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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

[이여민의 진료실인문학] 두통, 자기 탐구의 기회

by 북드라망 2023. 10. 6.

두통, 자기 탐구의 기회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7일 동안 명상센터 봉사를 다녀왔다. 수련생 70명의 식사 준비를 하는 부엌 봉사 팀에서 일했다. 부엌 팀 6명의 봉사자 중에서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을 가진 28살 청년이 밥과 죽을 담당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내면 누구나 힘들어하는 설거지를 말없이 와서 도와주곤 해서 팀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말수가 없던 그가 5일째 아침에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특발성 국소 두통의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청년은 두통이 심해서 1년 전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사를 했다고 한다. CT도 이상이 없었고 정신과에서도 특별한 소견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원인도 모르는 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았고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우연히 비슷한 증상을 겪는 한의사를 만나, 그가 처방해 준 한약을 먹고 두통이 많이 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두통이 다시 생겼다고 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그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서둘러 집으로 떠났다.

 

그러고 보니 많은 사람이 나이와 상관없이 두통 때문에 괴로워서 병원에 온다. 병원에 온 대부분의 환자는 혹시 내 뇌에 문제가 있을까?’ 하고 많이 두려워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검사상 특별한 이상이 없는 데도 많은 사람이 왜 두통에 시달릴까?

 

 

두통, 뇌가 진짜 아픈 것은 아니야!

두통은 이마에서 머리, 뒤 목까지 이르는 부분에 생기는 통증이다. 머리에 생기는 통증이라 흔히 뇌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한다. 여기서 반전! 두통이 진짜 뇌가 아픈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내가 보는 두통 환자의 경우는 특히 뇌가 정상이다. 우리 병원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30년이 된 건물의 3층에 있다. 진료받으려면 3층을 걸어 올라와야 한다. 말하자면 내 진료실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기 발로 걸어 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뇌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뇌에 문제가 있다면 운동이나 감각에 이상이 생겨 올라올 수 없다. 그래서 응급실에 갈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아닌 두통으로 3층을 올라온 환자의 뇌는 멀쩡하다. 그러니까 두통을 너무 뇌와 연결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한밤중에 혼자 있는데 두통이 찾아오면 뇌에 이상이 있나 하고 생각할 수 있고, 그 순간 극심한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그때 손과 발과 안면근육을 움직여 보고 잘 움직이면 일단 안심하라는 뜻이다.

 

두통으로 고통받는 모습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고 현생인류의 20만 년 사이에 어느 세대에서나 경험해 오는 일이다. 환자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증상이 무엇인지 모르면 그 원인이 심각한 뇌 질환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은 아닐까 두려워하며 긴 역사 속에 함께 하고 있다.
(대한두통학회, 『2nd edition 두통학』, 군자출판사, 둘째판 2쇄 발행, 2017년 7월 23일, 3쪽)

 

인류는 20만 년 전부터 두통으로 고통받았다. 머리에 생기는 괴로움이라 뇌에 생긴 질병을 암시하는 것은 아닌지,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은 아닌지, 오랜 세월 두려워했다. 그래서인지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머리가 아프면 일단 두려워하는 마음이 먼저 올라온다.

 

두통도 통증의 일종이다. 부상이나 염증으로 조직 일부가 손상되면 급성 통증이 생긴다. 이때 두통이 나타난다. 그래서 두통이 갑자기 나타난 경우는 검사가 꼭 필요하다. 장기에 염증, 손상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통증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급성 통증인 경우는 염증이 가라앉고 상처가 아물면 두통도 사라진다. ‘두통 환자의 약 1%가 두개강 내의 원인 질환이 있으니 세밀히 진단함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뇌에 실제 이상이 있는 경우가 1%가 되니 두통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러나 진짜 뇌 질환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이렇게 응급이 아닌 두통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는 대부분 만성 통증 때문이다. 만성 통증인 경우는 두통뿐 아니라 온몸이 여기저기 동시에 아프다. 환자는 두통으로 대학병원에서 뇌 CTMRI를 검사하여 괜찮다는 말을 들었지만, 통증이 계속되어 의원에 종종 내원한다. 만성 통증으로 인한 두통은 신경 시스템이 환경에 과민하여 생기는 것인데, 이는 검사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두통의 원인은 수백 가지가 된다. 원인이 수백 가지라는 것은 무엇 때문에 두통이 생긴 것인지 뚜렷이 알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두통, 관찰이 필요해!

만성 두통은 원발 두통이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다른 원인으로 통증을 느끼고 괴로워할 수 있다. 두통이 심하면 일단 의사를 만나 병적인 원인을 알아보고 도움을 받는다. 만약 검사에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 언제 어떻게 아픈지 자신을 관찰해야 한다. 예를 들면 두통이 나타나는 시간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잠 못 잘 정도로 근심 걱정하는 일이 있는지 돌이켜 보자는 것이다. 흔히 아침 두통은 혈압과 관계있고 저녁 두통은 스트레스성 두통이다. 또 주중에 커피를 회사에서 3.4잔씩 먹다가 주말에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두통이 나타난다. 일정하게 들어오던 카페인이 들어오지 않아 두통을 느끼게 된 상태이다. 이를 알고 평소 커피양을 줄이거나 주말에도 커피 섭취를 해 주면 통증이 해결된다. 또 음식을 먹고 체하거나, 특정한 음식에 반응하여 두통이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음식이 두통을 유발하는지 관찰하고 그 음식을 먹지 않으면 된다. 많은 경우 찬 음료를 급하게 마시면 순간 머리가 띵하고 아프다. 갑자기 먹은 얼음의 차가운 온도에 순간적으로 뇌혈관이 수축하여 두통이 나타나는 것이다. 찬 음료를 천천히 마시면 좋아진다. 과음한 경우, 다음 날 두통이 나타나기도 한다. 음주를 줄이면 된다. 이런 것 이외에 잠을 못 자거나 스트레스를 오래 받으면 목뒤가 뻐근해진다. 전형적인 긴장성 두통이다. 이렇게 언제 어떻게 아픈지 자신을 관찰한 다음 어떤 약이 나에게 효과가 있는지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사람마다 아픈 조건과 약의 반응이 달라서 그렇다.

 

여기까지 읽으면 의문이 생길 것이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요? 왜 정답이 없어요?” 그렇다! 정답은 없다. 두통이 조건 발생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위에 예시를 든 것처럼 어떤 조건, 즉 걱정, 불면, 음식, 긴장 등이 두통을 일으킨다. 서두에 말했듯이 급성 두통은 부상이나 염증이 조건이니 이 문제를 대처하고 치료하면 된다. 그러나 모든 검사가 정상인데 계속 아프면 이때는 두통을 일으키는 조건, 즉 나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평소에 내가 하는 행동, 말과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통증에 해당하는 두통은 우리 몸에서 해로운 습관을 바꾸라고 알리는 신호이다. 습관적으로 하는 몸에 나쁜 행동을 자율시스템이 한동안 감당하다가, 몸이 견디지 못하고 바꿀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습관을 바꾸라는 통증의 신호를 알지 못하고 아픈 것이 싫어서 무조건 없애려고만 한다. 그러면 통증을 없애는 비법을 찾아 헤매게 된다. 나이가 들어 몸이 여기저기 아픈 경우 점점 많은 진통제를 먹게 된다는 뜻이다. 그 결과 간이 나빠지기도 하고 위장 출혈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이 들어 이 정도 아픈 것을 받아들이면 일단 약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스트레칭하거나 잠을 푹 자면 아픈 것이 좋아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낮에 햇빛 속에서 많이 걸어야 한다. 이렇게 두통을 일으키는 조건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위대한 건강

현대 철학의 이단아로 불리는 니체는 젊은 시절부터 두통을 심하게 앓았다. 니체는 24세에 문헌학으로 바젤 대학교수로 임명될 만큼 천재였다. 그런 그는 만성 두통과 위장병, 시력 저하로 30세에 교수직을 그만두게 된다. 치료를 위해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에서 요양하면서 유명한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선악의 저편를 남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니체가 평생 두통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이다. 요양해도 그의 병은 낫지 않았다.

 

나의 병은 나의 모든 습성을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나에게 부여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그는 머리가 아프고 복통이 심해 가만히 책상에 앉아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없었다. 이때 니체가 택한 방법은 햇빛 속에서 하는 산책이었다. 산과 호숫가를 걸으며 사색하고 글을 썼다. 평생 두통으로 괴로웠던 니체는 병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 물리쳐야 할 대상인 질병에서 나에게 배울 기회를 주는 질병으로! 질병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의 전환이다. 몸은 질병이 있거나 없거나 계속 변하고 있다. 몸의 변화에 따라 매번 새로운 건강을 만날 수 있다. 60세의 건강이 20세의 건강과 다른 것처럼. 또 니체는 늘 아팠지만, 매번 새롭게 극복하는 힘이 있으면 위대한 건강이라고 말했다. 아프면서도 지금 여기에 집중할 힘만 있으면 건강하다는 역설이다.

 

우리는 몸 어딘가에 늘 크고 작은 통증을 느끼며 살아간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통증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통증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되겠는가? 삶은 두렵고 고달파진다. 통증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아픈 것을 잠시도 견디기 어려워, 과다한 진통제를 복용하고 내 생활 방식을 돌아볼 기회를 잃는다.

 

니체가 말한 대로 나의 두통은 나의 모든 습성을 바꿀 권리를 준 것이다. 이렇게 몸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통증이라는 알람 시스템이 건강을 위해 몸에 장착되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두려워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다. 통증이 일어난 조건을 관찰하고 변화하는 것이 아픈 내가 할 일이다. 나의 병은 나의 모든 습관을 바꿀 기회를 준 것이니 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러니 우리도 할 수 있다. 니체처럼 햇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산책하고 병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이렇게 매번 다른 상태의 몸을 받아들이고 지금 할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위대한 건강이다.

 

글_이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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