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한서』, 우주의 눈에서 지상의 눈으로 '욕망을 해부하다'

『한서』, 우주의 눈에서 지상의 눈으로

 '욕망을 해부하다'

 

 

사기, ‘우주의 눈’으로 3천년을 주파하다

 

사마천이 14년간 망라한 시대는 엄청난 시공간이다. 신화시대인 황제부터 한나라 무제까지 장장 3천년을 포괄한다. 그에 반해 한서는 한나라에 주목하고 있다. 3천년의 시공간을 주파하는 통사와 200년의 단대사. 먼저 사기가 다루는 3천년의 역사를 보기로 하자. 사기는 하, 은, 주, 진 등 다양한 나라의 본기로 구성되어 있다. 왕을 다룬 본기는 말 그대로 근본을 일컫는다. 뿌리가 여러 개라니 그것부터가 근본을 중시할 생각이 없음을 알 수가 있다. 원조 족발이 그 자체로는 무의미하듯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맛이고 맛의 판단은 우리의 몫이다. 사기도 그런 게 아닐까. 다양한 근본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선택과 해석의 길을 열어 놓자는 것이다.  

 

하나의 본기가 아닌 다양한 본기는 중층적인 시선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렇게 되면 결과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역사와 만날 수 있다. 예컨대 사기는 통일한 진나라를 속도와 리듬이 다른 나라로 볼 뿐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어떻게 천하를 통일한 사건에 담담할 수 있냐고? 그것을 애써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3천년의 큰 파동 속에서 보자면 크고 짧게 친 물결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 

 

사마천



역사의 크고 작은 파동은 바다의 물결이 그러하듯 계속된다. 그 물결을 타는 존재가 있으니 인간이다. 인간은 타고난 운명의 파동으로 역사의 파동과 끊임없이 마주하는 존재이다. 출렁이는 물결을 붙잡을 수 없듯이 파동과 파동이 부딪힘 속에서는 시비선악을 논하기가 참으로 애매해진다. 여기서 선인 것이 저쪽에 가면 악이 되기 때문이다. 시대의 파동과 운명의 파동이 겹치면서 설명할 수 없는 삶들이 넘실거린다. 백이나 허유처럼 자기 신념을 지켰으나 굶어 죽기도 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기도 한다. 안연은 공자가 극찬할 정도로 배움 제일이었으나 밥도 배불리 못 먹고 요절했다. 하지만 사람을 밥 먹듯이 죽인 도척은 잘 먹고 잘살 뿐 아니라 천수까지 누린다. 

 

사마천은 질문한다. "천도(天道)는 공평무사해서 항상 착한 사람을 돕는다."라고 했는데 실상은 왜 이런 것인가. 그도 도무지 인과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실상에 천도를 의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자신의 의심이 협소한 시선에 갇힌 질문임을 알아차린다. 앞서 보았듯이 하나의 본기가 아닌 다양한 본기는 근본은 하나라는 통념을 무참하게 깨버린다. 인간의 삶만 해도 그렇다. 어떤 삶도 고유할 뿐 비교 불가능하다. 삶은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귀만 해도 그것은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이것을 우리는 운명이자 천명이라고 부른다. 공자님도 이것을 간파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귀라는 것이 만약에 추구해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 잡이와 같은 천한 직업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할 것이며, 만약에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아 행할 것이다." 

 

부귀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타고난 운명이다. 그러니 타고나지 않은 운명과 비교하며 결핍을 찾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쫓아 행하라는 것. 평생 정규직을 원했지만 백수로 사셨던 공자님의 깊은 통찰력이 담긴 조언인 것이다. 이렇게 운명을 일짜감치 간파한 공자님을 출발점으로 사마천이 던진 질문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태어나자마자 금수저, 20대부터 성공한 아이돌 등, 그들이 기준이 되면 내 삶은 허접해진다. 게다가 그들의 갑질과 도가 지나친 쾌락 추구 속에서 벌은커녕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보면 세상은 불공평해 보이고 불만과 우울증을 피할 길이 없다. 이생은 망했다는 ‘이생망’의 외침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이유인 것이다. 

 

사마천은 공자님의 이름을 빌려 운명에 대한 질문을 초장부터 하고 있다. 나도 노력해서 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귀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따져 보니 그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언 듯 보면 절망의 멘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괜히 공자님이고 사마천이었겠는가. 그들은 모두 부귀의 실체를 간파했다. 자연의 렌즈를 통과하니 좋은 삶과 나쁜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천지가 다양한 삶을 우리에게 주었을 뿐이다. 황제, 제후, 장사꾼, 재주꾼 심지어 선인과 악인까지 다양한 삶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돌과 나무나 물과 불과 같이 다른 운명을 타고난 것과 같다. 무엇으로 태어났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고 그 삶을 잘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 

 

추운 계절이 된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는 시들지 않는다(푸르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안다"라고도 하였다. 온 세상이 혼탁해졌을 때라야 청렴한 사람이 이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세속 사람들은 그처럼 부귀를 중시하고 청렴한 사람은 이처럼 부귀를 경시하는 때문이 아니겠는가? 공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죽은 뒤에 자기의 명성이 칭양(稱揚)되지 않을까 걱정 한다"라고 하였고, 가의(賈誼)는 말하기를 "탐부(貪夫)는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명분때문에 목숨을 바치며, 권세를 과시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들은 자기의 생명에만 매달린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모든 천지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그 속에서 천도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결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결과나 업적 또한 그 시대의 산물이고 그 또한 변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시대가 주입한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타고 나더라도 자기 안에 기준이 없다면 가의 말대로 탐부는 재물 때문에, 열사는 명분 때문에, 권세가는 권세 때문에 죽는다. 그렇다. 좋은 조건은 나를 죽이는 조건이기도 한 것이다. 

 

하루살이도 천지 입장에서 보면 그 자체로 완전하다. 하루를 살아도 천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정확하게 알고 그것에 맞는 삶을 살아내는 게 핵심이다.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백이와 안회는 억울한 마음이 일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천도를 의심한 이유는 힘들게 살았는데 왜 보상이 없는가이다. 보상? 사실 자연은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 태양이 나에게 보상을 바란다면 난 그 빚을 갚을 수가 있겠는가. 아무 보상없이 빛, 공기, 물 등등 모든 것을 제공 받기 때문에 보상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거래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백이와 안회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아무 불평 없이 자신의 길을 갔던 것이다. 이런 자들의 삶의 태도는 시대를 초월하여 서로 감응하기 마련이다.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가 비춰서 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감응(感應)한다.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그것처럼 성인이 나타나면 이에 따라서 세상 만물의 모습이 모두 다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백이와 숙제가 비록 현인이긴는 하였지만 공자의 찬양을 얻고 나서부터 그들의 명성이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안연이 비록 학문에 독실하기는 하였지만, 천리마의 꼬리에 붙여져서 그의 덕행이 더욱더 뚜렷해졌다. 암혈(岩穴)에서 살아가는 은사들은 출세와 은퇴를 일정한 때를 보아서 한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명성에 파묻혀버려서 칭양되지 않는다면 정말 비통하리라! 항간의 평민으로 덕행을 연마하고 명성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청운지사(靑雲之士)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의 명성을 후세에 전할 수 있겠는가?

 

이제 사마천이 왜 3천년을 주파하면서 통사를 썼는지 알 것 같다. 다양한 삶의 파동을 발굴하기 위해 엄청난 시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마천은 그들을 지도 삼아 인간의 길을 열고 있다. 천명을 아는 태도, 신념, 죽음을 사유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 등. 이들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그는 우주의 눈으로 그들을 비추고 있다.  


타고난 운명을 발견하고 그렇게 사는 것! 이것 이상 고귀한 삶이 없다고 사마천은 생각했다. 고귀한 삶의 존중 속에서 기전체라는 창조적인 역사 서술 형식이 탄생한다. 세상의 중심인 왕이나 황제를 다룬 본기, 제후들을 그린 세가, 중심이 아닌 자들의 삶을 그린 열전. 이렇게 중심에서 주변으로 아우르는 본기, 세가, 열전에는 형식보다는 실질을 중시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고조의 아들 혜제만 해도 천자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으므로 본기에는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태후와 항우는 황제는 아니지만 황제만큼의 힘을 발휘했다고 보아 본기에 당당하게 기록한다. 형식보다는 실질을 강조한 사기의 파격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자는 제후도 아닐 뿐 아니라 한량에 불과하지만 공자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하여 세가에 넣었고, 주류 역사서에 절대 등장할 수 없는 자객, 상인, 이민족 등.  자신이 궁형에 처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천명에 따르는 인간을 발굴했다. 천자와 제후는 물론이고 목숨이 위태로워도, 친분이 없어도 의로운 자라면 변호를 했듯이 사마천은 자신을 자석처럼 끌어당긴 자들에게 깊이 매료되었고 그들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기록했던 것이다. 

 

우주의 눈으로 3천년을 내달리면서 그는 모두가 자기중심이 되어 황제는 황제답게, 제후는 제후답게, 개인은 개인답게 각자 자리에서 주어진 천명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이다. 사기는 이런 비전속에서 인간을 탐구하였고 그것이 바로 역사서 사기가 되었다.   

 

 

한서, '지상의 눈'으로 200년을 해부하다

 



한서 글쓰기에 사기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이유는 신의 눈으로 바라본 사기의 세계를 한서가 통과했기 때문이다. 사기의 문제의식을 한서는 포함하면서 그 다음 스텝을 밟고 있다. 다음 스텝으로 이동을 하면서 시선도 '우주의 시선'에서 '땅의 시선'으로 옮겨 온다. 

 

'줌 아웃'하면서 3천년을 주파했던 시선이 '줌 인'하여 200년에 밀착한다. 이렇게 렌즈를 좁힌 이유가 무엇일까. 반씨 가문이 서 있는 지점은 사마천과는 다르다. 한나라는 전한과 후한으로 두 번의 흥망성쇠를 겪었다. 사마천은 전한 시대로 한나라가 가장 잘나가는 조건 위에서 역사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서를 지은 반씨 가문은 전한의 흥망성쇠를 겪은 아픔을 가지고 후한시대를 살아야 했다. 한 번도 겪기 힘든 왕조 교체를 두 번이나 겪으면서 전한의 잘못을 후한에서 반복되게 할 수는 없었다. 반씨 일가는 전한의 혼란을 수습하고 재통일한 후한이 유지되기 위한 간절함이 있었고 그 마음이 역사서를 쓰게 한 것이다. 통일! 한서가 왜 통일된 전한의 유지를 그렇게 원했는가. 그리고 전한을 유지하기 위해 왜 한서를 써야 했는가. 그 절실함을 알기 위해서는 공자가 유학의 창시자가 되고 역전에 주석을 달고 역사서 춘추를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부터 짚어야 한다. 

 

사기 3천년의 역사는 말이 좋아 문명의 발달 운운하지만 물고 뜯는 전쟁의 역사였다. 축의 시대를 쓴 카렌 암스트롱에 따르면 “사람들은 끝도 없는 싸움에 몰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요순시절 같은 통일된 중국을 만들어낼 만한 강한 통치지를 갈망했다. 평화를 향한 갈망이 어디에서나 뚜렷하게 느껴졌다.” 카렌의 해석으로는 중국의 백성은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방법으로 통일을 욕망했다는 것이다 . 우리는 통일된 중국이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해 보이지만 카렌이 보기에는 통일에 대한 갈망은 무척 낯선 것이었다. 맞다. 통일에 대한 욕망은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방하는 것으로 무척 위험한 게임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평화를 위해 위험한 선택을 기꺼이 갈망했다. 그 욕망은 통일이 된 적이 없는 무한히 넓은 땅위에 통일 하는 자라면 누구나 패자가 될 수 있는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땅따먹기 제일만 되면 제왕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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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통치 방법으로는 아니러니 하게도 도와 덕을 강조한 '무위(無爲)'의 시대가 동시에 열렸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더 세고 강함을 원하는 유위법의 시대에 통치의 원리로 부드럽고 약하고 유연해져야 하는 무위의 원리가 요청된 것이다. 참으로 역설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을 관찰한 결과였다. 강하고 거대한 것 그 자체로 지속가능한 자연은 어떤 것도 없다. 그러니 통일 왕국을 지속한다는 욕망 자체가 말이 되지 않지만 그나마도 길게 유지하려면 자연을 따르는 삶, 도와 덕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공자 또한 전국시대의 혼란을 목격하고 ‘예의 회복’을 내세워 인간관계에 대한 기본질서를 확립하고자 했지만 그것 또한 자연법칙의 변주였다. 이런 법칙이 필요한 것은 왕을 컨트롤하기 위함이었다. 왕은 인간이다. 감정이나 생각에 휘둘려서 권력을 행사하면 백성들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좋은 왕보다는 보통의 왕이 더 많고 나쁜 왕도 종종 등장 한다. 그렇다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그런 고민 속에서 '도와 덕'이라는 법칙이 등장했고, 공자의 '인과 의'가 요청된 것이다.  

 

기원전 221년, 춘추전국시대(B.C. 770년~  B.C. 220년) 동안 지속된 전쟁이 드디어 종식되었다. 진나라가 통일을 한 것이다. 이제 유지가 문제였다. 진시황은 문자, 도로의 폭과 도량형을 통일함으로써 물자와 인적 자원의 교류를 지속할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 법과 제도를 완비함으로써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들을 유지하고, 복잡해져가는 관료사회를 통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혹한 법과 제도로 인해 14년 만에 멸망한다. 하지만 진의 통일은 그 자체로 통일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통일 제국의 기반을 닦은 셈이 되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통일 왕조 한나라가 세워졌고 그들은 진나라를 교훈 삼아 한나라 제국 유지에 총력을 기울인다.  

 

지상의 눈으로 본 한서는 이런 시대적 조건 속에서 탄생했다. 이제 본격적인 통일의 시대이다. 한고조 유방은 지금까지 없던 왕의 캐릭터로 평화의 아이콘이었다. 출신부터가 특별(?)했다. 한미한 집안에 한량인 자가 천자의 운명을 타고 났고 천하의 기운이 그에게 모여 황제가 되었다. 통일! 시대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는 과격한 전쟁이 아니라 최소한의 전쟁 즉 백성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부역을 줄여 휴식을 주고 위로 하고 생산력을 회복시켰다. 이제 전쟁은 끝났고 제국은 안정을 위해 모드를 전환한다.  

 

국가 안정을 위해 제도와 시스템 정비가 요청되었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 정치 이념으로 유학이 강력하게 요청되었다. 예컨대 공신들만 해도 유학 교육이 필요했다. 한나라를 세우기 전에는 호전적인 그들이 필요했지만 통일이 되자 공신들은 더 이상 불필요해졌다. 그 힘이 전환되지 않으면 위협적인 존재,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는 법. 유방은 힘이 넘치는 공신들에게 유학의 예를 가르치게 했다. 위계를 알게 해서 모반의 싹을 없애고자 한 것이다. 법가, 도가 등 제자백가 사상에 섞여 있던 유학은 한나라에 오면서 본격적인 뿌리를 내린 것이다. 공자가 ‘예의 회복’을 내세워 인간관계에 대한 기본질서를 강조한 유학이 한나라의 국가학이 된 것이다.  

 

한서가 사기에 비해 유학적 색채가 짙은 것은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관료 사회가 되었고, 이제 국가적으로 유학의 최고 가치인 인의가 강조됐다. 이런 유학적인 색체는 한서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한서는 사기와 달리 실질보다는 명분을 중시한다. 혜제의 경우 사기는 본기에서 빼버렸지만 한서는 본기에 그를 싣고 있다. 그리고 세가를 생략하고 본기와 열전으로 구성한다. 이제 통일 왕조가 구축 되었고 왕과 백성만으로 국가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유학의 시대, 인간관계가 중시되고 인의의 가치를 구현하는 자가 관리가 되고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제 천명을 발견해서 자기의 길을 가는 사기의 시대와는 달리 인의가 출현하였고 인의는 출세의 수단이 되었다. 이렇게 전도된 욕망은 우리 시대에도 다르지 않다. 수능만 해도 암기가 아닌 이해력과 논리력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능력 평가였는데 "점수로 줄 세우는 '학력고사'식 수능이 교육을 망쳤다"고 수능을 만든 만든이조차 전도된 수능을 두고 망연자실할 정도이다. 대학만 해도 취업을 위한 학원이 되고, 정규직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한나라도 안정이 되자 유학의 근본은 없어지고 전도된 욕망이 판을 치는 상황으로 흘러간 것이다. 

 

한서는 통일 제국 한나라가 안정을 위해 유학을 중시했지만 그 이념이 전도되면서 벌어지는 인간 욕망에 주목한다.  저술 의도를 밝힌 ‘서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력에 따라 합치고 시류에 영합하여 나쁜 풍속이 좋은 풍속으로 바뀌(移風易俗)어도 '서로 어긋나게 통용할 수 없는 것'은 '군자의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풍속이 바뀌어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 사기가 천명을 따르는 자를 드러내듯이 한서는 이제 군자의 법인 척하지만 어긋나고 통용할 수 없는 지점을 정확하게 드러내야 했다. 군자의 법의 여부를 판단하려면 가치 전도의 욕망이 일어나는 그 지점을 적나라하게 해부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 그대는 태평한 시대에​ 살지만 전국 시대를 논하면서 그것을 찬란하다고 생각하고 지금 보이는 것을 의심하고 있으며 작은 산에 올라보고서는 태산보다 높다고 여기고, 산속의 작은 샘물을 큰 연못보다 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아직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 한서10, 서전상, p469


반고가 목격한 한나라 사람들은 자기 시대와 자기 욕망에 대해 만족할 줄 몰랐다. 전국 시대야말로 부국강병을 앞세워 양육강식의 전쟁 때문에 백성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임에도 과거는 무조건 미화한다. 우리도 그렇지 않나.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외부 탓을 하면서 과거는 좋았다고 착각한다. 막상 과거로 간다해도 지지고 볶는 오늘이 기다릴 뿐인데도. 그런 인간의 약한 마음을 치고 들어와 상품은 복고풍을 유행시키며 추억마저 소비하게 만들지 않는가. 그럴수록 우리의 삶은 비루해지고 일상과 멀어질 뿐이다.


한서의 시대도 다르지 않았다. 후한의 광무제는 정치를 잘했지만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았고 과거를 무조건 동경하며 의심과 비판을 일삼았다. 제국이 통일 되고 안정이 되어도 인간의 욕심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반고는 천명을 발견하기 전에 먼저 욕심을 콘트롤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화식열전만해도 사마천은 그것을 긍정하지만 반고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인간이 자신의 운명에 주목하기에 앞서 멈출 수 없는 탐욕이 앞을 가리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서가 신의 눈에서 지상의 눈으로 역사를 써야 했던 이유이다. 두 번의 흥망을 겪은 후 이어진 한나라이기에 통일된 한나라를 지속시키고 싶었다. 한서의 절실함은 인간들의 욕망을 분석하고 해부를 함으로써 '군자의 법'으로 나아가는 지도를 그리도록 만든다. 반표는 “공자께서는 ‘천성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은 크게 다르다.’고 하였고, 가의는 ‘선인과 함께 오래 생활하면 선행을 아니할 수 없으니 마치 제에서 생장하면 제의 말을 아니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악인과 함께 오래 거쳐하면 악행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초에서 낳고 자라면 초의 발을 안 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성인은 거처할 곳을 잘 살피며 습성을 삼가” (후한서, 반표열전, p431~432) 한다며 광무제에게 말한 바 있다. 

 

학습에 의해 악인도 선인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다. 이제 욕망 제어를 위한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누구나 욕망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오키 야스시가 말한 ‘한서는 현재의 왕조에 근거한 지상의 눈, 한 왕조의 눈으로 쓰’였다는 것은 이런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실제로 한서에는 사기에서처럼 천명을 따르는 거인이 출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욕망을 통찰하는 자와 아닌 자는 분명 나누어진다. 이제 200년을 지난 전한은 혼란기를 겪고 후한을 잇는다. 중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400년을 유지한 한제국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적어도 춘추전국시대가 기다렸던 통일, 안정된 시기! 하지만 안정된 시기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았다. 안정과 동시에 인간의 끝 없는 소유욕이 분출하면서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출현을 한서는 목격해야만 했다. 

 

반씨 일가는 통일 전한 200년의 흥망성쇠가 탐욕으로 들끊는 욕망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 됨을 온 몸으로 경험했다. 공자와 사마천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 시대에 사는 자가 아니다. 오직 역사는 그 시대에 사는 자만이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반씨 일가는 역사서를 다시 쓸 수 밖에 없었던 것. 이제 제국이 유지 되려면 욕망 컨트롤이 되어야 한다. 그 얽히고 설킨 욕망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 그것을 위해 3천년 '줌 아웃'했던 렌즈를 2백년으로 '줌 인'하여 밀착해서 클로즈 업 한다. 촘촘한 관계 망 안에서 발생하는 욕망이 일어나는 지점을 낱낱이 해부하는 것. 그것이 한서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결국 욕망의 클로즈 업을 통해 한서는 천지와 불통된 인간을  직면하게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한서를 읽으면서 열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욕망의 찌질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지만 통쾌하고 시원하기도 했던 것. 하지만 한서는 그 욕망을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찌질한 욕망도 역의 원리로 보면 고정되지 않고 흘러간다. 한서는 전한 시대의 욕망을 해부하면서 차이나는 후한 시대를 열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그의 절실함이 한서를 읽는 순간 새로운 나와 마주치게 만드는 매직을 연출했다는 것을. ​​한나라, 제국이 통일 되고 안정을 누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만큼의 욕망을 컨트롤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서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자기 욕망을 대면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욕망을 해부하면서 새로운 파동을 타는 길을 열어준다. 단언컨대 전한 후에 이어진 후한 200년은 한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한서라는 성찰 렌즈가 없었다면 후한의 건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 이제 한서의 인간 심연 탐사 여행을 본격적으로 떠나보기로 하자. 우리는 한나라보다 더 욕망이 들끓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불구덩이 속에서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분명 한서는 그 출구로 안내할 것이다. 전한에서 끊어진 맥을 이어 후한 200년을 새롭게 살게 한 것처럼!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서가 계속 호출되면서 시대와 삶을 구원했던 것처럼! 또한 흘러흘러 변방 조선의 선비 이덕무까지 한서 이불을 덮게 할 정도로 그의 심신을 뒤흔든 것처럼! 한서의 힘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 발휘되어 왔다. 이제 우리가 한서를 만나야 할 시간이다. 


글_박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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