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고 실험하는 에코실험실 파지사유
김고은(문탁네트워크)
2009년 9월 출범한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공간 - 문탁네트워크’는 십여 년간의 실험과 진화 끝에, 2021년 초 ‘문탁네트워크’, ‘파지사유’, ‘인문약방’으로 분화되었다. 파지사유의 풀네임은 에코실험실 파지사유다. 이곳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용기내 가게가 눈에 띈다. 벽면에 층층이 쌓인 나무 선반 위로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필통, 커피 찌꺼기로 만든 화분, 스텐 빨대, 대나무 칫솔, 천연 수세미, 손작업장 자누리에서 만든 다양한 종류의 비누가 보인다. 그 위로는 코코넛으로 만든 세척 솔, 니트 수세미, 소창 손수건이 걸려있고 그 아래로는 자누리 비누 선물 세트와 자투리 천으로 만든 에코백이 카운터에 놓여 있다.
인터뷰이 뚜버기 선생님은 외부에 파지사유를 이렇게 소개한다고 했다. “생태 위기에 이제 직면해 있는 지금, 어떻게 이 지구 안에서 다른 생명, 다른 존재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떤 실천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런 걸 탐색하는 공간이라고 해요.” 파지사유에는 함께 공부하며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 나가는 에코프로젝트, 지구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각자 찾아 도전해보는 공생자행성, 제로웨이스트샵인 용기내 가게, 재활용 가죽과 천으로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손작업장 월든, 자연에 덜 해로운 재료로 비누를 직접 생산하며 손의 능력을 일깨우는 손작업장 자누리가 있다.
어쩌다 내가 공부하는 환경에 대해 소개할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지사유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다. 인문학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은 공부만 하지 않고 활동까지 한다는 점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활동만 하지 않고 공부까지 한다는 점을 놀라워한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파지사유의 모호하고도 매력적인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 왔다. 파지사유는 공부 공동체이지만 공부만 하지 않고, 사회활동을 벌이지만 사회활동만 하지는 않는다. 파지사유는 어떻게 그 아슬아슬한 길을 내왔을까? 파지사유의 중심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뚜버기 선생님, 달팽이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물어봤다.
집단지성은 서로를 알아봐 주는 마음에서 나온다
고은 두 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곤 하시나요? 각자 파지사유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달팽이 파지사유에서 공부하면서 활동도 한다, 주로 이렇게 소개하지요. 또는 이 장소에서 함께 어울려서 살고, 놀고, 공부한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고요.
뚜버기 저는 거기에다 추가로 자누리에서 손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고 얘기해요. 역할은, 달팽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달팽이가 조직하고 관계를 살피는 역할을 잘해서 주로 해요.
달팽이 아니 뭐, 딱히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고요.(웃음) 그냥 이 사람이 이걸 하면 잘한다, 그래서 같이 뭘 하면 좋겠다, 그런 건 있어요. 관계를, 그러니까 감정을 잘 살피는 사람들은 또 따로 있어요. 때에 맞춰서 그런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요.
뚜버기 성격에 맞게, 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 같아요. 그 관계 안에서 어떻게 활동을 펴나갈까 생각하죠. 저희는 어떤 조직이 먼저 있고, 각자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서 일을 하지는 않아요.
달팽이 확실히 파지사유는 집단 지성으로 함께 굴러가는 곳이에요. 누군가가 나서서 더 많이 리드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다들 앞에서 끌고 가는 걸 부담스러워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꼭 이래야 돼!’하는 게 별로 없어서, 뭐랄까, 협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거죠.(웃음) 그래서 말하자면, 지금 에코 실험실의 활동가 열 명은 그냥 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에요. 회의를 하다 보면,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냥 그 해의 방향들이 정해지곤 해요. 물론 어떤 순간에 어떤 얘기가 오가느냐, 어떤 책을 읽었느냐에 따라 방향이 바뀌기도 하고요.
고은 누가 뭐를 잘한다는 걸 알아봐 주는 건 왜 필요한가요?
달팽이 누군가가 여기서 어떻게 결합하면 자신의 재능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을지 잘 모를 때, 의기소침해질 때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 뭐 하고 싶은 거 없냐고 계속 물어볼 때나,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할 때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몰라요. 그런데 그 사람이 잘하는 것과 결합이 이루어지면 물꼬가 터져서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게 하나의 활동 영역이 되고, 그러면서 우리 활동 전체에 영향을 미쳐요. 그런 건 좀 재밌는 일인 것 같아요. 내가 안 해도 뭔가가 막 굴러가지니까요.
뚜버기 이를테면 참쌤이라고, 처음에는 같이 공부를 했어요. 그러면서 뭔가를 같이 하면 좋겠다 싶어졌어요. 참쌤이 산호초 그리기라든가, 에콜로지와 관련된 미술 활동을 하고 계시니까 여기서 전시회를 열었어요. 그러면서 관계가 긴밀해졌고, 활동가로 프로그램 하나를 맡기도 했어요. 올해는 본격적으로 자누리의 핵심 멤버가 되었고요. 지금은 우리도 참쌤에게 영감을 많이 받고 있어요.
달팽이 느티나무쌤도 그래요. 문탁네트워크 초기부터 같이 공부를 하셨던 분이었는데, 최근에 활동할 영역이 없다고 느끼고 계셨거든요. 지금은 주방인 공식당에서 찬마니(찬을 만드는 이) 활동을 하고 계세요. 또 느티나무쌤이 낭송을 계속하고 싶어 하셨거든요. 최근에 낭송할 수 있는 세미나를 열었는데 지금 잘 되고 있죠. 그렇게 사람들과 만나는 접촉면이 훨씬 커지니까 좋은 것 같아요.
성장을 멈추라는 중얼거림에서 외침으로
고은 두 분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셨어요?
달팽이 용인에서 지역 화폐 모임을 한다고 했을 때 문탁네트워크의 요요쌤을 만나게 됐어요. 대전에 있었을 때 공동체 화폐를 쓰는 ‘한밭레츠’에서 활동했었거든요. 근데 용인에서는 지역 화폐가 바로 진행이 안 됐고, 문탁네트워크에서 경제 공부부터 해본다고 해서 오게 됐죠.
뚜버기 저도 똑같은 계기에요.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원래 요요쌤과 생협활동을 같이했었어요. 거기서 지역 화폐 워크숍을 열었고, 한밭레츠에서 와서 소개를 해줬죠. 그때 거기에 달팽이 있었어요?
달팽이 제가 대전에서 데리고 왔으니까요. 그 옆에 있었을 거예요.(웃음)
뚜버기 전혀 기억이 안 나네. 우리 복(마을 화폐)과 계속 같이 갈 수밖에 없겠다.(웃음)
고은 마을 경제, 마을 작업장 활동을 10년 정도 하셨잖아요. 그 시간들은 어떻게 에코실험실 파지사유와 연결되어 있을까요?
달팽이 처음에는 소비자에 머무는 게 아니라 생산을 하자, 그리고 생산하는 사람들 간의 다른 관계를 만들자, 이런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생산활동 덕에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뭔가 만들어 내고, 긴밀하게 만날 수 있었죠. 그런 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뚜버기 자본주의적 생산이라고 하면 수익 내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해진 임금을 능력에 따라 주잖아요. 저희는 그런 건 아니에요. 수익이 생기면 왠지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은 사람에게 더 많이 줘요.
달팽이 어떻게 보면 진짜 ‘왠지’야.(웃음) 가정경제를 증명하진 않으니까요.
뚜버기 어떤 경우에는 상징적으로 활동비를 줌으로써 명예를 높이기도 하고요. 그런 게 재밌죠. 그리고 저희가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분업하지 않는다, 거든요. 누구나 여기서 뭘 만들 때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혼자 다 하는 게 중요해요. 효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또 생산하는 활동을 했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어요. 복을 만든 것도 그렇죠.
달팽이 맞아요. 우리가 생산해서 그걸 순환시키는 건 복으로 하겠다, 그게 가능했던 거죠. 복을 쓸 장소, 복을 쓸 거리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에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지고 또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건 되게 다행인 일인 거죠. 공부만 있었으면 좀 재미가 없지 않았을까?(웃음)
고은 요즘에 성장을 멈추라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사실 새롭진 않더라고요. 선생님들 활동으로 그걸 오래 봐었어서 그런가 싶어요.
달팽이 마을 작업장의 모토가 소박한 삶이었어요. 사실 그때부터 생태적 가치가 저희에게 있었죠. 초창기에 읽었던 책도 <에콜로지카>였어요. 그동안은 에코라는 말 안 넣었던 거고, 이젠 전면에 그걸 내세웠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뚜버기 사실은 예전에 우리가 성장을 멈춰야 돼, 라고 말했을 때 별로 안 통했어요.(웃음) 사람들이 불편해했거든요. 성장을 멈추면 핸드폰도 쓰면 안 되냐, 자동차도 버려야 되냐, 비현실적이다, 이런 얘기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됐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저희도 더 힘을 실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성장을 멈추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지.
모두 (크게 웃음)
소비에서 생산으로, 생산에서 분해로
고은 재작년과 작년에는 하나였던 ‘에코프로젝트’ 프로그램이 올해는 입문과 심화, 두 버전으로 열렸잖아요. 심화 버전을 진행해 보니 어떠세요?
뚜버기 처음 에코프로젝트를 열었을 때는 책을 읽어서 문제의식을 길러내고, 그걸 일상에서 액티비티로 연결키는 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뭐든지 일상에서 실천 거리를 찾아내는 걸 과제로 삼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두 번째 해에는 다들 농사에 꽂혔어요. 함께 텃밭 가꾸는 걸 중요한 액티비티로 삼았는데, 거기서 저 같은 경우에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죠. 내가 이런 건 진짜 못하는 인간이구나.(웃음) 올해로 에코프로젝트가 3년째에 이르니까 공부를 심화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생겼어요.
달팽이 상반기에는 기후철학을 공부했거든요. 기후위기에 대한 시각이 좀 더 깊어지면서 팀 내에서 방향성을 어느 정도 맞추게 되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플라스틱 안 쓰기처럼 개인적인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대해서만 고민했어요. 물론 라이프 스타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닌데요. 지금은 그런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생각할 수 있게 된 거죠. 인간의 존재론부터 자본주의의 문제까지 다양하게 얽혀 있으니까, 그걸 해결해 나가는 방식도 다양한 차원에서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어떤 활동 방식이 맞다, 아니다, 그런 것도 없어졌죠. 철학 공부도 필요하고, 시위도 나가야 되고, 라이프 스타일도 바꿔야 되고, 이 모든 것들이 종합적이어야 하니까요.
뚜버기 파지사유 만들기 전에도 마을 경제를 공부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기후 위기나 생태 문제가 다양한 차원과 굉장히 깊게 연결된 문제라는 걸 더 많이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걸 느낄수록 우리가 얼마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됐죠. 그래도 공부를 하면서 힘을 얻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마을 경제 공부할 때와 다른 해법도 생각하게 되고요. 후지하라 다쓰시의 <분해의 철학> 같은 걸 읽다 보면 그렇죠. 썩는 존재가 돼야 된다는 건 그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이거든요.
달팽이 모든 존재들이 분해하고 있는 존재라고 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사람이 뭔가를 먹는 게 소비가 아니고 분해인 거예요. 분해가 돼야만 다시 생산이 되니까, 분해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어요. 나 역시도 분해자라서 잘 분해되는 게 되게 중요해요. 그러면 죽는 걸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되죠. 그러고 보니까, 저희가 계속 분해 활동을 해왔더라고요. 자투리 가죽으로 월든에서 물건을 만든 걸 생산 활동이 아니라 분해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관점이 달라지는 거예요. 필요 없어진 물건을 서로 나누는 이어 가게도 엄청 중요한 활동이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마을 작업장 활동을 처음 했을 때는 소비가 아니라 생산을 한다였는데, 지금은 생산이 아니라 분해를 한다로 관점이 옮겨가고 있어요.
파지사유의 선생님들은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모습을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럴 때 작은 가능성이라도 찾아내서 무언가를 같이 하자고 제안해 주지만, 그렇다고 생색을 내거나 당장에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도움을 받은 누군가가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리라, 믿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두 선생님이 지난 10년간 성장했다고 자부하는 것이기도 했다. 달팽이 선생님은 여태까지 활동이나 다른 역량들은 부침이 있지만, 유일하게 세월에 따라 착실하게 쌓이고 있는 것은 관계라고, 그러니까 신뢰라고 말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는 분별이 없어진 대신 누군가 힘이 빠졌을 땐 그냥 그렇게 있어도 된다고 말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함께 공부한 덕분에 어떤 때 누군가는 기다려 주고, 또 어떤 때 누군가에게는 그 방향에 대해 질문할 줄 알게 됐다.
선생님들은 요즘 기후위기와 관련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며, 자신들이 꼭 앞서나간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오늘날 전 세대에 걸쳐 성장을 멈추자는 이야기는 활발하게 되고 있지만, 이제 막 시작된 탓에 부침이 많다. 어떻게 함께 가야 하는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땐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는 선배들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다. 보답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누군가를 지지해 주고, 홀로 앞서 나가지 않고 옆 사람들과 발맞추는 연습을 해온 선생님들의 시간에서 나온 지혜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파지사유의 선생님들이야말로 우리 세대에게 필요한 선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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