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빠의 탄생』을 쓰면서 세 명의 아빠는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한 회식을 가지며 무척이나 친밀해졌습니다. 이 남성들의 관계는 언뜻 아줌마들의 우정을 연상시킬 만큼 수다의 향연(이라 들었...)입니다. 허세와 짠내를 오가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엄마들도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빠들의 초고가 마무리되고, 수정 작업에 들어갔던 초여름의 어느날 북드라망 사무실에서 엄마들이 만났습니다. 그 수다의 현장을 공개합니다.
**물방울(우자룡 아빠의 아내), 곰도리(곰돌이 아니고 곰도리를 닉네임으로 쓰시는, 진성일 아빠의 아내), 김(정승연 아빠의 아내), 몜(녹취 작업을 도와준 과거 북드라망 편집자K)
아빠들 글에 비친 자신의 모습 혹은 아빠의 모습에 대하여
김: 먼저 각각의 아빠들의 글에 비친 본인의 모습, 또는 아빠들의 모습에 대해서 엄마들의 생각은 어떠셨는지, 간략한 느낌을 말씀해 주실까요.
물방울: 저는 우선 좀 놀라웠던 것 같아요. 그냥 뿌옇게 생각하고 있었던, 명확하진 않게 순간순간에 떠오르는 이미지로 그렸던 남편의 모습들이 있었는데, 그런 게 좀 확 드러나도록 썼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하면 ‘자기 모습에 대해서 되게 용기 있게 썼구나’, ‘자기를 많이 성찰한 글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자신도 겁쟁이라고 첫 글에 썼지만, 남한테 보여 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글로 솔직하게 표현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었는데 그 부분이 확 드러나 있어서 무엇보다 용기 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곰도리: 저는 오히려 청량리[진성일]가 글을 쓴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그동안 겸서 육아일기나 또 문탁넷에서도 이런저런 글들을 많이 썼던 걸 봐왔던 터였는데요. 청량리는 본인이 쓴 글을 보여 주는 걸 정말 너무 좋아하거든요.(웃음) 본인은 설레는 마음으로 밤새 쓴 걸 아침에 제가 읽어보게 식탁이나 이런 데 이렇게 놔둬요. 그러면 일어나서 기대에 찬 얼굴로 “읽었어?” 하면서... (일동 웃음) 그간 보면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글이건 아니건 간에 기본적으로 남편 글은 이렇게 약간 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소년 같은, 그러니까 재기발랄함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보면 되게 재미있고 약간 유쾌하고 술술 읽히고 그랬는데, 이번 글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보면서 내가 이 사람을 좀 억압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떤 프레임에 자기를 두고서 아빠 역할, 엄마 역할 이런 걸로, 본인이 부족했던 부분들을 가지고, 아빤데 엄마 역할을 못했다, 이렇게 쓴 대목을 보면서 자기를 가둔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어요. 제가 생활 속에서 본 청량리는 아빠와 엄마 역할에 제한을 두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글 속에서는 느껴지는 청량리는 스스로에 대해 부족하고 아쉬워하는 부분이 많구나 싶어서 미안하고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시간이 또 지나면 잊어버리고 자기 방식으로 지내지 않을까요? (웃음)
김: 저도 물방울 선생님 의견과 비슷한데 좀 명확해지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두루뭉술하게 이 사람이 나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거니라고 예측하고 있던 부분이나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한 거나... 물론 정군은 자기 자신에 대한 걸 자주 드러내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정리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은 확실히 들더라구요. 근데.. 참.. 저에 대한 거는.... 아, 좀 내가 그런 성향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훌륭한 사람인가….(웃음)
물방울: 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정말 할 말 많아!
곰도리: 정말 훌륭하시고!
물방울: ‘훌륭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이 말 나는 진짜, 그런 말 한마디라도 써 주지, 좀. (일동 웃음)
김: 아, 그게 아니라 저야말로. 평소에 내가 그렇게 억압을 했나... 싶어져서.. 조금이라도 나쁜 말을 쓰면 억압이 들어올 것 같았나? 아니면 너무 올바름을 강요했나? 제가 사주에 관이 좀 세서 약간 규격화돼 있는 걸 좋아하고 그렇게 가는 방향이 있는 건 사실인데 뭘 또 그렇게까지인가… 해서. (일동 웃음) 확실히 글로 쓰니까 정돈된다? 붙박혀진다? 이런 느낌은 좀 확실히 다르구나, 그런 생각은 들었어요. 게다가 또 정군 같은 경우에는 이전부터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런 본인 욕구도 있고, 제 바람도 있고, 또 주변에서 곰샘이나 이런 분들이 그전에 저희 블로그에 육아일기 썼을 때부터 정군한테 ‘어, 너는 이걸로 써서 작가를 하면 너무 좋겠다’고 그러신 게 있어서, 그렇다 보니 맨날 글 쓰고 나서 글이 너무 안 나온 것 같아, 막 이런 식으로 말하는... 제가 볼 땐 본인의 역량 안에서 충분히 잘 쓴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이 있었죠.
저는 글에 비친 엄마들의 모습을 아빠들의 글에서 보는 것이 글의 재미였던 것 같아요. 전에도 잠깐 말씀드린 적 있지만, 자룡샘과 물방울샘은 제일 친구 같달지 서로, 욕하시고…(웃음).
물방울: 정말로 저는 그 얘기 하고 싶어요. 육두문자는… 딱 한 번 써 봤고. (일동 웃음) 그 외에는 그냥 약간 제 말투가 좀 센 게 있어요. 남편뿐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든요. 그런데 남편이 느끼기에는 그게 항상 욕 같은가 봐요. 저는 책에서, ‘자기가 맞았다.’ 이런 표현을 할 때, 아~~ 이건 진짜 진실을 얘기하고 싶다! 제가 누구를 때려요! 제가 어떻게 그 사람을 때릴 수가 있어요? 그 덩치를? 그래서 아, 이 사람은 그냥 저의 말투의 에너지만으로도 그렇게 작아지고 있었구나, 라는 거를 이번에 새삼 느끼게 되더라고요. 제 말투가 좀 뭐랄까 미사여구나 친절하게 배려하는 말투가 아니다 보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보면 소비사회에 살다 보니까 과도한 친절? 그런 거에 알게 모르게 너무 익숙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거침없이 얘기하는 것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어요! 제가 육두문자는 딱 한 번! 썼습니다! 그리고 패진 않았다! 팰 수 있는 덩치가 아니다!
김: 저희는 두 분 보면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남미 커플 같다고 얘기했는데요….^^ 되게 열정적인 커플이시다,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곰도리: 술 마실 때 특히 그 열정이 뿜뿜하죠.
물방울: 왜? 난 취해 있어서 모르지...
곰도리: “조용히 해라, 그 입 닫아라!”
물방울: 아, 이런 말툽니다.
김: 아~ 좀 알 것도 같아요. 왜냐하면 물방울샘은 무인(戊寅) 일주신데, 자룡샘은 기토(己土) 일간에 기기 병존이야. 그러니까 되게.
몜:되게 세심하시겠네요. 저는 자룡 선생님이 되게 글을 솔직하게 쓰시고 표현을 너무 잘하셔서 되게 자기표현을 잘하시는 분이신 줄 알았는데 오늘 처음 뵀지만 너무 조신하시달까….
물방울: 네 그런 사람이에요. 조신하고 남한테 보이는 이미지 되게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진짜 글에 용기를 많이 낸 것 같아서 저는 그 부분만으로도 정말 글을 쓰게 해 주신 분들에게 넙죽 절하고 싶어요.
김: 문탁샘[이희경]이 받으셔야죠. 절은. 제가 이 책 기획을 말씀드렸을 때 바로 자룡샘을 떠올리고 추천해 주셨으니까. 또 원래 자룡샘이 글을 잘 쓰시니까 그렇게 하셨겠죠. 어쨌거나 사주를 보고 확실히 딱 느낌이 왔달까. 약간,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그 기운 배치가 너무 다르니까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다.
몜: 그럼 무토와 기토 이렇게 만나신 거예요?
김: 응, 무토와 기톤데 자룡샘은 아무튼 다 오밀조밀하고 이런 느낌이었고, 물방울샘은 다 되게 큰 막 양기운 막 발산하는 그런 기운이셔 가지고….
물방울: 아이 알림장도 제가 안 챙겨요. 남편이 11시에 들어와서 확인하고, 가방 다 쌌는지 확인하고.
곰도리: 좋은 거네!
김: 근데 그에 반해서 청량리샘이랑 곰도리샘은 뭔가 이렇게 균형감이 있다고 그럴까, 다 같이하시는 느낌이 되게 강했는데….
곰도리: 맞아요. 그런데 또 애기 키우고 하면서 글에도 나왔던 것처럼 둘이 서로 개인으로서 같이 만나고 이럴 기회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한테든 어디든 맡길 데가 없어서 단둘이 하루종일 어디 여행 가거나 이런 적이 아직까지 하루도 없어요.
물방울: 단둘이 여행을 가? 아~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거지?
곰도리: 당연히 그야 그렇지.
(일동: 어우~)
물방울: (손뼉 치며) 사랑한다, 사랑한다! 애정한다, 애정한다!
몜: 순간 그런 거 있죠? ‘단 둘이 자?’ 이런 느낌.
(일동 웃음)
물방울: 뭐, 충분히~ 낯설다.
곰도리: 그래서 뭔가 서로가 좀 그래 봤으면 하는 시간들이 오히려 우리는 좀 필요하긴 한 것 같아요. 애기들이나 뭐 서로 할 일이 많아서 그러다 보니까 일 중심으로 뭔가 얘기가 되고, 오히려 저도 그래서 물방울샘 부부 싸우는 거 보면 부러울 때도 있긴 해요. 저희가 또 성향상 싸우진 않아요. 확 부딪치지 않고 각자 생각하고, 내가 봤을 때는 내가 지금 현재 마음이 어떻고 저떻고 이렇게 말을 하지,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확 화이팅해 버리고 그렇게 끝내는 게 가끔은 부러울 때도 있죠.
물방울: 글에 마녀로 그려지면 돼. 마녀로 그려지면 할 수 있는 일이야.
김: 아니에요. 선생님. 자룡샘이 전혀 그렇게 쓰시지 않았잖아요. 맞다! 처음 만났을 때 물방울샘의 복장, 또각또각 하이힐과 배꼽티,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물방울: 쑥스럽다.
김: 그리고 그런 얘기도 자룡 선생님만 쓰셨잖아요. 내가 이 여자를 꼬시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
곰도리: 그러게. 맞아요. 청량리는 그런 얘기 너무 별거 없었어.
물방울: 그걸 쓰기 조금 부끄러워했던 것 같아.
곰도리: 그런 게 좀 의외였어.
김: 청량리샘과 곰도리샘은 고교 동창이셨다가 우연히 같은 대학의 고교 동문회에서 만나셔서 친구로 한참 지내시다가 결혼을 하신 거였죠.
곰도리: 네.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되게 밋밋하게 하지 않고 나름 연애도 재밌게도 했는데. 글에선 정말 너무 무미건조한, 약간 시작부터 왠지 뭔가 서로 갱년기 부부처럼 (일동 웃음) 그렇더라고.
김: 아무튼 물방울샘과 자룡샘 커플의 그런 다이내믹함은….
곰도리: 부러웠어요.
김: 네, 저도 부러웠어요.
물방울: 아, 가방을 쌀 때 모습을 이 사람들이 봤어야 했는데.... 이따만 한 가방을 끌고 오더니 애한테 “아빠 이제 안 들어와!” 이런 걸 보고 속이 터져 보시죠. 애한테 저런 얘길 왜 하나….
김: 근데 진짜 그때 들어올 땐 어떻게 들어오신 거예요?
물방울: 그러니까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김: 그렇게까지 하고 나가셨으면 들어오실 때 어떻게 들어오셨을지 궁금하던데요....
몜: 돈 떨어지면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물방울: 저희 남편이 정말 쉬운 스타일이 아니에요. 예컨대 “당신 참 잘했어” 이렇게 얘기를 하면, “나를 평가하려고 하지 마” 이렇게 말하는, 약간 뭐 이런 스타일이에요. 자기모순도 많았고요. 글에도 나와 있잖아요. 진보적인 모습과 가부장적인 모습, 이런 게 다 섞여 있어서. 신혼 초에 되게 황당했던 건 청소를 너무 안 하는데, 글에도 청소 얘기 나오잖아요, 청소를 너무 안 하니까 제가 어떻게 좀 같이 해보려고 “해주세요” 하기도 해보고, “해!” 하기도 해보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죠. 그런데 “해!”라고 하면 안 하고, 왜냐하면 명령이니까 안 하죠. “해주세요” 하면 “나는 여성이 보호본능 일으키면서 얘기하는 스타일 너무 싫다”,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뭘 하나 말하기가 되게 어려웠어요. 어쩌면 제가 하는 말이 거의 잔소리라 아무말도 듣기 싫었는지도.... 남편은 잔소리를 전혀 안 해요. 아마 그 이야긴 저에게도 그러지 말라는 신호일 텐데 저는 그런 거 고려하지 않고 이야기하거든요, 아마 집을 나갔던 그때도 그랬던 거 같아요. 그리고 한 5일쯤 지난 후 어느 술집에서 카드 쓴 게 문자로 오더라구요. 그 때가 책에서 나오는 (강력한 충고를 해주는) 친구랑 술을 먹었던거 같은데... 그 다음날인가... 술먹고 돌아다니는 게 걱정이 돼서 ‘들어와요’라는 문자를 보냈죠. 그랬더니 저녁에 들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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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부모상이랄지 어떤 아빠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는지
김: 다음으로 넘어가서, 이런 게 있으실지 어떨지 사실 모르겠는데, 엄마들이 바랐던 아빠의 모습이랄지 부모로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다랄지 이런 생각 정도는 임신 기간에라도 해보시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막연하게라도 애들 아빠의 모습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으신지... 어떠셨나요?
물방울: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사실은... 그러니까 되게 무지했고 정직하게 말하면, 부모가 될 준비라든가 그런 거에 대한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김: 자룡샘 글을 보면 두 분 같은 경우는 아이를 갖는 것보다는 몇 년 그냥 같이 신나게 세계여행하시는 그런 계획을 세우셔서….
물방울: 애를 낳을 생각도 없이, 그냥 엄마가 됐죠. 근데 임신할 때까지도 저는 일을 했었기 때문에 육아를 담당하면서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안 했어요. 아이가 나온 다음부터가 굉장히 힘든 하루하루였죠. 어떤 남편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있었는데 어떤 아빠면 좋겠다는 모습은 상상해보지도 않았어요. 당연히 저도 어떤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아이만 낳으면 다시 강사로 일하는 사람으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뿐이었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아빠의 모습을 뭐 추구하는 것도 없고, 나도 추구할 게 없고 그냥 아이가 나오면 나는 예전과 똑같이 살 거라는.... 정말 무지했었죠. (웃음)
그래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는 이제 그런 삶을 못 사는데, 너는 그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그런 걸로, 그래서 너도 똑같이 아이를 낳았으니 똑같이 봐야 되지 않겠냐, 라는 말로 계속 얘기를 하다 보니 갈등이 벌어지고 그랬던 것 같아요.
김: 또 자룡샘은 그때 막 돈 열심히 벌어다 줘야지,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안 보셨다고….
물방울: 그것밖에 없었고, 그게 또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 거겠죠. 빨리 좁은 집에서 벗어나서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게 그랬던 것 같고. 저는 또 저 나름대로 그랬던 것 같고. 그래서 그 시기가 저희한테는 정말 오랜 갈등 아니야 뭐지? 되게 큰 갈등이었는데, 그 시간이 나에 대해서 좀 많이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어쨌든지 이런 공간에 이르게 한 게 아닌가 저는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김: 지금은 어떤 아빠였으면 좋겠다 생각하시는 게 있나요.
물방울: 지금은 뭐... 네... 이상적인 아빠 모습 비슷한 건 있었지요. 궁둥이가 너무 가벼워서 아이 일에 엄마 손보다도 아빠 손이 먼저 갔으면 좋겠고, 아이의 마음도 잘 도닥거려 줬으면 좋겠고, 공감 능력이 좀더 많았으면 좋겠고... 그러니까 애가 아파도 이렇게 TV 보면서 어, 아팠어? 이러고 있을 때 좀 그렇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냥 자기를 잘 다스리면서 아이와 같이 잘 살려는 마음을 가진 아빠면 좋은 것 같아요.
김: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혹시 바라는 게 있으신가요?
물방울: 어우, 많죠. 제 손에 좀 물 좀 마르게 했으면 좋겠고.
김: 아, 자룡샘 요리 같은 거 만드는 거 좋아하시고 하셔서 주방일 같은 거 잘하시지 않아요?
물방울: 뒷담화하는 자리 맞죠?
김: 네네. (일동 웃음)
물방울: 아니, 요리를 잘할 줄 아니까 어떻게 보면 제 영역이 없는 것도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이를테면 부엌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면 밤에 일하고 들어와서 배고프다고 해도 ‘이만큼 먹어’ 하고 끝내면 되잖아요. 그런데 본인이 잘하니까 밤 12시에 와서도 스테이크를 굽는 거예요.
김: 헉. (웃음)
물방울: 그러면 그 난리 난 식탁을 다음 날 아침에 닦을 때는 기분이 당연히 좋지는 않죠. 안 좋고 그리고 식재료나 이런 것들이 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사올 때도 있거든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고, “이거 누가 다 먹냐? 당신이 사실 일주일 내내 집에서 밥을 먹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이제 먹는 것 가지고 뭐라고 그런다고 삐지고, (웃음) 그런 일들이 반복이 되었죠, 계속. 저는 이게 제 영역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러니까 이를테면 저는 8시쯤에 주방 퇴근을 하고 쉬고 있으면, 요샌 좀 덜한데, 옛날 같은 경우에는 말많이 하고 와서 배고프니까, 12시에 스테이크를 굽고 있으면 진짜…. 불쇼하면서 막. 여기서는 이제 ‘그래 잘한다’(박수 짝짝짝) 하다가 아침에 기름때를 닦고 있으면 막... 속이.... 타죠.
김: 정리하는 것까지 하라고 하시면 되지 않나요...?
물방울: 정리하는 거 싫어하는 걸 또 아니까. 제가 좀 말을... 글에도 써 있잖아요. 자기는 그렇게 털털한 사람. 털털하기만을 되게 바랄 거예요, 아마.
김: 그러시구나. 그래서 그런 부분 같은 걸 보면 정군이 자룡 샘이랑 좀 비슷해 보여요.
곰도리: 아, 정군도 음식하는 걸 좋아하세요?
김: 네, 음식하는 거 엄청 좋아하는데, 진짜 주방환경만 허락했으면 당연히 이 양반도 불쇼를 밤 12시건 1시건 막 했을 거예요. 근데 저는 연애 때부터 요리할 때 치우는 거를 엄청 잔소리를 해 가지고... 지금은 얼추 치우면서 요리를 하거든요. 진짜 그걸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치우는 걸 안 하나 봐요.
물방울: 응, 그런 가 봐요.
곰도리: 아, 이런 건 또 저는 전혀 못 느끼는 새로운 영역이에요. 청량리는 완전 반대라 집에 별로 먹을 게 없는 걸 가지고 불평을 하진 않아요. 그런데 냉장고에 오랫동안 박혀 있던 어떤 식재료들이 있으면, 음식을 간만에 하겠대요, 본인이, 음식하는 걸 즐겨하진 않거든요. 간만에 하겠다고 그러면 뭔가 사다가 맛있는 걸 사다가 해서 먹는 게 아니라 오래 박혀 둔 냉장고 이참에 한번 정리를 해보자 이런 식의 음식을 해요.
물방울: 내가 그래 내가(일동 웃음). 오늘은 맛있는 걸 해주겠어, 이러면 냉장고에 뭐 있나~.
곰도리: 근데 이제 저 같은 경우 제가 음식을 늘, 아무리 맞벌이를 하더라도 반찬을 하진 않거든요. 제가 그렇게 하다가 간만에 남편이 해주는 뭔가가 저 냉장고 박힌 데서부터 뭐가 있나, 이거를 들이밀면서 찾아서 하고 그리고 주로 음식의 기준은 저거를 얼마나 많이 소화할까예요. 상한 것만 아니면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맛보다도 일단 얘를 먹어야 된다. 그걸 가지고 음식을 딱 차렸을 때 되게 본인은 기쁜 거예요. ‘내가 저거 냉장고를 다 정리했어!’ 근데 이 식탁에 앉는 제 마음은 ‘어우, 도대체 어떤 음식일까?’ 이런 게 아니라 ‘하아’(한숨). (웃음)
물방울: 그렇구나 나도 그렇게 음식하는데….
곰도리: 근데 우리가 또 그렇다면 뭔가 먹을 때 힘을 주거나 그럴 때가 사실 저도 막 사다가 쟁여놓고 이렇게 잘 안 해요. 그냥 있는 기본 반찬에 이렇게 먹는데, 간만에 남편이 하는 그 특식이 저기서 나온 그런 음식이므로 주로 국적 불명의 흔히 섞일 수 없는 어떤 재료들을 가지고 그걸 막 버무려 섞어요. “왜 이걸 두 개 같이 다 섞었어?” “있길래.”
김: 어, 진짜 요리에서도 되게 창의적인….
곰도리: 그리고 남편은 여행을 가더라고 음식이 새로운 걸 되게 즐겨 해요. 그러니까 이렇게 구석에 박혀 있는 낯선 조합을 섞었을 때가 신기한 세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먹어 봐~” 이건 진심이에요. 근데 저는 낯선 세계를 그렇게 즐기면서 가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 세계로 막 기쁘게 초대하는데 제 마음은 기쁘게 못 가니까, 그래서 이렇게 남편이 음식한다고 그러면 이게….
물방울: 내가 할게.
곰도리: 내가 하면 어떨까, 그렇게 되더라구요.
김: 아빠에 대한 생각은 어떠셨어요?
곰도리: 오히려 저는 애기 가질 때보다 결혼할 때가 개인적으로 갈등의 지점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저는 경제적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위해서 어떤 준비와 그림을 그려야 마음이 편한데, 남편은 경제적·사회적 안정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이에요. 어떤 일을 하든지 지금 여기에서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면 괜찮아. 그런 사람이죠. 크게 욕심이 없는. 그래서 결혼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그걸로 제가 괴로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맘으로 결혼하는 것이 맞을까 질문하게 되었죠. 그리고 우연히 그즈음 참여하게 된 수련 프로그램에서 그런 맘이 좀 해결되었어요. 결혼하면서 남편에게 뭘 받으려는 맘이 있어서 괴로웠구나 알게 된 거죠. 그걸 알게 되니 맘이 좀 놓이더라구요. 바라지 않으면 되겠구나... 혹은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도록 노력해야겠구나! 근데 그런 맘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죠? 암튼 그걸 알게 된 것이 좋아서 남편에게도 수련 프로그램을 권하고 매일 아침에 같이 108배 기도를 했어요. 그래서 신혼 혼수품 이불 맞출 때 ‘저희 기도방석 요거 2개 해주세요’라고 그리고 ‘제일 심플한 천으로 해주세요’ 그랬는데 왜 번쩍번쩍이는 그런.(일동 웃음)
물방울: 집중 안 되는!
곰도리: 그래서 거기서 둘이 거기서 기도하면서 염주 돌리면서 그렇게 지내면서….
김: 아니, 이렇게 경건한 커플이!
물방울: 너무 대비된다. (일동 웃음)
곰도리: 애기 낳았을 때는 그냥 기다리다가 오히려 계획적으로 낳았기 때문에.
김: 되게 계획을 딱딱 세우신 걸로 청량리샘 글에도 나오지요.
곰도리: 네 맞아요. 계획적으로 낳은 거라. 애기 생기고 나서는 오히려 어떤 부모가 될까 이런 것보다는 저희가 계속 약간 어떻게 자기가 갖고 있는 각자 고민들? 어쨌든 기도하면서 그런 마음들이 좀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오히려 저도 남편의 그런 성향을 모르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해서 남편이 애를 보는 모습을 보니까 저는 오히려 제가 ‘아 내가 되게 내 중심적이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예컨대 같이 밥을 먹거나 하더라도 오히려 조금 저와 다르게 애를 보다가 밥 먹을 때가 되면 남편은 애를 일단 먼저 안아요. ‘너 먹어.’ 이게 약간 이 사람은 되는 사람이에요. 저는 그걸 먹고 그러고 나서 남편을 보게 되고. 그리고 밥을 차리거나 하더라도 남편의 그런 부분들이 오히려 조금 내가 저 사람 입장이었으면 내가 저렇게 했을까? 저는 오히려 제가 너무 배가 고프면 내가 일단 먼저 먹었으면 좋겠다. 회사 갔다 오면 좀 그러고 싶잖아요. 그리고 아이랑 노는 부분에 있어서도 전 약간 조금 더 생각이 이런 것들은 여기까지야, 안 돼, 이런 생각인데, 청량리는 체력도 되고 하니까 데리고 나가서 그냥 무작~정 산책하는 거 이런 거 두세 시간 있잖아요. 전 지치거든요. (일동 : 우와) 그 뒤꽁무니를 쫓아다녀야지, 그만 가자 막 이렇게 끄는데 청량리는 약간 그런 것 자체가 아까 그러니까 낯선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 자체가 호기심인 거예요, 그 사람은. 애 키우는 데 있어서도 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좋긴 한데, 이제 경우에 따라서는 아까 그 이제 하다못해 애들을 데리고, 그러다 보니까 문탁넷 같은 데 활동을 해서 들어왔잖아요. 거기가 엄청 또 낯선 세계잖아요. 얼마나 호기심이 발동했겠어요. 집은 대강 이제 해놓고 가는 거고. 그렇게 하거나 아니면 지금 같은 경우도 주택에 살지만, 이게 주택이 좋아서 들어온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집에서는 진짜 실리콘을 발라야 할 만큼 여기가 타일이 둥둥둥둥 떠 있더라도 문탁넷에 가거나 고물상 가서 시설 수리하고, 맨날 영상 만들고 이렇게는 하는데, 그게 어려운 거죠. 저 다락에 있는 짐 좀 내렸으면 좋겠다는 게 이번 올해 내내 하는 얘긴데….
물방울: 그걸 할 수 있는 남자라는 것도 되게 좋은 거야, 근데.
곰도리: 어떤 거?
김: 수리를 할 수 있고 그러신 거요.
곰도리: 최근 들어서는 그거를 바라면 내가 불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할 줄은 아는데, 바로 해주는 게 아니에요. 시간이 없어요. 밤에 영상 만들어야죠, 문탁넷 가야죠, 강의 들어야죠, 회사일 해야죠. 얼마나 바쁘겠어요. 그러니까 나중에는 내가 저거를, 실리콘 쏘는 법을 내가 배워야겠다, 저기다 맡겼다가는 안 되겠다, 오히려 그런 마음이 들어서 웬만한 것은 주문하거나 대강 제가 해요.
물방울: 존경스럽습니다.
곰도리: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컬러가 완전 달라서. 정군은 잘하세요?
김: 네, 손재주가 좋아서. 손으로 뭐 하는 거 엄청 좋아하고, 잘해요. 손이 야무져요. 어제 안 그래도 같이한 얘기가 저는 진짜 손이 똥손이거든요. 근데 똥손을 저는 꼼꼼한 성격으로 메우고 정군 자기는 성격이 헐렁해서 다 빵꾸나는 걸 금손으로 메우고 있다고. 그 얘길 하는데 듣다 보니 왠지 설득이 되는…. 진짜 성격이 너무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1부터 10까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되고 그러면 언제까지 이거를 다 꼭 해야 돼. 머릿속에 안 하려고 해도 타임테이블이 쫙 그려지는 스타일이라면, 정군은 그냥 전날까지 아~무 생각이 없어요. 지금은 좀 되게 노력을 하는데 선천적으로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괴로워하죠. 질문으로 돌아가면, 저 같은 경우에는 결혼할 생각도 없이 말씀드린 대로 애기부터 가졌으니까, 물론 이 정도 사람이면 애를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사실 아빠 없이 키울 생각도 충분히 얼마든지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물어는 봤죠. 만약에 애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 했는데 너무 뜻밖에 키우지 뭐,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요만큼이라도 싫으면 얘기를 해라, 당신이 친권포기각서만 쓰면 나는 얼마든지 애를 혼자 키울 생각이 있고, 할 수가 있다고 그랬는데, 너무 뜻밖에 자기가 할 수 있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 그래? 이렇게 해서 시작이 된 거라, 특별히 뭐 아이 아빠에 대해서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랄지 그런 건 없었는데 이거 하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 앞에서 부모가 언성 높이며 싸우지 말자는.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이건 생각했던 건데, 부모님들이 다들 싸우시잖아요. 저희 부모님도 나중에 제가 커서 보니까 그렇게 심하게 싸우신 편도 아니었던 건데, 아무튼 저는 어릴 때 두 분이 싸우는 게 너무 싫었던 거예요. 제 앞에서 서로 거의 막 잡아먹을 듯이 싸우신 게 몇 번 안 되지만 저한테 너무 강렬하게 남았고, 저희 엄마한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딱 한 번 어렸을 때 왜 안 싸우면 안 되냐고 얘길 했더니 저희 엄마께서 다들 그러고 산다, 니가 몰라서 그렇지 다들 싸우고 산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한편으로 다들 그러고 사나 보다 했는데, 대학 때 만난 친구 집에 갔는데, 걔네 부모님은 서로 존대하시고 너무 다정하신 거예요. 게다가 그 친구는 부모님이 싸우는 걸 평생 한 번도 본 일이 없다는 거예요.
물방울: 캬~.
곰도리: 진짜 드문 경우다.
김: 그쵸? 근데 그때는 또 어릴 때라 그게 드물다는 걸 모르잖아요. 아니 이런 부부가 있었어! 한 번도 싸움을 안 하는 부모가 있는데!
물방울: 우리 때는 특히 더 드물지 않아요?
김: 그렇죠. 아무튼 엄마는 다 그러고 산다더니 안 그런 사람도 있었구나, 하면서. 그 부모님 모습이 어렸을 때 굉장히 예민하게 딱 온 거라서. 그때도 결혼을 할 생각은 없긴 했지만, 사람일은 모르니까 만약에 어쩌다 하게 되면 애기 앞에선 절대 싸우지 말아야 되겠다, 그게 제가 아주 옛날부터 생각한 거였고 그래서 애기 낳을 때쯤 돼서 애 아빠랑 우리가 절대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 두세 가지 정도 얘기한 것 중에 그게 있어요. 아기 앞에서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지 말자. 의견대립이 예상할 수만 있는 건 아니니까 애 앞에서 혹시 대립하게 되는 경우도 있긴 할 텐데, 어쨌든 소리를 지르면서 싸우지는 말고, 의견이 다르다는 걸 얘기하자. 그리고 그런 대립이 있을 때 보통은 남자가 더 버럭 하는 성향이 강하잖아요.
물방울: 컥컥.(일동 웃음)
김: 아, 네... 보통은. ^^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못 참아서 언성이 높아지거나 버럭 했을 때는 애 앞에서 서로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는 것이 제가 부모로서 우리가 꼭 지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였어요.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 제가 아빠를 어릴 때부터 별로 안 좋아하고싫어했던 기간도 꽤 길었고... 했으니까 저희 딸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잘 몰랐지만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딸이니까... 아들이었으면 또 생각이 달랐을 것 같기는 한데. 물방울 선생님은 어떠셨어요? 아들만 있으신 거니까.
물방울: 저는 지금 얘기하다 보니까 아빠로서는 별로 생각은 안 했는데 남편으로서는 싫은 사람은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를 닮지 않은 사람. 약간 정반대~의. 아빠, 아버지 특유의 눈빛 있잖아요, 눈빛이나 이런 목소리로 제압하려고 하는. 근데 (속삭이며) 제가 그걸 좀 닮았더라구요. (일동 웃음) 싫다 하면서 닮아 가지고 요새 정말 많이 느끼고 있어요.
곰도리: 훌륭하다! 그래도 그걸.
김: 그걸 느끼셨잖아요. 진짜.
물방울: (감정이)올라올 때 보면 사람이 나도 모르게 이 사람을 이기고 싶은 아무리 아들이지만 훅 올라올 때 제가 보면 아이들을 제압하려고 할 때 저의 모습을 보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고 ‘으허’ 이런 표정 있잖아요. 이걸 하더라구요. 이게 싫었기 때문에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김: 근데 전혀 안 그러시지 않아요 진짜?
물방울: 전혀 안 그런 줄 알고 사실은 결혼을 했는데,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남성들도 배우고 자란 게 있었던 건데 너무 그걸 안 보여 줬었던. 제가 안 보려고 그랬던 걸 수도 있죠.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안 보려고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안 봤, 못 봤던 거예요, 제가. 근데 그게 확 드러나게 됐을 때는 정말 저와 갈등이 또 시작되지요. 근데 찬결이도 그래요. 아무리 집에서 아빠랑…, 뭐라고 그래야지 평등하지 않은 언어라든지 이런 거는 주로 사용하지 않거든요. 남자는 그래도 돼, 남자는 씩씩해야 돼, 이런 말 진짜 한마디도 안 하고 키웠는데도 불구하고.
곰도리: 있죠.
물방울: 네, 있어요. 그러니까는, 많이 있고. 아, 이런 면모가 다 있는 거구나. 제가 키우고 싶다고 그렇게 키워지는 건 좀 아닌 건 같아요.
아이들에게 아빠는 어떤 사람인지
김: 곰도리 샘은 어떠세요? 아드님 따님 다 있으시니까, 아빠에 대해서. 아, 자연스럽게 세 번째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애들이 아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은지.
곰도리: 뭐, 그냥 정말 좋은. 놀 때는 엄마보단 아빠가 더 좋고, 좋은 친구 같고, 그런 느낌이긴 한데 둘의 성별로서보다는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근데 캐릭터로? 겸서는 좀더 예민한 성향이고, 그게 성별로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근데 둘의 캐릭터로 봤을 때 그냥 아빠는 어쨌든 좋은 친구, 그냥 애들한테는 훨씬 더 그런 느낌이.
김: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그러니까 보호자? 더 이런 느낌인가요, 애들한테?
곰도리: 근데 아빠가 대신 그런 건 있죠. 버럭 할 때가 오히려 청량리가 조금 더 있기도 해요. 그리고 표현할 때 야 이건 진짜 아니다 싶은 부분들에 있어서 훨씬 더 이렇게 확 단호하게 애들한테 모아서 얘기할 때가 있고,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조근조근 말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는 이제 이럴 때는 예를 들어 놀 때는 아빠가 좋고, 혹은 뭔가 이야기할 때 아빠가 이렇게 어떤 상황에 불편한 부분에 대해서 엄마가 그냥 조근조근 말해 주는 게 훨씬 더 좋을 때가 있고. 그런 거? 그런데 아빠는 그렇게 딱 말하고 한번에 딱 퉁치고 그다음엔 어떻게 어떻게 분위기 전환해서 새로 뭔가를 할 때는 아빠가 훨씬 더 깔끔하고 좋고 엄마는 여전히 그거 가지고 하고 있나 안 하고 있나 이러고 있고. 그런 차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김: 그럼 애들한테 기본적으로 아빠는 좋은 놀이친구인가요?
곰도리: 음, 놀이친구이기도 하고…, 놀이친구로만? 어쨌든 여러 의미의 친구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놀기만 하는 친구 말고도 어쩔 땐 나이가 많은 어른이기도 하지만 책 읽으면서 하고 있는 대화에서도 청량리가 생각하는 어떤 이렇게 살면 좋겠다, 문탁에 대한 안내도 사실은 겸서는 천자문 싫어해요. 그런데 너는 묻고 따지지 않고 여긴 가야 되는 거야 너가 엄마아빠 부모로 태어난 이상. 그런 것들에 있어서는 어쨌든 안내를 해주는 그런 친구이기도 한 거예요.
김: 찬결이는 아빠에 대해서….
물방울: 찬결이는 정말로 아직까지 아빠가 짱! 그런 게 있어요. 아빠처럼 되고 싶고 약간 그런 게 있어요. 뭘 물어볼 때도 엄마한테 잘 안 물어봐요.
곰도리: 어, 엄마 아는 게 오히려 더.
물방울: 아까 얘기했죠. 그렇게 키운다 하더라도 잘 안 된다고
곰도리: 아~.
물방울: 그리고 말하는 성향도 좀 달라요. 저는 ‘약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고..’ 이렇게 얘기하면 자룡은 ‘몇 만의 인구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렇게 얘길해요. 수치나 예시를 들어 이야기하면 설득력이 훨씬 더있어요. 근대적인 인간들한테는. 저의 말투보다 훨씬 더 신뢰가 가는 말을 구사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말을 못하고, 게다가 기억력까지 좋지 못해서 임시, 임기응변 막 지금 나오는 언어로 이렇게 얘길 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찬결이는 아빠의 언어를 되게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니까 승률이라든지 통계자료라든지 그런 것들 계속 아빠와 정보를 교환하고 이러는 거를 좋아하고 어떤 선수에 대한 기록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아빠가 알고 있으니까 그런 얘기하는 걸 너무 좋아하고, 아빠가 최고, 잘하는 사람이죠. 저런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약간 이런 게 있어요.
김: 겸서도 그런 시기가 있었나요? 애기들이 아빠에 대해서 그런 시기가 좀….
곰도리: 아빠처럼 되고 싶고, 아빠가 최고, 겸서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건 아닌데 교감할 수 있는 것들은 되게 많죠. 겸서도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고, 아빠도 이야기할 때 도화지 이렇게 있잖아요. 그럼 여기다 그림을 그리면서 서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게 그리려고가 목적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거죠. 그리고 이 그림에 대해서도 서로의 그림들을 되게, 남편도 겸서의 그림을 좋아하고 겸서도 아빠가 그리는 게 신기하고. 뭐, 그렇게 세계를 같이 공유하거나. 아니면 겸서가 하는 오락 같은 경우도, 남편이 되게 오락하는 거 은근히 화장실에서, 핸드폰 이 작은 거 2G폰이거든요. 이걸 가지고 하고 있어요. 그걸 좋아하면 또 겸서는 아빠한테 물어봐. 그럼 아빠도 그걸 막 알려 줘. 그렇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아빠와 자신의 세계에 대해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편해 보여요. 아! 그런데 아빠가 건축가로 우리 집을 지은 것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함이 있어요. 여행 갔다가 돌아오거나, 휴일에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문득 이 집이 얼마나 편안하고 안락한지, 얼마나 잘 지은 집인지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서로 이야기하거든요. ‘집’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이걸 우리 아빠가 그리고 만들었다! 하는.
김: 갑자기 찬결이 그 얘기가 생각나네요. 놀이터에서 우리 아빠는 되게 잘 먹어서 키도 크고 뚱뚱해. (일동 웃음)
물방울: “우리 아빠는 많이 먹어서 그래!”(일동 웃음)
김: 근데 정군이 전에 한번 얘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나서 여쭤봤던 건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자기 아빠가 최고로 똑똑하고 제일 힘도 세고 그런 존재로 생각을 했다가 그 아버지 상이 허물어져 가는 과정을 되게 상세히 기억을 하고 있더라구요, 수빈이아빠 경우에는. 그래서 아, 그런 과정이 남자애들에게는 있는 건가..? 저 같은 경우는 그런 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물방울: 가족 중에서 롤모델이 저는 없었기 때문에….(웃음)
김: 네, 하하. 그래서, 남자애들의 성향이라는 게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었어요. 참 곰도리샘 한서는 일간이 뭐예요? 기억 나세요?
곰도리: 네, 임수 아니고
물방울: 수는 수야?
곰도리: 계수 계수.
몜: 어머, 계수 여자.
김: 제 페이보릿 일간 중에 하나 제가 좋아하는.
몜: 을목이셔서 그렇죠. 저는 아까 한서가 되게 키가 큰 애기? 그러니까 연령은 아직 어린데 키가 큰 건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아빠한테 그렇게 찰싹 달라붙어 있고, 초등학생 정도 아빠가 책을 읽어 주고 그러는 거 같지 않아서요. 그런데 아까 청량리 선생님이 이렇게 책을 읽어 주시고.
곰도리: 한서가 글을 아직 더듬더듬 읽어요.
몜: 아니 글을 알고 모르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빠들은 애가 책을 보면 보나 보다 하지. 아빠가 이렇게 무릎에 초등학생 딸아이를 앉혀 놓고 이렇게 읽어 주진 않지 않나요...?
물방울: 둘이 엄~청 사랑해요
몜: 네, 그런 느낌이 딱 들더라고요. 또 하나 너무 놀란 게, 아까 정군이 그런 얘기했잖아요. 엄마들이랑 아빠들 모여 있는 거 보면서 뭐 주변부와 중심부가 이렇게 달라진다고 그러니까 한서가 대번에 일어나더니 아빠 옆으로 가서 ‘여기서 뭐해’ 이렇게 챙기는 걸 보고, ‘그래 저런 집도 있구나’.(일동 웃음)
김: 진짜 청량리 샘처럼 저도 그런 경우는 잘 못 본 것 같아요…. 특히 딸아이가 그러기가….
물방울: 한서가 되게 엉뚱한 매력이 있어요. 겸서랑 또 다른 매력을 가졌는데, 어쨌든 간에 애인데도 되게 철학적이기도 하고 놀랄 때가 많아요. 방과후 교실을 같이하니까 같이 이동할 때가 많은데 그때 하는 얘기가 ‘엄마도 크고 있어요’ (일동 웃음) 막 이런 얘기, 무슨 얘기하다 보면 ‘할머니도 크잖아요, 사람인데’ 이렇게 얘기할 때가 있어요. ‘우린 늙어 가지고 아파’, 막 이러면, ‘크고 있어요’, 이렇게 얘길 하고. 저는 그런 얘기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아, 우리는 자꾸 우리의 부정적인 면을 보는데 한서 눈에는 진짜 그렇게 보이는구나, 되게 사랑스러워요, 진짜.
김: 진짜 심쿵하는 말이네요, 선생님.
곰도리: (심드렁) 그러네요. (일동 웃음)
물방울: 그래 ‘넘’의 입을 통해서 들어야지 이게 내가 본 걸로는 잘 성에 안 차지.
김: 찬결이는 뭐 좋아해요? 과목 같은 거.
물방울: 수학 좋아하고
김: 맞다 수학 좋아한단 얘기.
물방울: 야구 좋아하고, 기본 숫자와 이렇게 규범에 딱 맞는 답이 나오는 걸 좋아해요.
김: 아~ 명쾌하다거나.
물방울: 네 명쾌하죠, 그래서 신화적인 얘기거나 이런 이야기 안 좋아해요. 남편도 사주 이야기할 때 ‘아이고, 대따 두루뭉술하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잖아’, 이런 게 있거든요. 되게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죠. 언제가 제가 ‘이렇게 좀 아플 때는 햇빛에 나가서 명상하면 좋대 여보,’ (그러면) 뭐래냐 (웃음) 찬결이도 약간 그런 기질이. 제가 약간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되게 ‘이 허무맹랑한 아줌마는 뭐래냐’ 이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죠, 엄마를 아주.
김: 그렇구나. 정말 기질이 다르네요.
물방울: 그런데 한서랑 겸서는 저는 되게 놀랐어요. 겸서네 집에 갔는데 김밥을 먹었거든요. 찬결이랑은 제가 뭐 먹는 걸 가지고 약간 장난치고 싶어도, 엄마 그렇게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면 응 그래 하고 입에 딱 넣어 주고 마는데, 겸서는 김밥을 입 근처에 가지고 갔다가 뺏더니 후릅후릅 이러는 거예요, 바로. 어머, 이런 애가 있었네! 내가 딱 원하던 애야! 그랬더니 옆에 있던 곰도리 샘이 “살아 봐~”.
곰도리: 청량리가 애들 어렸을 때부터 장난을 많이 쳤는데, 그래서 저는 약간 좀 불편했던 게, 일테면 베개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러면 애기가 이렇게 몇 번 이렇게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퉁 치는 거예요. 그럼 애가 예측 못할 때 쿵 넘어지잖아요. 까르르르 웃어요.
김: 그런 거 좋아하죠 애기들은.
곰도리: 여기까지 되게 좋죠. 근데 모든 놀이들을 그런 식으로 해요. 그러니까 겸서가 어린이집에 가서 애들을 보고서~ (일동 웃음) 이때부터 분란이 생기는 거예요. 얘는 분명히 이게 놀인데, 당한 아이 입장에서 봤을 때는 지금 사인을 안 주고 나한테 뭐하는 짓이야, 이제 이렇게 돼서 늘 어린이집 갈 때마다 (물방울: 단도리를) 네, 죄송합니다. 아빠도 이제 죄송해요, 이제 다르게 놀겠다고 얘기하는데 근데도 청량리는 그게 잘 안 돼요. 어떤 순간이건 모드 전환이 사인 없이 갑자기 놀이로 확 전환이 되니까, 제가 경고 주거든요. 지금 이렇게 하는 건 아니라고. 아, 맞다, 맞다, 이렇게 얘기가 돼서. 진짜 밥 먹든 뭘 하든 갑자기 장난이 치고 이러는 게 계속되다 보니, 그래서 겸서도 좀 힘들었죠. 사회생활하기가. 자기의 말 걸기 방식과 타인의 말 걸기 방식이 너무 달라서요.
물방울: 정말 다른 애예요. 겸서랑 찬결이는. 매번 볼 때마다.
곰도리: 겸서는 이야기 짓거나 이런 거 되게 좋아해요. 규율에 맞는 답을 찾는 것보다 이 답을 자기는 신경도 안 써요. 누가 뭐라는 답보단 자기가 만든 어떤 세계가 좋아요, 자기가 창조하는. 그리고 과학이나 저는 이제 과학 교사니까, 제가 좋아하니까, 뭐 영상이나 이런 것도 보거나 하게 되면, 예를 들어 우주 같은 경우 상상을 넘어서잖아요. 마블을 좋아하다 보면 우주 같은 영상들을 보거나 블랙홀 이런 걸 보면은 되게 막, 와, 어떻게 저런 게 있느냐. 그러니까 정해진 답을 가는 것보다는 기존의 생각하던 것들이 딱 깨졌을 때 이럴 때 되게 어떤 희열 같은 것도 느끼고.
물방울: 그러니까. 자룡은 심지어 그런 영화 자체를 아예 안 봐. 마블 시리즈 같은 이런 거 전혀 안 보거든요, 현실성이 없다고 그런 세계를 아예 접근을 안 하는데, 찬결이도 비슷해요. 형아들 따라서 다니는 거지 자기가 재밌어서 다니는 건 전혀 아니에요. 그러니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는 아예.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얘기잖아’, 이렇게 딱 치부해 버리고 말아요.
아빠들이 글을 쓰면서 보인 변화가 있는지
김: 아빠들이 글을 쓰면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변화랄지, 의외의 모습이랄지….
물방울: 저는 되게 좋았었던 것 같애요. 처음에도 얘기를 했지만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저한테도 얘기 안 했고, 엄마한테도 얘기 안 했고, 친구들한테도 얘기하질 않았던 걸 책에 썼던 것 같아요. 자기를 정말 되게 분해해서 쳐다봤다고 그래야 되나? 자기의 그런 것들을 어떻게 드러내야 될지, 매번 숨기려고만 했던 사람이 그거를, 제 원인이라든지, 아니면 나, 내가 해석하는 나의 행동들에 대해서 차분히 진중하게 쳐다봤던 자기였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용기에 되게 박수 쳐 주고 싶고 고마운 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을 바라봐 주고 사랑했던 자세가 되게 고마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책을 쓰고 난 다음에 많이 변했다, 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게 되거든요. 자기 안의 자기를 들여다보는 글쓰기라는 게 굉장한…, 뭐라고 그래야 하지? 힐링이라는 단어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힐링을 넘어서는 뭔가를 다시 만들어 내는 힘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있어서 이 자리가 너무 좋았고, 그러니까 이런 기회가 있었던 것도 굉장히 좋았고 그리고 심지어 이제 마흔 살 어떻게 다음 생애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정말 좋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서, 우리 가족, 그리고 자룡, 저 다 모두 다 좋았던 시간을 넘어선 건 같은, 그래서 굉장히 많이 축하해 주고 싶어요.
곰도리: 저는 아까 비슷하게 청량리 글을 통해서 아, 이런 게… 몰랐던 모습들이 사실 보였다거나 그런 건 별로 없었던 것 같긴 해요. 근데 어떤 주제가 있잖아요, 아이와 나, 일과 나, 부인과 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그 관계 안에서 새롭게 정리해 본다는 거는 삶이 어떤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늘 과정이잖아요. 그런 과정상에서 한번 그렇게 청량리가 정리했던 시간, 그리고 청량리 글을 통해서 저도 스스로 되물어 가는 것. 진짜 우린 어떤 관계였던 거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걸 계속 되묻게 되고, 오는 길에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지? 당신과 나의 관계는 어떤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일단 되게 좋은 것 같구요, 그게 또 질문의 시작이기도 한 것 같고. 아까도 우리가 그래서 아내와의 시간, 관계 이렇게 얘기했을 때, 아이 키우기가 너무 바빴다, 우리 둘이 무언가를 만드는 부분들은 아직 부족하다, 이게 또다른 질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해보고 싶다는 욕구의 발견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삶의 과정에서 어쨌든 한 번 정도 질문하고 다시 한번 좀 정리하고….
김: 청량리샘은 진짜 그전에 육아일기도 쓰시고 그 다큐, 뭐죠? 약간 <인간극장> 같은 그 프로그램 찍으신 얘기도 보고 깜짝 놀라긴 했었는데.. 저도 정군 글을 통해서 새롭게 알았다기보다는 아까 곰도리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뭐랄까 성 역할의 규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이 사회에서 어쨌거나 다들 40년 가까이, 40년 넘게 살아오다 보니까 아무리 다른 생각을 가지고 기성의 고정관념을 물리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부분이 있구나 이런 거를 좀 느낀 게 있는데요. 정군 글에는 그게 명시적로 드러나진 않고 약간 좀 바닥에 깔려 있는데. 어쨌거나 저희 가족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저니까요... 저는 이제 그걸 별로 의식하지 않았고, 그간의 우리의 세계관이나 그런 걸 봤을 때 정군도 거의 의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그만큼 깨인(?) 사람들인 데다가, 저 자신이 원래 누가 돈을 벌어야 하고 이런 생각이 원래 없었고... 그냥 내가 벌 수 있으면 벌면 되고 뭐 저 사람이 벌 수 있으면 벌면 되고 편하게 생각해 왔는데, 확실히 남성 쪽에서 그런 무게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니까 여성들도 전업주부를 하면 약간 자격시짐처럼 생기는 게 있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하잖아요. 그런 거에다가 플러스 남성이라는 게, 이제 아무래도 사회적 시선을 벗어나려고 해도 다 벗을 순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런 게 좀 있구나, 이런 걸 좀 느끼게 되면서, 아, 이게 참 뭐라고 그래야 되지? 우리는, 제가 일단 아무 생각이 없고, 이 사람도 그래서 상관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게... 사실 이건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거였거든요. 얘기를 하거나 이럴 때도 쉽게 나오는 주제도 아니고. 평소 대화를 많이 하는 사이인데도 그런 거는 글을 쓰면서 알게 되는 것인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걸 봤을 때 원래 애기를 세 살 되면 어린이집에 맡기려고 했었는데, 좀 당겨서 빨리 맡길 걸 그랬나, 이런 생각도 사실은 남편 때문에 처음 했어요. 이를테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그게 잘 안 풀려서 돈을 못 벌게 되는 거랑 아예 하고 싶은 일을 할 여건이 안 되는 거랑 실제로 얼마나 다를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면 좀 낫지 않을까. 어쨌든 육아라는 거에 묶여 있는 거니까 전업 엄마들이 가지는 그런 감정들을 또 고스란히 느끼는구나, 그게 들긴 하더라구요, 똑같이.
물방울: 저는 집에 있는데도, 네 살 때 맡겼어요.
김: 선생님, 되게 늦게 맡기셨구나.
물방울: 늦게 맡겼나? 근데 그때 되게 괴로웠어요.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는 엄마라는 표상이 있잖아요, 그리고 주 양육자로써 해야하는 일도 있구요. 근데 엄마로서의 무게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거예요. 주양육자로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매번 놀라게 되더라구요, 헌신적인 모성이라는 게 사실은 되게 표상이라고 얘기하지만 한 인간과 내 속에서 태어난 아이한테 그런 것들이 잘 안 느껴질 때, 모성보다 내 본능이 먼저인 걸 항상 느낄 때가 정말 인간으로서 좀 요것밖에 안 되나를 매번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때 그래서 저도 그때 세돌 넘고 맡긴 거였었는데 뭐 어쨌든 간에 그런데도 불구하고 약간 뭐 좀 많이 죄책감? 애한테 죄책감? 이런 것들을 좀 스스로한테 계속 물었던 것 같아요. 이게 맞는지 안 맞는지도 묻고, 사실은 그걸 느껴야 되는지, 안 느껴야 되는지, 사실 진짜 느꼈던 건지, 안 느꼈던 건지 매번 계속 물어야 했던 그 시점이어서 정군의 그 마음이, 갈팡질팡할 거예요. 되게 시원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게 사실 시원하지도 않은, (곰: 묘한 죄책감이 있죠) 그렇죠.
김: 그런 것 같아요, 진짜. 혹시 이건 그냥 곁다리로, 선생님들 다른 아빠들의 글을 보면서는 어떤 생각을, 남편? (물방울) 선생님 특히 청량리 샘을 되게 가까이서 또 보셨는데, 계속 보시는 분인데, 글 속에서의 청량리 샘은…, 뭐 혹시?
물방울: 음, 청량리가 음... 뭐라고 해야하지?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이 미숙하구나, 하는 생각은 했어요, 저는. 왜냐하면 아까도 얘기했던 것처럼 그냥 이렇게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거나, 다른 주제로 얘기할 때는 굉장히 창의적인데,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약간 스킵하는 이런 것들이나 (곰: 응응) 그리고 그 처음에 썼던 아버지와의 그런 단어를 쓴 이유가 사실은 좀 그와 내가 엮여 있는 뭔가, 섞여 있는 것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었는데 그 얘기가 다 전달되지 않고 사실 그게 이렇게 분리돼서 바라보면서 확실하게 너와 나든지, 아니면 나의 것으로 정리되지 않았나? 약간 이런 생각이 들면서, 어쨌든간 아무리 청량리가 되게 여성스럽고 개방적이다 하더라도 그런 걸 표현하는 게 열려 있는 세상에서 살지 못했던 게 이렇게 좀 표현이 되나? 저는 그런 생각은 좀 했던 것 같아요, 청량리한테는. 자룡과 또 약간 대비되게, 자룡은 또 ‘이번에는 정말 내가 내 걸 다 보여 주겠어!’ 이런 식이고 청량리는 하려고 해도 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 곰돌이 샘은 어떻게 보셨어요? 자룡 샘 같은 경우에.
곰도리: 저는, 저도 이제 글에서 이렇게 보는 거하고,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또 물방울 입을 통해서 얘기되는 거, 우리가 보는 프레임이 딱 창 한두 개잖아요. (김: 그렇죠) 누군가를 바라보는 게. 글이라는 건 또다른 창을 통해서 보는 거고, 그거를 바라보는 누군가를 보는, 그 얘길 또 듣는 거는 새로운 창들을 만드는 거라 들으면서 계속 들을수록 재밌긴 한 거예요. 그러면서 궁금하기도 하고. 아까 정군은 그래서 어떻게 살았다는 거지? 어떻게 그게 그렇게 됐지? 이런 게 막 가잖아요. 그러면 그 부부 사이는 또 어떤 거지? 마찬가지로 자룡도 그냥 이렇게 자룡한테 단편적으로 듣는 어떤 이미지, 어렸을 때 살았던 어려움, 물방울을 만났던 얘기, 이런 얘기들이 단편단편인데 이 사람 삶에서 어떻게 흘러왔는지 이런 결로 듣는 건 되게 한 사람을 이해하는? 그 세계를 조금 바라보는? 여러 개 창이 생긴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건 되게 재밌는 것 같아요. 오히려 더 궁금하기도 하고.
김: 선생님, 일상에서 보셨던 자룡 샘은 어떤 분이구나, 어떤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셨어요?
곰도리: 오히려 일상, 자룡이 막 소심하다 얘기하는 거 전 좀 의외였어요. 왜냐면 술자리에서 있거나 그랬을 때, 자룡은 그때는 약간 여럿 식솔을 거느린 그런 느낌이었어요. ‘어서 오세요’, 막 이러면서, ‘제가 차렸어요, 드시죠’, 막 이러고, 여기는 술 좋아하고 이러니까 시원시원하게 얘기하거든요. 그러니까 봤을 때 어디가 소심하다는 거야?
물방울: 말 못할 고민이 있어.
곰도리: 그리고 막 이렇게 워낙에 옷 같은 것도 챙겨서 잘 입기도 하고 감각도 있고, 찬결이 선물 같은 것도 자룡이 되게 잘 사오는 것 같아. 그런 거 봤을 때는 진짜 딱 그런 이미진 거예요. 정말 시원하게 잘 하고 감각도 있고 쇼핑하는 것도 나름 딱 여자들이 원하는 딱 그 적정선에서 이렇게 이렇게 하나 보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글에서 보는 자룡은 나한테 이런, 되게 또 솔직하게 썼잖아요. 너무 재밌는 거예요. 자룡의 글을 보면서도. 그러면서 아 진짜 그래서 아까 아, 이 사람이 이런이런 게 있었구나, 또 그런 것들이 또 어렸을 때 부분이, 저 차 타고 예전에 한참 한 시간 동안 자룡 얘기 들었거든요. 근데 그것과 또 다른 결로 이 사람 개인에 대해 훨씬 더 짠함도 있고 가까움도 생기고 좀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재밌었어요. 그런 것 보면서도. 두 분 사시는 것도 되게.
김: 저는 진짜 그냥 두 분에 대해서, 자룡 샘에 대해선 진짜 하나도 몰랐고 그냥 문탁넷에 김장 담그시던 그 후기만 봤었고, 청량리 샘은 문탁 샘한테 말씀 들은 거나 글 올라오는 거나 이런 걸로 추정한 건 있었는데, 그냥 저는 이 아빠들이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진짜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아빠들이 모이면, 그놈의 달마다 회식할 때 ^^ 자꾸 물으셨대요. 정군한테. 어우 이게 무슨 책이 되겠어? 나오면 팔리긴 하겠어? 이렇게 걱정하시면서들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이게 정말 특별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빠들이 특히 말을 막 자기 얘기를 할 기회가 사실 훨씬 없잖아요. 그다음에 이걸 용기를 내기도 힘들고요. 이게 사람들이 보면 공감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공감도 하고 그런 측면에서 좋아할 것 같고, 세 명 중에서 어쩌면 일반 남성들이 제일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는 자룡 샘이지 아닐까 이런 생각도. 사실 청량리 샘이나 정군처럼 그렇게 막 직접 주양육자로 육아를 하고 이런 것보다는 아직 사회적으로 그렇게 씌어진 게 더 많잖아요. 남자들한테. 이 책이 나올 수 있게 연재를 무사히 마쳐 주신 두 분한테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자룡 샘 마감은 물방울 샘께 부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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