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런 아빠
‘아빠’가 된다는 것
아이가 태어나던 날을 떠올려 본다. 20대 시절부터 헤비스모커였던 나는, 아기가 태어날 때 대학병원 가족분만실에 2박3일간 갇혀 있었다. 당시 나는 곧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뜨고, 진통을 겪는 아내에 대한 걱정으로 조급해지고, 강렬한 흡연욕구로 초조해져 갔다. 아내의 진통이 10시간쯤 더 지속되어, 담배를 열 시간쯤 더 참아야 했다면, 병원문을 부수고 뛰쳐나갔…을까? 아마 그냥 그 상태로 흡연욕구가 더 강렬해진 채로 열시간쯤 더 버티고 있었겠지. 문득, ‘아빠’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가족과는 아무 상관없는 자신의 욕구를 어떻게든 참아낸다. 그게 가족 이데올로기건 뭐건 간에 그렇게 되더라. 나에게는 그게 나름대로 신선한 경험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20대 시절(솔직히 말하자면 10대 후반)부터 헤비스모커였던 나는 누구보다도 ‘쾌락’에 약했다. 담배를 처음 입에 물었을 때, 혈관을 거쳐 뇌에 퍼져나갔던 니코틴이 주는 그 짜릿한 감각을 여전히 못 잊고 아직까지 담배를 피운다. 그러니까 못 끊었다. 아무리 오래 참고 피워도 첫담배의 그 아찔함은 두번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끊질 못한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을 때(또는 살 때) 느껴지는 손끝의 감각, 요리를 할 때 콧구멍을 거쳐 뇌로 퍼지는 음식의 풍미, 음악을 들을 때 고동치는 심장과 고막의 그 짜릿짜릿한 감각, 만년필을 깨끗하게 세척하고 새 잉크를 채워 종이에 글자를 써내려가는 그 매끈한 기분까지, 나는 그야말로 감각의 노예였다. 사실 여전히 그렇다. 그 모든 것들을 마음껏 누리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아빠가 된 지금이 더 좋다. 물론 순간순간 덮쳐오는 갑갑함에 못이길 때도 있지만, 일상 전체를 놓고 평가해 보건데, 지금이 더 좋다. 심지어 더 자유로운 느낌마저 든다.
2박3일 동안 엄마를 진통케 한 우리 딸이 태어났다. 무려 3.75kg이었다. 아빠는 그 순간을 기억하는데, 산부인과 스텝 두명이 아내의 배를 누르고, 아내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고 있었다. 그러다가 의사선생이 아이를 빼내었다. 당시 상황이 꽤 다급했던 관계로 탯줄을 자른다거나 하는 의식은 전혀 치르지 못했다. 그러나 어쨌든, 굉장한 순간이었다. 당시 나는 아이보다도 아내가 걱정이었다. 둘 다 출산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힘든 것인 줄 몰랐다. 게다가 아내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니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기가 어려웠다. 아내가 그렇게 힘들어하자, 그제서야 아이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모두 걱정하다 보니 문득 이러다가 나 혼자 남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감마저 밀려왔다. 막판에는가슴이 얼마나 고동치던지, 누군가 내 옆에 있었다면 내 심장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나는 그다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잘 몰랐다. 아이가 세상에 덜컥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말하자면 나는 아이가 나오면 그 아이가 자연스럽게 우리 두사람의 삶에 ‘더하기’되듯 들어와 붙는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실제는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아이는 단순한 더하기가 아니었다.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이가 끼어든 다음부터 살아가는 인생의 성질과 행로가 모두 바뀌어 버렸으니 말이다.
'즐거움의 지옥'에서 육아로
앞서 말했듯 나는 예전이나 (조금 줄었을지는 몰라도) 지금이나, 어쨌거나 기본적인 인생의 목표가 쾌락의 추구에 있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특별히 지키며 살아가는 ‘신념’이랄게 없다. ‘신념’이란 사전적으로는 ‘굳게 믿는 마음’일 텐데, 여기서 내가 쓰는 의미는 조금 더 협소하다. 이를테면 ‘이 세상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 정도다. 사소하게는 사람들이 길에 침을 안 뱉었으면 좋겠다라든가, 광역버스에서 뒷자리 신경 안 쓰고 의자를 눕히는 짓들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든가 하는 식의 바람들 정도는 있다. 그러나, 이 체제를 어떻게 바꾸고, 저렇게 재조직하고 뭐 그래서 환경도 보호하고, 노동자, 농민, 서민, 중산층 등등이 모두 다 잘 살고 그러는, 뭐 그런 해방세상 같은 건 전혀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야 좋겠지만, 그렇게 될 리가.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혹시 내가 그런 걸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가급적 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신념을 버리는 게 신념이라면 신념일 수 있겠다.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너무 길기도 하거니와 아직 제대로 말할 준비가 안 되었으므로 다음 기회를 기다려 보자. 어쨌든, 그렇게 신념과 결별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마음속에는 공백이 생긴다. 이제 나는 무엇을 동력으로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 셈이다.
나는 차라리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사고 싶은 걸 사면서 말이다. 말하자면 정치적 올바름이나, 신념 같은 걸로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보니 결국엔 ‘쾌락’이 인생의 동력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즐거울까, 조금 더 맛있을까, 조금 더 재미있을까만 고민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괜찮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 속에선 괴물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허무감이었다. 쾌락이란 특정한 강도에 도달하기 전까지, 도달한 직후의 찰나에만 만족감을 줄 뿐이다. 어제 즐거웠던 일이 오늘 똑같이 일어난다고 해도 기분은 어제와 같을 수 없다. 결국 더 높은 강도를 추구하게 된다. 어젯밤의 나는 매운 걸 잘 먹지 못했지만, 오늘은 화끈하게 맵고 달콤한 비빔냉면이 먹고 싶다. 그렇게 살이 찌고, 위장이 나빠지다보면 내가 지금 무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달고, 맵고, 짠 걸 찾는다. 이런 식으로 살다보면 당연히 돈도 많이 든다. 사실 나는 적당히 좋은 국산 기타로도 즐겁게 놀 수 있었다.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실력에 펜더니, 깁슨이니 모두 과분하다. 그럼에도 ‘펜더는 더 좋지 않을까’ 하게 되어 펜더를 사고, ‘깁슨은 좀 더 두툼한 소리가 나지 않을까’ 하며 깁슨을 산다. 실력은 그대로인데 기타만 늘고, 잔고는 줄어드는 이중고에 시달리다가 결국엔 ‘이런게 다 무슨 소용이야’하게 된다.
육아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나는 또 다른 커다란 쾌락을 찾아 여기저기 구멍을 파고 있었을 것이다. 확신한다. 그러고는 짜릿하게 즐기다가 허무하다가, 죽어도 좋을 듯이 신나다가, 죽을 듯이 우울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살고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조금 아찔할 정도다. 그러다가 나는 육아에 뛰어들었다. 이건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는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특히나 ‘아빠’가 육아를 하는 경우엔 대체로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서인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어쩌겠나, 나는 돈버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하고 싶다’ 정도는 아니어도 ‘하기 싫다’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아이를 내가 주로 돌보게 되어서 기쁘기도 했다. 사실 그때는 육아가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육아가 나를 자유케 하였다?
아이는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부모에게 엄청나게 많은 제약을 준다. 아닌 말로 아이와 함께, 단 둘이 있는 동안에는 똥도 싸러 갈 수가 없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아이패드를 던져주고 잽싸고 싸고 오기는 하지만, 지금(두 돌)보다 더 어릴 때는 그냥 쌩으로 참았다.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끼니를 챙겨먹는 것도 어렵다. 두 돌 이하(그 이상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 아기는 2~3분 이상을 혼자서 놀지 못한다. 끼니를 챙겨먹고 싶으면 아이 밥과 내 밥을 동시에 준비해서 아이가 먹는 동안 함께 먹어야 하는데, 아이 밥 따로, 내 밥 따로 차리는 건 먹어서 얻는 효용에 비해 품이 너무 많이 드는 일이다. 결국 내 밥상은 간소해 진다. 씻는 것도 똥 싸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다가 보면 배고픈 거지꼴로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리게 되는데, 엄마가 돌아와야 (힘든 건 매 한가지지만)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즐거움의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일이었다. 육아를 한다는 건 어디로 튈지 나도 모르는 내 욕망에 강력한 제한을 거는 일이다. 이 일은 그렇게 쉽지도, 즐겁지도 않다. 심지어 생각보다 보람차지도 않다. 물론 쑥쑥 자라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스스로가 대견하고, 보람되기도 하지만 그건 그저 아주 약간의 여유가 주어졌을 때,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일 뿐 아이를 돌보는 내내 그런 기분을 느낄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강력한 제한 속에서 나는 수년간 나를 사로잡고 있던 허무감을 떨쳤고,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웠던 소비욕망이 사그라들었으며,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삶의 작은 조각들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결핍이 줄어들었다. 사실 쾌감을 추구한다는 건, 마음 속에 뚫린 구멍을 매꾸려고 한다는 것이다. 받아들이기가 어려우니까. 그러나 육아에 뛰어들고 나서는 구멍이 매꿔진 건 아닌데, 구멍이 그다지 의식되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게 되었다. 워낙 바쁘니까.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의 능력이 자라는 것에 맞춰 나도 그렇게 능력이 커졌다. 기저귀를 갈 타이밍을 감지한다거나, 순식간에 별 것 아닌 재료로 한 끼를 차려낸다거나, 짜증과 울화를 밖으로 안 꺼내고도 해소할 수 있다거나 하는 능력들이다. 좀 더 추상적으로는 내 인생을 다루는 능력이 커졌다. 내 생이 흘러가는 대로, 마음의 갈등없이, 거리낌 없이 나를 맡길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어떤 일, 어떤 사람, 어떤 물건에 대해 적당히 신경을 끌 수도 있게 되었다.(물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좁고 이상한 설계의 부엌과 기구한 사연을 지닌 우리 자동차에 대해서는 그게 잘 안 된다.) 심지어 평생 안 되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능력마저 생겼다. 자유가 어떤 ‘능력’과 관계된 것이라면, 나는 분명 이전보다 자유로워졌다. 정말로 그렇게 느낀다.
아마도 이런 아빠
나는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우리 딸에게 고맙다. 흔히 말하는 상투어 ‘와줘서 고마워’ 같은 말은 도무지 너무 오글거려서 공공연하게 할 수 없지만, 정말로 고맙다고 느낀다. 워낙에 귀엽기도 하거니와, 나에게는 동아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즐거움의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던 때에, 도저히 이대로는 더 살 수 없을 것 같은 때에 마치 슈퍼 히어로처럼 우리 딸이 나타나주었다.
앞서 나는 특별한 신념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했다. 조금 범위를 넓혀보자면, 보통의 일상에서도 특정한 상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정한 아빠, 재미있는 아빠, 엄격한 아빠, 용돈 잘 주는 아빠, 딸과 데면데면한 아빠 등등. 온갖 형태의 아빠들이 실존하고, 그보다 많은 아빠의 그림들이 있다. 나도 사실 다정한 아빠, 재미있는 아빠, 기타 등등 아빠 같이 ‘이렇게 되고 싶다’는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기는 하다. ‘친구’ 같은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우리 딸이 자라면서 기질을 어떻게 발현시킬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 그런 것 그려봐야 뭘 하겠나. 그 그림을 꼭 붙잡고 가다가 일이 생각대로 돌아가질 않으면 그때는 또 얼마나 실망을 하겠나. 그래서 나는 내 육아의 신조대로 하루하루를 잘 살기로 했다. 아빠로서 말이다.
나는 우리 딸이 이러면 좋겠다, 저러면 좋겠다, 또는 아빠와의 관계가 이러면 좋겠다, 저러면 좋겠다 하는 식의 기대를 하나씩 없애려고 한다. 대신에 딸의 모습이 이렇겠다, 저렇겠다 하는 식의 상상은 되도록 많이 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딸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그 어떤 사람이 되더라도 수월히 받아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다만 한가지 내가 꼭 바라는 것은, 나와 아내가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적절하게, 자립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딸이 부모에게 느낄 부채감을 최대한 줄여주고 싶다. 그래서 우리 딸이 집을 떠날 때 아무런 거리낌없이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에게 뭘 갚겠다느니, 보답을 한다느니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글_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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