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부터 문성환(문리스) 선생님의 새연재,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를 시작합니다! 격주로 연재될 예정이고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익숙한 만큼 잘 알지 못하는 공자와 논어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주실 예정입니다.
누구나 아는, 공자와 <논어>
0. 인트로
안녕하세요. 호모-쿵푸스들의 공부 공동체 남산 강학원(kungfus.net)의 문리스입니다. 오늘부터 ‘공자 <논어>’에 관한 글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하네요. 개인적인 얘기를 조금 하자면, 저는 예전에 한국 근대문학을 공부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문을 통해 연재되었던 글들을 찾아 읽곤 했었습니다. 매일 정기적으로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거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찌 됐건 정기적으로 일정한 분량의 글을 써볼 기회가 생긴 셈입니다. 그것도 공자와 <논어>라니! (그런데 왜 웃음이 날까요^^)
새로 연재되는 글이기는 하지만, 보시는 분들께는 어쩌면 그다지 새롭지 않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일단 이 글의 주제인 공자(孔子)나 <논어(論語)>란 말이 당장 인터넷 서점에만 검색해보아도 대략 삼백육십팔... 권 정도의 관련 책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요컨대 ‘신상’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모르긴 몰라도 알 만큼은 또 아는 듯한,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요? 여하튼 공자 그리고 <논어>는 확실히 오래된, 그리고 익숙한 이름들인 것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한 가지 미리 고백 아니 양해를 구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이 글이 공자와 <논어>에 관해 실제 오프라인에서 진행되었던 강의를 기반으로 작성되고 있음입니다. 문서용 원고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다시 쓰기를 합니다만, 더러는 일부러 문장의 어투나 내용 등에서 현장의 흔적(!)을 남겨놓기도 할 예정입니다. 굳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도 있습니다. 이 역시도 차차 말할 기회가 더 있을 것입니다만, 어쨌든 한 가지 밝혀두고 싶은 것은, 공자와 <논어>를 잘 읽는다는 것이 저에게는 왠지 모르게 ‘날 것(生)’ 같은 말들(語)의 향연을 즐기고 싶다는 욕망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번을 기회로 일방적인 독백의 원고나 학문적인 딱딱한 원고를 지양하고 싶은 바람인 셈이지요.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사실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번 연재 글의 큰 제목은 <누구나 아는 공자와 <논어>라고 가름해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공자와 <논어>는 누구나 안다는 것, 누구나 알지만 사실은 잘 모른다는 것. 그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대략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공자’라는 이름을 못 들어본 상태로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대략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 –요즘 고등학교까지가 의무교육이던가요? 하여튼 꼭 정규 교육이 아니더라도 어찌 됐건 이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면서 <논어> 한두 구절쯤과 아니 <논어> 책과 한 번쯤 만나보지 않고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 대사로도 심심찮게 쓰일 테고, 아무리 작은 서점에라도 동서양 고전 몇 권쯤은 언제나 교양서적으로 있게 마련이니 그럴 때 공자나 <논어> 관련된 서적이 빠질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수십 권 수백 권이 있는데, 아무리 작은 서점이더라도 공자와 논어 관련된 책은 한 권씩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강의가 진행되는 이 도서관에도 <논어> 관련된 책은 꽤 여러 권이 있을 게 분명합니다. 공자나 <논어>와 관련 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났습니다. 얼추 계산해보아도 지금으로부터 이천오백 년도 더 이전 인물인 것입니다. 그 인물의 말씀을 편찬해 놓은 책이 <논어>라는 책인데, 책으로 만들어진 것도 최소한 이천 삼사백 년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깐 조금 유치하게 말해보자면, 지금으로부터 이천몇백 년 동안 <논어>는 스테디셀러인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공자의 적통도 아닌 마당에, 우리는 왜 시간상으로도 이천몇백 년이 떨어져 있고, 공간상으로도 수만 리나 떨어진 저 아득하고 머나먼 시공간의 무엇과 끊임없이 접속하려고 하는 걸까요. 공자께서 작정하고 저작 권리를 돈으로 보상받고자 했다면 아마도 공자님은 세계 최고의 부자 대열에 합류하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어쩌면 우리, 공자나 <논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너무 많이 얘기를 들어서, “나도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과거에 언젠가 나 자신이 <논어>를 읽은 것 같다”는 착각을 우리가 하고 있지는 않나. 또는 안 읽어도 될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나. 즉, 우리가 굳이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면, 그중에 우선 읽어야 할 책들 중에는 굳이 <논어>를 선택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엄청나게 유명하고 누구나 알지만, 콕 집어 얘기해보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읽지 않는 책. 모르긴 몰라도 <논어>는 여기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니면 말고!
다시 제목 얘기입니다. 뭐 어쨌든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아는 공자와 <논어>”. 그래서 누구나 다 안다고 전제하고, 그 ‘안다’라고 하는 공자와 <논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 같이 듣는 자리에서 다시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공자든, 또는 귀동냥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논어>든, 아니면 어려서부터 집이 엄하고 뼈대 있는 유학자 집안이어서 가학(家學)으로 <논어>를 배운 분이든, 혹은 생전 처음인 사람이든 등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어쨌든 지금 이 땅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듣거나, 읽어봤거나, 아니면 자기에게 관여되어 있는 의식주의 생활 규범에서나 우리가 만나게 되는 공자와 논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늘은 일단 전체 개략, 전체의 아우트라인을 그리는 강의를 해볼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아는 공자가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과, “우리가 다 아는 논어라는 책이 어떤 책인가” 하는 것,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그래서 공자와 논어라고 하는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여기까지가 오늘의 목표입니다.
1. 사마천과 공자
자, 먼저 공자입니다. 공자에 대해서 알려면 공자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문헌들을 참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에 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문헌은 뭐니뭐니해도 <논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공자 가문에서 전해졌다는 <공자가어>라는 책도 있습니다만, 역시 그다음은 사마천의 <사기>가 아닐까 합니다. 여하튼 공자를 누군가가 기억이나 기록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줬을 텐데, 사마천의 <사기>에 실려있는 공자 관련 기록(<공자세가>/<중니제자열전>)은 공자에 대한 풍부한 기록을 담고 있어서 공자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비껴갈 수는 없는 텍스트입니다.
사마천이라는 역사가는 <사기> 안에 여러 인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사마천은 공자를 상당한 분량으로 집필하고 있어요. 이는 공자와 비슷한 처지나 역할에 해당하는 다른 지식인 학자 그룹에 관한 기록들과 비교해보면 금세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분량의 문제가 지나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데, 단지 분량의 문제가 아니어도 공자에 관한 사마천의 특별 대우는 확연히 티가 날 정도입니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기> 연구자들은 공자에 대한 사마천의 존경심을 굉장히 긍정적이고 호의적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단적인 예로 이런 겁니다.
<사기>라는 책은 다섯 개의 편제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첫 번째 편제는 어떤 편이냐면 카테고리가, 제왕들, 황제들의 일대기를 그려놓은 편이 있어요. 이것을 <사기>에서는 “본기”라고 하는 제목을 붙여서 적고 있어요. 두 번째 카테고리는 제후들, 제왕들이 땅을 나눠주고 통치권을 준 각 지역의 왕들, 임금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게 있어요. 각 나라의 이야기. 이것을 “세가”라고 합니다. 세 번째, 역사의 연표, 표를 적어놓은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네 번째, 국책사업이나 경제, 또는 논설 같은 것 관련된 “서”라고 하는 글들이 있습니다. 소금 전매정책은 어떻게 할 것인지 세금은 어떻게 걷을 것인지 뭐 이런 얘기들을 적어놓은, 하나의 독립적이고 단편적인 글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사기에서 가장 유명한, 제왕도 아니고 일반 제후도 아닌 일반 사람들의 일대기들을 적어놓은 “열전”이라고 하는 글이 있습니다. 사기는 전체가 130개 편으로 되어있는데요, 이 중에 열전이라고 하는 것이 70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굉장히 방대한 분량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반 이상이 열전이에요. 이 안에 굉장히 유명한 오자서 열전이라든지, 자객 열전이라든지, 고사리 캐 먹고 죽었다는 백이 숙제 열전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이 다, 우리 조선 열전도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 속에 등장하는 공자의 이야기들
그런데 사마천은 <사기>에다가 공자의 일대기를 적어놓았는데, 어디에다 적어놓았냐면, 공자는 우리가 알다시피 왕족은 아니지 않습니까? 석가모니 붓다는, 고타마 싯다르타는 왕족의 자손이었지만, 공자가 왕족이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사마천은 공자의 일대기를 “세가”에다가 적어놓았어요. “세가”는 제후들의 역사를 적어놓는 장(場)인데, 간단히 말하면 세습(世)할 만큼의 가문(家)들 이야기인 것입니다. 가문이라고 하니까 요즘 같은 식구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엄청난 부와 권력 등을 가지고 대대로 세습을 통해 지역에서 굳건한 자기 기반을 갖고 있는 이들이며, 그래서 그 지역의 우두머리 즉 제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세가”에다가 사마천은 ‘공자 세가’라는 제목으로 공자 관련한 글을 끼워 넣어놓았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열전”에다가는 공자 제자들에 대한 열전들을 적어놓았어요. ‘중니제자열전’이라고 하는 편을 또 따로 지어서, 공자의 수많은 제자에 대한 이야기는 “열전” 편에도 한편이 있어요. 사마천이 기록하고 있는 여러 인물 중에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이 쭉 있습니다. 이를테면 노자에 대한 글도 있고, 맹자에 대한 글도 있고, 순자에 대한 글도 있고, 그리고 장자에 대한 글도 다 사마천의 <사기>에 들어있는데, 그 사람들 글은 오늘날 우리가 번역문으로 보면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분량밖에 안 돼요. 그런데 ‘공자 세가’와 ‘중니제자열전’을 합치면, 작은 책 단행본 한 권 정도의 분량이 나올 정도의 분량을 사마천이 적어놓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마천이라는 인물이 자기가 기록하는 역사서 안에서 사상가 중에서도 특별히 공자를 얼마나 우대하고 있는지를 이런 점에서 금방 알 수 있어요. 어쨌든 이 기록은 <사기>가 가지고 있는 권위 더하기 공자가 가지고 있는 권위, 합쳐져서, 공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자의 행적을 보게 되는 가장 이른 시기의, 가장 풍부한 기록을 담고 있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공자에 대한 기본 자료라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 보면 사마천이 공자를 이렇게 적어놨어요. “공자는 키가 9척 6촌이다.” 제가 공자강의를 하면서 이 얘기를 합니다. “사마천이 이런 대단한 기록을 남겼는데, 거기에 공자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거기에 공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어.” 그러면 반응이 딱 이렇습니다. 우리한테는 이게 얼만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의 센티미터로 환산하면 2m 8cm에서 2m 15cm 정도 됩니다. 그렇게 억지로 안 놀라실 필요 없어요. 일단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길 바랍니다. 공자님이 이런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건 과장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라고 가끔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기록이라는 게 언제나 믿음직한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기록을 갖고 있는 것은 없어요. 이 기록이 얼마나 과장되어 있는 건지 얼마나 사실인지를 우리가 그걸 검증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사마천은 이렇게 적어놓았어요. “공자의 키는 9척 6촌이다.” 이렇게만 적어놓은 게 아니고, 뒤에 “장인(長人)”이라고 또 적어놓았어요. 키가 크다, 꺽다리다. 사마천도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안 믿을까 봐, “키가 9척 6촌인 키다리”라고 써놓은 것은 아닐까요? 이것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렇게까지 써놓았는데 일단 한 번 믿고 가보는 게 어떨까요. (^^) 자, 다음에는 다른 기록을 또 살펴볼까요?
키가 9척 6촌(2m 8cm ~ 2m 15cm)이었던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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