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북드라망리뷰대회 당선작] 부딪힘을 사랑하라

『낭송 서유기』

부딪힘을 사랑하라


- 3등 이기헌


올해 내 사주에 공부운이 들어온다고 하더니 정말 운명처럼 공동체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모여서 놀고 먹고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로 재미를 느끼는 날이 오다니 나를 잘 아는 남편도 놀라는 눈치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공부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큰 즐거움이 되었다. 글쓰기로 혼자 고뇌하며 머리털 쥐어뜯다가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되던 쓰기가 조금씩 방향이 잡히기도 한다. 혼자서는 못할 일이기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공부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주로 온라인 세미나로 만나는데 딱 하루, 화요일은 친구들과 실물로 상봉하는 날이다. 이날은 친구들 만날 생각에 새벽부터 분주하고 설렌다. 일주일이 화요일을 중심으로 돌아갈 만큼 내게 중요한 날이 되었다. 이렇게 친구들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은 좋은 거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마음속에 ‘우정, 사랑, 행복’ 이런 따뜻한 감정들만 몽실몽실하게 샘솟으니 내게 ‘함께’는 더없이 즐거운 동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낭송 서유기』를 읽으며 전혀 다른 성격의 삼장 일행을 보니 철천지원수처럼 격하게 싸우면서도 함께 가는 것이 이상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정도면 갈라서도 진작 갈라섰어야 되는데 말이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그 기간을 함께 걸을 수 있었을까? 


서유기가 중국 4대 소설로 오랜 기간 읽혀 왔다는 것은 서로가 많이 다르지만 함께하는 이 모델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지점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들이 16년간 걸으며 산전수전 공중전으로 81가지 고난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이 팀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손오공은 사부님께 좀 혼났기로 인정머리 없다며 대들지를 않나, 저팔계에게 여의봉으로 스무 방이나 때린다고 협박을 하지를 않나 거기에 저팔계는 더 고약하다. 손오공이 좀 얄밉다고 사부님께 이간질하여 긴고경으로 머리 옥죄어 머리가 터지도록 만들어 주겠다며 악담을 한다. 이들의 ‘함께’가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은 계약관계도 아니고 언제든지 의절할 수 있을 텐데 끊임없이 부딪히며 끝까지 같이 갔기 때문이다. 타인과 함께하는 일은 웃는 날만 있을 수 없고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도망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닌가 보다. 나는 이 이상한 여행단이 가는 길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낭송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많이 다르고 원초적인 인간 군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손오공, 능력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 저팔계, 어리석음으로 갈피 잃은 사오정, 그리고 이들의 사부인 삼장법사가 이 여행단의 멤버다. 이들은 깨달음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먼 나라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간다. 삼장 일행의 여행을 따라가며 이들의 갈등과 고난을 살펴보고 왜 이들이 같이 가야 했는지, 그 길 끝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오랜 고전 <서유기>가 낭송으로 읽혀져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려고 한다. 


뭉치고 깨지고

이 여행은 당나라 태종의 명을 받은 삼장법사가 인도로 불경을 가지러 떠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손오공은 천궁의 질서를 어지럽힌 죄로 500년 동안 화과산에 갇혀있다가 삼장을 따라 첫 번째 제자가 된다. 저팔계는 못생긴 요괴로 처가에 돈과 노동을 제공하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데릴사위인데 손오공에게 잡혀 삼장을 만나고 동행하기로 한다. 삼장이 저팔계라는 별명을 지어주자 희희낙락 기분이 좋다. 이때는 손오공의 구박에도 감히 형님에게 하극상을 보이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사오정이 합류하게 되는데 그는 관음보살의 교화를 받았던터라 기꺼이 삼장의 제자가 되기로 한다. 이렇게 여행단이 결성되어 함께 떠난다.


다양한 요괴들이 총출동하여 이들이 가는 길을 방해한다. 삼장법사는 평소 남을 잘 믿고 온화한 성격이다. 어느 날 아름다운 미녀와 마주치게 되는데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든 광주리를 들고 있다. 삼장은 작은 의심도 없이 미녀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삼장법사는 욕망을 자극하는 미녀 앞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손오공이 그 미녀는 요괴라고 알려주지만 믿지 않는다. 화가 난 손오공이 사부님께 불경 구하러 가는 것은 여기서 끝내고 미녀와 결혼해서 정주며 살라고 거침없이 비아냥거린다. 삼장법사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머리까지 벌개진다. 손오공이 계속 성깔을 부리며 여의봉으로 미녀의 얼굴을 가격하니 요괴의 정신이 육체에 빠져서 도망간다. 삼장법사는 손오공에게 무고한 인명을 해쳤다며 나무란다. 여기에 저팔계는 한 술 더 떠서 불난 집에 선풍기를 돌린다. 얄미운 손오공에게 화가 나있던 차에 이때다 싶어 사부님에게 이간질을 한 것이다. 삼장법사는 긴고주를 외워 손오공을 제압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이 팀은 해체 위기를 맞게 된다. 손오공이 평소 사부님의 끼니와 잠자리를 잘 챙기고 그를 보호하려 마음을 다한다. 그럼에도 알아주지 않는 사부님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손오공은 사부님께 내쳐져 화과산으로 돌아간다. 호시탐탐 이들을 노리는 요괴들에게 삼장법사와 사오정이 잡혀간다. 이들의 위기가 요괴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다. 손오공은 억울함과 분노를 참지 못했고 저팔계는 미움과 질투를 참지 못하였다. 요괴는 언제 어디서나 출몰하는데 마음을 바로 잡지 않으면 관계는 깨지게 된다. 사부님께 쫓겨나 화과산에서 지내던 손오공이 삼장을 구하러 간다. 그런데 그 마음 또한 분노에서 시작되었다. 저팔계가 전하길 요괴가 형님욕을 하니 가서 혼내주라며 손오공을 자극했던 것이다. 내내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던 손오공이지만 반복되는 이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를 보인다. 도둑들을 죽였다고 혼내시는 사부님을 보면서 서운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예전과는 달라보인다. 화나면 근두운타고 날아가버리더니 이제는 불편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조용히 길을 간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욕망, 분노, 어리석음을 품고 있다. 자칫 다른 것에 휘둘리면 이 세 가지 독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내 마음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삼장 일행이 특별해서 함께 걷는 게 아니라 이들의 모습이 어디서나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누군가와 함께 걷느냐가 아니라 이런 마음들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힘이 센 사람, 잘생긴 사람, 공부를 잘하는 사람 등등 내가 어떤 사람이랑 갈 것이냐보다 친구들과 내 마음을 어떻게 내면서 살아가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하고 변화하며

삼장 일행이 인도 경계지역에 도달할 즈음 있던 일이다. 손오공은 봉선군이라는 마을에 삼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들이 힘들어하자 옥황상제를 찾아간다. 예전 같으면 사고를 치고 책임도 안지고 도망갔던 손오공이었다. 자기 갈 길만 생각했떤 손오공이 백성들의 걱정하여 멀리 서천문 밖으로 향한 것이다. 아쉽게도 가뭄 해결방법이 쉽지 않자 손오공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졌다. 천방지축 날뛰던 손오공이 이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 그의 마음을 알아본 사대천사들이 미소지으며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손오공이 백성들에게만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다. 만날 치고 박고 싸우던 저팔계에게도 태도가 달라졌다.


요괴와 싸우러 나간 저팔계가 돌아오지 않자 손오공은 팔계의 동태를 살피러 나선다. 공중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팔계가 요괴들에게 둘러 싸여서 대적하고 있다. 손오공은 냅다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등장을 알리는데 지쳐있던 저팔계는 힘이 솟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놈 요괴야, 너는 나를 당해낼 수 없어. 내 편이 왔거든!” 하며 인정사정없이 마구 공격한다. 결국 요괴는 도망간다. 이때 손오공이 한 일은 소리 한 번 내지른게 전부다. 싸움의 승리를 오롯이 팔계의 것으로 만들어주려고 구름을 돌려 본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예전 같았다면 저팔계의 공적 앞에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신 싸워주고 공을 가져갔을 텐데 말이다. 여전히 투닥거리기는 하지만 저팔계를 이해하고 그의 공적 쌓는 일을 돕는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손오공은 함께 걷는 길위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다른 제자들의 변화도 살펴보자. 소머리 요괴들에게 삼장법사가 잡혀 갔을때의 일이다. 손오공이 사부님을 구하러 갔다가 요괴들이 끝도 없이 공격해오자 근우둔을 타고 아우들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갔다. 저녁을 조금 먹은 손오공은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다시 싸우러 가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사오정이 “형님은 무슨 소리를 하시오! 이런 말이 있잖소, ‘멈추고 머무는 것에도 지혜를 써야 한다’고. 요괴 놈들이 오늘 밤에 잠자지 않고 사부님을 해친다면 어떻게 하실 거요? 지체해서 일이 잘못될까 두렵소.”라고 말한다. 아! 사오정이 누구란 말인가? 무지몽매하고 형님들 말에 토 달지 않던 막내 아니었던가! 그런 사오정의 입에서 지혜를 논하고 지금 당장 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변별하는 힘이 생겼다. 저팔계도 아우의 말에 동조하며 가슴 쫙 펴고 달빛이 좋으니 함께 요괴 잡으러 가자고 큰소리친다. 삼장 일행이 제멋대로 마음대로 살았을 때 요괴는 이들의 분란을 더욱 조장했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니 요괴는 오히려 이들을 단합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삼장 일행은 함께 걸으며 서로를 이해해간다. 이들을 보니 ‘함께’의 과정은 아프고 힘들고 괴롭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 되었다. 


의지하며 함께 걷기 

삼장 일행이 왜 함께 가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삼장법사가 경전을 구하러 가는 길에 혼자였더라면 어땠을까? 말 안듣고 기어오르는 제자들이 없어 평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장 스스로 끼니와 잠자리를 마련해야 하고 수많은 요괴와 싸울만한 능력은 없다. 손오공은 어땠을까? 손오공이라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사부님과 밥 먹듯이 하극상을 자행하는 저팔계 없이 혼자 가면 세상 편하지 않을까? 근두운을 타고 하루도 안걸려 인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전을 얻기 위해서는 삼장법사의 느린 걸음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이들이 겪은 16년간의 81가지 고난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난 모든 경험은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장 일행 모두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감사해할 필요 없어요. 피차간에 서로 부축하며 왔으니까. 사부님은 해탈하시고 저희들은 불문을 통해 수행을 하여 다행히 정과를 이루었답니다. 사부님도 저희들의 보호를 받으셨지만 깨달으시어 범인(凡人)의 태를 기쁘게도 벗으셨습니다. 사부님, 앞쪽의 화초, 난새와 봉황, 학과 기린이 어우러진 광경이 보이십니까. 요괴들이 변신술을 부리던 곳과 비교하여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쁩니까. 어디가 선하고 어디가 나쁩니까.”(『낭송 서유기』, 오승은 지음, 최정옥 풀어 읽음, 북드라망, 216쪽)

 

제자들은 강물에 떠내려가는 스승의 껍데기를 보고 기뻐한다. 삼장법사가 해탈의 경지에 이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손오공의 말이 차가운 듯 따뜻한 듯 요상하게 들린다. 피차 서로 의지하며 왔기 때문에 감사할 필요가 없단다. 내가 쓰기 공부할 때 내 눈에 보이지 않던 비문과 오자를 잡아주는 것은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상하게도 내 눈에 절대 안보이는 것들이 다른 친구의 눈에는 잘 포착된다. 공부 경력이 짧아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음을 알지만 친구들의 글에 도움이 되고자 좀 더 집중해서 보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툭하고 튀어나온다. 삼장 일행처럼 부축하듯이 서로의 글을 쓰고 봐주고 하지만 결국은 내가 그 코멘트들을 정리하고 계속 다듬고 다음어 가야한다. 자기 구도는 자기가 해야하는 것이고 내 글은 누구의 도움을 받지만 결국은 혼자서 완성해 나가야 한다.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의미로 해석하면 좀 차갑기도 하지만 너가 없으면 내가 살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면으로 따뜻함이다. 내가 공부하는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내가 나눌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서로 의지하며 걸어간 이 여행단의 끝은 경전을 구하는 것이었다. 석가여래로부터 경전을 받았지만 무자경전으로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 이것은 그들이 16년간 걸으며 겪은 모든 과정 전체가 깨달음이라는 의미이다. 몸소 경험해야하는 이 과정에서 타인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 그들의 깨달음의 길 끝에서 각자 욕망에 맞는 직함을 부여받으며 레벨업한다. 삼장은 전단공덕불(?檀功德佛)로 모두의 존경받는 부처가 되고, 손오공은 투전승불(鬪戰勝佛)로 정의를 관할하는 부처가 되었다. 저팔계는 정단사자(淨壇使者)로 뇌음사의 음식을 관리하게 되었고 사오정은 금신나한(金身羅漢)으로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도록 돕는 자리에 임명되었다. 수많은 부딪힘의 과정속에서 점차 변화하며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고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몸소 낭송하며 

『낭송 서유기』에서 말하는 낭송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왜 낭송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서유기를 낭송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전달 받고자 유튜브에서 찾아 보았다. 마침 영상이 있어서 들어보았는데 생각보다 아무 감흥이 없어서 난감했다. 그런데 낭송이 무엇인가? 소리내어 읽거나 외우거나 해야하는데 나는 듣고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니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래하듯이 낭송해보았다. 나는 이 책을 리뷰하기 위해 묵독으로 여러 번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묵독할 때 느낄 수 없었던 묘함을 느끼게 되었다. 삼장 법사가 찌질하다고, 손오공이 분노 조절할 줄 모르며 나댄다고 흉보았는데 낭송하며 그들에게 빙의된 것 같았다. 이 경험은 책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음미하는 기분을 주었다. 타인과 『낭송 서유기』를 같이 할 수 있다면 이 여행단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얻은 깨달음을 몸으로 깊게 체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길을 여는 일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가 내 마음에서 늘 작동됐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해도 창피하고 말한마디 꺼내는데 땀이 삐질삐질 나기 일쑤였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지금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로 집중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내 말 한마디가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내뱉게 된다. 내가 함께하고 좋아하는 그 사람을 위해 창피한 그 마음은 떨쳐버리고 내 생각을 나눈다. 선생님께서 ‘공부한다 그리고 남준다’라고 말씀하신적이 있다. 처음에는 베풂이나 봉사나 희생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내어주라는 뜻이리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실천해보니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공부해서 남에게 나누는 과정 또한 내 공부가 된다. 결국 남주는 것은 나의 길을 내는 일이었다. 그러니 나의 길을 내기 위해서 친구가 꼭 필요하다. 친구에게도 내가 필요하다.

 


이번에 이 글을 쓰며 ‘함께하며 생겨나는 부딪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만 나누고 싶지 귀찮고 힘든 일은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벽을 치고 누군가 침범하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그런 나였기 때문에 아마 삼장 일행의 이상한 ‘함께’가 마음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공부하고 있는 공동체에서 다가올 부딪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 갈등이 오면 어떻게하지? 그런데 삼장 일행의 길을 따라가다 보니 그런 우려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었다. 그들이 수많은 부딪힘이 아니었더라면 끝까지 함께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나 역시 친구들과 공부하며 언젠가 있을지 모를 부딪힘을 두려워하거나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런 마주침은 살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이때 내 마음이 욕심, 분노, 어리석음에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계속 열어가다 보면 요괴를 만날지언정 ‘든든한 함께’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수많은 부딪힘을 두려워말고 사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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