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남산강학원> 오인방의 따로, 또 같이 살림-공부하기
오랜만에 <남산강학원>에 방문했다. 20대 초반이었을 때 <문탁네트워크>와 <남산강학원>의 청년 멤버들이 중국 운남성으로 여행을 떠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그때 마침 내가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몇 달 동안 <남산강학원>을 자주 드나들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한창 왔을 때, 그때도 아주 새 것은 아니었지만, 밝은 조명과 하얀 벽을 보며 ‘역시 서울은 다르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들른 <남산강학원>은 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색이 바랜 벽지, 온갖 흔적이 가득한 책상, 조금 어두워진 조명에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보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드는지,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공간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쏟아지고 있는지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요즘 이곳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누굴까? 내가 아는 <남산강학원>의 살림당(살림을 담당하는 청년들) 멤버는 윤하쌤 밖에 없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윤하쌤을 비롯한 살림당 멤버분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살림당의 멤버는 총 다섯인데, 인터뷰에는 유일한 회의가 있었던 하늘쌤을 빼고 윤하쌤, 미솔쌤, 보라쌤, 조은샘쌤이 함께했다.
- 윤하쌤: <남산강학원> 살림 7년 차. 현재 살림당의 최고참이다. 전공은 동양고전. 『청년, 연암을 만나다』(2020, 북드라망)의 공동 저자이며 올해는 장자 수업의 매니저를 맡았다.
- 미솔쌤: 상주하며 공부한 지 4년 차, 살림 2년 차. 올해는 스피노자 공부를 한다. 영어와 영상에 특기가 있다. 살림당 멤버들 피셜 ‘재밌게 말하는 쌤’. 한마디 한마디가 생생히 살아 있다.
- 보라쌤: 미솔쌤과 동기. 선생님들 피셜 ‘자꾸 퍼뜨리는 사람’. 하나에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풀어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올해는 본능적으로(?) 끌리는 니체에 집중할 예정이다.
- 조은샘쌤: 상주하며 공부한 지 3년 차. 올해 살림당에 들어왔다. 인터뷰어 피셜 ‘미노이 닮은 꼴’. 똘망똘망한 눈과 조곤조곤한 말투가 귀여운 은샘쌤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글쓰기다.
‘탁!’에서 ‘므허~’로
고은: 2년 전, <길드다>가 해체되기 전에 나루에서 만났던 기억이 나요. 그때 본격적으로 <남산강학원>을 꾸려보려고 한다고, 인수인계받고 계신다고 했었거든요. 요즘은 어떤가요?
윤하: 작년은 실험 기간이었어요. 선생님들이 저희한테 기대하시던 바도 있었을 거고, 저희도 공부나 활동이 다른 방식으로 열리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하고 있었죠. 포부가 있었어요.
보라: 작년에 제가 그 현장에 있었어요. 새벽 1~2시까지 머리를 맞대고 비전을 고민하더라고요.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계속 고민하는 게 느껴졌어요. 선배들이 진짜 진짜 힘들어했거든요. 저는 선배들이 매니징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 일환으로 살림당에 결합한 거여서 갭이 좀 있었죠. 그런 선배들을 보면서 전체를 보고 꾸리는 법을 배웠어요.
미솔: 확실히 작년에는 선배들 힘을 많이 받았어요. 좀 올라타서 갔죠.(웃음) 제가 맨날 가서 물어보면 선배들이 따뜻하게 답변을 해줬던 것 같아요.
윤하: 뭔가 왜곡된 것 같은데.(웃음) 결과적으로는 실험에 실패했어요. 올해는 청년 프로그램도 많이 바뀌어서 주거를 포함하지 않게 됐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청년들이 공부에 접속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선생님들은 “[전적으로 운영을 맡기면] 청년들끼리 뭘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는 건 아니구나” 하시면서 “청년과 중년이 섞이는 방식으로 해보자”
고은: 그만한 실험이 있었다는 게 멋져요. 실패라고 표현하셨지만, 방향이 전환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청년과 중년이 섞이는 방식은 어떤 건가요? 그럴 때 살림당의 역할은요?
윤하: 전에는 선생님들도 공간을 옮기셨고, 저에게도 책임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무슨 역할이지… 뭔가 잘 모르겠어요.(웃음) 이제는 각자의 역량을 좀 더 키우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공부 자체에 좀 더 집중하는 방향으로요.
미솔: 작년에 제가 살림을 완전히 도맡았던 건 아니라 작년과 올해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는 건 알 것 같아요. 작년에는 좀 (손 위로 계란을 움켜잡듯이 손가락을 모으며)’탁!’하는 느낌이었는데 올해는 좀 (손가락과 손바닥을 땅으로 향해 자연스럽게 힘을 풀며)’므허~’하는 느낌이에요.
모두: (웃음)
고은: 요즘 살림당에 어떤 일이 있나요? 재밌는 일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보라: 저희가 ‘살림당 데이’가 생겼어요. 올해는 살림당에 선생님들이 결합된 느낌이에요. 그래서 서로 더 소통하기 위해서 매주 목요일 아침에 같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요즘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같이 읽고 있어요. 긴장감 넘치는 강독이에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산행을 가죠.
고은: 아 그게 ‘살림당 데이’인가요?
보라: 네 그게 살림당 데이에요. 뭘 기대하셨나 봐요.
모두: (웃음)
윤하: 선생님들께서는 저희들에게 자기 역량이 커지지가 않으면 계속 공부를 지속하기가 어렵다고 하셨어요. 저희는 후배들의 공부를 신경 쓰고 이곳이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 힘을 쓰는 게 저희의 살림이자 공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게 꼭 [책 읽고 글 쓰는] 공부를 못 하게 했냐, 하면 그건 말이 안 맞긴 하죠. 공부는 어디서든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올해는 각자가 어떤 공부를 해야 되고, 어떤 지점을 넘어가야 하는지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올해 같이 모여서 얘기할 때도 구체적인 공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니체, 스피노자, 불교, 장자
고은: 각자 올해를 어떻게 보내보고 싶으세요?
보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패턴 같은 게 있잖아요. 저는 좀 산만한 경향이 있어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같이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나 책을 존중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멋있는 선생님들과 선배들을 보면서 공부가 뭘까 이런 생각을 계속 해보게 되는데요. 그동안 제가 지식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공부해 왔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고은: 보라쌤은 <위대한 정오의 선데이 니체>를 진행하시죠?
보라: 네 공동 반장이에요. 내년 4월까지 전작을 읽으려고요. 선생님들께서 스승으로 삼고 싶은 사람을 한 명 고르라고 하셨어요. 원래는 많은 말들을 만들어갔는데, 선생님들이 그냥 진짜 만나보고 싶고 배워보고 싶은 사람을 고르라고 하니까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한테 신체적으로 뭔가를 줬던 사람이 니체였던 것 같아요.
고은: 미솔쌤은 <SNS스쿨>을 하신다고요? 홈페이지에서 봤어요.
미솔: 네. 스피노자는 이전에도 공부를 좀 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스피노자 공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옆에 있는 애가 한다길래 우연히 같이하게 됐는데, 하다 보니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그리고 알면 알수록 저와 다른 눈을 가진 사람이다, 되게 자유로운 삶은 사는 사람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더 좋아졌어요.
고은: <SNS스쿨>에서 아인슈타인도 같이 다루시잖아요. 아인슈타인도 기대가 되나요?
미솔: 이번에 <SNS스쿨>이 기대가 되는 거는, 스피노자도 ‘신 즉 자연’을 얘기하고 있고 아인슈타인도 과학자이면서 자연을 탐구하는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지금 우리는 ‘과학’이라고 하면 팩트라고 생각하고 믿어버리는데요. <SNS스쿨>에서는 그런 ‘과학’을 철학자의 시각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은: 은샘쌤은 올해 어떤 공부를 주로 하시나요?
은샘: 아아….
고은을 제외한 모두: (웃음)
은샘: 이 질문을 대비하고 있었거든요. 진짜 오랜 시간 동안요. 글쓰기 학교 수업을 들었었는데 제가 엄청난 비문으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었어요.(웃음) 그다음에 <문장 세미나>라고 필사하는 세미나를 엄청 열심히 해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됐고요. 그런 기본기를 좀 탄탄하게 하자 해서 올해는 <잘읽자>세미나를 매니징하게 됐어요. 기본기를 먼저 배워야 될 것 같아서, 잘 읽어도 보고 관계에서 연락하고 이런 것도 배우면 좋겠다 싶어요. 공부는 불교 텍스트 하고 있어요. 니체는 한 대 때리고, 과학은 어렵고 했는데 불교는 언어가 저랑 딱 맞는 것 같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되게 명료하게 정리할 수가 있더라고요.
고은: 윤하쌤은 올해 <북킹장자>에서 튜터로 이름을 올리셨잖아요. 멋져요! 튜터는 올해가 처음이신가요?
윤하: 작년에도 글쓰기 씨앗문장반 튜터를 맡았어요. 올해도 세미나 튜터는 문리스 쌤이 해주시고 저는 글쓰기 튜터로 들어가요. 아직 제 영역에서 튜터링을 할 수는 없지만, 글 정도는 볼 수 있는.
고은: 글 정도라니요 선생님.(웃음)
윤하: 여기에 있으면 저의 의지라기보단… 제 의지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에 밀려서(웃음)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 우연히 『장자』를 추천받았어요. 사실 『논어』가 잘 안 맞았어요.
고은: 헉 진짜요? 전 『논어』가 정말 잘 맞거든요.
윤하: 『논어』로 글 쓰신 거 봤어요.(웃음) 저는 지금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공부해서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 찾아가는 때인 것 같아요.
살림당의 멤버십이 어떠냐는 질문에 은샘쌤은 가족 같다고 했다. 미솔쌤은 친구들이 다 앓아누웠을 때, 자기가 이 친구들 없이 살 수 없겠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청일점인 하늘쌤을 제외한 넷이 같이 살고 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연구실에서도 보고 집에서도 만나는 네 사람이 어찌나 끈끈해 보였는지 하늘쌤은 같이 사는 멤버들의 회식 자리까지도 끼고 싶어 했단다. 심지어 인터뷰를 하는 중간중간 인터뷰이들은 “더 친해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엔 각자 공부를 열심히 해서 길을 내보기로 했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서로를 살피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작년에 빡세게 공동체 살림에 대한 감각을 기르고 난 뒤, 자기 역량을 본격적으로 길러보기로 한 과정이 이 우정에 시너지 효과를 냈을까? 이런저런 지역에서 이런저런 연유로 <남산강학원>에 상경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공간을 쓸고 닦고, 밥을 차리고 치우고, 세미나를 꾸리고 사람들을 챙기는 와중에 자기 공부까지 놓지 않고 있는 다섯 친구들의 2023년을 응원하고 싶다.
글_김고은(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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