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두려워하지 마!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어머니와 이모가 모두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투병 과정을 지켜본 졸리는 유방암에 걸리지 않은 유방을 미리 절제해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유방암의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비단 이 배우 말고도 암에 대한 공포는 만연해 있다. 많은 사람에게 암 진단은 곧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암세포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시선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유명한 드라마 작가가 암에 걸린 주인공이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대사를 하게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암세포를 생명으로 지칭하면서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 또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처럼 묘사한 대사가 크게 문제가 된 것이다. 이렇게 암을 바라보는 상반된 두 가지 시선이 있다. 암이 너무 무서워 미리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생각과 암세포도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암을 대해야 할까?
암세포는 정상 세포의 변형
세포는 생명을 이루는 기본 단위이다. 동시에 세포 하나하나가 생명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아메바나 세균처럼 세포 한 개로 이루어진 생명체도 있다. 인간은 수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세포 각각이 수명이 있다는 것이다. 피부는 2주~4주, 위 세포는 2~9일, 백혈구는 2~5일, 적혈구는 120일이다. 장기마다 살고 죽는 기간이 제각각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세포는 매번 새롭게 갱신된다. 이 과정을 세포자살(apotosis)이라고 부른다. 모든 세포는 큰 이익, 다시 말해 몸 전체를 위해서 자살한다. 이로써 신체 내의 오래되고 불필요하며 건강하지 못한 세포들을 제거한다. 우리 몸은 1초당 백만 개의 세포들을 대체하려면 세포자살로 불필요한 세포들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세포자살을 해야 할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것이 암의 근본 원인이다.
세포들은 제 역할을 다하면 전체 시스템을 위해 죽어야 한다. 어떤 세포는 주변 세포들과 협조하는 관계를 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바로 암세포이다. 암세포가 통제되지 않아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덩어리가 만들어지면 암으로 진단된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암세포는 장기나 혈액, 림프샘 같은 주변 조직으로 침투한다. 암세포의 가장 큰 특징이 주변 세포들을 무시하고 자신만 빨리 자라면서 정상 세포를 파괴하는 것이다. 자기만 더 커지고 자라기 위해 이웃을 무시하고 침범하는 암세포의 행동 방식이 어떤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더 빨리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하는 자본주의’와 참 많이 닮았다.
암은 영어로 캔서(cancer)라고 하는데 ‘게(crab)'를 의미한다. 암세포가 게의 집게발처럼 밖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이 집게발로 암세포는 기원 종양(일차 병소)에서 떨어져 나와 신체 전체(이차 병소)로 퍼져나간다. 이것을 전이(metastasis)라고 부른다. 신체 전반에 암세포가 전이되면 장기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결국은 사망에 이른다.
암은 하나의 용어이지만 수많은 장기에 생기는 암세포 덩어리를 총칭한 말이다. 그래서 장기에 따라 암의 종류가 다르고 따라서 치료법도 달라진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처음에 말한 것처럼 우리 몸을 이루는 것은 세포다. 그 세포가 왜 자신이 사는 몸을 해치는 암세포로 변할까? 정말 나쁜 것인데 왜 우리 몸에 생길까?
“암세포는 근본적으로 정상 세포이며, 세포 안의 일부가 나쁜 것으로 변화된 것이다.” (마이클 로이젠·메멧 오즈, 『새로 만든 내 몸 사용 설명서』, 김영사, 1판 9쇄, 2018.8.10. 347쪽) 다시 말하면 암세포는 바깥에서 들어온 적군이 아니라 내 몸의 세포 중 일부가 변형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세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암 발생이 가능하다. 사실 암세포는 날마다 몸에서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몸은 놀라운 능력이 있다. 몸 안에 있는 면역세포가 매일 암세포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녁 11시경 몸을 편히 쉬고 잠들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청소하는 데 아주 유리하다. 그래서 잠만 잘 자도 질병인 암으로 발전하기 힘들다.
다르게 살기
암에 대한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닮아 있다. 인간이 어찌해 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누구에게나 오듯이 암도 누구나 걸릴 수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기본 세포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은 예방할 수 없지만 죽음을 사유함으로써 삶을 더 생생하게 살 수 있다. 암도 마찬가지다. 마냥 무서워만 할 필요가 없다. 의학이 발달하여 조기 진단할 수 있는 현대에 암은 예방과 완치가 가능한 질병으로 점점 변하고 있다. 그래서 암의 진단과 치료는 의사에게 맡기면 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암 치료 선진국이다. 이제 암은 과거처럼 걸리면 바로 죽는 무서운 질병이 아니다. 특히 건강보험이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는 암 치료에 드는 비용이 성형 수술 비용보다 훨씬 적게 든다. 예전처럼 암을 치료하느라고 집안 살림이 거덜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암에 대한 치료나 보장이 잘 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암에 대해서 여전히 공포심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가 암을 대하는 태도를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2000년 전 플라톤도 이 점을 콕 집어 말했다.
“몸, 마음, 영혼을 하나로 연결해 치료한다면 못 고칠 병이 없다.”
(리에먼드 프랜시스 지음, 『암의 스위치를 꺼라』, 전익주, 전해령 옮김, 초판 2쇄, 2019. 2. 22,14쪽)
이 말을 곰곰이 새겨보면 치료 방향에 도움이 된다. 암세포는 내 세포의 변형이다. 먹는 음식, 자는 시간, 운동하는 횟수, 평소 스트레스 정도가 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암을 치료할 때 암에 걸리기 이전의 생활 습관을 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병원에서 ‘암세포’만 똑 떼어내고 이전과 똑같은 태도로 산다면 세포의 변형이 일어나는 조건을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전인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플라톤도 말한다. 나도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정말 자주 말한다. 이전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암이 있는 가족력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한 뒤 미리 유방을 절제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어머니와 이모가 유방암으로 투병하고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졸리의 행동은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쳤다. 비슷한 상황의 미국 여성들이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유방을 절제했다는 기사가 며칠간 신문에 도배되었다. 그런데 이 경우를 다른 암에 대비해보면 기괴한 상황이 발생한다. 위암이나 대장암의 가족력이 있다고 위나 대장을 모두 절제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나쁜 암세포를 제거해버리면 된다는 생각은 암이 내 세포에서 발생한다는 기본 개념을 잊은 것이다. 우리 몸은 일종의 네트워크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그리고 어딘가가 고장이 나면 주위 장기가 신호를 알려주기도 하고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 예로 위암으로 위를 모두 절제하고 장을 위의 자리에 이어 붙이면 장 세포가 위장이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는 한다. 우리 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 건강을 염려하고 노심초사하는 것보다 몸에서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나쁜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이 암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
진짜 나쁜 일은 아니야!
무엇보다 암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암에 걸리면 죽는다.’라는 생각은 막연한 이미지일 뿐이다. 그러니 일단 암 진단을 받으면 두려워하기보다는 냉정하게 정신을 차려야 한다. 건강검진의 발달로 암 조기 발견이 가능해졌고 오래 살게 된 환경 덕분에 노화로 인한 암도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옛날에도 나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죽는 원인 중에 암도 있었다. 다만 몰랐을 뿐이다. ‘즉문즉설’로 현장에서 괴로움을 풀어주는 것으로 유명한 법륜스님은 암에 걸려 두렵다는 질문자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저는 이것을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속에 암이 있는 데도 발견이 안 되면 암이 없는 줄 알잖아요. 그럴 때 ‘모르는 것이 약이다.’ 하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모르면 괴롭지는 않지만 건강에는 훨씬 더 위험합니다. 암이 있던 것을 모르고 있다가 오늘 갑자기 발견하게 되면 놀랄지는 몰라도 지금 발견된 건 잘된 일이에요. 이미 오래전부터 있던 것을 의사가 발견해 주었으니까 기쁜 일이죠. 그러니 의사에게 ‘암을 발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롭습니다. 울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2023.10.1일, 스님의 하루)
의사인 나도 일찍 발견한 암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히 사는 줄 잘못 알았던 삶에 각성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암도 치료되고 남은 삶도 감사하며 살 수 있다. 말기 암인 경우는 살아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인정하면 두려움은 줄어든다. 나만 죽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1년 정도 남은 말기 암 친구를 병문안 왔다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먼저 죽은 사람이 있다. 이 이야기에 덧붙여 법륜스님은 이렇게 말해주셨다. “이처럼 암에 걸린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죽는다”라고. 그런데 암은 내 생명의 유효 기간을 알려준다.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우리 의원에는 난소암으로 3년째 항암 치료하는 40대 여자 환자분이 있다. 자식 걱정이 많고 예민했던 그녀는 난소암 투병을 하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매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덕분이라고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다. 암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암’이라는 말에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정신을 맑게 해야 한다. 아! 인간은 태어나면 누구나 죽는데 ‘죽음’을 잊고 살았다. 삶을 한 번 점검해 본다고 말이다.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선택해서 생활 태도를 고쳐보자. 암으로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도 되었지만,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에도 눈뜨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은 더 사랑하게 되고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할 필요가 있었나 하고 생각이 바뀐다. 또 내일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잘 정리한다. 아침에 눈 뜨면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더 생생하게 살 수 있다. 사실 죽음은 예외 없이 모두에게 오지만 언제 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암이란 진단 덕분에 죽음을 생각하면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숙고하게 된다. 매일 감사하며 사는 삶은 암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며 남은 생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글_이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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