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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아빠여서 읽은 책들

폴 레이번, 『아빠 노릇의 과학』 - '육아 아빠'라는 환상종

by 북드라망 2020. 4. 27.

폴 레이번, 『아빠 노릇의 과학』

- '육아 아빠'라는 환상종



‘육아 아빠’라는 환상종


‘아빠 육아’가 유행인 것 같다. ‘유행’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앞서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포털 사이트의 육아 섹션엔 거의 항상 ‘아빠 육아’ 관련 컨텐츠가 있을 정도다. 실제로 놀이터나 소아과 같이 ‘애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아빠들을 보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우는 건 엄마’라는 표상은 여전히 굳건하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름이 ‘맘까페’인 것도 그렇고, 실제로 거기에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엄마인 것을 보아도 여전히 이 분야에서 ‘엄마’가 갖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놀이터와 소아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빠도 그저 보이기만 할 뿐, 그날 처음 만났지만, 거의 10년 지기 같은 케미를 보이는 엄마들처럼 놀이터를 장악하고 있지는 못하다. 게다가 나는 나처럼 일상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육아’인 아빠를 인터넷에서는 봤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아직 본 적이 없다. 환상종인가?



아빠가 육아를 하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맘까페에서 간혹 볼 수 있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모성애는 선천적이지만 부성애는 후천적이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공식 같은 것이다. 대개 이 말이 나오는 맥락은 이렇다. ‘우리 집 아빠(내 남편)가 육아에 1도 참여를 안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같은 식의 질문이 올라오면, 댓글에 저 말과 함께, ‘할수록 느는 법이니 좀 더 적극적으로 유도해라’ 같은 답변이 달린다. 그 와중에 온갖 담론이 생산되는데 이를테면 ‘남편이 육아를 ‘돕는다’고 하면 안 된다, 원래 함께 하는 것이니 ‘참여’라고 해야 한다‘부터 남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 ’남의편‘, 완곡하게 이르는 말인 ’철수‘ 같은 식의 새로운 어휘도 자주 생겨난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오늘 내가 읽고 소개하고 싶은 책 폴 레이번의 『아빠 노릇의 과학』은 적극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미국 아빠’를 전제로 쓰여진 듯 보인다. 그러니까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아빠도 아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아이를 돌보는 일에 적극적인데 어째서 생물학적, 사회적, 심리적인 대우(연구의 빈도 같은 것)에서는 완전히 찬밥 취급을 받느냐이다. 미국 아빠들은 그런가 보다. 그래서 동물 세계의 관찰 결과, 인간의 생리학을 연구한 결과 등등을 가지고 아빠도 엄마 못지않게 중요하고, 아빠가 육아를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이점이 있는지에 관해 말한다. 정말이지 오늘 우리의 현실에 비춰 보자면 앞서나가도 한참 앞서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할 수 없겠다.


그러지만, 나의 경우는 좀 다르다. 내가 우리 집에서 맡은 역할이 바로 ‘육아’이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유행의 첨단에 선 ‘육아하는 아빠’다. 후훗.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많은 격려를 받았다.


“아버지의 지원적인 양육은 아동의 지능 발달 및 언어능력 향상과 관련이 있었다. 아버지의 바람직한 행동은 또한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행동을 개선시켰다. 좋은 아버지 노릇의 흥미로운 간접적 효과였다.”

- 165쪽


오! 이런 글을 읽고서 잠든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면, ‘저 녀석 혹시 슈퍼 천재되는거 아냐?!’ 같은 실없는 생각마저 든다. 농담이다. 음, 진짜다.


여하튼, 이 책은 나처럼 육아의 전선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아빠들에겐 격려를, 낳아놓은 자식을 나몰라라하고 앉아서 스마트폰 게임만 하고 있는 남편을 둔 엄마들에게는 투쟁의 이론을, 당장 육아에 뛰어들지 않아도 아내가 어떻게든 하고 있으니 괜찮기는 한데 그래도 좀 찜찜해서 어쩔까 저쩔까 하고 있는 아빠들에게는 중요한 동기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육아’라는 대모험


아이를 돌보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태어났을 때, ‘이것도 과연 인간인가 싶은’, 다른 동물 종들에 비하면 아직 동종의 개체로서의 꼴이 갖춰지지 않은 꼬물이를 어엿한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어디 쉬울 수 있겠는가. 아이는 매일 먹어야 하고, 매일 자야하고, 그런데 혼자 스스로 잠들 줄은 모르고, 매일 놀아야 하며, 매일 울기도 해야 한다. 그 모든 과정들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옛날에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그때도 힘들었으니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빠에게 가해지는 (너도 육아에 나서라는) 사회적 압력이 지금과 비교도 못할 만큼 적었을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하는 편이 아빠에게도 좋다. 자라는 중에 있는 아이는 책으로 치자면 궁극의 텍스트다. 짜증을 내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나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허접한 인간인지 느끼게 되고, 꼬박꼬박 먹을 걸 찾고 졸려하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자연의 리듬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는지 느끼게 된다. 그 뿐인가, 아이가 불시에 사고를 쳐서 손이 모자를 때 물티슈를 들고 뛰어오는 아내를 보면서 팀워크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다시 배우게 된다. 그 모든 과정들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아이만이 아니다. 아닌 말로 아이는 밥 먹이고 재우면 알아서 크는 면도 분명히 있지만, 이미 굳어버린 우리 아빠는 이 정도의 자극이 있어야 정말로 성장한다. 아이와 부대낄 땐 유연해질 수밖에 없다. 몸도, 마음도.




아이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고작 36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 10년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다.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휩쓸었던 일본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그 속에서의 일년이 바깥 세상의 하루와 같다는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온 기분이다. 아직도 못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괴롭기는 하지만, 그것과 똑같은 즐거움이 동시에 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게 진실이다. 아이의 미소를 보는 기쁨 덕에 괴로움이 사라진다는 말도 이 사태를 온전히 담을 수 없고, 육아하는 것 때문에 죽을만큼 괴롭다는 말도 온전한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힘들지만, 그 힘듦을 그대로 둔 채로 솟아오르는 즐거움이 있다. 애랑 놀다가 가끔 너무 재미있어서 정줄을 놓을 수도 있고 말이다. 



아빠 육아의 이점들


책에 보면 아이를 아빠가 돌보면 생기는 이점들이 매 장마다 나와 있다. 언어능력이 좋아지고, 심리적인 회복탄력성도 높아지는데다가, 훗날 어른이 되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된다는 식의 그런 이점들이다. 뭐 다 좋다. 책에서는 구체적인 실증적 사례들을 들어 그런 이점들을 설득력있게 설명해 나간다. 그런데 그걸 읽으면 읽을수록, 내 마음 속에서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건 나의 평소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어날 좋은 일에 대한 약속을 믿지 못하게 된 탓이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 이걸 하면 미래에 이런 점이 좋아진다’ 같은 말을 못 믿게 된 것이다. 못 믿는다기 보다는 그게 별 소용이 없다고 느낀다. 아마 내가 살면서 실제로 그렇게 된 일을 별로 겪어보질 못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미래에 일어날 좋은 일을 위해서 오늘의 무언가를 포기하기가 싫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섰을 때 생길 그 이점들이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미래의 좋은 점들 말고, 오늘의 좋은 점들이 진짜 중요하다.


어느날 갑자기 아이가 말을 할 때, 말하는 걸 넘어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할 수 있게 될 때, 그때 느끼는 감정은 참 묘하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갈아준 기저귀, 내가 떠먹인 밥들, 놀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희열이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말 대답할 걸 생각하면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고..... 어쨌든, 그런 것이다. 육아는 그때그때 결과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매일매일 결과가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날의 컨디션은 어제의 컨디션에 영향을 받고, 나의 컨디션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루종일 아이의 기분에 휘둘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지금 무얼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로써 내가 배우는 것도 있다. 아이의 반응들 속에서 내가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내가 이 아이를 불행에 빠뜨리는 짓을 하지 않을지 같은 걸 고민하며 배워가는 것이다. 나는 이게 ‘자유’라는 몹시도 근본적인 지점에까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자유 말고 나의 자유 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 속에서 단련되는 것이고, 존재의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며, 내 인생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유란 무언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타자의 기분에 휘둘리지 않고 내 중심을 잡아가는 일을 익히는데 있어 육아보다 좋은 수련은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런 점들이 육아에 있어 ‘오늘의 좋은 점’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빠들아, 육아를 하자.


“임신기에 남성도 호르몬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남자는 얼마나 될까? 임신기의 친밀한 관계가 아이와 더 친밀한 관계를 맺는 길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임을 이해하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많은 커플이 받아들이는 평등주의 가족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아버지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우리는 평등주의 가족이라는 개념을 현실에 더 가깝게 만들 수 있다.”

- 103쪽




부디, 전선에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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