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서당』지지 탐구편 ― 삼장법사와 아이들과 요괴들
박장금 선생님의 신간 『간지서당』에서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지지 특징을 『서유기』의 주인공(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및 등장 요괴들의 캐릭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주인공들과 요괴들의 특징이 각 지지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간지서당』 속 지지 캐릭터들을 살짝 보여 드립니다.
자수, 역경을 뚫을 때 피어오르는 꼿꼿한 양기 ― 쥐의 힘
⇨ 자수 캐릭터 탐구, 수보리조사
“스승 수보리와의 만남은 구법(求法)의 여정이 시작되기 전의 이야기이다. 12지지가 자수에서 시작되듯이, 우리가 아는 구법의 여정 앞에는 숨겨진 손오공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그것에 방향을 제시한 스승 수보리조사가 있었다. 자수는 근원에서 시작된 일양을 의미한다. 근원 없이 물은 흘러갈 수 없는 법. 만물이 번성하려면 생명의 근원인 씨앗에서 시작하듯이, 활동을 하려면 자수에서 일양이 소생하듯, 동기 부여가 되어야 한다. 수보리조사는 손오공에게 구법의 여정을 떠나게 한, 자수 같은 스승이었다. 이 마주침이 있었기에 손오공은 본격적인 구법의 여정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간지서당』, 200~201쪽)
축토, 어려움 속에서 비전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소의 힘
⇨ 축토 캐릭터 탐구, 우마왕
“축토는 소가 되새김질하듯 꾸준히 하는 힘이다. 하여 공성(空性)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축토의 태도가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하다. 하지만 축토를 잘못 사용할 때 완고한 집착에 사로잡혀 깨기 어려운 쇠고집이 될 수도 있다. 우마왕은 이런 함정에 빠져 요괴가 된 것이다. 공 상태를 벗어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화염에 싸인 욕망은 연기법의 실상을 가린다. 이때 모든 관계에서 신뢰는 사라지고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권력관계만 남는다. 흔히 실패하면 문제가 될 것 같지만, 사실 성공한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을 눈여겨보라. 무력하고 허무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상태는 중독된 신체를 만든다. 나를 끌어당기는 습관을 넘어서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손오공이 벌인 내부의 적 우마왕과의 대결인 것이다.”(『간지서당』, 219쪽)
인목, 묵은 것을 떨치고 만물을 살리는 솟구침, 호랑이의 힘
⇨ 인목 캐릭터 탐구,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불에 타 버린 것도 살려낸다. 손오공은 관세음보살의 도움으로 살리는 신체가 되었다. 겨울은 죽음의 시간이다. 하지만 인월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생명이 소생한다. 아무리 겨울이 혹독해도 봄은 매번 다시 돌아와 온 세상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다. 그러므로 인목은 자연이 주는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은 중생이 아무리 허튼짓을 한다 해도 자신을 찾기만 하면 기꺼이 언제나 어디서든 무슨 일이 생겨도 달려와 구도의 길을 가도록 길을 안내한다. 문제는 관세음보살의 중생 사랑이 아무리 지극해도 대신 가 줄 수는 없다는 것. 그 길은 스스로의 힘으로 가야만 한다. 그는 구도의 여정을 가는 자에게 끊임없이 힘을 주는 영원한 서포터즈인 것이다.”(『간지서당』, 238쪽)
묘목, 충만한 생명력으로 성장하는 토끼의 힘
⇨ 묘목 캐릭터 탐구, 옥토끼
“손오공이 옥토끼 요괴를 죽이려 들자 태음성군이 등장하여 옥토끼에 대한 내력을 알려 준다. 원래는 광한궁에서 신비로운 단약을 찧던 옥토끼라는 것. 힐링의 아이콘 옥토끼가 왜 요괴가 된 것일까? 진짜 공주는 원래 달 궁전의 ‘소아선녀’였는데, 그녀는 18년 전에 옥토끼를 때린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소아선녀가 옥토끼를 먼저 공격했던 것. 소아선녀는 그 후 인간 세상을 동경하여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천축국 왕비의 태에 들어가 공주로 태어났고, 소아선녀에게 맞은 옥토끼는 그 분함을 참지 못해 달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공주를 납치해서 들판에 버려 버린 것이다. 옥토끼는 원한 갚기에 만족하지 않고, 가짜 공주 자리를 차지하더니, 삼장의 원양까지 빼앗아 신선이 되려는 과욕을 부린다. 묘는 추위를 몰아내고 만물을 살리는 따듯한 기운이다. 하지만 이 힘이 이기심으로 흐르자 옥토끼는 소아선녀를 들판에 내팽개치고, 공주 자리를 빼앗고, 10세 수행한 삼장의 청정한 기운을 단번에 훔치려 했다. 마치 토끼가 자신의 앞발로 위로 위로 오르듯이 옥토끼는 상승의 욕망을 멈추지 못한 것이다.”(『간지서당』, 254쪽)
진토, 폭풍 성장 속에서 도약하는 용의 힘
⇨ 진토 캐릭터 탐구, 당태종(feat. 용왕)
“변화의 아이콘 용처럼 당태종은 권력에서 영성으로 중심축을 완전히 옮겼다. 매우 이기적인 삶을 살던 존재라 해도 중심축을 옮길 수만 있다면 살리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진토 용은 폭풍 성장이자 흐름이며 되기(becoming)이다. 『서유기』 속 당태종은 진토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진이 변화의 아이콘인 건 맞지만 한 방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왕이 아무리 권력이 있다 해도 바로 불국토가 될 수는 없는 법. 이무기가 비바람 속에서 끈질기게 노력하여 승천의 기회를 얻듯이 태종의 불국토 프로젝트는 차근차근 순서를 밟으면서 진행된다. 먼저 불교 장려를 위해 수륙대회를 개최하고 서역으로 보낼 승려를 뽑는다. 이어 삼장법사와 함께할 일행이 낙점되면서 죽은 자를 승천시키고 번뇌에 빠진 자를 구원하기 위한 불국토 프로젝트가 구체화되었다. 『서유기』에서 당태종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마치 12지지 속에서 진토가 봄을 끝내고 여름으로 진입하는 것과 같다. 불국토를 만들겠다는 지상 최고 리더의 염원! 진토 당태종의 변화가 바탕이 되었기에 삼장 일행의 구도의 여정은 시작될 수 있었다.”(『간지서당』, 274~275쪽)
사화, 화염 속에서 성찰하는 뱀의 힘
⇨ 사화 캐릭터 탐구, 홍해아(선재동자)
“홍해아는 ‘화운동’(火雲洞), 불 구름 골짜기에 산다. 불은 아래에서 위로 타오르는 성질이다. 그러나 위에 있어야 할 불이 골짜기에 있고 밝게 빛나야 할 불이 구름이 됐으니, 이름부터가 불의 왜곡을 암시한다. 동양의학적으로는 ‘수승화강’이 안 되는 상황이다. 몸에서 수승화강이 안 될 때 정신이 맑지 못하고 연기가 낀 것처럼 몽롱해지는데 이런 상황을 화 운동으로 명명한 것이다. 손오공은 이 왜곡된 불을 끄기 위해 용왕을 대동하지만 맹렬한 삼매진화는 꺼지기는커녕 기름을 부은 듯 더 극성스럽게 타오른다. 과거 제천대성 시절 태상노군은 손오공을 팔괘에 넣고 구워 버린 적이 있었다. 다행히 바람의 방위인 손방(巽方)에 있어서 타 죽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연기를 휘저어 놓는 바람에 시뻘건 눈에 금빛 눈동자가 되었다. 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손오공은 홍해아가 뿜어내는 연기에 그만 줄행랑을 쳤다.”(『간지서당』, 293쪽)
오화, 구도를 향한 일심―말의 힘
⇨ 오화 캐릭터 탐구, 용마
“말은 실제로 앞으로 달릴 뿐,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용마도 오직 구도를 향한 마음을 낼 뿐 다른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말의 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활력 있는 몸으로 갈기를 휘날리며 초원을 가로지른다. 『서유기』의 용마도 흔들리지 않는 구도의 마음으로 서역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용마라는 이동 수단에서 벗어나 요괴와 싸우기도 하고,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것도 구도의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한계에 갇혀 변신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용마는 자신의 한계를 갱신하는 능력을 보여 준다.”(『간지서당』, 310쪽)
미토, 척박한 땅을 조용히 옥토로 바꾸는 양의 힘
⇨ 미토 캐릭터 탐구, 삼장법사
“『서유기』에서 주인공은 누구인가? 삼장법사인가, 손오공인가 솔직히 헷갈린다. 유명세로는 손오공이 압도적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구도의 여정을 떠나는 건 삼장법사이기 때문이다. 전문 연구자들은 제자-요괴 삼인방을 삼장법사 내부의 탐진치(貪瞋癡)로 보기도 한다. 『서유기』에서 삼장의 이야기가 삼장 부모의 기구한 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보면, 『서유기』는 구도자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듯하다. 또한 삼장의 스토리는 『주역』의 산풍고(山風蠱)괘와 오버랩 되기도 한다. 산풍고는 그릇에 벌레가 생길 정도로 부패한 상태를 의미한다. 『주역』은 이런 참담한 상황을 흉하다 여기지 않고 오히려 미션을 부여한다. 문제를 피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직시하여 부모의 잘못을 자식이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오래된 병폐와 폐단을 외면하지 말고 바로잡는 게 급선무라는 것. 한데 이 일은 소인은 할 수가 없고 군자만이 가능하다. 군자를 내세운 것은 사심 없는 공적인 마음으로 일의 폐단을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삼장은 이 미션 수행에 최적화된 군자 같은 존재인 것이다.”(『간지서당』, 328쪽)
신금, 이삭 줍는 원숭이의 힘
⇨ 신금 캐릭터 탐구, 손오공
“저팔계가 손오공을 살리는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손오공은 깨어났다. 그때 손오공이 외친 한마디가 있다. 무엇을 외쳤을까. ‘나 살아 있는 거 맞아?’ ‘꿈이야, 생시야?’ 난 이런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손오공이 외친 세 음절은 바로 ‘사부님!’이다. 죽음이 오락가락하는데 사부님이라니, 스승과 자신을 한몸으로 여긴 것이다. 즉,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려면 스승을 따라야 함을 정확하게 알았던 것. 자신을 오행산에서 꺼내 준 것도 삼장이었다. 그는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도 변함없는 구법의 뜻! 이것이 금화교역의 힘이자 신금의 마음인 것이다.
가을 숙살지기는 여름의 무작위적으로 번성한 것들을 결단하고 정리하는 기운이다. 이렇게 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스승 삼장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구도의 내비게이션’ 그 자체이다. 손오공은 스승을 지표 삼아 그 미션을 끝내 완수한다. 이것이 삼합의 원리에서 신–자–진 수라는 근원의 세계를 여는 신금의 내공이다. 오행은 인의예지신으로 표현되는데 금은 ‘의’(義)와 연결된다. 의로움과 의리, 이것은 ‘중요한 무엇’을 지키는 힘이다. 손오공의 신금 기질은 스승에 대한 의리를 지키게 했고 마침내 자신을 구원함으로써 모든 존재가 가야 할 길까지 제시하고 있다.”(『간지서당』, 358~359쪽)
유금, 풍요의 시대를 제대로 누리는 기쁨―닭의 힘
⇨ 유금 캐릭터 탐구, 석가모니(feat.서방정토)
“손오공이 제아무리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 해도 생로병사의 문제를 풀 수는 없는 법. 인생에서 봄과 여름만 계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금은 가을의 절정으로 번성한 모든 것이 일거에 떨어지듯 노병사의 소멸을 아는 성숙한 기운이다. 가장 풍요로운 가을에 초목은 보이지 않는 양기를 내부에서 기르듯, 인간도 생로병사라는 삶 전체를 조망하면서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창조해야 한다. 이것이 서방정토로 말해지는, 붓다가 열어젖힌 대자유의 길이다.”(『간지서당』, 380쪽)
술토, 세상을 밝힐 불씨를 품고 기다리는 개의 힘
⇨ 술토 캐릭터 탐구, 사오정
“사오정은 술시에 태양이 낮을 삼키고 어둠으로 들어가듯, 땅거미에 갇힌 존재처럼 보인다. 봄은 따듯하고 여름은 뜨겁다. 이런 높은 온도는 모든 것을 번성시킨다. 하지만 가을의 마무리 기운인 술토에 오면 차가운 이슬이 맺힐 정도로 대기는 냉각된다. 봄여름과 달리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하강하면서 지상의 화려함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술토의 음기는 양기를 펼치지 못하게 완전히 가두기 때문이다. 즉, 술은 압도적인 음기를 사용해서 양기를 잡아 가두는 무서운 기운이다. 술토의 기운을 타고난 사오정은 만물이 죽은 시절처럼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다가 참을 수 없으면 뛰쳐나가 행인을 마구 잡아먹고, 생명을 죽인 후에는 심하게 자책했다. 폭력과 자책의 무한 루프! 사오정은 칼로 찌르는 아픔, 배고픔, 추위로 세상을 보고 느낀다. 술토는 소멸의 시간, 쌓인 것이 사라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전부인 줄 아는 자는 밝음과 번성의 시절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유 없는 원한 감정이 생길 수 있다. 죽여야 내가 산다는 무시무시한 삶의 태도! 하지만, 술은 종말과 소멸의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음기가 양기를 압도(?)한 것은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살리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술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사오정처럼 술토의 저주에 걸려들 수 있다.”(『간지서당』, 400~401쪽)
해수, 해체 속 근원에서 생성되는 돼지의 힘
⇨ 해수 캐릭터 탐구, 저팔계
“돼지 형상을 한 저팔계는 탐욕의 아이콘이다. 먹는 거 밝히는 건 기본이고 여자만 보면 환장한다. 엄청 게으른데 머리는 팍팍 돌아가서, 그는 꼼수의 달인이다.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본, 손오공은 매번 분통이 터지는데, 스승 삼장법사는 무조건 저팔계만 편애한다. (물론 이 관계는 구도의 여정을 통해 변화를 겪지만 초기 세팅은 이렇다.) 지지에는 ‘삼합’이라는 원리가 있다. 12지지 중 3개의 글자가 목·화·금· 수의 국면을 이루게 되는데, 여기선 목의 해-묘-미 흐름으로, 해수에서 시작된 겨울 기운이 묘목 봄으로 이어지고, 미토 여름에서 마무리되는 흐름이다. 옥토끼 요괴가 묘목, 삼장이 미토, 저팔계는 해수이다. 옥토끼, 삼장, 저팔계는 해-묘-미 삼합의 관계를 타고났기에, 삼장은 저팔계가 어떤 짓을 해도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만 해도 이유 없이 끌리는 사람과 이유 없이 미운 사람이 있지 않은가. 결국 어쩌지 못하는, 타고난 몸의 체질이 있다.”(『간지서당』, 422쪽)
'북드라망 이야기 ▽ > 북드라망의 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문 고전 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신간 『세미나를 위한 읽기책』이 출간되었습니다! (2) | 2024.01.29 |
---|---|
고전 다시 쓰기, 다시 읽기 붐을 일으켰던 그 책―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20주년 기념 리커버판이 출간되었습니다! (0) | 2023.12.18 |
제자백가의 대표도서들을 깊고 넓게 읽을 수 있는 기회, ‘독학자의 공부’ 시리즈가 출간되었습니다!! (0) | 2023.11.17 |
『간지서당』천간 탐구편 ― 갑목 공자와 아홉 제자들 이야기 (0) | 2023.11.01 |
사주명리학 첫걸음 뗄 때 딱 좋은 책!―『간지서당』이 출간되었습니다! (0) | 2023.10.27 |
북튜브 출판사의 신간 『시경 강의 3』이 출간되었습니다!! (0) | 2023.08.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