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B에 스며들기
오늘은 UAB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바르셀로나보다는 UAB에 정을 붙여왔다. 사실 그간 바르셀로나는 몇 번 나가보지도 않았다. UAB는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기차로 40분 떨어져 있다. 기차역까지 오고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한 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일산에서 서울 시내까지 경의선 열차를 타고 가는 것과 비슷하다.) 거기까지 왔다 갔다 할 시간 없다. 지금 나의 관심은 세계도시 바르셀로나보다도 UAB가 위치해 있는 교외의 작은 마을 베야떼라에 집중되어 있다. 나는 아직도 종종 캠퍼스를 걸어 다니다가 내가 UAB 학생이라는 사실에 반신반의 한다. 학생증을 꺼내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나 공공 병원에 갈 때도 그렇다. 정말 내가 이 학교의 학생이란 말인가?
UAB와의 질긴 인연
솔직히 말해서 나는 UAB가 나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UAB 의과대학은 매년 세 명의 외국 편입생을 받아들이는데, 작년 합격자들은 전부 나보다 스펙과 조건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곳은 등록금이 저렴한 공립학교였고, 스페인 의대 지망생들도 선호하는 훌륭한 교육 기관이었다. 내가 지원하게 될 학교 중에서도 허들이 제일 높았다.
나는 내가 UAB에 합격하지 못할 확률이 80% 라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굳이 이곳에 원서를 넣은 이유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학교에 호감을 품게 된 계기도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이곳은 다른 대학들보다 편입생을 일찍 뽑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합격 기준은 학교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밝혀져 있었고, 절차 역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입학처에 이메일로 질문을 하면 대답이 2~3일 만에 돌아왔다. (한국인의 눈에는 이게 당연한 일처럼 보이겠지만 스페인 대학들은 답변을 1~2주, 심지어 한 달 뒤에 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학교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결과 발표를 기다리면서 내 마음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커리큘럼과 교수들의 연구, 병원의 명망 등을 훑어보았을 때 UAB에서 하게 될 공부는 확실히 재미있어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이 아닌 다른 학교가 날 합격시켜줬으면 하는 소망도 간절했다. 사실 UAB는 유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지리적 특성 때문에 스페인어 외에도 까딸란어를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UAB 뿐만이 아니었다. 외국인 편입생을 받아주는 의과대학들은 주로 까딸루냐 지역에 몰려 있었다. 까딸루냐의 열린 마음과 국제지향성에는 허리 굽혀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까딸란어만 생각하면 굽힌 자세 그대로 체할 것 같았다. 스페인어를 사 년을 배워놓고 정작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를 못 쓴다고? 그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는 외국어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정말이다. 그러니 제발 그런 일만은 피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나와 UAB의 깊은 인연(?)을 미리 고지하려고 했던 것일까. 편입 과정에 잊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3월 초, 나는 서류를 준비해서 UAB에 우편으로 부쳤다. 학교가 코로나시국에도 입학 서류는 반드시 오프라인으로만 받겠다고 고지한 까닭이었다. 접수 마감일은 4월 6일이었으니 시간은 넉넉했다. 아니, 넉넉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관세로 악명 높은 스페인 우체국 시스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다. 물론 서류는 관세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바나의과대학의 커리큘럼을 자세히 증명하겠답시고 증빙자료를 700페이지나 뽑아서 박스에 넣어 보냈다. 스페인에 도착한 박스는 서류가 아닌 물품으로 분류되었고, UAB 의대 입학처는 박스를 받고 싶다면 세금을 내야한다는 우체국의 연락을 받았다. 당연히 UAB는 세금을 안 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나는 식겁해서 스페인 우체국과 통화를 했다. 국제 전화 비용만 천정부지로 올라갔을 뿐,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똑같은 서류를 다시 준비해서 (이번에는 700페이지의 증빙서류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DHL 특급배송으로 부쳤다. 하필이면 부활절 휴가가 끼어서 심장이 더 쫄렸지만, 서류는 원서 접수일 마지막 날 목적지에 무사히 골인했다. 서류를 제대로 받았다는 UAB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 어찌나 손이 떨리던지….
이 난리통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생각했다. 앞으로 지원할 학교가 많이 남아 있는데 꼭 UAB에 서류 접수를 해야 할까?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어차피 이 학교에 합격하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하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반드시 이 학교에 합격하고 싶다는 염원보다는, 앞으로 줄줄이 남아 있는 다른 편입 지원에 재수 없는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오기로 서류 접수를 마쳤다. 서류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 입학한 것도 아닌데 UAB와의 할 일이 다 끝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내가 지원한 학교 중에서 오직 UAB만이 나를 합격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올해 지망한 편입생들은 작년보다 성적이 낮았고 나는 운 좋게 합격자 명단에 들어갔다. 역시 모든 일의 최종 심급은 운이다.) ㅋㅋㅋ. 그래, 이 정도면 운명이다. 운명의 장난이다!
확장된 공부의 세계
실제로 UAB에서 공부를 하게 되니 어떤 기분이냐고? 지금까지 수업을 들으면서 크게 두 가지 느낌을 받았다. 확장된 공부와 축소된 관계다. 물론 이 느낌은 주관적인 것으로, 쿠바에서 경험한 의학 공부와의 비교 속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 의대나 미국 의대와 비교한다면 UAB의 세팅이 또 다르게 보일테다.
우선 첫 번째 지점을 살펴보자. 현재 나는 1~2학년 과정에서 학점을 인정받지 못한 수업을 듣고 있다. 이곳에서도 쿠바와 다를 바 없이 1~2학년은 이론 수업에 치중한다. 헌데 나는 이론 수업의 지평이 이렇게 넓을 수 있다는 것을 UAB에 와서야 처음 알았다. 이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랄까? 없는 살림으로 의사를 키워내야 하는 쿠바에서는 실용주의에 방점을 두고 의대 커리큘럼을 짠다. 이론은 철저하게 실습을 위한 디딤돌로 여겨진다. 반면 UAB는 이론이 실습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실습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의학사, 과학과 문화의 접점, 문서로서의 의학, 의료윤리, 바이오물리학까지, 이것들은 이론으로서의 의학이 지성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드러낸다.
내가 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수업은 의학 교양(Introducción a la Ciencia de Salud, 직역하면 ‘건강 과학 입문’이다)과 바이오물리학이다. 둘 다 쿠바에서는 배운 적이 없다. 그리고 교수님들의 스태미나도 이 두 과목이 제일 짱짱하다. 우선 의학 교양은 교수들의 개성이 한 명 한 명 뚜렷하다. 이들은 의과대학은 아니고 과학사학과에 소속되어 있다. 의학사 파트를 맡은 호르헤는 배가 나온 귀여운 할아버지인데, 조곤조곤한 말투로 고대 이집트 의학부터 중국의 음양오행론과 주역까지 종횡무진 우리를 여행시키고 있다. 특히 주역 점에 대해서 “점의 결과에 매달리는 미신이 아니라, 당사자로 하여금 본인의 상황을 재해석을 하게 만드는 깊이 있는 심리분석법”이라고 평한 지점이 인상 깊었다. (젊은 시절 자신이 주역 점을 처음 쳤던 경험을 들려주었는데, 아리송송한 점괘에 당황했다가 그 점괘가 자신의 상황에 쏙쏙 들어맞는 것을 깨닫고는 더욱 당황했다고 한다.)
연구방법론과 과학문화 파트를 맡고 있는 콜롬비아 출신 까를로스는 카리스마 있는 교수다. 하지만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데다가 자기 자신에게 심취하는 경향이 있어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깎아먹고 있다. 그래도 강의의 흡인력은 대단하다. 그의 강의만 듣고 있으면 과학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공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에바는 의사와 환자의 인간관계에 대해 강의하는 교수다. 툭 건드리면 눈물이 나올 것처럼 마음 여린 사람이지만, 고통에 대하여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면서 학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의 수업이라면 매 학기 반복해서 들을 수 있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바이오물리학 교수들은 개인의 개성은 잘 드러나지 않는 대신 천재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파워포인트에 공식 한 줄 딸랑 띄워놓고는 그 의미에 대해서 물 흐르듯 설명한다. 한 교수만 그런 게 아니라 수업에 들어오는 모든 교수들이 그렇다. 사실 처음 강의를 들을 때는 이 괴상한 수학 공식이 신체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당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의가 진행될수록 이 두 영역이 기가 막히게 연결되었다! 어째서 젊은이들은 귀가 상할 수 있는데도 음악을 크게 듣는 일을 좋아하는지(음파의 물리적 성질과 음파를 해석하는 메커니즘의 차이 때문), 왜 나이가 먹으면 높은 음부터 가는귀가 먹는지(달팽이관의 신경세포가 더 빨리 진동하다가 상하기 때문), 왜 발은 작은 면적으로도 몸무게를 다 감당할 수 있는지(지렛대의 원리 때문), 기타 등등…
이토록 재미있는 수업에서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수학 공부를 너무 오랫동안 손에서 놓았던 것이다. 친구들은 세미나 시간마다 삼각함수와 벡터를 이용하여 힘의 분산을 구하는 문제나 로그함수를 활용해서 음파를 데시벨로 전환하는 문제를 풀고 있는데, 나는 그들 옆에서 인터넷으로 ‘로그’의 정의를 검색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로그를 배우기 전에 내가 먼저 고등학교를 떠났다.) 결국 나는 주말마다 유튜브로 일타강사들의 강의를 구독하며 수학공부를 시작했다. 사촌언니는 “예체능이었던 나도 삼각함수는 배웠는데, 삼각함수도 배우지 않은 네가 의대에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고 코멘트를 남겼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내가 정규 교육과정을 떠난 십 년 동안 유튜브가 대성했으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ㅠㅠ)
축소된 관계와 이중 언어의 긴장감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공부의 영역은 확장되었으나, 공부를 함께 하는 관계는 축소되었다. 적어도 쿠바와 비교했을 때 그렇게 느낀다.
우선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쿠바만큼 긴밀하지 않다. 쿠바에서는 웬만해서는 한 학기 동안 교수가 바뀌는 일이 없었다. 거기에 친근함을 빼면 시체인 쿠바인들의 사교성까지 더해지면서 교수와 학생들의 유대관계는 늘 두텁게 유지되었다. 또, 내가 의대에 들어갔던 2018년에는 인터넷도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의 원천은 책 혹은 사람(교수) 뿐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교수를 보면 교실 밖이더라도 어디서든 질문을 했고, 교수 역시 언제든지 질문에 답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땡볕 아래 버스정류장, 오지 않는 구아구아 버스를 기다리면서, 교수와 학생이 공부에 대해 대화하기가 부지기수였다. (쿠바에서는 차 없는 교수들도 많았기 때문에 학생들처럼 버스를 타야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UAB는 교수가 수시로 바뀐다. 강의에 들어오는 교수, 세미나에서 만나는 교수, 실험실에서 만나는 교수가 전부 다 다르다. 교수들은 학생의 이름을 모르고, 학생들은 교수와 굳이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학생들 사이의 관계는 어떨까? 청년들이야 한 곳에 모아놓으면 금세 어울리면서 친구가 된다. 그렇지만 쿠바처럼 함께 모여서 으쌰으쌰 공부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개인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마디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게다가 까딸루냐 출신과 외부 출신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상당하다. 까딸루냐는 까딸란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 언어 지역이고, UAB는 이 특성을 그대로 살려서 모든 사람들에게 둘 중 원하는 언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자유’라는 말은 실제 갈등을 보이지 않게 덮어버리는 솥뚜껑 같다. 까딸루냐 출신 친구들은 자신의 모국어는 까딸란어이며, 스페인어는 서부의 억압자들이 자신들에게 강제로 부과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프랑코 군사독재 시절에는 까딸란어를 말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대학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까딸란어를 쓰면 처벌을 받았다. (마치 일제강점기 때 한국어를 없애고 일본어를 전파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 아직도 이 기억을 생생히 간직한 까딸루냐 사람들은 언어 문제만 불거지면 부르르 떤다. 왜 비 까딸루냐 출신들은 까딸란어를 배우기 싫어하는가! 우리가 스페인어를 하는 것처럼 당신들도 까딸란어를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반면 비 까딸루냐 출신 학생들의 불만도 굉장하다. 아직 1학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까딸란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어떤 까딸루냐 학생들은 외부 출신 학생들의 까딸란어가 서툴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룹 활동을 할 때 일부러 까딸란어를 고집한다. 나도 몇 번 이런 경험을 했는데, 그들의 의도야 이해할 수 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교수들 역시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스페인어와 까딸란어로 진행되는 수업이 5:5여야 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뜨겁게 불이 붙은 독립운동의 영향 때문에 까딸란어로 진행되는 수업의 비중이 월등히 늘어나고 있다. 최근 까딸루냐 주정부는 공립학교에서 까딸란어 수업의 비율을 80%까지 끌어올리는 정책을 고려하는 중이다. 지난 9월에는 정부의 간섭에 반대하는 UAB 학생들이 학교 중앙광장에서 성명을 했다가, 까딸란어 확장을 지지하는 또 다른 학생 그룹과 충돌하면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아사리 난장판이다.
스페인어도 못하고 까딸란어는 더더욱 못하는 나는 이 사이에 껴서 눈치만 보고 있다. 아, 정말 피곤한 일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비 까딸루냐 출신 학생들의 입장에 크게 공감했다. 의대 수업 따라가기도 벅찬데, 1학년부터 까딸란어 실력까지 요구하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다. 까딸란어는 까딸루냐 주와 남프랑스 일부 지역에서만 쓰이는 소수 언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널리 쓰이는 스페인어와 비교했을 때 국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열심히 배워도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순간 쓸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니, 사실 이것도 다 핑계이고, 수업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는 게 솔직한 이유다. 매일 수업시간마다 익숙하지 않은 말소리 속에서 어떻게든 의미를 끌어내려고 애쓰다가 지친 채 집에 돌아오곤 했다. 어느 순간에는 자신감을 잃으면서 내가 과연 이 학교를 제대로 졸업할 수나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되었다. 만약 때마침 세비야 의대에서 나를 합격시켜줬다면 정말로 재편입을 고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다. 나의 마음은 분노의 5단계(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를 빠르게 밟았고,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이 까딸란어를 공부하는 중이다. 공부를 하니 확실히 상황이 좋아지기는 했다. 지난달만해도 까딸란어로 진행되는 수업의 이해도가 20% 남짓이었는데, 지금은 40~50%까지 늘어났다. 이렇게 마음을 비우는 데는 제프리의 촌철살인 한 마디가 큰 도움의 되었다. “UAB, 까딸루냐 주 세금으로 운영되잖아. 너는 세금 한 푼 안 내는 사람인데. 그럼 결국 까딸루냐 사람들이 너를 공부시켜주는 것 아니야?” 도저히 반박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까딸루냐가 대단한 힘을 지닌 지역인 것은 맞았다. 스페인 최고의 연구기관과 교육기관 모두가 여기 동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까딸루냐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성을 무기 삼아서, 죽어가는 까딸란어를 외부 사람들 사이에 다시 전파하고 있다. 저렴한 학비와 양질의 교육, 열린 마음을 외부인들에게 선물하면서, 그 대신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라고 제안하고 있다.
그래, 그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까딸란어에 녹아있다면, 나 역시 까딸란어를 배우겠다. 잘 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다. 이제 나는 공부의 기준을 ‘열심히 잘 하는 것’에서 ‘그냥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바꿨다.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사히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간승리이다. 빡센 뉴욕과 기상천외 쿠바를 거친 후, 바르셀로나가 너무 밍숭맹숭(!)하게 느껴질까봐 인생이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는 까딸루냐와 비-까딸루냐 양쪽 진영에서 모두 나를 도와주는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친구들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하겠다.
글_김 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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