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염에 걸린 42세 여자 분이 내원하였다. 그녀는 세 살 아이의 육아와 회사 업무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상태였다. 그래서 잠을 못 자고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침에 환자의 딸이 어린이집에 가면서 “엄마 나 때문에 아파?”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 자신의 장염이 아이에게 전염되는 것이 걱정이라고 흐느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아이와 엄마가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감동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장염은 공기를 통해 전파되지 않아 아이는 무사하다고 환자를 안심시켰다. 장염은 대부분 대변을 통해 옮기니 손을 잘 씻으면 전염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즈음 엄마들은 아이들의 면역에 깨끗한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기 청정기, 살균 소독기는 기본이고 어린이들은 밖에서 잘 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는 놀이터에서조차 흙을 구경하기 어렵다. 그러나 형제가 많고 흙에서 뒹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에는 아이들의 아토피와 알레르기 질환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럼 과연 먼지 한 톨 없는 환경이 아이에게 무조건 좋은 것일까?
아이가 면역을 획득하는 과정
아이는 태어나기 전 세상의 온갖 균주들로부터 보호받으면서 엄마의 자궁에서 10개월을 보낸다. 자궁 속에 무균 상태로 있다는 말이다. 자궁의 진통이 시작되고 아기는 세상에 나오기 위해 산도를 지나간다. 아기가 산도를 지날 때 만난 산모의 균주가 신생아의 장에 자리 잡는다. 엄마의 나이까지 살게 해 준 장내 미생물이 튼튼하다고 판단하여 이 미생물을 자신의 아기에게 물려 주는 것이다. 그러면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 경우는? 병원 미생물을 물려받는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과학자 부부(저스틴 소넨버그, 에리카 소넨버그 부부; 스텐퍼드 대학교에서 미생물학과 면역학 분야에서 일한다. 『건강한 장이 사람을 살린다』 의 공동 저자)는 사정상 제왕절개를 하였지만 태어난 아이에게 미리 준비한 어머니의 배설물을 발라주었다고 한다. 제왕절개로 낳았고 배설물을 발라 주지 못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기는 태어난 뒤 6개월 동안은 태내에서 받은 면역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유와 모유 수유를 통해 면역을 계속 공급받는다.
자궁 속 무균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아기는 세상의 모든 것과 함께 살기 위해 학습한다. 그 결과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면 아기들은 감기를 앓아 기침과 콧물을 달고 산다. 세상에 있는 미생물들과 만나서 면역을 획득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부산물 중 하나가 콧물이다. 1960년대에만 해도 지금처럼 약과 의료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학생들 가슴에는 콧물 닦는 용으로 수건이 항상 꽂혀 있었다. 콧물을 내버려 두라는 말이 아닌 것쯤은 눈치챘을 것이다. 콧물이 면역을 획득하는 과정에 생기는 부산물이니 과민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5세 이하의 어린이는 코와 귀가 연결된 통로가 평평해서 콧물을 오래 두면 중이염으로 발전하니 잘 치료함은 중요하다. 또 고열이 나거나 심한 설사는 소아에게 위험하니 꼭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러나 사소한 콧물에 놀라 과잉 진료할 필요는 없다. 어린이집 다니면서 잘 걸리는 감기는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의 다양한 균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면역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면역, 소통이 중요해!
면역은 신체가 외부 환경과 만나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일어나는 반응을 말한다. 이웃 나라와 소통하는 외교 전략과 비슷하다. 만약 러시아처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이 일어난다. 칼에 베인 상처나 폐렴이 전쟁과 비슷하다. 이 경우 몸의 면역 시스템은 파괴된 피부를 복구하고 폐에 염증을 일으킨 균을 무찌르기 위해 총력전을 기울인다. 그런데 전쟁은 면역 시스템에서 벌이는 사건 중 일부분이다.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평화 시의 외교는 어떨까? 나라들이 서로 물건을 교환하고 사람들이 왕래하는 것을 편리하게 하며 범죄자가 있으면 소환하여 벌주려고 한다. 우리 면역 시스템도 이와 아주 유사하다. 외국 사람이 우리와 다르게 생겼다고 적이 아니듯이 우리가 접하는 미생물은 대부분 해롭지 않다. 즉 ‘면역은 몸이 외부 세계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 적을 판별하여 물리치고 한편으론 외교 전략을 통해 공생하는 모든 것’ (저스틴 소넨버그, 에리카 소넨버그 지음, 『건강한 장이 사람을 살린다』, 김혜성 옮김, 통합이학임상연구회 감수, 파라사이언스, 초판2쇄 2016년, 103쪽)을 말한다. 면역의 핵심은 대화이다.
그러면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화는 말하는 이와 듣는 사람이 필요하다. 면역에서 말하는 이는 미생물이고 듣는 이는 우리 몸이다. 그리고 진정한 대화가 되려면 경청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신 면역계는 외부 미생물과 소통을 위한 정보를 장에서 수집한다. 장은 전신 면역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 미생물이 주는 정보로 외교 전략의 구성도를 그린다. 이것을 바탕으로 면역계는 침입한 병원균과 대화의 방향을 결정하여 반응한다. 그래서 어떤 미생물은 살생부에 올리고 어떤 미생물은 장 미생물 종에 남기게 된다. (같은 책, 103쪽)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면역계가 유해 미생물을 물리쳐 우리 몸을 보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주 업무는 매일 만나는 미생물과 대화를 나누고 이견을 조율하는 것이다. 잠시 사족을 붙이자면 장내 미생물 섭취를 환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시중에 유산균 제품이 많이 나와 있고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복용한다. 양쪽 다 죽는 전쟁보다 함께 살 수 있는 소통을 유도하고자 함이다.
적당히 깨끗하고, 적당히 더럽기
‘2016년 네이처에 보고된 이스라엘 과학자의 논문에 따르면 인체에는 50조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 말은 우리가 43퍼센트의 인간과 57퍼센트의 미생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제임스 굿 원, 『건강의 뇌과학』, 현대 지성사)
인간 몸의 실상은 미생물과 함께 사는 복합체란 뜻이다. ‘깨끗하고 단일한 내’가 있다는 생각 자체가 환상이다. 그런데 ‘깨끗하고 단일한’ 나를 상정하면 외부 환경을 적으로 간주하고 과도하게 청결에 집착하게 된다. ‘밖은 더러워.’ 하는 무의식이 작동한 것이다. 이 기저에는 근대 교육에서 배운 위생 관념, ‘청결, 무균, 살균해야 병에 걸리지 않는다.’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생각이 버블 광고를 만들었다. 사람을 공기 버블 안에 격리하여 바깥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 면역에 제일 좋은 것처럼 선전한다. 중환자인 경우는 맞지만 보통 사람인 경우는 틀리다. 격리가 필요한 경우는 의학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중환이란 뜻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일반 사람은 평상시에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의 경우는 노출을 통해 다양한 미생물과 같이 살기를 배워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면역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깨끗한 환경은 미생물과 대화를 뜸하게 만들었다. 외부와 소통되지 않는 조건은 사소한 미생물의 침입에도 면역계가 과도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덕분에 요즘 세상은 면역 관련 질환인 아토피, 알레르기, 류머티즘이 점점 흔해지고 있다.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이 오히려 독이 됐다. 그래서 사소하게 지나쳤어도 되었던 먼지 한 올이나 작은 미생물에게 면역계가 정신을 못 차리고 예민하게 전쟁을 벌인다. ‘미생물 노출 기회를 효율적으로 뺏을수록 대규모 집단 내 자가 면역질환의 유병률이 높아진다는 것’ (저스틴 소넨버그, 에리카 소넨버그 지음, 『건강한 장이 사람을 살린다』, 김혜성 옮김, 통합이학임상연구회 감수, 파라사이언스, 초판2쇄, 2016년, 104쪽)은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면역계가 과민 반응하는 것보다 자주 아픈 게 더 낫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자가 면역질환의 증가는 감염 감소가 아니라 지나친 청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접하는 미생물의 대다수는 병을 일으키는 나쁜 놈들이 아니다. 단지 면역에 간지름을 태울 뿐이다. 막 들어온 균, 잠시 지나가는 균, 함께 살아가는 균에 동시다발적으로 대응할 때 면역계 엔진은 쉼 없이 돌아간다. 이렇게 은근하고 소소한 면역 반응은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만 유지되며 이런 항시적 활동이 있어야 면역계가 건강하게 유지된다. (같은 책, 104~105쪽)
면역에 좋은 것은 적당히 깨끗하고 적당히 더러운 환경이란 말이다. 극단적인 청결과 최악의 더러움을 피하면 된다. 쉽지 않은가? 공기를 처음 마시며 응애 응애하고 운 뒤부터 노년을 지나 죽을 때까지 면역은 계속 변하는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평화를 유지한다. 양쪽 다 죽을 수 있는 전쟁은 우리 몸이 피하고 싶은 일이다. 여행이 우리의 일상에 활기를 주는 것처럼 다양한 노출이 면역에 좋다. 그래야 ‘건강’하게 별 일없이 잘 살 수 있다.
글_이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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