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복과 기혈로 움직이는 나라 - 下
민약이 이루어짐에 땅[地]이 변하여 나라[邦]가 되고 인(人)이 변하여 민(民)이 된다.
민이란 중의(衆意)가 서로 결합되어 몸을 이루는 것[成體]이다.
이 몸은 의원(議院)을 심복(心腹)으로 삼고 율례(律例)를 기혈(氣血)로 삼아
그 의사를 펼치는 것이다.
─나카에 조민(中江兆民), 『나카에조민전집(中江兆民全集)』1권, 92쪽
루소의 주권자(Souverain)와 조민의 군(君)
그렇다면 조민이 루소를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heart와 blood가 심복과 기혈로 번역되면서 루소와는 조금 다른 집합적 신체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부분도 살펴보자. 조민은 군(君)에 대해서 다루는 부분에서도 신체 유비를 사용하는데, 이때는 나라를 신복(身腹)/심복(心腹)으로, 중인을 사지로 비유한다.
민약이 이미 성립하고, 방국이 이미 세워졌다면 일인을 해치면 나라에 해가 없음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나라를 해쳐 중인(衆人)에 해가 없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라는 신복(身腹)과 같고, 중인은 사지(四肢)와 같다. 그 심복(心腹)을 상하게 함에 그 사지가 쇠약해지지 않는 도리가 있겠는가. 따라서 무릇 이 약속에 참여하는 자는 군으로서 령(令)을 내려도, 신으로서 명을 받들어도 항상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진실로 의(義)가 있는 바이고 리(利)가 있는 바이다.
─나카에 조민, 『전집』1권, 94쪽
이 신체 유비 또한 원문에는 없는 것이었다. 나라를 몸통[身腹/心腹]으로, 중인(衆人)을 사지(四肢)로 비유하며 그 몸통을 상하게 하면 사지가 쇠약해진다는 논리를 덧붙인다. 이는 원문에는 많은 사람(multitude)이 모여 하나의 정치체(un corps)가 되면, 구성원 중의 한 명이라도 공격을 하면 그 전체를 공격하는 것과 똑같고, 정치체를 공격하면 구성원들을 공격하는 것과 같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물론 이 때 ‘corps’와 ‘membres’는 ‘정치체’와 ‘구성원’이 아니라 ‘신체’와 그 ‘부분’으로 번역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조민은 이러한 신체은유에 착목해 이를 몸통과 사지로 번역한다. 즉 구성원이 사회계약에 의해 맺어진 전체를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바디폴리틱의 논의를 번역을 통해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루소의 원문에서 부분이 전체를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보이는 반면 조민에게는 몸을 상하게 하면 사지가 상함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논의가 미묘하게 역전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 심복(心腹)을 상하게 함에 그 사지가 쇠약해지지 않는 도리가 있겠는가”라고 말하는 조민에게 루소와는 달리 신체의 부분들보다 전체로서의 몸을 강조하는 것처럼 읽힌다. 나라를 해쳐 중인(衆人)에게 해가 없는 것이 불가능하고, 심복을 상하게 하면 사지가 쇠약해진다는 논의는 루소와 동일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와 인민의 관계로 한정해 보자면 인민을 강조하는 루소와 달리 조민은 전체로서의 나라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조민의 정치체가 동양의 전통적 신체정치에 갇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앞서 보듯 전체와 부분과의 관계가 루소 식의 순환론적 신체와 달리 전통적인 신체관의 자장 하에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민약역해』 2권에서 몸과 사지의 관계로 ‘방국’과 ‘중서(衆庶)’를 설명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무릇 방이라 국이라 하는 것은 무리가 상합해 이룬 것에 불과하다. 방국은 몸[身]과 같고, 중서(衆庶)는 사지와 같다. 방국이 힘써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지켜[自保] 괴열하지 않는데 있는데 이는 사람에게 가장 급한 바 역시 스스로 그 몸을 지켜 훼상하지 않는데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이 사지에게 명령하는 바의 뜻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방국이 무리에게 해당하는 것도 이와 같다.
─나카에 조민, 『전집』1권, 113쪽
조민은 이를 나라와 중서(衆庶)의 관계로 설명해, 몸과 사지의 관계로서 비유한다. 즉 사람이 사지에게 명령하여 그 몸을 지켜 훼손하지 않는 것처럼 방국이 중서에게 해야 할 일 역시 이를 따라 괴열하지 않는 것에 있음을 논하고 있다. 앞서 의회를 ‘심복’에 유비한 것과 비교한다면 여기서는 나라가 몸의 자리를, 인민이 사지의 자리를 차지하며 몸과 사지의 관계는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된다. 물론 루소에게도 사회계약을 통해 만들어진 공공 인격은 정신적 인격과 인민들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복종의 관계가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조민 식대로 군주와 신민의 관계로 치환하면 전통적인 신체 유비에서 자주 등장하는 군주에 복종하는 신민이라는 관계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게 되는 문제를 낳는다.
군(君)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조민이 말하는 군주는 기존의 군주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조민은 루소의 Souverain 장을 다음과 같이 군(君)의 논리로 번역한다.
군으로서 령을 내어 의(義)에 어긋남이 없다면 신으로서 반드시 그 이익[利]을 받는다. 신으로서 직무를 수행해 도리[道]에 배반하지 않으면 군으로서도 반드시 그 복을 얻는다. 군이라 신이라 하는 것은 처음부터 두 사람인 것이 아니다. 무릇 군은 무리가 모여 이루는 것[夫君合衆而成]이기 때문에 군에게 이익이 되는 바는 반드시 무리에게 이익이 되는 바이고 서로 저촉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군이 령을 내어도 신은 모름지기 이것을 억누르지 않는다. 무리가 함께 령을 발해 무리를 해하고자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무리가 함께 령을 내어 중인이 모두 령을 내어 이로써 일인 혹은 수인을 해하고자 하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다. 이는 즉 논변을 더하지 않아도 명백한 것이다.
─나카에 조민, 『전집』1권, 94-95쪽
여기에서 조민이 말하는 군이 명령을 내어 의에 어긋남이 없으면 신 역시 그 이익을 받는다는 논리는 전통적 발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조민이 말하는 군은 ‘무리가 모여 이루는 것[夫君合衆而成]’이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민은 이 ‘군’을 전통적 ‘군주’로서가 아니라 ‘무리가 모여 이룬 것’으로 파악한다.
이는 순자의 ‘군주란 무리를 잘 이루는 자[君者 善群也]’라는 구절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조민이 말하는 군(君)은 단순히 무리를 이루는 군(群)하는 성질로 파악한 순자식의 아이디어와도 다르다. 조민은 “소위 군(君)이라는 것은 중인상합(衆人相合)한 것에 불과하다. 비록 군신이 맹약을 맺었다고 말해도, 실은 사람들이 몸소 자기자신과 맹약한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중인이 서로 의지해 일체(一體)가 되어 논의해서 령(令)을 발하는 것이 즉 군이다. 별도로 두어 그를 존봉(尊奉)하는 것이 아니다. 무릇 이 약속에 참여하는 자는 모두 군”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군이라는 것은 합중해서 이뤄진 것으로, 고로 신은 군에게 있어 전체(全體)의 편단(片段)”과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조민은 루소의 일반의지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군을 ‘중인’이 ‘상합(相合)’ 혹은 ‘합중’해서 이뤄진 것을 명시하고 있다. 조민은 원문에는 없는 군주와 주권자로서의 군의 차이를 집어넣어 독자들이 이를 실제의 군주로 오해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7장 ‘주권자(Du Souverain)’라는 장을 굳이 ‘군(君)’이란 말로 옮긴 것에서도 그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주권자가 원래 ‘최상의, 최고의(supreme)’라는 어원에서 나온 말임을 고려하면 이를 당시 최고의 권력을 가진 군으로 번역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민이 □민약역해□에 앞서 번역한 □민약론□에서 7장의 제목을 ‘군주’라고 번역하던 것을 바꿔 『민약역해』에서는 ‘군’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토리 도쿠나 하라다 센의 다른 사회계약론 번역본들에서도 이 장은 공통적으로 ‘군주’라 번역되는 것과 비교해도 조민이 ‘군’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로서의 ‘군주’로부터 벗어나 군주의 추상적 기능으로서 ‘군’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조민이 □민약역해□에서 주권자를 군이라 번역하면서 이 군을 ‘중인이 일체가 되어 논의해서 령을 발하는 것’이라 해석해 내고 있는 것은 기존의 군주를 가리키기 위함이 아니라 일반의지의 체현으로서 군을 정의내림으로써 전통적 군신관계를 변용시키려는 그의 의도였다. 이는 주권이라는 근대적 개념을 전통적인 ‘군(君)’이라는 개념 속에 녹여내고자 한 것이었다.
민(民)이란 무엇인가?
민주국이란 인민이 서로 함께 정치를 행해 나라의 주인이 되어 별도로 존(尊)을 두지 않는다. 의정(議政)의 권(權)이란 제7장에서 말하는 이른바 군권(君權)이다.
─나카에 조민, 『전집』1권, 74쪽
조민이 『민약역해』의 서문격인 「민약일명원정(民約一名原政)」의 풀이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그에게 군권(君權)이란 기존에 통용되던 바와 같이 군주의 권리가 아닌 의정(議政)의 권리로, 인민이야말로 나라의 주인이므로 별도로 존엄을 두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보면 앞서 사회계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민약을 통해 만들어진 신체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름 붙인 것 역시 이해 가능하다. 조민은 루소의 논리를 번역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집합체가 무리와의 관계에서는 ‘관(官)’, 법령을 내는 자로서는 ‘군(君)’, 무리를 합해 가리키면 ‘민(民)’, 율례를 논의하는 자로서는 ‘사(士)’, 법령에 따르는 자로서는 ‘신(臣)’이라 불리며 이는 모두 다 같은 이름이라고 말한다. 이 때 군=신(민)이라는 논리는 주권을 만들어내는 주체임과 동시에 그 주권의 지배를 받는 객체로서의 이중적 성격의 신체를 체현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조민이 왜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민약론’으로 번역했는지 역시 추론 가능하다. 루소가 사회계약론(contract du social)에서 말하는 ‘사회적인 것(social)’이 라틴어 ‘societās’의 원래의 의미인 구성원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할 때, 조민이 사회계약을 ‘민-약(民-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것은 ‘민(民)’이 사회를 구성하는 집합체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백성들 사이의 계약이라는 뜻만이 아니라 집합적 신체를 이뤄내면서 이에 지배를 받는 이중적 ‘민’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는 루소가 기존의 정치용어를 가지고 오면서도 새롭게 공화주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그대로 닮아있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일반의지와 통치기구, 혹은 주권과 정부의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루소의 사회계약은 정부(지배자)와 신민(피지배자) 사이의 계약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단계에서 사람들을 하나의 정치적 신체로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공동체 전체의 의지로서 일반의지가 등장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누가 이 의지를 떠안고 통치를 실현해 나가는가, 즉 누가 권력을 지녀야 하는가를 선택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의 문제이다. 이처럼 인민이 일반의지로서의 집합체를 이루고, 그 집합체에 의해 인민이 지배받는 순환적 관계가 루소의 바디폴리틱의 특징이었다. 조민에게 역시 군이란 실재하는 군주가 아니라 일반의지를 통해 구성되는 새로운 ‘집합적 신체’다. 그리고 이 때 방국과 인민의 관계는 심복(心腹)과 사지(四肢)의 관계로 사지가 심복을 구성하고, 이 전체로서의 심복이 사지를 다스리는 순환적 관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 신체는 분리불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조민은 사람이 활동하는 바는 각각의 기관이 ‘일심’에 의해 통어(通御)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때의 ‘일심’이란 주권, 즉 일반의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는 루소의 사상을 조민이 받아들여 군의 명령에 따르는 수동적 존재들이 아니라, 일심(일반의지)으로 움직이는 바디폴리틱의 구성원으로서 민을 새롭게 만들어내고자 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두일신(多頭一身)’의 괴물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나카에 조민의 이후의 글들에서도 신체 유비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족정치를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로 묘사하는 「다두일신의 괴물(多頭一身ノ怪物)」(1887)이라는 글도 그 중 하나이다. 파리의 유학시절에 친구로부터 머리가 두 개인 사람[兩頭人]을 보았는데 이 볼거리에 관객이 하루에 천만이 모였다고 들은 바를 이야기한다. 이것이 샴쌍둥이를 본 것인지 상상 속에서 지어낸 말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는 이 양두인의 말을 옮기고 있다.
우리들 양인은 손도 겨우 두 개, 발도 겨우 두 개, 위장도 겨우 두 개로 뇌수(腦髓)는 실제 두 개가 된다. 따라서 우리 중 일인이 동쪽으로 가고자 하면 다른 일인은 서쪽으로 가고자 하고, 일인이 갑을 취하고자 하면 다른 일인은 을을 취하고자 하므로 실로 곤란해진다. 한층 더 곤란한 것은 우리들 일인이 이미 충분히 먹고 충분히 마셨다 해도 다른 일인이 아직 충족되지 않는 동안 수족은 결코 휴식할 수 없으므로 실로 곤란해진다. 한층 더 곤란한 것은 수족이 함께 가업(稼業)이 풍족해 할 때는 괜찮지만 불경기 때에는 일일분도 안 되는 소득으로 양인의 입을 배부르게 할 수밖에 없으므로 실로 곤란해진다.
─나카에 조민, 『전집』11권, 43쪽
조민은 양두인조차 이러할진대 머리가 10개, 12개가 된다면 그 곤란함이란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는 몸통이 하나이기 때문에 머리를 잘라내면 다른 여러 개도 반드시 고통을 느끼고 쇠약해지기 때문에 잘라낼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호족정치에 비유한다. 호족정치도 이와 마찬가지로 한 몸 위에 여러 뇌수(腦髓)가 병렬해 있고 그 위에 또 한 개의 대뇌수(大腦髓)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뇌수 아래 몇 개의 소뇌수(小腦髓)가 병렬해 사지를 사역시키는데 호족정치의 곤란함이 있다고 문제를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 괴물의 신체를 고쳐 쓸 만한 물건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몸뚱이 위에 병렬해 있는 여러 뇌수 중에서 그 이목이 가장 총명하고, 그 구강(口腔)이 가장 담백하고, 일신과 사지를 위해 이익을 잘 도모하고, 이를 침해하지 않는 것을 뽑아, 그 밖의 다른 여러 뇌수는 아래로 밀쳐내 몸통[身肢]의 대열에 놓는다. 이에 요즘 구주에서 유행하는 외과술을 모방해 발가락에서나 허벅지에서 가지고 와서 이를 이식[埴捏]해 머리[頭首]로 만들어 그 뇌수를 대신하여 몸뚱이 위에 위치시킨다. 그렇다면 정상에 대뇌수는 어떻게 하리요. 내 말은 비유다. 당신이 만약 비유의 말을 일일이 짚어 그 올바른 뜻이 무엇이냐고 추궁한다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다두의 괴물이란 비유로, 나의 뜻은 정체론(政體論)에 있다. 보아라. 입헌정치를 잘 하는 정체에서는 행정 수장 즉 내각수상은 항상 의원으로부터 진입해 정치기관의 병권을 쥐는데, 그 대뇌수(大脳髄)며, 대두수(大頭首)인 군주는 존엄한 바가 귀신과 같고, 무위를 하더라도 천하가 다스려져 만민의 위에 임해, 정치라는 바다의 파도가 아무리 거세더라도 이를 침범할 수 없다. 고로 정체를 생활체에 비유하면 내각수상은 머리[頭首]이며 군주는 그 머리 위에 존재하는 후광[円光]이다. 오호라. 입군호족 정치는 괴물의 더러운 몸[穢体]이다. 입헌정치는 보살의 정화된 몸[浄身]이다. 이 얼마나 서로 다른가.
─나카에 조민, 『전집』11권, 45-46쪽
그렇다면 여기서 다두일신의 괴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서양의 바디폴리틱 전통에서 역시 이러한 다두일신의 괴물이 자주 등장해 왔다. 여러 머리를 가진 괴물, 즉 히드라가 그것이다. 이는 인민들이 만들어낸 결속체가 수많은 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에 지침을 내려 줄 정신이 없기 때문에 통제되어야 한다는 논의였다.
그러나 조민이 다두일신의 괴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좀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바는 머리를 차지하는 내각 수상의 자리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발가락이나 허벅지에서 이식해 와 이를 머리로 삼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른바 민권파에게 바디폴리틱은 단순히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수직적 신체를 만드는 데 동원된 이데올로기만은 아니었다. 물론 여기서 머리인 수상보다 그 머리 위에 존재하는 대뇌수(大脳髄)며, 대두수(大頭首)인 군주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심복과 기혈의 비유 속에서 의회의 역할을 강조하며 군을 하나의 집합체로 해석한 조민의 신체라는 논의가 그러하듯이, 이때의 논지 역시 군주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수상의 역할을 강조한 글로, 더욱이 그 자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강조한 것으로 읽혀야 한다.
민권파에게 바디폴리틱이 단순히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신체를 만드는 논리로만 활용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예는 『민권문답(民權問答)』(1886)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글은 민권과 관련한 기존의 논의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당시 유행하던 신체 유비에 대한 논의도 소개되어 있다.
국가는 인신(人身)과 같다. 인군(人君)을 원수로 삼고, 대신(大臣)을 심복(心腹)으로 삼고, 제리(諸吏)를 사관(四官, 眼鼻耳口)으로 삼고, 인민을 고굉(股肱)으로 삼는다. 고로 인군은 국가의 원수에 위치해 만기(萬機)를 통할해 신민을 사역시키는, 흡사 정신이 두뇌에 위치해 사관사지(四官四肢)를 지령(指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국가의 원수인 인군을 준이(蠢爾)하는 천민(賤民)과 동등시 하여 인군을 인민에 종속하는 자로 간주하는 것은 머리로서 발을 삼고, 발로서 머리를 삼는 것과 같다.
이처럼 군주를 정신의 두뇌에, 인민을 손발로 삼아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은 신체 유비가 당시에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 “답해 말하길 국가는 인신과 같다는 것은 진실로 그러하다. 그렇다 해도 유독 군주만이 원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의 국정에서는 마땅히 그 대통령을 국가의 원수로 삼는다”고 말한다. 인군을 머리로, 인민을 고굉(股肱)으로 삼아 군주가 인민을 사역시키는 당시의 일반적인 신체 유비에 대해 오로지 군주만이 정신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제를 통해 인민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논리로 틀어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르포르는 근대 민주주의를 군주라는 머리를 대체해 이제 권력은 ‘빈자리(empty place)’로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것을 행사하는 이들은 단지 임시로 그것을 차지할 뿐이다. 이 자리는 고정되지 않으며, 경쟁된다. 조민의 사상이 군주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으로서 의회 권력을 이야기하는 차원까지는 아니지만 신민이 하나의 정치체를 만들어낸다는 발상을 루소의 사유를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국권파와의 논쟁 속에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루소를 가지고 와서 추상적이고 집합적인 신체를 만들려는 노력은 근대적 주권을 사유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였음은 분명하다. 물론 르포르가 말하듯이 이 빈 자리는 언제나 미끄러진다. 그리고 이 긴장관계, 빈 자리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근대적 주권론이 보여주는 하나의 역설이었다.
조민의 『민역약해』는 루소식의 바디폴리틱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 때 조민이 추가한 심복과 사지라는 유비는 전통적 신체 유비와 유사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신체 속에서 명령하는 주체가 단순히 고정된 군주가 아니라 인민들의 합체라는 루소 식의 바디폴리틱 논의를 이어받고 있다. 이제 군(君)이라는 주권자는 단순히 군주가 아니라, 인민들의 결합으로서의 군이자 동시에 지배를 받는 신민이라는 인민의 이중적 위치로서 이야기된다. 조민은 이처럼 전통적인 군신관계와 근대적 인민주권론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아포리아를 전통적 개념의 루소적 변용을 통해 풀어낸다. 이는 근대 일본에서의 전통과 근대적 사유의 절묘한 결합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이 글은 『정치사상연구』 23집 1호(2017)에 실린 글입니다. 자세한 주석이나 참고문헌은 그 글을 참고해주세요.
- 글_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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