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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리포트

[쿠바리포트] 욕망에 관하여

by 북드라망 2020. 3. 25.

욕망에 관하여





핑크하우스에서의 마지막 드라마


나는 이사를 가겠다고 말했고, 난리가 났다. 아줌마는 문자 폭탄을 날렸다. 최소한 6개월은 살아달라고 자신이 처음에 부탁했던 것을 잊었느냐고, 왜 배신을 때리느냐고! 물론 그 약속을 나는 기억했다. 그러나 그것은 앞뒤 맥락 쏙 빼먹은 반쪽짜리 약속이었다. 맨 처음 아줌마는 이 집이 라이센스가 없는 불법 까사임을 강조하면서 내게 조용히 살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룸메이트를 들이게 된다면 이웃이 불평을 할 수도 있으니, 그 경우에는 정부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서 이 집을 합법 까사로 바꾸겠다고 했다. 합법 까사가 된다면 처음 라이센스 발급 비용(꽤 비싸다)을 메워야 하므로 집값도 올려야 하고, 나도 여기서 최소 6개월은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납득이 가는 내용이었므로 나도 오케이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룸메이트를 들이지 않았고, 이 집도 합법 까사로 전환되지 않았다. 아줌마는 지금까지 이 집에 대해서 세금 한 푼 내지 않았고, 라이센스라는 초기 투자 비용이 없었으니 내가 나간다고 해도 잃을 게 없었다. 새 세입자를 찾아야 한다는 수고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열 받은 아줌마는 나에게 예정일보다 일찍 떠나라고 통보했다. 다음 세입자를 찾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뭐야, 내가 월초에 낸 월세는 돈도 아니란 말인가? 나도 더욱더 열이 받아서 내일 당장 떠나겠다고 했다. 어차피 주말밖에는 이사할 시간이 없었고, 예정일을 제외한 주말은 내일 뿐이었다. 나의 적극적인 공세에 할 말을 잃었는지 아줌마는 그날 오겠다는 말만 남겼다. 나는 곧바로 주말 약속을 취소하고 번개처럼 짐을 쌌다. 친구를 불러 순식간에 이삿짐을 날랐다. 그리고 그 다음날 텅 빈 핑크하우스로 되돌아가서 가구 배치를 원래대로 바꾸고 바닥 청소를 했다. 부엌과 냉장고도 청소했다. 나가는 마당에 사람된 도리는 해야 한다는 마음이 반, 이 아줌마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나머지 반이었다. 그 사이 도착한 아줌마는 한숨을 폭폭 내쉬면서 내가 청소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청소가 다 끝나자 나는 아줌마에게 20쿡을 드렸다. 컵을 깬 것에 대한 보상금 차원이었다. 그리고 이제 조용히 이 동네를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줌마는 이때다 싶었는지, 폭탄을 던졌다. “이 돈은 필요 없어. 단지 내가 이웃에게 지불한 커미션 비용이나 돌려줘. 난 너 때문에 커미션을 냈는데, 네가 6개월을 못 채우고 나갔으니 이건 내 손해잖아.” 여기서 커미션이라 함은, 쿠바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오고가는 소개 비용을 뜻한다. 아줌마의 이웃이 나를 소개해줬기 때문에 아줌마는 내가 이 집에 머무르는 동안 매달 일정 금액을 커미션 비용으로 아랫집 이웃에게 지불해야 한다. 합법 까사인 경우 커미션 비용은 매일 5쿡 혹은 매달 50쿡이다. 그러니까 아줌마는 지금 그 비용을 내게 돌려달라고 (이 말에는 어폐가 있다. 내가 받지도 않은 것을 왜 돌려준단 말인가?)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들은 말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이 집에 머문 세 달 동안 아줌마가 150쿡을 커미션 비용으로 지불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수다쟁이 아줌마 옛날에 이미 자신의 비밀을 공개했다. 내게 처음 두 달 동안 할인 가격을 제시했었는데, 그 동안은 이웃에게 부탁해서 커미션 비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달에는 30쿡의 커미션 비를 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정확하게 되물었다. “그럼 30쿡을  나보고 달라는 건가요?” 그러자 아줌마는 입에 침을 쓱 바르더니 자신은 언제나 커미션 비를 내고 있었다고 우겼다. 내 스페인어가 부족하여 오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첫 두 달 동안 커미션 비가30쿡이었고 , 세 번째 달에는 50쿡이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녀는 이 말이 끝나자마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쏜살같이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게는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더니, 곧바로 아랫집 이웃과 입을 맞추러 내려가다니……이것이 거짓말이라고 직접 확인시켜주는 꼴이 아닌가?


나는 이사를 도와주러 온 친구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었고, (스페인어를 잘 못하는 내 친구는 나와 아줌마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는 격분했다. 세입자가 커미션 비용을 내는 경우가 어디있으며, 이렇게 금액을 뻥튀기하는 경우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사이 되돌아온 아줌마는 돈을 내놓으라고 다시 큰 소리를 쳤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110쿡을 달라는 거죠? 30쿡, 30쿡, 50쿡.” 그러자 아줌마는 자기가 언제 그랬느냐고, 자기는 언제나 50쿡을 내고 있었으니 150쿡을 내놓으라고 또 다시 말을 바꿨다. 오 마이 갓…… 그때 내 옆에 서 있던 친구는 우리의 대화 속에서 “150쿡”이라는 단어를 캐치했다. 그리고 그의 뚜껑이 확 열려버렸다. 그는 문법이고 나발이고 짧은 스페인어로 나 대신 아줌마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줌마, 거짓말쟁이! 말해 당신, 오직 30쿡! 그런데 이제 30 30 50? 이게 뭐야? 또 50 50 50? 당신 이웃도 거짓말쟁이! 말 바꿔, 그만 바꿔!” 아줌마는 ‘의식의 흐름 기법’과 닮은 내 친구의 독특한 스페인어와 그 공격적인 기세에 질려서는 곧바로 도망을 갔다. 1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어서 돈을 준비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던져놓고.




“아줌마, 거짓말쟁이! 말해 당신, 오직 30쿡! 그런데 이제 30 30 50? 이게 뭐야? 또 50 50 50? 당신 이웃도 거짓말쟁이! 말 바꿔, 그만 바꿔!”


나는 친구에게 내려가 있으라고 타일렀다. 그 사이 아줌마는 동네 이웃들을 지원군 삼아 집 앞에 집합시키고 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돈을 아예 안 주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마지막 짐을 챙겼다. 그때, 부엌과 연결된 뒷문이 활짝 열린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옥상과 다용도실로 통하는 통로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이 문을 닫아주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집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뒷문에는 언제나 열쇠가 꽂혀 있었는데, 내가 이사 올 당시에 아줌마는 이 열쇠를 절대로 빼지 말라고, 잃어버릴까 겁난다고 말을 했었다. 나는 문을 닫고 열쇠를 돌렸다. 한 번. 철컹, 문이 잠겼다. 그러나 이 잠금장치는 두 번까지 돌아간다. 나는 다시 열쇠를 돌렸다. 두…번? 어라?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열쇠가 부러졌다! 그것도 두 동강이 났다! 열쇠의 절반은 잠금장치 속에 들어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내가 특별히 세게 돌린 것도 아니었다. 황급히 열쇠조각을 살펴보니 답이 나왔다. 열쇠가 너무 오래되어서 녹슬었던 거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열쇠를 꺼내지 않았던 것인가. 게다가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내 손에서 부러진단 말인가.


나는 복잡하게 돌아가려고 하는 뇌를 일시정지 시켰다. 그리고 반 쪽짜리 열쇠를 냉장고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는, 가방에서 40쿡을 꺼냈다. 이것이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현금의 총 액수였으며, 시장에서 새 잠금장치가 판매되는 평균 가격이기도 했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갔고, 의기양양하게 날 쳐다보는 아줌마에게 40쿡을 줬다. 돈이 이것밖에 없어서 더는 못 준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내가 뒷문의 잠금장치가 사망하는데 일조했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이 돈이 커미션 비용이 아니라 잠금장치의 마지막 순간을 애도하는 조의금이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고작 40쿡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못마땅하게 쏘아보았지만, 나를 찔러봤자 돈은 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2층 집으로 올라갔다. 내가 50m 정도 걸어갔을 때 그녀는 테라스로 나와서 내게 뒷문 열쇠가 어디있느냐고 소리쳤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묵묵히 걸어갔다. 정말로 아디오스. 다시는 보지 맙시다!


(오, 생각해보니 나는 앞문 잠금장치가 고장나서 밖에서 12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 날 밤의 복수를 한 셈이다. 본의 아니게 말이다.)



나는 왜 쿠바인들이 불편했나


이 날의 드라마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종종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날, 아줌마는 떠나가는 내 등에 대고 칼을 꽂 듯 앙칼지게 말했다. “지금까지 외국인 학생들을 받아줬지만 늘 결과가 이렇다니까. 엄마 같은 마음으로, 지들 생각해서 쿠바인들에게보다 더 싼 가격에 집을 내줬는데, 다 배신을 때린단 말이야…… 니네들은 우리 쿠바인들보고 못 됐다고 하지만, 진짜 못 돼먹은 건 바로 너네들이야.”


이 말은 몇 개의 거짓말을 뒤섞어 만든 강력한 거짓말 폭탄이다. 첫째, 그녀는 내 엄마가 아니다. ‘엄마 같은’ 사람도 아니다. 그녀가 자신의 딸을 정녕 이렇게 대하고 있다면 나는 그 집 딸내미의 미래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둘째, 그녀가 내게 쿠바인들에게보다 더 싼 가격으로 집을 내어주었다는 건 완전히 말이 안 된다. 아바나에 사는 그 어떤 쿠바인들도 한 달에 300쿡 씩 월세로 지불하지 않는다. (미쳤는가?) 만약 쿠바인들이 외국인 학생들만큼 돈을 낼 능력이 있다면, 혹은 그녀의 집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면 아줌마는 굳이 힘들게 외국인 학생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이런 건 배신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인과응보라고 불린다. 부디 그녀에게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는 계기가 생기길 바란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는 한 가지 진실이 담겨 있다. 그것은 바로 쿠바인과 외국인을 가르는 분별심이다. 그리고 이 분별에는 거의 대부분, 돈이 개입되어 있다. 핑크하우스의 아줌마처럼 못되게 말을 하든, 교수님이 교양 있게 말을 하든, 친구가 농담처럼 흘려 말하든, 쿠바인들의 말 속에서는 이런 분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한 동안 쿠바인들이 불편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외국인은 외국인이라서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쿠바인은 쿠바인이라는 이유로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들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한다. 이것은 불공평하다.’ 나는 이 분명한 메시지 앞에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내게서 무슨 대답을 기대하는 걸까? 이 명제의 옳고 그름을 논리적으로 따져야 할까? 혹은 모든 판단을 내려놓고 이들의 박탈감에 공감해야 할까? 아니면 이건 그냥 나보고 커피나 밥 좀 사달라는 간접적 신호인가? 이런 당혹감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면 그 다음에는 회의가 몰려왔다. 내가 아무리 스페인어를 잘 하고 아무리 쿠바 문화에 호의를 품어도, 내가 ‘외국인’인 이상 이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어렵겠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내가 쿠바 밖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뜻하지 않는다. 쿠바인들의 마음 내부에는 이미 ‘외국인’이라는 독특한 상(想)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그들 외국인’은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고,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쿠바인들보다 정이 없고, 쿠바인들보다 돈이 많고, 제국주의의 신민이고, 그렇지만 쿠바인들이 한 번쯤은 꿈꾸어 보았을 동경의 대상이고, 무엇보다도 쿠바인들보다 ‘쉬운 삶’을 산다. 그렇게 나의 행동, 나의 언사, 나의 소유물, 나의 외모, 이 모든 것들이 ‘외국인’이라는 아주 드넓은 (그러나 실제로는 좁디 좁은) 정체성의 틀 안에서 해석된다. 아, 그럼 그렇지, 그녀는 외국인이라서 그래……




사실 최근에는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요즘 나는 내 체력과 심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의학이라는 만만치 않은 공부와 쿠바에서의 쉽지 않은 생활, 글쓰기와 <핫쿠바 마타타> 제작, 인간 관계의 확장과 유지, 외국어를 쓰면서 생기는 긴장과 오해와 스릴까지, 이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만큼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외딴 섬에서 혼자 방전되고 아파봤자 나만 손해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만남도 자연스럽게 줄게 되었다. 그렇게 쿠바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자 그들에게서 느꼈던 불편한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감췄다. 그 문제에 대해서 거의 잊고 살았는데, 우리 집주인 아줌마의 마지막 일침 덕분에 다시 내 머릿속으로 되돌아온 거다.


나를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시선에 대한 거부감은 가장 일차원적인 불편함이다. 쿠바인들과 교류를 계속 하다보면, 불편한 의문들도 생겨난다. 첫째, 모든 쿠바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쿠바인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태도가 관찰된다. 온 세상이 쿠바에게 빚을 졌으며 그들은 빚을 받아낼 권리가 있다는 식의 태도. 이것이 건전한 의식과 결합하면 구(舊)식민지 국가의 국민으로서 갖는 당당한 권리의식이 되지만, 실제 일상에서는 별 이득 없는 ‘자존심 부리기’나 외국인 등쳐먹는 것을 정당화하는 뻔뻔함으로 표현되기 쉽다. 그들이 가난한 것은 개인의 탓이 아니라 정부의 탓이고, 정부가 가난한 것은 미국 제국주의의 탓이며, 전 세계 모든 잘 사는 나라는 제국주의에 일조하며 떡고물을 받아먹으므로 이것은 또한 모든 외국인의 탓이다. 이 논리는 거시적인 층위에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을 과연 미시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적용하여 그 탓을 돌릴 수 있을까? 뭐, 돈 많은 외국인이 돈 없는 쿠바인들에게 삥 뜯기는 거야 당연하다. 이것은 생활의 논리다. 하지만 ‘삥’을 ‘도덕의 논리’로 정당화하는 것은 그야말로 쿠바인들의 도덕 지반을 침식시키는 일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오늘날 우리의 삶이 존재하기까지 역사 속에 존재했던 모든 부조리함(인종주의, 식민주의, 제국주의…)을 계산하고 그 값을 서로에게 청구하여 받아낸다면, 물론 그럴 수도 없겠지만, 그곳에는 빚이 사라지는 대신에 윤리가 설 자리도 사라질 것이다. 윤리라는 것은 부조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따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개인의 자발성 속에서만 존재한다. 상대가 삥을 뜯는다고 나도 삥을 뜯는다면 그건 그냥 다 같이 도둑이 되는 게 아닌가.


둘째, 쿠바인들은 외국인들이 정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자기들끼리도 잘 못 믿는다. 다들 크고 작은 불법 사업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웃에게도 자신의 일자리에 대해서는 쉬쉬하면서 감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웃들이 어디서 돈을 구해오는지 어림 짐작하면서도 쉽게 묻지 않는다. 그리고 그 위로 신뢰와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웃간의 정보망은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시장이 크지 않은 쿠바에서는 인간 관계와 이해 관계가 곧바로 중첩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이들의 인간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꼬여 있고 다층적으로 휘어 있다. 쿠바인들은 분명 정이 많고 인간적이며 서로를 아끼지만, 그것은 그들이 인간 관계에서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적인 욕심’이 여러 층위의 계산과 함께 인간 관계에 개입한다는 뜻이다. ‘아미가(amiga : 친구)’니 ‘베씨나(vecina : 이웃)’니 하는 이름으로 그 속에 휘말리다보면, 가끔씩은 소리치고 싶다. 젠장,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아야 하나! 교환 관계와 사적인 관계를 왜 경계 없이 섞어버리는 건가! 그래서 쿠바인들이 외국인들은 정이 없다고 말하면, 난 이 문장을 이렇게 자동 번역해서 듣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 뻣뻣한 외국인들은 이런 쿠바식 ‘끈끈한 관계’에서 어떻게 놀아야 할 지 모르는 샌님들이라고.



너는 왜 내게 없는 걸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만 나는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뒤가 맞는 일관된 논리를 찾아내려는 그런 이성의 층위가 아니라,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욕망의 층위 말이다. 그것은 바로 ‘갖고 싶다’는 욕망이다.


쿠바 밖에서 온 사람들은 쿠바 안에서는 찾을 수 없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 외국인들은 ‘합당한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또 ‘합당한 가격’을 치러서 이것들을 ‘정당하게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그런 ‘정당할 기회’는 쿠바 내에서는 당연한 게 아니며 존재하지조차 않는다. 돈을 벌려고 해도 돈을 벌 곳이 없고, 물건을 사려고 해도 살 물건이 없다. 그렇다면 쿠바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이런 질문이 솟구치는 건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 당신들은 우리들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가? 왜 그것은 내 것이 될 수 없는가? 어쩌면 60년 전 혁명도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부(富)의 불균형을 해결하고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혁명을 했는데, 오늘날 쿠바는 불균형은 줄어들었지만 자족자급이 되지 않는 역설적인 공간이 되었다. 저 의문 또한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수다쟁이 쿠바 할아버지들이 끝없이 늘어놓는 반제국주의 담론이나 사회주의 혁명 이데올로기도, 결국에는 부글부글 끓는 이 욕망의 표현이리라.


이런 욕망을 두고 세속적이라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이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지름신이 매 순간 시도 때도 없이 호출되는 신성한 자본의 땅, 대한민국 출신의 청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예처럼 알바 해서 모은 돈을 명품을 사거나 여행을 가거나 옷을 사는데 쏟아붓는다. 그러나 ‘내 것’이 생겼다는 충족감은 들지 않는다. 이게 자본주의가 우리를 길들이는 방식이다. 물건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초라한 나 자신을 잊기 위해서, 혹은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길을 몰라서 소비를 하는 것. 그렇지만 그럴수록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가질 수 없는 것 중에서 가장 요원해보이는 것은 바로 자립하는 삶이다. 노예처럼 알바를 해도, 기를 쓰고 취직을 해도, 집을 사거나 차를 사거나 가족을 꾸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이곳 쿠바에서, 사회주의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 속에서 소유욕을 다른 방식으로 발견하고 있다. 가령, 쿠바의 청년들 역시 없는 살림에도 어떻게든 핸드폰을 산다. 어떻게든 노트북을 구한다. 쿠바의 평균 월급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건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핸드폰과 비슷하거나 더 최신 사양의 기기를 쓰고 있다. 쿠바인들은 필요하다는 이유 뿐만 아니라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것을 시장에서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물건을 사고 저장하는 습관이 있다. 있을 때 사야 한다. 돈이 없다면 돈을 빌리거나 훔쳐서라도 사야 한다. 외국에 친구가 나간다면, 갚을 능력이 없더라도 물건을 사오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영영 물건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이런 우여곡절을 겪다보면 쿠바인들의 마음 속에는 환상이 생기기 쉬워진다. 쿠바만 떠나면, 외국에서 달러만 벌면,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될 텐데……


결국 문제는 ‘자족’이다. 삶이 자족되지 않으니, 욕망이 더욱 부채질되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쿠바인들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단지 내가 쿠바에 머무는 외국인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결핍이 상대적으로 적어진 것 뿐이다. 가끔 상상을 해본다. 내가 만약 만 25살의 쿠바 청년이라면, 대학을 졸업했지만 월급이 충분하지 않아서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면, 고장난 핸드폰을 고치려고 간신히 돈을 절약하고 있다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내 삼일치 급여를 한끼 식사 가격으로 쓰는 모습을 매일 본다면…… 나 역시 욕구불만을 가지지 않게 되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눈에 훤히 보이는 쿠바인과 외국인 사이의 불균형, 그리고 물건 하나를 소유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구질구질한 과정을 욕구불만으로 내면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상당한 지성 혹은 영성이 갖춰지지 않는 한 말이다.


 

장발장과 지름신


장발장은 빵을 훔쳤다. 처벌을 받았고, 감옥으로 끌려갔다. 감옥으로 가는 뱃길에서 폭풍우를 만나 바다에 빠졌을 때, 그는 울부짖는다. 배고프고 돈 없는 자가 빵을 훔치는 것이 죄인가? 쿠바는 장발장들의 사회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빵을 훔치고, 그것이 죄로서 처벌받지 않는 사회다. 쿠바인들은 정부의 공공재산  훔치고, 이것을 되팔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렇게 모두가 어떻게든 불법 시장과 연관되어 있다. 모두가 이를 알고 있는데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것은, 또 정부의 처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것 말고는 생활을 꾸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다들 인정하기 때문이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그리고 쿠바는, 등가교환이라는 돈의 법칙보다 인간적인 욕구를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빵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노트북이 도래했다는 거다. 빵이 부족한 상황에도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을 찾는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점점 돈을 벌기 쉬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아, 이제 쿠바에도 지름신이 오시려는가? 지름신은 지갑에 강림하지 않는다. 그 분은 마음에 강림하신다. 처음에는 눈에, 그 다음에는 손에, 마지막으로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이 삼위일체를 실현시키는 것이 바로 지갑이다. 만약 지갑에 돈이 없어서 지름신을 보내드리지 못한다면, 지름신은 마음을 활활 태워버릴 것이다.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그 불길에 마음이 잡아먹히지  않도록 우리는 애를 써야 한다. 삶에서 무엇을 구하고, 원하고, 포기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쿠바인들에게서 느끼는 마지막 불편함의 정체가 여기 있다. 부디, 그들이 ‘외국인의 삶’이 더 쉽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스마트폰을 갖는 것은 삶을 쉽게 만들지 않는다. 단지 소유욕을 만족시킬 뿐이다. 어쩌면 쿠바의 시장이 점점 개방되고 있는 지금, 스마트폰을 구하는 게 옛날보다는 더 쉬워진 지금, 쿠바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세 앞에서 이를 따르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는 자유가 윤리라고 한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윤리적인 행동은 ‘쿠바인-외국인’을 가르는 환경 속에서 거꾸로 그 분별심을 내려놓는 것일 테다. 그러나 분별심을 내려놓으려면 나를 이용할 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용기와, 욕구불만에 거리를 둘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벌면서 나는 우선 내 욕망에 솔직해지려고 노력한다. 나는 내 물질적인 편안함을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쿠바인들을 대할 때 불편함을 느끼는 건 사실 이들과 진솔한 네트워크를 욕망하기 때문이 아닌가? 나를 이용하려는 친구의 마음에 실망했으나, 진짜 문제는 실망이 아니라 그 실망을 추스르고 새로운 인연을 탐색하기에는 나에게 체력도 여력도 시간도 없다는 사실이 아닌가? 산더미 같은 공부를 끝내고 새벽에야 자리에 눕고 나면, 깜깜한 천장 위로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중에 집주인에 대한 염려나 집에 대한 걱정은 없다. 물탱크에는 물이 차 있고, 부엌에는 가스가 들어오고, 에어컨은 문제 없이 돌아간다. 아바나의 여러 집들을 돌고 돌아, 결국 적당히 비싸고 편안한 집으로 들어왔다. 이는 마치 쿠바에서 내가 택한 자리 같다. 쿠바 사회에 적당히 발을 담그면서, 그러나 여전히 ‘외국인’의 영역에 머물면서 적당히 나를 보호하는 것.


나는 아마도 이 집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게 되리라. 그러나 이곳이 내 마지막 집은 되지 않으리라. 나는 쿠바에게 나의 6년을 약속했다. 비장한 마음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쉬운 마음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시간은 있다. 지친 심신을 충분히 달래고 나면 다시금 가볍게 길을 떠날 것이다. 쿠바인들 사이로 난 길로. 그 때가 되면 나의  욕망 역시 조금은 더 가벼워질 것이라 믿는다.


글_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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