 응축하고 수렴하는 성질이다. 여자들은 아기를 낳아야 하므로 기혈을 심하게 응축시키는데, 임신이 되지 않으면 이 기운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이것이 월경이다. 월경은 달의 주기에 따라 일어나서 기혈을 순환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월경은 여성 음의 기운을 순환시켜 칠정(七情)(칠정(七情);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 희(喜,기쁨), 노(怒, 성냄), 우(憂, 근심), 사(思, 근심), 비(悲, 슬픔), 경(驚, 놀람), 공(恐, 두려움), 칠정이 지나치면 장부 기혈에 영향을 주어 병을 일으킬 수 있다.)의 울결(鬱結) (울결(鬱結); 기혈이 한 곳에 몰려 흩어지지 않음.)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폐경은 아기를 낳지 않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기혈을 모을 필요가 없어진 증상이다. 그래서 달의 주기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음의 에너지가 폐경기에는 큰 높낮이 없이 잔잔하게 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때 ‘음의 시간’이라는 것은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활동 중 쉬는 시간을 의미한다. 

 

여자의 포는 곧잘 대지에 비유된다. 대지가 자연을 키워내듯 포는 생명을 길러내며, 대지가 만물을 포용하듯 포 역시 오행을 아우른다. 가임기의 포가 생명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면 폐경기 이후의 포는 존재와 세계를 거침없이 수용한다. 포가 어떤 오행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런 음의 포용력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안도균, 『양생의 치유의 인문의학 동의보감』, 300쪽 



여기서 포는 자궁을 말한다. 이렇게 폐경이 되면 자궁의 기운이 달라진다. 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밖(정자)과 만나기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음(陰)의 기운이 잔잔하게 일상의 양(陽)과 조화를 이루면서 담담해진다. 월경할 때 자궁이 집 앞 텃밭같이 가족의 자손을 생산하는 역할을 했다면, 폐경이 되면 자궁은 대지와 같이 관계를 확장하고 지혜를 연마하는 장소가 된다. 오행으로 보면 월경 기간에 자궁은 깊숙한 음의 기운으로 양을 만나 잉태가 가능한 기토(己土), 작은 텃밭의 역할을 하다가, 폐경이 되면 음이 은은히 퍼지면서 양을 안에 품은 넓은 무토(戊土), 즉 평야같이 된다는 뜻이다.

 

 


지혜를 연마하는 시기
이렇게 보면 폐경이 된 여성들은 치료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확장하고 지혜를 연마할 수 있는 시기에 온 것이다. 가족 울타리에서 벗어나 더 넓은 관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신체적 변화를 겪는 중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폐경을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사회적 시선에 생각이 갇혀 버린다면? 몸은 바뀌었는데 과거의 기억에 매달리거나 변화를 거부한다면? 아마 아프게 될 것이다. 인류학자 앤 라이트Ann Wright도 여성의 폐경기 증상은 육체적인 스트레스보다 심리적 스트레스에 의해서 유발된다고 밝혔다. 따져보면 현대는 기토(己土)처럼 작은 텃밭인 가정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좁은 관계에 갇혀 버리니까 넓게 퍼져야 하는 시기에 울혈(鬱血)이 생겨 여러 가지 병적 폐경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에는 다른 문화에서 폐경을 어떻게 보는지 살펴서 갇힌 시선에서 빠져나가 보자.

 

켈트족의 문화에서 젊은 여성은 꽃에 비유되며, 어머니들은 과일로, 나이 든 여성은 씨앗으로 비유  된다. 씨앗은 지식과 다른 모든 것의 잠재성을 담고 있다. 폐경기 이후 여성의 역할은 앞장서서 진실과 지혜로 공동체에 씨를 뿌려주는 일이다. 원시 문화에서 폐경기의 여성들은 지혜의 피를 더 이상 주기적으로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보유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으로 폐경 이전의 여성은 신을 영접할 수 없었다. 원시 문화에서 폐경기의 여성들은 모든 인간과 동물의 자식들에게 책임감 있는 목소리를 제공해주었다. 나이 든 여성들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부족의 모든 결정을 점검해주었다. 크리스티안 노스럽,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한문화, 369쪽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폐경을 맞은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인생의 황금기가 눈앞에 온 것처럼 느껴진다. 각자 자기 나이에 맞는 생명력을 타고나는 것이 자연의 힘이다. 꽃이었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 열매를 맺어야 한다면 잎사귀, 꽃은 나무에서 떨어져야 한다. 그 결과로 맺은 씨앗에는 살아온 지혜가 담겨 있다. 대지에 뿌려진 씨앗은 다시 싹이 트고 나무가 자라게 될 것이다. 이 씨앗의 역할이 폐경기의 여성이다. 이를 안다면 내 몸의 변화를 자연스럽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지혜를 연마할 수 있는 신체의 변화(폐경)가 이미 선행되었으니 ‘읽고, 쓰고, 관계를 넓혀’ 현명하게 살아갈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폐경은 축복이다
흔히 우리는 죽어보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다. 죽음처럼 겪어보지 못하면 알지 못하여 두렵고, 습관을 바꾸기도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성은 죽는 것처럼은 아니지만 폐경기가 되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신체가 된다. 기회의 순간이다. 몸이 바뀌면 마음도 바뀐다. 에너지 회로를 전혀 다르게 쓸 수 있게 된다. 젊은 시절에 집착, 탐욕 등 음의 기운이 요동하여 감정이 요동치는 칠정(七情)이 심했다면 폐경이 되어 놓아 버릴 수 있는 시절이 온 것이다. 습관의 회로에 갇혀 있으면 폐경 증상이 심해지고 더 괴롭다고 느낀다. 젊었을 때의 몸을 원하기 때문에 그렇다. 한편으로는 너무 괴로워서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각성이 일어나는 기회다. 사실 폐경은 월경 주기에 따른 호르몬의 요동 현상이 사라지고 일정한 호르몬이 나오게 되니 담담한 일상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공부하기에 딱 좋은 신체로 변한 것이다. 

“폐경이란 실로 축복이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북드라망, 2012, 388쪽 


폐경기는 노년과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를 연마하는 시기로 몸과 마음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달라지는 몸 때문에 나쁜 습관을 줄인다. 새벽에 자주 깨고 잠이 오지 않는다면 각성 효과가 강한 커피와 비타민 음료를 줄이고 낮에는 햇빛에서 자주 걸어야 한다. 폐경기 이전보다 규칙적으로 먹고 운동하게 된다. 가족이 전부였던 사람은 친구와 세상을 향해 관심을 확장한다. 감이당에도 50대 여성분들이 정말 많이 공부하러 온다. 아이들이 크고 나니 마음은 허전하고 삶의 방향을 잊은 것 같아서 오는 분도 있지만, 지혜를 연마하기 위해 오신 분도 많다. 중년의 공부는 노년과 죽음의 지혜를 발견하는 행운의 발걸음이다. 

 

글_이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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