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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이간혈, 다래끼와 입냄새의 역습을 막아라

by 북드라망 2012. 6. 8.
과식과 평안함 사이, 이간(二間)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눈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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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에요. 칼퇴와 함께 FAD(Friday Alcohol Delicious)를 외치며 삼겹살에 소주를 들이켜요. 2차로는 치킨과 맥주를 퍼부어요. 3차로 자리를 옮겨요. 순간, 내일 친구들과 갈비를 먹기로 한 것이 떠올라요. 갈비를 뜯기 위해선 기력을 조금 남겨둬야 할 거 같아서 3차는 자제하기로 해요. 혼자 몰래 자리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해요.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왠지 모를 허기가 엄습해 와요. 안되겠어요. 입가심으로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먹어야겠어요. 라면을 먹다보니 밥생각이 간절해져요. 밥을 한 대접 말아먹어요. 아, 이제야 좀 행복해져요. 졸음이 몰려와요. 기절해요.

다음날이에요. 생전 보지 못한 얼굴이 거울 앞에 등장해요. 악~! 눈에 손톱만한 다래끼까지 솟았어요. 이런 피부미용으로는 절대, 네버 어디도 갈 수 없어요.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수다, 갈비의 유혹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어요. 결국 얼굴을 최대한 가리는 중무장 코디를 하고 친구들에게로 향해요. 친구들이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고 물어요. 어제의 식단을 쭉 읊어줘요. 그랬더니 친구들이 코를 막으면서 얼른 갈비나 먹으러 가자고 해요. 갈비집에 도착했어요. 또 언제 망설였냐는 듯이 질주해요. 친구들과의 수다는 잊은 지 오래에요. 냉면도 한 그릇 말아먹어요. 곧 얼른 집으로 들어가 눕고 싶어져요. 친구들이 2차를 가자는 것을 뿌리치고 집에 돌아와요. 기절해요.

다들 경험해 보셨을 거다. 그렇다. 폭풍-흡입의 말로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오늘따라 유난히 평수가 넓어진 얼굴과 터질 듯한 배-둘레-햄들. 뭐 이것들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저들과 동고동락한지가 너무나도 오래되었으니까. 더구나 일시적인 붓기나 젖살(?)이라고 믿으면 금방 마음의 평화마저 깃든다. 그런데 간혹 너무 많이 먹거나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운 다음날, 눈과 입에서 아주 난리가 난다. 눈에서는 다래끼가 솟아오르고 입에선 정체불명의 냄새가 뿜어져 나온다. 이 지경에 와서는 사람들도 슬슬 피한다. 다래끼 옮는다 저리 가라, 입에서 발냄새가 난다. 맞다. 이러면 혼자가 된다. 폭식이 몸뿐만 아니라 관계마저도 망치는 그 순간, 후회해도 소용없다. 누구의 말마따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로 너무 늦은 거다.^^

그런데 한 가지 묻자. ‘너 왜 그렇게 폭식을 하는 건데?’ 대부분 이렇게 답할 거다. ‘눈앞에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이 가.’ 안타깝게도 그거 정답이다. 우리, 눈에 보이니까 먹게 된다. 참을 수 있지 않느냐고? 과연 그럴까. 실제로 한번 보자. 요샌 TV만 틀면 어디를 돌려도 먹고 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쉬지 않고 먹는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정말 먹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왜? 사실 우리 눈과 입은 위(胃)의 경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눈이 먹을 것으로 자극을 받으면 위경(胃經)을 따라 그 자극이 위에 전달되고 위가 입에 명령한다. 저것을 먹어라! 그러면 벌써 입안에서는 침이 흥건하게 고이고 배에서는 배고픔의 곡성(哭聲)이 들려온다. 그렇다. 우린 봐서 먹는 거다.

한 동안 음식사진을 찍어서 홈피나 블로그에 올리는 게 유행한 것도 이런 이유일 거다. 먹을 것과 보는 즐거움이 결합된 시대. 거기다 언제 어디서나 맛집을 검색할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우리는 언제나 열심히 먹고 있다. 아마도 끊임없이 먹고 과식하는 거, 이 시대가 만든 배치일 거다. 그로 인해서 생기는 입냄새와 다래끼도 우리 시대에 두드러진 증상임에 틀림없다. 생각해보시라. 먹을 것들의 천국, 비만인구의 급증, 건강이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들. 이거 다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이 가운데서 눈과 입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거다.

다래끼와 입냄새의 역습


그럼 다래끼와 입냄새는 왜 생겨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열(熱)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위와 대장의 열이 만나서 이 흉물스러운 것들이 생긴다. 그럼 저들이 우리들의 고귀한 얼굴에서 난동을 부리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이걸 알아야 저들의 역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일단 눈을 좀 깊이 탐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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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1000냥이라면 눈은 900냥이다.’ 관상입문서엔 어디든 등장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우리 몸에서 눈이 보배라는 얘기다. 심지어 『동의보감』에서는 눈을 삶과 죽음의 문제로 취급한다. ‘눈빛이 살았으면 살고 죽었으면 죽는다.’ 눈 하나 가지고 너무 엄숙하게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 싶을 거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거 빈말이 절대 아니다. 눈은 우리 몸에서 양기(陽氣)가 가장 센 곳이다. 양기는 밝고 가벼운 기운이어서 위로 올라간다. 얼굴의 가장 높은 곳에서 사물을 분별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앞을 보게 만드는 거. 다 양기가 눈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그래서 눈싸움이 중요하다. 눈싸움으로 양기들이 먼저 가상의 전투를 벌이고 거기서 결판이 나면 승부는 이미 보나마나다. 깔리면 지는 거다. 그만큼 기가 세고 강렬하게 뿜어져 나가는 것이 눈이라는 얘기다.

이런 눈이 너무 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얼굴의 반이 눈인 ‘캔디형’ 이목구비는 치명적이다. 몸의 양기가 눈으로 다 새어나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것들이 너무 많은 요즘 같은 경우에 눈이 큰 게 더더욱 치명적인 건 물론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든 크게 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좋다. 예뻐 보인다고 치자. 그 다음은? 뭐가 더 잘 보이는 것도 없고 시야가 넓어지지도 않는다. 대신 잃는 건 너무 많다. 일단 균형을 이루고 있던 오장육부의 기운이 다 틀어진다.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사실이다. "눈은 오장육부의 기운이 모두 모여 있다. 눈동자는 신(腎), 검은자위는 간(肝), 흰자위는 폐(肺), 눈의 가장자리는 심(心), 눈꺼풀은 비위(脾胃)와 연결된다." (『동의보감』, 「외형편」, <눈>) 보시다시피 눈은 오장육부의 공동출자로 만들어졌다. 각각의 오장육부에서 양기를 눈으로 보내서 눈의 이것저것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실 본다는 거 자체가 오장육부로 본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물을 몸 안의 깊은 곳까지 받아들이는 거, 그게 본다는 의미인 셈이다. 종종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면 제일 먼저 눈을 가리는 이유도 이거다. 눈으로 본 광경이 몸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오장육부를 뒤틀리지 못하게 하려는 생리적인 반응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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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끼. 속눈썹의 뿌리에 균이 들어가 눈시울이 발갛게 붓고 곪아서 생기는 작은 부스럼." (네이버백과사전)
그런데 눈이 갑자기 커지면 오장육부에서 눈으로 보내야할 기운이 많아진다. 그럼 당연히 다른 곳으로 가던 기운이 부족해진다. 맞다. 눈이 커지면 쉽게 피곤해진다. 심지어 눈이 커지면 빨리 늙는다. 그래서 캔디는 양기 충만한 10대다. 20대 혹은 30대, 그녀의 얼굴은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 눈이 원래 큰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걱정할 거 없다. 다 자기 안에 기운이 그 눈의 크기를 감당할 수 있으니까 그런 크기로 태어난 거다. 다만 눈을 억지로 키우거나 째면 오장육부의 기운장이 바뀌어서 얼굴 자체도 다 변하게 된다는 얘기다. 눈 하나 했는데 얼굴이 다 바뀐다고? 오장육부는 눈뿐만 아니라 입, 귀, 코, 광대뼈, 볼살, 턱, 입술 등등 얼굴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냥 눈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

이처럼 소중한 눈에 다래끼가 출몰하는 건 비위의 영향이다. 비위는 우리 몸을 살 찌우는 밭이다. 그래서 소화가 잘 되면 살이 토실토실 오른다. 반대로 소화가 잘 안 되면 몸 전체가 마르고 기운이 없어진다. 음식물의 영양분을 비위에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으면 당연히 비위에 과부하가 걸린다. 과도하게 일을 하게 되는 거다. 생각해보시라. 다음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과도하게 노동을 해서 열 받고 이게 심해지면 다 토해낸다. 파업에 들어가는 거다. 맞다. 비위에서 생긴 열이 위의 경맥을 타고 눈꺼풀까지 올라간다. 비위는 우리 몸에서 피부 밑에 있는 살들을 관리한다. 열은 양기이기 때문에 어디로든 튀어나가려고 한다. 자, 이해되시는가. 열이 살들을 끌고 피부 밖으로 돌출되는 거, 이게 다래끼인 셈이다. 특히 기름진 음식은 열을 발생시키는데 중요한 원인이다. 입냄새도 마찬가지의 원리다. 입은 식도를 통해서 비위와 바로 연결된다. 위가 뜨거워지면 열이 이 통로를 타고 올라간다. 그럼 당연히 입이 건조해진다. 입의 침이 마르면서 악취가 만들어진다. 참 간단하다.^^ 그러니까 다래끼와 입냄새는 지금 과식과 기름진 음식으로 비위가 열 받았다는 신호를 아주 거칠게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비위를 열 받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대장의 열이다. 대장은 우리 몸에서 똥을 만드는 중요한 기관이다. 먹고 싸지 못하는 고통은 당해본 사람은 다 알 거다. 입력과 출력의 조화가 틀어질 때 속이 불편해지는 거다. 그럼 대장에서 똥을 제대로 내보내지 못하면? 맞다. 얼굴에 뾰루지들이 등장하고 아랫배가 무겁고 아파온다. 소화된 것들의 잔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대장에서 부패되고 있기 때문이다. 썩으면서 생기는 열이 위로 올라가면 두통과 뾰루지를 만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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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끼의 원인은 편식으로 인한 영향불균형이나 불결한 위생도 있겠지만, 뒤집힌 속도 한 몫한다. (심지어 입냄새까지 만든다는 거! 으악!) 눈이 얼굴의 창문이라고 했던가, 속(위장)에서 열이 받으면 그 결과는 곧장 눈으로 드러나는 거다^^;

하나 더, 여기에 재밌는 게 있다. 바로 대장과 위의 위치다. 대장은 위의 바로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간혹 밥을 많이 먹으면 소화도 안 됐는데 똥이 마려운 경우가 있다. 위가 축 쳐져서 대장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장에서 똥이 잘 나가지 못해서 열이 생기면 비위로 금방 전달된다. 이 열을 받은 비위가 다시 우리 얼굴을 열 받게 만든다는 거다. 그래서 잘 싸지 못하면 참으로 얼굴이 민망해진다. 너무 많은 음식을 먹고 마셔서 생기는 위열과 밖으로 잘 내보내지 못해서 생기는 대장의 열. 이 열기가 눈과 입으로, 다래끼와 입냄새로 튀어나오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 우리들의 과식이 불러온 음식의 역습이다.

이간(二間)질 하라

열 받은 위와 대장을 식히는데 이간(二間)만큼 좋은 혈도 없다. 이간(二間)은 수양명대장경의 혈자리 가운데 수(水)의 기운으로 가득 한 혈자리다. 이해되시는가. 대장이 열을 받았을 때 이 수기운 가득한 혈자리를 자극해서 대장을 식히는 원리다. 대장의 열이 빠지면 당연히 비위도 열 받는 일이 없어진다. 아니 대장이 상대적으로 비위보다 차가워지면 비위의 열과 대장의 찬 기운이 만나서 중화된다. 몸 안에서 자체적으로 열기를 끄게 만드는 것이 이간의 작용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간은 열로 인한 눈의 통증, 입이 마르는 것, 치통 같은 증상에 효과적인다. 위열로 인해서 생기는 입냄새와 다래끼를 이간으로 치료한 것도 마찬가지다.

일단 다래끼가 솟아오르면 이간을 찔러서 피를 한두 방울 내면 좋다. 간혹 양초의 촛농을 이간에 떨어뜨리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렇게 하룻밤 자고 나면 다래끼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이간은 “집게손가락 밑마디 앞 안쪽 우묵한 곳에 있다.” (『동의보감』) 그렇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도 못 찾는다. 자, 둘째손가락을 약간 구부려보시라. 그러면 둘째손가락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손가락뼈 사이에 무늬가 생긴다.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손가락은 손톱부위가 아니라 손등 쪽으로부터다.) 바로 이 무늬가 끝나는 자리에서 약간 손등 쪽으로 이동하면 거기가 이간이다. 눌러보면 움푹 들어간 느낌이 드실 거다. 그러면 제대로 혈을 짚으신 게다.

이간은 졸릴 때 볼펜으로 꾹 눌러줘도 좋은 혈자리다. 왜냐고? 보통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병든 닭처럼 졸리다. 특히 봄과 여름이 바뀌는 요즘 같은 때는 고개가 팍팍 꺾인다. 밥을 먹고 난 다음 졸음이 몰려오는 건 소화기에서 기운을 쓰고 있어서 머리까지 맑은 기운이 전달되지 않아서다. 또한 소화열이 경맥을 타고 머리 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때 이간의 수(水)기운은 졸음을 쫓는다. 졸음이 몰려올 때는 한 번씩 해보시라.

과거엔 눈꺼풀에 다래끼가 나면 발바닥에 글자를 썼다고 한다. 위쪽 눈꺼풀에 다래끼가 나면 천평(天平)이라고 쓰고, 아래쪽 눈꺼풀에 나면 지평(地平)이라고 적었단다. 이걸 보고 한참 웃었다. 미신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왜 이런 발상들을 하게 되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문자를 써서 병을 치료한다. 이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이런 것이었으리라. 문자는 상징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상황들을 압축시켜놓은 것이다. 천(天), 지(地) 이것들도 마찬가지다. 하늘과 땅의 변화무쌍한 기운이 이 두 글자에 담고 있다. 이 하늘과 땅의 기운이 새겨진 문자를 내 몸에 붙임으로써 치료한다. 이것이 옳든 그르든 멋진 사유인 것만은 틀림없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살아간다. 호흡과 먹는 것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그래서 이쯤에서 이렇게 물어야 될 거 같다. 지금 우리는 땅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음식에서 평안(平安)함을 얻고 있는가. 폭식과 다이어트라는 지옥을 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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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밖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곳 자연과 교감하고 또 나를 그 일부로서 이해하는 것. 그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아닐까*^^*
Gustav Klimt - 「Field of Popp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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