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제이의 활동 보조 하는 것만 가지고는 생활이 어렵다. 현재 제이가 복지부에서 할당받은 시간 전부를 내가 뛰고 있지만 이 돈으로는 월세 내고, 공과금 내고, 식비하기도 빠듯하다. 급여의 반은 주거비, 반은 식비이다. 엥겔지수가 이렇게 높을 수가! 의식주 생활 중에 ‘식食’과 ‘주住’만 간신히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의衣’는 지금 내 처지로서는 고차원의 문화 생활로 느껴진다. 옷은 전혀 못 사 입는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게 어디인가! 감지덕지하면서 나는 제이의 활동 보조 하는 짬짬이 다른 사람의 활동 보조를 해서 모자라는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오늘 나는 체험홈에 거주하고 있는 한 친구의 아침 활동 보조를 나갔다. 화장실 가고, 목욕, 아침 식사를 도와주는 일이다. 체험홈에는 자립 생활을 준비하는 장애인 몇 명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에게는 또 각자의 활보가 있어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과의 수다가 즐겁다. 어머, 거기는 아침에 뭐 해 먹어? 응 우린 계란말이. 한 젓가락 먹어봐. 아 참, 지난번에 양파 두 개 빌려간 거 여깄어. 당근 하나는 이자야. 이러면서 장애인 네 명, 활보 네 명이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체험홈의 아침은 왁자지껄 잔칫집 마당 같다.
느낌은 완전 잔치집 분위기!!
나는 사실 신출내기 활보라고 할 수 있다. 활보 일한 지 겨우 1년 남짓 되었으니 말이다. 체험홈에서 3년차, 5년차 된 베테랑 활보들을 만나 현장 체험을 듣고 일의 노하우도 배운다. 어머, 그럼 안 돼! 내가 거실 청소한다고 바닥을 걸레로 닦고 있으니 베테랑 활보가 비명을 지른다. 그렇게 무릎으로 기어다니면서 걸레질 하면 무릎 다 나가. 봉에다 걸레 끼워서 밀어. 초보 활보들이 가장 잘 저지르는 실수가 일 하루 하다 말 것처럼 몸을 막 쓰다가 며칠 못 가 쓰러지는 사태라고 한다. 활보할 때 절대 힘 자랑 금지! 활보는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대화로 하는 거라고 베테랑 활보는 강조한다.
오늘 아침 내가 활보를 하는 H는 잠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하루 종일 활보가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사지마비의 중증 장애인이다. 일어나 앉고, 용변 보고, 씻고, 먹고, 외출을 하는 거의 모든 일상생활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활보를 시작하기 전에 H가 나에게 당부하는 것도 그것이다. 무조건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호흡을 맞춰야 한다!
H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좌변기에 앉기까지 한참 걸린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앉힌다. 화장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리고는 화장실 앞에까지 내가 H의 두 팔을 잡고 끌고 가야 한다. 사람을 짐짝처럼 끌고 간다는 게 좀 민망한 일이긴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몇 걸음 안 되는 거리를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면 더 번거롭기 때문이다. 이부자리에서 휠체어 의자에 앉기까지 드는 품도 만만치 않다. H를 안아서 휠체어 의자 높이까지 일으켜 세워서 잠시 몸을 지탱한 채 의자 높이와 엉덩이 높이를 맞추고 의자 깊숙이까지 엉덩이를 밀어넣어 안정된 자세로 앉는 일. 땀이 뻘뻘 난다. 그러니 방바닥을 무릎 썰매 타고 가는 게 편하다. 정말, H는 썰매를 타는 어린애마냥 표정이 밝다. 기나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와서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그런데 화장실 입구에서 좌변기까지 두세 걸음 되는 거리를 이동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H는 걸을 수가 없으니 내가 안아서 걸음을 옮겨 변기에 앉혀줘야 한다. H의 조언에 따르면, 이때 호흡을 잘 맞춰야 한다. 내가 무조건 H를 번쩍 안아서 옮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다가 이미 몇 명의 활보가 허리를 삐끗 했다. 내가 H를 안아 일으켜 세웠을 때 바닥에 닿은 H의 발이 H의 몸을 최대한 지탱할 수 있도록, 그래서 H의 체중이 전적으로 나한테 쏠리지 않도록 해서 걸음을 옮겨야 한다. 즉, 내가 H를 안아서 옮기는 게 아니라, H와 내가 한 몸이 되어 같이 걸음을 떼야 하는 것이다. 힘을 잘 합치고 배분하는 감각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H를 화장실에 데려다주고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이불을 개고, 방 청소를 한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돈하고, 조그만 진공 청소기로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들을 빨아들인다. 걸레를 가져와서 바닥을 닦는다. 서랍장 옆에 원두커피 내리고 남은 가루가 종이박스 뚜껑에 골고루 펴져서 담겨 있다. 이게 뭐야? 화장실에다 대고 내가 소리치면, 어 그거 커피 향이 좋아서 방향제 하라고 오후 활보가 갖다 놓은 거야, 라고 H가 화장실에서 소리친다. 고지 점령을 앞둔 전우들이 산 너머로 대화를 하는 것 같다.
H는 변비가 있다. 똥을 오래 눈다. 방 청소 다 하고, 나는 주방에 가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체험홈의 주방은 옆방의 친구들도 같이 쓰는 공동 공간이다. 활보 한 분이 다른 친구의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이 분은 나이가 60대이다. 활보 중에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물론 젊은 활보도 많지만 아르바이트 정도이지 주업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이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50대 분들이 많고 60대 분들도 종종 있다. 애들 다 커서 집안일 할 게 별로 없을 때, 하지만 사회에선 이미 정년을 지난 나이라 다른 일하기는 힘든 때, 활동 보조 일을 하면서 새로운 삶의 보람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생계가 급급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 다른 거 생각할 여유가 없다. 매달 월세 내기 바쁘다. 하지만 전에 내가 아침에 활보했던 S한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 요즘 카드가 문제인가봐. 어제 신문에 보니까 어떤 남자가 카드 빚에 몰려서 아내, 아이들과 함께 자살을 했대. 밥 떠먹여 주면서 내가 이 얘기를 하니까 S가 펄쩍 뛰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죽으려면 지나 죽지, 애들까지 왜 죽여! 돈 없으면 하다못해 활보짓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살아야지, 죽기는 왜 죽어!” 헐! 지금 자기한테 밥 떠먹여 주는 활보한테 ‘활보짓’이라고 말하는 장애인이라니… 흥분해서 S 입안의 밥알들이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오늘 아침 주방에서 만난 60대의 활보 분은 자기가 활보하고 있는 장애인 친구가 자기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이 속상하다고 한다. 아줌마가 뭐야, 아줌마가! 난 엄연히 프로인데! 하긴, 그렇다. 나이 든 간호사를 우리는 ‘아줌마’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활보한테는 아줌마라고 하지? 일의 성격보다 나이의 위계가 더 크게 작용하는 관계라는 게 문제이긴 하다. 그 분은 나이를 떠나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건데, 일하러 와서도 집에서와 똑같이 불리니 자기가 하는 일이 무시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원래는 활보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된단다. 활보 선생님. 아이구 그건 더 이상해. 뭐…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활보짓이라도 해서 열심히 살면 그만이지!
화장실 다녀오고, 샤워를 하고 나니 개운 상쾌해졌다. H는 이제 아침 밥을 먹으러 식탁 앞에 앉았다. 냉장고에서 열무김치, 깻잎 양념장에 절인 것을 꺼낸다. 오징어채 고추장에 볶은 것도. 아침에는 따로 요리를 하지 않고, 있는 반찬 꺼내서 간단하게 먹지만, 그래도 한 가지 정도는 따뜻한 반찬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계란말이를 하기로 한다. 당근이 있으면 좋은데 파밖에 없네? 파를 잘게 다져 계란에다 넣고 휘젓는다. 후라이팬에 넓게 붓는다. 불을 약하게 해서 천천히 타지 않게 익히면서 롤을 만다. 그리고 도마에 놓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
H의 팔에는 커다랗게 꿰맨 자국이 있다. 거의 팔뚝 안쪽 전체가 꿰맨 자국이다. 이거 왜 이래? 장난삼아 남의 상처 들쑤시는 악취미 같아 이렇게 묻는 게 조심스럽지만 난 궁금한 걸 못 참는 성미이다. H는 다정하게 설명해 준다. 어 그거 기차에 치여서 수술한 자국이야. 7살 때 H는 집에서 버려졌다고 한다. 집이 너무 가난한데 애들은 많고 해서 할머니가 H를 길거리에 그냥 버렸다고 한다. H가 혼자 길을 헤매던 중 기찻길을 건너다 기차에 치였다는 것. 안 죽은 게 기적이다. H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어떤 미국인 부부가 돈을 대줘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간신히 살아났지만 손발을 전혀 쓸 수가 없는 사지마비의 몸이 되었다. 수술 받고, 어느 정도 치료를 받다가 H는 병원에서 퇴원해서 바로 장애인 보호 시설에 보내졌다. 그곳에서 수십 년 살다가… H는 작년에 자립하겠다고 시설에서 나왔다.
한 마디로, 파란만장한 삶이라고 하겠다. H가 살아온 구구절절한 사연을 아침 활보 잠깐 와서 내가 어찌 다 들을 수 있으랴. 다만 나는, 그 험난한 세상살이의 고비를 넘어 지금 나와 함께 앉아 있는 H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H가 여기까지 온 것은 세상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일 텐데, 내가 아침 활보를 함으로써 그 일의 일부에 잠깐이라도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영광스럽게 생각되는 것이다.
현재 H는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 수급비로 생활을 하고 있다. 자립을 하려면 우선 살 집이 있어야 한다. 주거비 마련을 위해 H는 주택청약 저축을 넣고 수급비 받는 거에서 매달 반 이상을 저축하고 있다. 그래도 당분간은 혼자 힘으로 의식주 생활 해결하는 게 쉽지 않아 지금은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동주택에서 생활하면서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적 자립 못지 않게 정신적 자립이 중요하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 내 힘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H는 시설에서 사는 동안 공부를 못 했다. 그래서 요즘 야학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며칠 후 검정고시 시험이 있어 H는 요즘 열공 중이라고 한다.
시험 잘 치라고 H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나는 체험홈을 나왔다. 그런데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귀가할 때쯤 되니까 이상하게 턱이 얼얼하다. 왜 이렇지?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누룽지를 씹고 다녀서이다. H가 똥 누는 사이, 시간이 남아서 뭘 할까 주방을 둘러보다가 냉장고에 식은 밥 남은 거 한 그릇이 랩에 씌워져 있길래 그걸 후라이팬에 눌려서 누룽지를 만들었다. 묵은 밥을 후라이팬에 얇게 펴서 약한 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우면 고소한 누룽지가 된다. 이걸 간식으로 바수어 먹어도 좋고, 물 붓고 끓여서 숭늉을 만들어 먹어도 된다. 그런데 H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만든 거라 뭐라 그러면 어쩌지? 걱정을 했는데… H도 누룽지를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한다. 더구나 오늘 아침은 자기 생일인데, 생일인 거 어떻게 알고 이렇게 훌륭한 요리를 준비했냐고 감탄을 한다.
뜻하게 않게 나는 H에게 생일 선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생일 선물이 누룽지라니… 이건 뭔가 좀 이상하다 싶지만… 누룽지가 정말 고소하다. H 입에 한 개 넣어주고 나도 한 개 먹고 둘이 와드득 와드득 누룽지를 씹어 먹는 생일날 아침. 활보 끝나고 갈 때 H는 나보고 집에 가서 먹으라고 누룽지를 좀 싸가라고 한다. 그래서 누룽지를 한 주먹 싸가지고 하루종일 들고 다니면서 씹어 먹었더니…
활보 마치고, 저무는 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턱이 얼얼한 내 입에서 이상한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왔다.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
_ 정경미(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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