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와함께하는신화탐구] 청소하기의 신화학

청소하기의 신화학

청소의 어려움과 두려움
청소는 무서운 일입니다. 치우고 돌아서면 또 치울 것이 나오고 어제 치웠어도 오늘 치워야 합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심지어 한도 없습니다. 멈추면 죽는구나, 하는 절박감을 주는 활동 중에 청소만한 것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누구나 해야 하고, 죽기 직전까지 멈출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서 또 제일 부정되는 일이 청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반 일리치가 비판하듯 근대의 청소가 임금 노동의 보완물인 그림자 노동으로 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일 또 어질러져 있을 텐데 오늘 안할 수도 없고 아무리 해도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가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청소는 무용과 허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어둠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직시하기가 두렵습니다.

청소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요? 제가 청소의 어려움을 본격적으로 느끼게 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살고부터입니다. 생애 초반의 인간은 먹고 싸고 자는 주기가 상당히 빠릅니다. 그 압도하는 신생명의 순환 주기를 중년의 제가 따라잡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다양한 주변 존재들을 변용해서 들였다가 내보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먹으려면 생물(자연)을 음식(문화)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몸(문화) 밖으로 나온 것은 다시 집 밖(자연)으로 나가야 하지요. 활동을 위한 휴식을 위해서는 만물이 숨죽이는 밤을 만들기도 해야 합니다. 육아를 통해 알게 된 청소는 사물과 사람의 제 자리를 찾아주는 활동이었습니다. 다만 이 ‘자리를 찾아주다’라는 것이 때로는 입은 옷이나 상품의 포장지를 벗기고, 칼질과 불질, 분탕질로 어지럽혀진 도구들을 닦고, 사물의 때에 맞는 장소를 발견하고 그에 맞춰 사물을 변형해 자리잡게 만드는, 셀 수도 없이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도 짚고 가야겠습니다.

청소는 가장 일상적인 종합예술이죠. 오늘은 청소하기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리 호이나키는 청소야말로 진리가 현현하는 순간이라고 했습니다.(리 호이타키, 김병순 옮김,『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기독교도였던 리 호이나키뿐만 아니라 많은 종교의 계율에는 청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리반특(周利槃特)이라는 승려도 있지 않습니까. 그는 우둔해서 출가한 지 3년이 되어서도 게송 하나 외우지 못했습니다. 하여, 부처님께서 빗자루를 주시며 정사(精舍)를 깨끗이 하라고 하셨죠. 그리고 주리반특은 청소를 게을리하지 않은 끝에 득도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식사나 청소를 중요하게 그리는 것도 함께 생각해볼 만합니다. 구축과 성취가 아니라 해체와 분해에서 진리를 찾는다는 문제의식은 고대로부터 엄연하게 이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청소의 세계 속으로!

이 세계는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정물이 활물이 되고, 끝과 시작이 맞물려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신비를 표현하면 ‘물건에는 발이 있다!’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주문을 걸고 놔 두는데도 그것들은 찾을 때마다 제자리에 없습니다. 덕분에 ‘두고 찾고 다시 두고’의 무한 연쇄가 일어납니다. 이 운명을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아마 없을 겁니다. 역설적으로 만물의 생기는 가만히 있는 것에서가 아니라 이 무한 연쇄를 잘 타는 일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와 관련해 최근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2·30대 청년들의 쓰레기 원룸이었습니다. 바쁘게 생활하는 청년들의 집이 발 디딜 틈 없는 쓰레기산이 되어, 결국 전문 업체들이 밤에 몰래 가서 청소를 해주고 나오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물건의 발이 묶이는 사태는 청소가 필요없어 쾌적한 것이 아니라 청소할 수가 없어 불쾌한 일이 됩니다. 자포자기하듯 사물의 자리를 모두 무시해버리는 일상을 살고 있는 그 청년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무섭고 또 미안합니다.


깨끗해야 더럽지
청소란 더러움을 제거하는 행위입니다. 일단 뭔가 형태가 무너지고 풀어지면서 제 모습을 갖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더럽다고 본다면, 이런 오염(汚染)은 만물의 숙명입니다. 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오염’이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분해’라는 말로 ‘다른 생물의 단백질을 먹고, 소화하고, 산산조각 냄으로써 그걸 자신을 구성하는 물질과 끊임없이 교체하는 활동’을 포착해서, 생명의 근간이라고 설명했습니다.(후지하라 다쓰시, 박성관 옮김,『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표를 생각한다』(사월의책), 33쪽) 후쿠오카는 이를 ‘동적 평형’이라 부릅니다 생명활동은 오염활동과 나란히 가야만 합니다.

만물의 숙명인 분해, 즉 형태 풀어짐의 무질서는 존재의 진행 방향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무문자 사회의 신화에는 똥이나 오줌, 정액과 월경혈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신화 속 더러움을 ‘멀고 가까움에 있어 거리 조정이 실패한’ 사태를 포착하는 야생의 기호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실패는 틀리거나 나쁜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부서짐 속에서 새로운 시작이 일어납니다. 북아메리카 미웍부족의 사람들은 인간의 탄생도 그러한 더러움으로 설명합니다.

코요테는 드러누워 죽은 척하고 있었다. 그러자 수많은 까마귀와 독수리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코요테의 등 쪽을 쪼아 마침내 코요테 왼쪽 엉덩이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그들은 계속해서 쪼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코요테는 재빠르게 구멍을 막아 동물들을 가두었다. 코요테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엉덩이에 난 구멍을 열고 매에게 까마귀와 독수리를 꺼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코요테는 매에게 이들의 털을 뽑으라고 말했다.(리처드 어도스·알폰소 오르티스, 김주관 옮김,『북아메리카 원주민 트릭스터 이야기』, 59쪽)

북아메리카 신화에서 코요테는 트릭스터 즉 하늘과 땅, 빛과 어둠, 높음과 낮음을 매개할 수 있는 기호입니다. 코요테는 자기 능력이 따로 없고 호기심이 많다는 점에서 인간과도 닮았습니다. 이 코요테의 등에서부터 엉덩이까지 하나의 길이 뚫려, 그 자체로 그릇이 되는데요. 엉덩이에 난 커다란 구멍은 항문을 뜻할텐데, 코요테는 자기 항문을 막아 독수리와 까마귀를 가둔 다음 그 안에서 새들의 털을 뽑아 인간으로 만듭니다. 몸 속에 무엇을 넣는 일은 식사이지요, 빼는 일은 배설입니다. 인간은 소화를 거친 분비물로 만들어집니다. 한 인간의 탄생이란 발달린 짐승 코요테의 통 안에서 날개달린 짐승 까마귀, 독수리를 빻고 찢고 갈아 뽑는 과정인 셈입니다. 똥이 만들어지는 저 긴 과정은 분해로부터 출현하는 한 생명의 가능성을 말해줍니다.

한편, 각각의 문화는 무질서를 관리하고 정화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런 무엇을 더럽다라고 규정할 것인지는 문화마다 다릅니다. 어떤 물건도 그 자체로 더럽지는 않으니까요. 신발은 식탁 위에 올려놓았을 때 더럽지요. 식기도 침실에 있거나 화장실에 있을 때 더럽습니다. 위에 있을 것이 아래에 있고, 밖에 있어야 할 것이 안에 있을 때가 더럽게 됩니다.(메리 더글러스, 유재분·이훈상 옮김,『순수와 위험』, 69쪽) 더러운 것이 있어서 치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배치를 올바르다고 생각하느냐가 더러움을 결정하지요. “일련의 질서 정연한 제관계’(메리 더글러스, 앞의 책, 69쪽), 즉 각각의 집단이 구성해 낸 문화적 가치들이 청소의 근저에 작동합니다.

메리 더글러스라는 인류학자는 상징적 분류의 사회적 기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오염에 큰 관심을 두었던 렐레족 사람들을 연구했는데요, 그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개념이 부호니(buhonyi)입니다. 부호니는 수줍음, 정숙함, 수치심 등을 가리키는 예의범절의 덕목입니다. 부호니는 모든 사회적 위계와 개인적 품위에 다 작동합니다. 여기에 대립하는 개념은 오물을 뜻하는 하마(hama)인데요, ‘부끄러움’을 뜻합니다. 렐레인들은 사람을 모욕하는 일은 그의 얼굴에 배설물(tebe)를 문지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렐레인들은 우유를 마시고 달걀을 먹는 일을 무서워하는데, 우유와 달걀이 육신의 산물이며 하마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마의 회피는 시체, 피, 분비물, 구더기, 입던 옷, 성관계 등을 때에 맞게 잘 피하는 데까지 확장됩니다.

렐레인들은 먹을 것과 오물을 분리하기에 목숨을 건다지요. 먹을 것과 뱉을 것의 분류를 부호니와 하마를 통해 이루어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육식동물, 쥐, 뱀, 자칼처럼 냄새나는 동물은 하마입니다. 여성들은 대부분 원숭이를 먹는데 야자나무의 분비물을 먹는 한 종류만은 먹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식물의 분비물 역시 동물의 배설물과 마찬가지로 테베로 불리며 그것을 먹는 원숭이는 하마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어떤’ 원숭이는 부호니가 되고 ‘어떤’ 원숭이는 하마가 되는데, 각 원숭이의 습속을 살핀 결과입니다. 즉 관계 정상성의 범위를 규정하기 위해 하마가 지정되는 것입니다. 렐레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위생이 아닙니다. 이들은 부호니와 하마로 즉 깨끗함과 더러움이라는 잣대로, 남성과 여성, 마을과 숲, 상류와 하류를 나눕니다. 이 분류틀 안에 사람들을 배분하고, 그들에게 행위 양식을 입힙니다. 이것은 상징체계이고, 이들도 부호니와 하마가 실제적 개념이 아니라 상징적 개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깨끗함과 더러움이란 편의적 개념임을 놓치지 않습니다.

메리 더글러스는 성서의 「레위기(Leviticus)」도 같은 맥락에서 언급합니다.(메리 더글러스, 앞의 책, 78~79쪽) 성서는 십여 종의 동물을 부정하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성서 연구자들은 계율을 위한 것이며 무의미하고 자의적이기는 한데 미덕과 악덕을 강조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보기도 하고, 생리학적으로 바로 그 지방에서 그럴만했다는 이유를 들곤 했습니다(마빈 해리스도 구약의 음식금기를 환경적응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메리 더글러스는 성서의 음식물 규정은 기독교의 신개념을 따라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거룩함이란 ‘전체’와 ‘하나’를 가리키고, 개인과 그 집단(즉 신과 인간)의 통일과 통합의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레위기」의 많은 구절은 신전에 바치는 물건과 신전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신체의 완벽성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희생에 바치는 동물은 결함이 없어야 하고, 여자는 출산 후 청결해야 하고, 나병 환자는 쾌유하여 신전에 접근하기 전에 격리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완전성은 계속 확장되어 사회적 맥락에서의 완벽함을 의미하고, ‘미완성’ 없는 삶을 지향하게끔 독려합니다.(메리 더글러스, 앞의 책, 91쪽)

「레위기」
17. 너는 아론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의 후손 대대로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하느님께 양식을 바치러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18. 소경이든지 절름발이든지 얼굴이 일그러졌든지 사지가 제대로 생기지 않았든지 하여 몸이 성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19. 다리가 부러졌거나 팔이 부러진 사람. 20. 곱추, 난쟁이, 눈에 백태가 낀 자, 종기가 많이 난 사람, 고자는 성소에 가까이 나오지 못한다. 21. 사제 아론의 후손으로서 몸이 성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야훼께 가까이 나와 번제를 드리지 못한다…….(메리 더글러스, 91쪽의 재인용)

청소 즉 더러움의 제거는 하나의 문화가 어떤 관계적 배치 속에서 제 가치를 보존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인류는 특정 문화의 배치 바깥, 그 배치의 뒤틀림을 ‘더럽다’고 했습니다. ‘더러움’이란 가치평가된 말인 것입니다. 렐레인에게도 기독교인에게도 중요한 것은 각자가 생각하는 문화적 가치입니다. 그것이 더러움의 정화를 통해 역으로 부각됩니다. 프레이저도 전통사회 대부분 의례가 희생양의 번제 즉 오염의 제거에 할애되어 있다고 했습니다.(제임스 프레이저,『황금가지 2권』참고)


질서의 바깥에서 살아 돌아오다
흥미롭게도, 렐레인들을 비롯 야생의 많은 부족들은 이 더러움을 신으로 불렀습니다. 문화적 배치 즉 질서의 바깥은, 질서 자체를 출현시키는 광대한 힘들의 바다이니까요. 질서의 바깥은 무질서이지만, 이것은 부정(不正)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근원적 가능성의 심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청소의 의미, 무질서를 경험하는 것의 의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야생의 부족들은 청소에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첫째, 집단의 수준에서는 날씨 의례라든가 겨울 의례를 통해 공동체적 가치를 고양시키는 청소가 있었습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잡았던 모든 것들이 숨죽이는 겨울에, 잡힌 동물로 자신을 바꾸는 의례를 했습니다. 북반구의 수렵인들에게 겨울은, 굳이 말하자면 무질서의 시간이라 할 수 있는데 사냥꾼들은 먹고 먹히는 자연의 온 관계를 제의를 통해 성찰했습니다. 이런 의례를 청소라고 한다면, 이 청소란 일단 더러움 즉 질서 바깥의 심연에 몸을 푹 담그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개인의 수준에서는 통과의례입니다. 야생의 통과의례에서는 부족마다 조금씩 방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남성의 경우는 마을 바깥의 숲으로 들어가 수십일 맨몸으로 단식과 불면을 거듭하면서 자연의 온 힘을 경험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자연의 온 힘, 창발하는 생명력! 하지만 풍부한 생명력이란 먹고 먹힘의 카오스적 흉포함이기도 합니다. 야생의 청년들은 마을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 흉포함이 자신을 키우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것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막 월경을 시작한 소녀는 마을의 삶-주기에 들어가기 전에 완전히 자신의 취향과 모습을 바꿔내야 합니다. 레비 스트로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때로는 몇 년씩 토굴 같은 곳에 들어가 ‘구워’지기도 한답니다. 햇빛이나 신선한 것, 상한 것, 뜨거운 것, 차가운 것, 신체 내부의 어떤 동요도 일으키기 쉬운 음식들을 먹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양을 겨우겨우 먹으며 소녀들은 어른이 될 시험을 치릅니다. 조금 재미있게도, 이렇게 철저하게 자연과의 활기와 차단되어야 하기 때문에 백인들이 남기고 간 통조림이 소녀들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다는데요, 사실 따지고 보면 인디언들은 소녀를 통조림으로 처리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온 힘을 견디기 위해 덜 먹이고 덜 재우는 것은 일견 모순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헐적이나마 단식을 한다든지 투병 끝에 서서히 건강을 회복한다든지 할 때 알게 되듯, 금욕이야말로 욕망의 미세한 맛들을 알아차리게 되는 기회가 됩니다.

첫 월경이 시작됐을 때 차코 지역과 그 이웃 지역의 어린 인디언 소녀는 해먹(그물침대)에 묶어 얼마간 매달아 놓는데, 렝구아족(Lengua)에서는 3일 동안을, 쉬리구아노족에서는 두 달까지도 매달아 놓는다. 아마존강 유역과 가이아나의 남부 과라니족에서도 엄격한 격리 조치가 취해진다. 북아메리카의 서부와 북서부 지역 전체에서 첫 월경을 하는 소녀는 맨발로 땅을 밟을 수도 해를 쳐다볼 수도 없다. 돌발적으로 첫 월경이 시작될 때에 카리에족(Carrier)은 소녀가 팔로 얼굴을 가리라고 요구한다. 다른 곳에서도 역시 복면(얼굴을 가리는), 수건 또는 바구니로 소녀의 머리를 덮고 그녀를 피하거나 깃털로 된 창으로 이마를 둘러싸 가린다. 대호수 지역의 알곤킨족은 소녀가 눈을 깔고 아래를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소녀의 손으로 자신의 몸이나 가정의 식기를 만지는 모든 행위는 결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역시 아타파스칸족의 여러 부족(카리에족, 체소트족)에서 소녀는 벙어리장갑을 끼고, 머리 긁개와 등 긁개, 때로는 눈썹긁개를 사용했으며, 마실 때는 대롱(빨대)을 사용했고, 음식은 찍어먹기 위해 뾰족한 뼈를 사용해야 했다(담당자가 옆에서 그녀의 입에 음식을 하나하나 넣어주지 않는다면) 릴로에트족에서는 이런 속박상태가 적어도 1년 때로는 4년 동안이나 엄격하게 지속되었다.(『신화학3』, 726쪽)

이러한 정화의례는 야생의 소녀뿐만 아니라 월경중인 부족 여성에게까지 확대되곤 했습니다. 월경이란 신체의 내외부가 뚫리는 일로, 나와 바깥이 혈액으로 연결되어버리기에 더럽다고 여겨졌던 것이지요. 그래서 월경중인 여성은 마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좀 머물 필요가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식탁의 숟가락과 포크도 이런 월경혈 차단의 맥락에서 이야기합니다. 식사란 자연의 힘이 문화 쪽으로 넘어오는 계기이니까요. 이렇게 길이 열리게 되는 일은 대상의 위치변동이라는 더러운 즉 위험한 사건이 되기 때문에 식사에서는 이 힘들을 절연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사란 외부 물체와의 접촉과 소화, 분해를 차례로 필요로 하기에 생리적이고 개인적인 상태 변화의 장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강렬한 동요(動搖)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탁의 위생집기들로 외부와의 관계 조정을 잘 할 수 있으면 좋지요.

그런데 ‘정화’의 측면에서만 보면, 일상적으로는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각각의 문화마다 여성의 월경에 대한 금기와 혐오가 적지 않지요. 이에 대해 메리 더글러스는 여성의 출산이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입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식에게 그의 어머니란 아버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기 때문이고, 또 다양한 이유에서 야생의 문화는 모계제를 기본값으로 가져갈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농경-국가 결합체의 부계 사회에서 여전히 월경을 터부시하는 것은 ‘더러움’이 관계적 기호임을 놓치고 구태의연하게 답습해 쓰기 때문은 아닐까요? 석탄 박물관 혹은 어업 박물관 같은 곳에 가보면 광업이나 어업에 있어 월경중인 여성을 부정하는 속담이 많았음을 알 수 있는데요, 여러 가지 기원이 있겠지만 그 뿌리는 문화적 범위 조정에 있어 여성이라는 기호를 적극 활용했던 전통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야생의 사회에서 통과의례 혹은 정화란 무엇보다 ‘자기’를 돌보고,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자연의 여러 관계망에 유의미하도록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통과의례의 경우에서 보듯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이러한 강제는 억압으로도 보입니다. 그런데 레비 스트로스가 강조하듯이 이런 통과의례, 이런 정화는 현대의 입시나 입사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일단 ① 엄청난 신체적 고통이 수반됩니다. 청년들은 손가락 한두 개쯤은 숲에 두고 와야 할 정도로 극도의 허기와 추위, 압도하는 숲의 어둠에 맞서게 되어 몸에 저마다 치명적 상처를 안게 됩니다. 정신적인 압박감을 높이는 우리 시대의 입사의례와 다르지요. 그런데 잠깐 떠올려보면, 돌봄 활동 중에 청소는 유독 신체적이고 규율적입니다. 걸레와 먼지털이, 빗자루 등 다양한 도구를 때와 조건에 맞게 움직이다보면 청소하는 사람의 몸도 절도와 규범을 갖추게 되니까요.

다른 중요한 차이는 ② 통과의례를 치르는 자에게 허용되는 방종입니다.

죽음의 제의와 재생의 제의 사이의 경계선상에 놓인 시기에는, 성년에 도달하는 신참자들은 일시적으로 사회의 추방자가 된다. 그 제의가 계속되는 동안 그들은 사회 속에 자신의 지위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로 종종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로 떠나서 생활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들 추방자들이 공동체의 가까운 곳에 머물러 공동체 중 완전한 지위를 가진 자들과 예기치도 않은 접촉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이들은 마치 위험한 범죄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타인을 습격하고, 도둑질하도록 충동되며, 강간하는 것도 허락된다. 반사회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그들의 경계선상의 상황을 올바로 표현하는 것이다(Webster, 1908, 제3장). 경계선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위험과 접촉하는 것이고 능력의 근원에 존재하는 것이다. 격리된 상태를 벗어나 성인의 세계에 처음 들어서는 사람들을 마치 뜨겁고 위험한 것으로 충전된 것을 절연하여 식힐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형식과 무형식에 대한 관념과 일치한다. 오물, 음담패설, 그리고 무법성과 같은 것은, 그들의 상태를 나타내는 다른 제의적 표현과 마찬가지이며, 격리의 제의와 상징적 관계를 가진다. 그들의 불법 행위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자궁 속의 태아가 원한과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같다.(메리 더글러스, 157쪽)

왜 야생의 사회는 집단이나 개인의 수준에서 문화의 바깥 즉 무질서를 경험하도록 독려했을까요? 질서의 바깥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시무시한 바깥 경험은 그들 각자의 문화가 다만 힘들의 심연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위함이었습니다. 메리 더글러스도 렐레인들의 통과의례가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하나는) 사고의 애매함을 제거해, 직접 현실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다. 그것은 처음으로 이 비밀의식에 참가하는 젊은이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이 의식은 젊은이에게 그때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문화의 기반에 존재하는 분류 원리가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할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원리가 어쩌면 인공적인 허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고 깨달을 기회도 준다. [중략] 천산갑을 먹은 젊은이는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 등장하는 앙투얀 로캉탱이라는 주인공처럼) 초기 실존주의자와 같은 체험을 한다. 이제까지 자신의 경험을 형성해온 분류 원리가 자의적이며 인습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중략]
(또 하나는) 운명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고통이나 죽음조차 부정해버리려는 경향이다. 천산갑은 자신해서 희생하는 거라고 렐레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천산갑은 우주적 분류를 초월해 있는 것만이 아니다. 천산갑은 자기 내부로부터 세계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능력을 해방시키기 위해, 자진해서 죽음을 택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중략] 여기서는 죽음이라는 것을 속죄와 재생을 위한, 그야말로 즐거운 축제로 받아들이는 사고를 발견할 수 있다.(메리 더글러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대칭성 인류학』(동아시아), 140~141쪽 재인용)

이제 저는 청소가 힘든 까닭이 조금 이해됩니다. 렐레족 등의 통과의례는 인류학적 의미에서 청소가 일어나는 시공간에 몸을 담그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청소란 인류학적으로 보면 질서의 바깥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일인 것입니다. 그 바깥에서는 질서로 떠오르려고 기를 쓰는 많은 것들이 제 기세를 자랑하며 부딪쳐 옵니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정신줄 놓침 없이 생과 사의 근원적 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힘에 정신없이 빨려 들기만 하다가는 영영 질서의 세계로 넘어오지 못할 테니까요. 중단없이 변화무쌍한 우주의 힘들을 이해하는 데에 어떤 교과서가 있겠습니까? 오직 자신의 몸으로 겪고 깨달아 갈 수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신체는 끊임없는 변용을 일으키며 변하게 됩니다. 청소란 이 변용의 장 안에서 무질서와 질서가 엉기고 풀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벅찹니다.

분리수거나 정리정돈에 에너지가 많이 드는 까닭은 형태를 갖고 있던 물건들을 어떤 형태로든 변용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잘 헤쳐서 되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하나의 헤침은 결국 종이와 플라스틱, 비닐과 천의 뿌리를 아는 일에서,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비하며 그럼으로써 어떤 질서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지를 반성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꼭 이렇게만 먹고 마시고 싸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작업이 청소의 뿌리에 있는 것이지요. 무질서의 심연에서 존재의 온 관계를 성찰하면서도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하기에 청소는 벅찬 과업이 됩니다.


박멸과 표백의 무서움
청소란 맹목적으로 깨끗함을 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위생이 목적인 일이 아니예요. 더러움이 문화 구성의 편의적 개념임을 놓치면 어떻게 될까요? 더러움 자체를 없애려는 결벽증의 저주에 걸리게 됩니다. 그것이 근대의 위생담론이고, 그 악마성은 2차 세계대전기의 독일에서 노골적으로 제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나치즘의 잘 드러나지 않는 사실 중 하나는, 나치가 ‘토양-식물-동물-인간의 생물학적 공생’을 소리높여 외쳤다는 점입니다. 저는 최근에 번역된 후지하라 다쓰시의 『분해의 철학』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치가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관계를 목표로 노동을 삶의 최고 가치로 설정했다니요. 아이러니지요, 소진되지 않는 생명력을 인류 최고 아니 자연 최고의 능력으로 꼽았던 나치의 ‘생명지상주의’는 곧장 홀로코스트로 연결되었습니다.

후지하라는 우리가 ‘분해작용’에 주목할 때 구축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구축의 근원에서 쉴새 없이 일어나는 만물의 해체와 섞임을 성찰하면서 자연과 인간이라는 구분마저도 넘어가는 전체적 사고를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치즘에서 생명만큼이나 절대적인 가치로 작동했던 것은 무손상, 무왜곡, 무결함 즉 완전함이라는 관념이었습니다.

후지하라는 다음과 같이 문제 제기합니다. “생명의 위대함에 헌신한다, 삼라만상의 바다에 몸을 맡긴다. 제행무상의 행위로 자신을 비운다 등등 초월적인 것에 대한 허다한 예찬과는 다른 회로로, 자연계와 인간계를 통합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걸까?”(후지하라 다쓰시, 앞의 책, 27쪽) 무손상, 무왜곡, 무결함은 자연에는 있을 수 없는 사태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사물에는 발이 달려 있고, 그것은 어디든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생명의 목적으로 설정하려면 세계를 완전하게 표백하려는 노력 속에서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사물의 달린 발을 억지로 자르지 않는 한, 그런 완전함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완벽한 생명, 완전한 독일인이 있다면 그는 살아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삶에서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것을 소박하게 말하면, 손과 발을 다 자른 채 ‘되어야 될 어떤 상태’ 속으로 나를 구겨 넣는 일입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낡고 고장나고 파손된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자꾸 물건을 바꾸는 생활이야말로 ‘있어야 할 것들’로 삶을 채우려는 죽은 삶입니다. 청소란 내가 맺고 있는 온 관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금욕 즉 절제하는 일이지, 버려야 할 것을 색출하고 보기 싫은 것을 덮어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센의 청소, 치히로의 예의
인류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청소란 곧 정리, 질서를 향한 자기 기투입니다. 막연한 ‘깨끗함’이나 강박적 ‘청결’과는 큰 상관이 없는 만물의 온자리에 대한 성찰입니다. 산업화된 현대 생활은 정리 정돈마저 상품을 통해 해치워야 할 것으로 만들고 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청소를 한다는 것은 무질서 즉 만물의 온 힘들이 부딪치는 관계, 지금 여기에서 구현되지 못하더라도 다른 방식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덧없는’ 자리찾기의 분투입니다. 자기란 무질서 속에서만 출현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일입니다(미윅족의 신화).

청소 인류학을 하면서 제가 가장 큰 영감을 받았던 예술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입니다. 미야자키의 주인공들은 청소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은 마녀이지요. 마녀는 참 재미있는 캐릭터입니다. 빗자루야말로 그들의 심볼이지만 그들의 집은 언제나 더럽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무질서 속에서 약과 독이 만들어집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마법의 세계에 슬며시 소녀를 밀어 넣고 청소시키기를 좋아합니다. 마법사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지저분하지요, 여기서 할머니가 된 소피가 청소를 합니다. 할머니+빗자루, 즉 소피야말로 마녀입니다. 그런데 키키가 그렇지만 소피도 지구를 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녀들의 마력은 인류를 구하는 데에 있지 않고 더러워지는 나날을 계속 보고가면서 사물들이 활기 있도록 자리를 찾아주는 데에 쓰입니다. 미야자키는 마녀의 능력을 왜 이렇게 한정시켰을까요?

청소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것은 《센과 치히로의 모험》입니다. 이 영화는 갑자기 이계(異界)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소녀의 모험을 다룬다는 점에서 구성 자체가 통과의례적입니다. 이계가 일상의 한 가운데에 엄연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는 점, 성과 속, 삶과 죽음, 이편과 저편이 맞물려 있다는 대칭적 사고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예술인류학』(동아시아) 참고) 이계에 들어갔으니 치히로가 어떤 사건을 겪어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미야자키는 이계 즉 ‘저편’의 성질을 유바바의 온천장으로 설정합니다. 마녀 유바바의 온천장에서는 ‘이편’에서 열심히 일한 신들이 2박 3일 휴가라도 내어 오듯 단체로 휴식을 위해 방문합니다. 즉 저편은 신들이 몸을 씻는 장소입니다. 저편은 모든 힘들이 이편으로부터 넘어 가 쉬면서 힘을 보충하고, 때를 벗고 맑아진 새 기운으로 활력을 얻는 장소입니다. 유바바는 어떤 신도 거절할 수 없는데요, 온천장은 모든 신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가오나시는 정문을 통해서 온천장에 들어가지는 못하죠, 요괴이기 때문인데요. ‘저편’에서 신들이 등급에 따라 청결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지만, 결국 유바바의 온천장은 가오나시를 거절했기에 큰 혼이 납니다. 센이 이 가오나시에게 온천장의 옆문을 열어주게 되어 그 유명한 가오나시 난동 사건이 펼쳐지고, 결국 가오나시 덕분에 찾아온 온천장 규율의 무너짐 덕분에 센에게도 온천장을 벗어날 기회가 열립니다. 미야자키의 ‘저편’ 역시 어떤 부정도 없는 거대한 무질서의 심연입니다.

센이 된 치히로는 돼지로 변한 부모와 저주에 걸린 하쿠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남게 됩니다. 이 전체 서사를 가능하게 한 것은 센이 온천장을 청소했기 때문입니다. 유바바의 온천장 즉 ‘저편’에서 있을 수 있으려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라는 것이 자아실현과 아무 상관이 없는, 누군가의 때를 밀어주는 일입니다. 자기 더러움을 씻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노고를 위로하고 돌보기입니다. 센은 오물로 더럽혀진 이름난 강의 신을 기꺼이 씻긴 덕분에 경단을 보답받고 그것으로 하쿠와 가오나시의 저주를 다 풀어 주지요. 센은 자기 부모를 구하기 전에 타인의 고통을 덜기 위해 그 경단을 쓰게 됩니다. 내 부모 살리기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를 살리기. 부모, 자식이라는 혈연도 특정한 조건에서 가치부여된 관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타인의 밥을 허락없이 먹다 돼지가 된 부모를, 타인의 인정을 구하며 탐식하는 가오나시와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센은 부모도 구할 수 있게 되지요.

출처 - 다음 영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센의 청소법입니다. 미야자키는 센이 얼마나 청소를 잘 하는지, 센이 지나간 곳이 얼마나 깨끗한지를 그리지는 않습니다. 청소비법은 센이 온천장에 취직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일자리를 얻으려면 유바바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유바바가 허락할 리가 없었죠. 센은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는 가운데 무거운 석탄을 지고 쓰러진 검댕먼지를 우연히 돕게 됩니다. 그 덕분에 유바바도 쫓아낼 수 없는 온천장 직원이 되지요. 우선, 여기서 미야자키가 타인에 대한 선의를 ‘일’로 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이란 임금이 전제된 행위가 아니라 돕기입니다. 청소의 근본은 ‘돕는다’라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센이 한번 누군가를 돕자마자 하나하나씩 돕는 회로가 열려 갑니다. 검댕먼지들이 가마할아범의 잔소리로부터 센을 도와주고, 가마할아범이 린이라는 동료와 센이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돕고.

두 번째 비법은 인사입니다. 린은 가마할아범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 센을 야단치고, 유바바의 사무실을 들어가려 할 때 문고리는 노크도 안한다며 야단칩니다. 이후에 미야자키는 센이 꾸준히 마주치는 존재에게 인사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오나시를 지나갈 때의 목례, 엘리베이터를 잡아준 신에게 드리는 큰 고개숙임 등. 심지어 센은 제니바라는 마녀의 도장을 훔친 하쿠를 대신에 사과하러 가기도 합니다. 제니바가 사는 늪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중나온 랜턴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기도 하지요. 인사란 타인의 존재를 하나하나 느끼고 가는 일이고, 타인의 문제가 내 문제이기도 함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부모의 차 뒷자석에서 이사가는 일에 불평이나 늘어놓던 센은 돕고 인사해야 할 수많은 신들을 보게 되면서 마침내 이편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세 번째 비법은 말입니다. 유바바는 센을 고용하면서 분명히 경고합니다. 굼뜬 응석받이와 머리 나쁜 울보는 여기에 있을 수 없다고요. 싫다거나 안하고 싶다거나 말해서도 안됩니다. 아아, 실로 엄청난 이야기이지요. 질서 바깥의 그 카오스란 모든 가능한 일들이 무차별적으로 흘러다니는 바다입니다. 그 안에서는 부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싫어할 무엇이 있을 수 없고, 닥쳐오는 모든 힘들을 감당할 과제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일해야 한다, 여기를 싫다고 하지 않는다! 말이란 그러한 자기 결단의 선언이고 그것을 지켜나갈 때, 센은 친구와 부모와 신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씩씩한 존재가 됩니다. 센은 레비 스트로스가 소개하는 야생의 통과의례자들처럼 금욕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성숙해갑니다.

청소란 자기를 일으키는 무수한 힘들과 뒤섞이며, 꼭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될 많은 가능성 속에서 자기 삶의 윤리 하나를 떠올려보는 일입니다. 나 때문에 살아주고 나 때문에 죽어주는 것들에게 인사하는 일입니다. 청소가 힘든 순간이 내 인생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순간임을, 오늘 신화를 공부하면서 배웁니다.

레비 스트로스와 함께 읽는 신화학 연재를 16회로 마무리합니다. 신화란 결국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성찰한 인류 최고(最古)의 보고(寶庫)입니다. 이 주옥같은 이야기들은 나를 있게 하는 수많은 타자들에게 어떤 예의를 바칠 것인지를 노래합니다. 오늘은 그 최고 형식이 청소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동안 북드라망 홈페이지에 연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식사 자리, 청소 자리에 따뜻한 햇살이 내리비추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