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이상한 정상가족』 - '합리적 체벌'이란 없다

『이상한 정상가족』 

-  '합리적 체벌'이란 없다



‘체벌’, 교육이라는 이름의 가정 폭력


『이상한 정상가족』은 한국 사회, 한국 가족에 관한 책이다. 그 중에서 ‘체벌’문제가  핵심 키워드다. 부모가 자식을 ‘교육’ 목적으로 때리는 행위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마 대개의 한국인이라면 최소한 절반 이상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부모님께 체벌을 당했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그 매질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까지 답할 것이다. 책을 읽은 다음에 바뀐 것은 아니지만, 나도 그랬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기 전까지는 딱 위와 같이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저 말이 모조리 다 허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체벌’이 아니라 ‘폭행’이라고 말이다. 최소한 ‘매질’이라고 불러야 옳다.




우리는 어째서 폭행, 최소한 매질을 ‘체벌’ 또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불러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일까?


“가족의 형태가 급변하는 현실과 달리 사람들의 의식과 제도에는 여전히 가족주의와 그것의 강력한 작동방식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말한다.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 간주하며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프롤로그, 동아시아, 10쪽


문제는 ‘가족’이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들 그렇겠지만, 개인으로서 ‘나’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언제나 어느 회사의 누구, 어느 집안의 누구로만 호명되는 것이다. 이건 사실 우리가 아는 ‘근대’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근대사회란 무엇인가? 그것은 더는 나뉘어지는 않는 개체로서 ‘개인’이 사회의 토대가 되는 그런 사회가 아닌가? 그런데 이 사회에서는 사회의 최소 단위가 ‘가족’인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는다. 정부의 지원도 가구당 얼마, 소득 수준 계산도 가구당 얼마 이런 식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호주제’가 폐지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세대주’라는 게 있을 정도고, 습관적으로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도대체 이 사회 어디에 ‘개인’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개인’은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그건 그것대로 문제지만, 그 문제가 낳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렇게 사회가 ‘개인’은 사라지고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말한 것처럼 가족의 장(家長)도 있어야 하고, 그에 딸린 ‘구성원’도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로부터 하나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제’라는 질서가 말이다. 도대체 ‘체벌’이 이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면, 자식을 때릴 권한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자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때릴 수 있는 이유는 그 관계가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아니라 가장과 구성원의 관계 또는 가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자와 처벌받아야 하는 자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를 ‘개인’으로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조차도 그렇다.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는 이 개체를 어떻게 ‘개인’으로 바라볼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부모로서 나에게는 이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책임마저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개인’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근대사회의 개인주의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 중에 중요한 핵심에 ‘개인화 되지 못한 개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외국인 혐오나 성차별, 가부장제, 직장내 괴롭힘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정말로 개인을 개인으로 여긴다면 아예 일어나지 않을 문제들이 많다. 그런데 지금의 가족 질서는 바로 그 ‘개인’을 낳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체벌’이라도 해서 키워내야 하는 아이는 영원히 ‘나의 아이’일 뿐 언제까지고 ‘개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합리적 ‘체벌’의 불가능성


책을 읽는 동안 도대체 지금 부모들이 ‘체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좀 해 보았다. 놀랍게도 여전히 ‘네가 맞는 이유는 이러이러해서야,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널 사랑하기 때문에 때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서 가하는 체벌은 괜찮지 않느냐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가장 지지받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식이라도 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때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런데, ‘어느 정도의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마음에 들지 않는(혹은 자신이 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식의 행동을 체벌로 교정하려고 들 것이다. 여기에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체벌을 가해 본 적이 있는 그 어떤 부모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의식적인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필연적으로 감정적인 게 섞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으면 때리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사랑한다는 감정이라도 있게 마련이다. 그 감정이 때리는 행동을 통해 방출되면, 당연히 카타르시스도 함께 따라온다. 그건 아이의 행동을 교정했다는, 그래서 내가 교육적으로 훌륭한 부모가 되었다는 뿌듯함일수도 있고, 노골적으로 내 속상함이 풀린 데서 오는 쾌감일수도 있다. 내 생각에 그 두 극단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합리성이 차라리 이 국면에서 더 잘 발휘된다. ‘내가 든 것은 사랑의 매’, 나의 폭행은 ‘교육’이라는 식으로 이미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는 데서 말이다. 진짜 합리적인건 차라리 그 잣대를 나 스스로에게 적용해 보는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맞아야 하는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물어보면 ‘합리적 체벌’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정말로 차라리 욱해서 때리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합리적으로’ 때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보기에 그냥 모자란 사람, 부모가 되는 게 낫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게 하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가정 내 폭력의 사회진출


지난해 데이트 폭력으로 입건된 건 수가 9800명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가정 내 폭력이 사회에 진출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과거에 비하면 한국 사회가 ‘폭력’에 훨씬 민감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른바 선진국과 비교할 때는 한참 부족하다고 느낀다. 당장에 이 문제의 바탕에 ‘체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가족주의의 특징적 면모 중의 하나는 가족주의적 의식과 행위, 관계가 사회 영역으로 연장, 확대되어 사회적 관습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회사나 학교 모임 등 자신이 속한 내內 집단의 구성원들을 마치 가족 구성원처럼 대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 193쪽


정말로 그렇다. 나는 나 스스로가 그런 식의 ‘유사가족’ 형태의 충실한 신봉자였고, 그 과정 속에서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예 그런 형태의 ‘조직’생활 자체를 피하고 있다. 솔직히 다시는 안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구조 안에는 ‘가족주의’의 그늘이 아주 짙게 드리워져 있다. 흔히 말하는 ‘사수-부사수’의 관계나, ‘팀장-팀원’의 관계를 부모 자식의 관계, 형제 자매의 관계로 등치 시키는 건 한국인이라면 의식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아주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다. 왜 그럴까? ‘개인’이 약하기 때문이다. 신입은 제 몫을 다하는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 이끌어주어야 할 존재이며, 윽박질러서라도 조직의 ‘목표’를 향해 끌고가야 할 존재로 표상되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도식 아닌가? 자녀에게 매를 들 때, 그 ‘사랑의 매’가 가지고 있는 도식이 바로 이 도식과 똑같다. 


그 뿐이 아니다. ‘데이트 폭력’도 마찬가지다. 수년 동안 ‘합리적 이유’를 들으며 맞아온 아이가 ‘합리적 이유’이 있으면 나보다 약한 사람을 때려도 된다는 사실을 제 몸에 체득하는 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합리적 이유’도 뭣도 없이 부모의 기분에 따라 폭행을 당하던 아이라면 그가 저지를 폭력은 거의 필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체벌’은 결국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폭력에 대한 민감도’의 문제가 아닐까? 말하자면, 어느 사회가 폭력에 대해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려면 그 사회의 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얻어 맞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는 이야기다. 뚜렷한 통계가 있지는 않지만, 그리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한국사회가 ‘한국 전쟁’ 이래로 점차 폭력의 강도가 줄어온 것은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폭력의 강도가 줄어온 것과 같은 곡선을 그리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가정 내 폭행에 관한 나의 경험 


나는 그 시대 아동들이 그렇듯이 많이 맞으며 자랐다. 엄마에 따르면 길바닥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다가 맞은 게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그냥 조금 심한 장난을 치다가 귀중한 무언가를 깨부수거나, 무언가 나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것 앞에서 고집을 피웠는데 그날 따라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았거나 하면 맞았다. 주로 초록색 파리채나 옷 걸이로 맞았던 것 같다. 그런 여러 번의 폭행 경험 중에서 잊지 못하는 것이 한가지 있는데, 그건 정말 지금 생각해도 이 내 인생 결정적으로 바꿔놓지 않았나 싶은 사건이다.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이었는데, 나는 엄마가 학교 어머니회에서 알게된 다른 엄마들의 아이들과 한문을 배우러 다니고 있었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어렸고 나머진 두세살씩 많은 형들이었다.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한문을 배우고 나서 집에 오는 길에 여느 때처럼 엄마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대충 저녁 8시쯤 끝났으니, 걱정이 되어서 그랬으리라. 여전히 이유를 모르겠는데, “왜 그렇게 죽상을 하고 다녀? 어? 무슨 일 있었어? 왜 울고 다니냐고?” 하면서 엄마가 다그치는 게 아닌가? 도저히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지금이라면, “아니, 나 안 그러는데?” 하고 말겠지만, 그때는 엄마가 하는 말이 진리였고, 엄마가 내 세계의 거의 전부였던 시기였으므로,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엄마가 그렇다니까 나도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엄마가 다그치는 대로 이유가 있어야 했다. 나는 그냥 형들이 때렸다고 했다. 10살 짜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이유가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집에 온 다음에 난리가 났다. 엄마는 각 집에 전화를 걸어서 따지기 시작했고, 형들과 나를 전화로 대질시키기까지 했던 것이다. 나는 도저히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할 수 없어서, 그냥 연기했다. “형이 나 때렸잖아”하면서 말이다. 일이 점점 더 커졌던 건 명약관화다. 그러다가 결국은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를 하고, 엄마가 다른 엄마들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상황은 끝났다. 물론 그 모임은 깨졌고, 엄마들 사이도 소원해졌다. 그날 나는 엄청나게 맞았다. “거짓말을 왜 해. 엄마가 다른 아줌마들한테 애 교육 똑바로 시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겠니?” 같은 말을 들으며 말이다. 


이 일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 일로 내 마음 속에서 어떤 균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특별한 무언가는 아니고, 그때부터 ‘엄마’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사라졌다. 나는 흔히 한국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엄마에 대한 판타지, 그러니까 ‘모성 판타지’ 같은 게 한조각도 없다. 그렇다고 딱히 엄마와 사이가 안 좋거나 한 것도 아니다. 그냥 뭐랄까, 엄마가 구축해 놓은 세계가 일찌감치 깨져버렸다고 할까? 그래서 여전히 자식으로서 할 도리는 하지만, 엄마를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다지 일관성 없는 도덕 감각을 가지고 있고, 화를 잘 내는 어른으로 자랐다. 흔히 일상적인 체벌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렇게 된다고 하는 대로 자란 것이다. 순전히 그 시절 당한 체벌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큰 영향을 받았다고는 생각한다. 차라리 요즘, 아이를 키우면서 화를 덜내고, 일관성 있는 도덕 감각을 가진 사람으로 나를 기르는 중이다. 말하자면, ‘체벌’에 대한 감각이 바뀌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엄마가 딱히 나에게 애정을 쏟지 않거나 그랬던 건 아니다. 그 시절의 일반적 기준에 비추어 보자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야말로 자식에게 모든 걸 거는 엄마였다. 그래서 요즘도 여전히 마흔이 된 나를 ‘아이’ 다루듯 하려고 할 정도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에게 나는 언제까지고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를 화나게 했던 지점도 거기에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우리 집은 그 시절의 여느 서민 가정이 그렇듯이 경제 사정이 좀 나았던 적이 없었다. 엄마에 따르면 아버진 무능했고, 엄마는 그런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 나를 키웠으며, 너는 부디 출세해야 한다는 이른바 ‘정상가족’의 도식 그대로의 집이었던 셈이다. 그러자니 엄마는 나를 잘 키워야 했고, 자신은 늘 고강도 스트레스 상황이었으며, 그런 가운데 나에게 그런 식의 폭력이 가해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나는 그 시절에 대해 아쉬운 마음은 조금 있지만, 그렇다고 그 시절 전체를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그 시절을 좀 더 냉정하게 다시 떠올려보곤 하는데, 그건 순전히 내가 길러야 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 하루 종일 부대끼다보면 나 스스로도 몇 번씩 경계에 다가서는 걸 느끼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가까스로 참기는 하지만, 가끔씩 큰 소리가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내가 이 생활을 버티는 걸 넘어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아내와 함께 아이를 기른다는 확고한 토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육아 스트레스를 나눠서 진다. 네가 이만큼, 내가 이만큼 하는 게 아니라,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오늘은 내가 많이 내일은 네가 많이, 계속 내가 많이 하는 구간이 있더라도 억울해하지 않을 정도의 신뢰가 있어서다. 그리고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서 ‘안정적’으로 사는 걸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그냥 적당히 살 수 있을 만큼만 벌고, 그게 안 되더라도 좌절하지는 말자는 식으로 산다. 돈이 더 벌리면 좋은 거고, 아니면 살림을 줄이면 되고, 줄이다 안 되면 더 싼 곳으로 가고 그런 식으로 산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우리 사이에 있다. 그러면 이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든다. 가족의 궁극적 목표를 정할 필요도 없고, 그저 오늘 하루를 화내지 않고 살 수 있으면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관점이 아이에게까지 적용된다. 육아에 있어서 내 목표는 아이를 의사로 만드는 것도, 변호사로 만드는 것도, 대기업 직장인으로 만드는 것도, 세계적인 뭐뭐뭐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우리 아이가 제 인생이 스스로 책임지는 ‘개인’으로 자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공부를 못해도 되고, 아무 재능이 없어도 된다. 정말로 아무 상관없다. 그저 착하고 건강하고 염치만 있으면 된다. 나머진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이 정도만 해도 참아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대기업 직장인으로 키우려면 얼마나 참아내야할까. 물론 나는 그걸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리고 이건 나 혼자 생각한 것인데, ‘가족’과 관련하여 나의 궁극적 목표는 이 가족을 해체하는 것이다. 딸이 자라서 집을 나가면 아이는 아이대로 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아내와 나는 그때 나름으로 동거를 하든 각자 갈 길을 가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게 ‘핵가족’의 논리적 도달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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