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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 활보(闊步)

더 나은 삶이란게 뭘까? 장애를 꼭 결핍으로만 보아야 할까?

by 북드라망 2016. 4. 8.



노답(No)을 위한 인문학




활동보조인들을 고용하는 이용자들은 기본적으로 2인 1조로 생활 하도록 신체가 세팅 되어 있다. 나는 2달 동안은 그렇게 트윈체제를 유지했었고 그게 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으니 본의 아니게 이용자의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게 된 것. 내가 일하지 않을 때에도 이용자는 도움이 필요했고 어머니는 도울 시간이 없었다. 방법을 찾던 이용자는 '단기거주시설'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단기거주시설은 장애인의 자립 준비를 돕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단 식사와 세탁 등의 기본 캐어를 제공한다. 그 외 시설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 말고는 장애인이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터치하지 않는다. 입소와 퇴소가 자유롭고 활동도 자유롭다. 장애인들을 위한 하숙 OR 호텔이랄까. 전국에 약 130여개의 단기거주시설이 있고 자립형 공동생활가정(그룹 홈, 전국 680여 곳)과 함께 인권침해 가능성이 낮은 곳으로 평가되어 따로 인권실태조사를 받지 않는다. ‘단기거주시설’은 부분적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지만, 장애인들이 매달 내는 월세가 아니면 시설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곳에서 장애인들은 엄연한 손님이다.


이것저것 알아보던 이용자는 고민 끝에 단기거주시설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이용자는 더 큰 공생의 시절인연을 만나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처음 시설에 들어가서는 화장실 등 공동이용공간을 불편해 했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그곳 생활에 적응한 모습이다. 나는 뭐 처음에는 좀 귀찮았다. 이용자 부모님이 해주시던 일들을 떠 맞게 되어서 짜증이 났다. 그리고 시설이라니, 부정적으로 생각되었다. 직원들은 정말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것 같았고 같이 사는 장애인들은 냉랭해 보였다. 그런데 이용자는 이상하게 그곳을 좋아했다. 왜일까? 생각하다, 에라 모르겠다. 난 그냥 이용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어느 샌가 귀찮은 일들도 적응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8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그 동안 나는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여기 생활에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여기 머무는 6명 여의 장애인들과 부대끼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들은 개성이 너무 빼어나서 혀를 내두를 정도다. 주요 인물들을 간단히 소개해본다.


드라마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부대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훈남이는 15세이다. 지체와 지적장애를 겪고 있어서 거의 식물인간 상태이다. 중학생 나이지만 학교를 잘 안 나가서 아직 초등학생이다. 모든 의사표시를 울음으로 대체한다.


규명이는 12세이다. 지적 장애에 감정조절이 잘 안 된다. 울거나 웃거나 둘 중 하나다. 트로트와 각종 만화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건홍씨는 33세, 다운증후군이 있다. 별명이 노홍철이다. 아무한테나 형님, 형님 한다. 어딜 갈 때나 달린다. 밥 먹을 때도, 누가 불러도, 계단을 오를 때도 무조건 런이다. 그나마 빨래 등등의 잔심부름을 할 수 있어서 주방 아주머니가 맘에 들어 한다.


권진이는 29세. 뇌병변 1급이다. 다혈질이고 철이 없다. 민기 아저씨와 매번 싸움을 벌인다.


민기 아저씨는 52세. 왜소증(난쟁이)이 있었는데 어느 날 계단을 올라가다가 다리가 골절되어 그때부터 전동휠체어를 탄다. 사주의 지지 네 글자가 다 역마살이다. 옛날에는 차를 개조하여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셨단다. 누가 어딜 가면 곧잘 따라간다. 말빨이 장난 아니고 영화를 좋아하는데, 총 나오는 장면이 아니면 코를 골고 주무셔서 같이 영화를 보러 가면 관객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매번 깨워야 한다.


그곳의 한 풍경. 나의 이용자는 노래를 틀어놔야 공부가 잘되는 편이라 노래가 항상 틀어져 있다. 추모의 의미로 레이디스 코드의 댄스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밖에서는 성인가요채널 아이넷에서 땡벌의 라이브 실황이 나오고 있다. 규명이는 땡벌에 맞춰 추임새를 넣고(“땡벌! 땡벌!”) 춤을 춘다. 노래가 끝나면 아무에게나 가서 뽀로로를 틀어달라고 조른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묵묵부답으로 응수한다. 아무도 뽀로로를 틀어주지 않자 딱따구리처럼 머리를 벽에 계속 들이받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건홍씨는 모두에게 형님, 형님하면서 인사를 한다. 나에게 기차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로 어제의 이슈에 대해 크게 알린다. 그에 못지않은 목청으로 민기아저씨가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른다. “조용히 안 해! 둘 다 약이나 빨리 쳐먹어!” 그럴수록 둘(규명, 건홍씨)은 소리를 더욱 높인다. 권진이는 성경을 읽는다고 난리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인물이 화가 난 것 같다. 멀리서 배고프다고 혹은 똥 쌌다고 알리는 훈남이의 격한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 온다. 이 혼돈의 상태에서 나는 허허 하며 책을 읽는다. 이것이 내가 만나는 그곳의 평범한 일상이다.


오늘도 사건이 터졌다. 권진이가 다니는 교회에서 이 시설에 큰 지원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원장님은 기특한 나머지 권진이에게 ‘운영위원장’이라는 직책을 주었다. 물론 명예 말고는 아무 권한이 없는 직책이다. 그런데 그것도 완장이라고 공익근무로 일을 하는 친구에게 민증 까보라고, 너 일 못하니까 잘라버릴 거라고 윽박질렀단다;; 원장님이 대노하셔서 일장연설을 하시는데 “느에(네), 느에(네)” 하지만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저번에는 매주 컴퓨터 활용을 가르치러 오시는 선생님과 수업을 하는데 본인께서 졸리시다고 커피를 좀 타오라고 했었다;; 또 한 번은 같은 방을 쓰는 건홍씨와 뜻을 합쳐 방에 있는 티비로 유료채널을 결재해서 온갖 므훗한 영상들을 실컷 봤다.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방에 일찍 들어가는 두 사람을 의심스럽게 생각하긴 했었다. 어느 날 원장님이 티비 요금을 보니 두 달에 18만원! 원장님의 뒷목을 잡게 한 이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같이 실컷 혼나고 매일 한 시간씩 운동을 명령받은 건홍씨. 운동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밤 7시에 가출을 했다. 인근경찰이 총출동되고 사무장님과 원장님이 새벽에 나와서 고생을 치렀다. 다음날 새벽 3시에 귀가했는데 도통 어디 갔는지 말을 안 한다. 주방에 찬장을 보니 200개들이 커피믹스 통이 텅 비어 있다. 건홍씨가 한 번에 커피믹스를 9개씩 타먹었다는 정보가 나왔다. 이러니 밤에 안 나갈 수가 있나. 이런 등등의 에피소드가 매일 최소 1건씩 일어난다. 나는 매일 시트콤을 현장 관람하러 가는 기분이다. 이 모든 조화에 시나리오 작가가 있다면 어떤 드라마를 맡아도 시청률 40%는 그냥 찍을 것 같다.


그들의 일면을 보면 정말 특이하다. 그런데 나도 뭐 평범하지는 않다. 그곳에 가면 어느 누구하고도 이야기하지 않는다.(평소 성격) 뭘 물어봐도 단답식으로 대답한다. 내 이용자랑만 쑥덕쑥덕. 낮은 캐비닛을 책상 삼아 한창 뭘 쓰고 있는데 가서 보면 이상한 한자가 빽빽하다. 민기 아저씨가 뭔 주문을 쓰고 있냐고 한마디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 노트북에 문서를 켜놓고 뚫어지게 쳐다만 보고 있다. 컴퓨터는 고스톱 등등의 각종 게임을 하는 기계인 것인데 저렇게 컴퓨터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니 쯧쯧. 선생님 되는 공부를 했다는데 여기서....... 이 일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미래가 없어, 다른 일을....... 쯧쯧. 사회복지사 자격증만 따면 좋은 데 소개시켜 줄게. 어디 애인은 있어? 에구 쯧쯧쯧.


좌충우돌 사건이 끊이지 않는 그 곳, 그리고 그곳의 나...



나를 포함한 이런 사람들을 인터넷 전문용어로 노답(No答)이라고 한다. 영어 No와 한자 답(答)의 합성어이다. 답이 없는 상태. 고시원에서 벽 긁고 있는 고시생들보다 더 미래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 이 사람들, 어찌 된 일인지 너무나 태평하다. 사는 게 걱정이 없다. 뭘 하고 놀지만 생각한다. 유일한 고민은 놀 게 없을 때 뿐. 대책 없는 내가 봐도 ‘참으로 대책이 없구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근데 뭐 걱정이 없을 만하다. 이 공간에서 살면 일단 먹고, 자고, 입는 게 해결이 된다. 시설을 이용하는 비용은 장애인 연금이나 기초생활 수급으로 어느 정도 땜빵이 된다. 게다가 공간의 배치가 심심할 틈이 없다. 가끔은 하루 이틀 묵고 가는 장애인들이 오는데 그 사람들 구경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거기다가 매번 실습생과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회사의 직원들, 학교에서 말썽을 부린 봉사학생들이 출입한다. 그들이 와서 일을 하고 있으면 은근히 뒤에 가서 왜 왔고, 뭐하다 왔는지 묻는다. 사람들의 살아온 내력을 들으면 하루가 또 그냥 간다.


사람의 출입이 뜸하면 선물의 출입이 잦아진다. 사람들은 각종 기관에서 후원하는 상품들과 선물들을 해치워야 한다. 하루는 과자가 3-4박스 오고 하루는 빵이 한 무더기 온다. 또 어느 날은 크리스피 도넛이 폭탄으로 와서 저녁을 모두 도넛으로 해결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또 하루가 간다. 사람도 많고, 오고가는 물건도 많다. 사람도 물건도 스쳐가는 대로, 없으면 없고 있으면 있는 대로 그냥 산다. 물론 여기가 자본의 논리고, 냉랭한 국가 시설이고, 영혼 없는 인간 대접이고 등등 걸리는 것이 있다. 근데 이곳 생활이 초기(2-3월)에 둘이서만 아파트에서 쑥덕이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생활인 것 같았다. 그때에 비하면 여기가 소통과 순환이 원활한 공간이었다. 뭐야, 따지고 보니 요즘 사람들보다 낫잖아? 어찌 보면 그들의 노답상태는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말하는 그 답이 답이 아니(No!)라고 말하는 상태인 듯하다.


그 중에 홀로 고고하게 답 있는 생활을 유지하는 분이 계시니 나의 이용자님. 내가 있는 시간에는 항상 취업공부에 매진하신다. 책장에는 SSAT(삼성시험) 요점정리 책, 인적성 검사 문제집, 재무 관리 책, 공기업 법학 책들이 두껍게 자리하고 있다. 노트북에 한글 문서를 켜놓고 옆에 세워놓은 재무 관리 책을 검토한 다음 그것에 대해 코멘트를 단다. 매번 턱으로 책장을 넘기고, 입술과 턱으로 키보드를 쳐가면서 꼼꼼히 요점 정리를 한다. 민기 아저씨와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뒤에서 낄낄댄다. 왜 사서 고생이람. 아무도 시키지 않은 고역을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공부할 때마다 매번 씩씩 거리면서, 졸리고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몰래 단체 카톡할 때와 인터넷 서핑할 때는 빼고^ㅠ^ 여튼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 제일 고난을 겪고 있다. 그리고 나한테 맨날 책보고 그러는데 왜 안조냐고, 머리 안 아프냐고 물어본다. 나는 재밌는 거 하는 거라고 뻥을 쳐준다. “나는 재밌으니까 하는 거야. 너가 하는 거랑 달라.” “그걸로 책 쓸 거에요?” “뭔 책을 써, 걍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지.” “.......”


이용자는 중심을 향한 열망이 있다. '서성한' 중에 한 대학에서 경제학과까지 나왔는데 당연히 취업이 될 줄 알았겠지.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지원하는 데는 대기업 아니면 공기업인데 상황을 보면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급이다. 장애인을 뽑는 경쟁도 녹록치 않다. 사지 멀쩡한 나이롱 장애인들(내가 보기엔)이 많다. 장애인만을 채용하는 곳의 면접을 가도 휠체어를 탄 지원자는 이용자뿐이다. 비겁과 인성이 7개에 딸랑 재성 하나인 이용자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지만 쉽게 할 수가 없다. 거기 취업하면 또 고난의 연속일 텐데 왜 꼭 그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나의 저주파 아우라에 휩싸인 이용자는 점점 노답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이용자는 중심을 향한 열망이 있다!



언젠가 이용자의 ‘성공을 위한 인맥’에 들어있는 한 청각 장애인 분의 북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입장하려면 책을 사야 해서 강매를 당했던 슬픈 기억이 떠오른다;; 그것보다 충격이었던 것은 책의 한 내용이었다. 자기 삶의 이력을 써내려가는 책의 52페이지의 한 구절. “나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은 나의 글이었습니다.” 날 때부터 청각장애였던 그 분은 자신이 뭔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글이라는 내용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왜 장애가 결핍이여만 하는지를 물어보려 했으나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으신가, 이상형이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에 대답하느라 내 차례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북 콘서트는 끝났고, 나중에 나는 질문을 하지 않은 게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때 꼴랑 활보 6개월 정도 했을 때인데 장애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이 우습게 여겨졌다. 장애인과 관련된 곳 중 가장 비싼 건물이라는 그곳을 나오면서, 나는 책을 낸 그분이 나중에는 장애를 결핍으로 느끼지 않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애인들이 생각하는 결핍은 무엇인가. 대개 비장애인의 삶이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 그것을 얻고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장애인의 삶을 얻는 것이 과연 성공인가? 일반인들도 꿈꾸어 바라마지 않는 그런 대기업 간부, 중산층의 스위트 홈 생활로 장애의 결핍을 채워나가면 정말 행복한가? 그것은 진정 ‘내’가 꾸는 꿈인가? 정말? 이런 것을 고민하는데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취약하다. 나는 단기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의 삶과 나의 노답 같은 삶이 이용자가 꿈꾸는 삶보다 더 덜 떨어진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이용자가 꿈꾸는 삶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용자는 사회가 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괜한 잔소리 같은 생각을 한다. 내 이용자가 여러 다른 길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면 어떨까. 나는 그 친구의 포부가 워낙 커서 선뜻 공부가 필요하다고, 다른 방식의 인생을 모색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해주지 못한다. 물론 이용자가 공부하기를 바라는 나의 욕망은 계몽적인 제스쳐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교육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배웠고, 자신의 고민은 오직 자신만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배웠다. 나는 이용자를 친구로 대하고 싶고, 자신의 고민에 대해 그 스스로 돌파해나가기를 바란다. 이게 계몽주의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계몽주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밥을 사주겠다고 꼬셔서 내가 공부하는 공간을 구경시켜주었다. “이것이 인문학이다! 이것이 인문학이다!” 생각보다 큰 규모에 이용자는 놀랐다. 그리고 나도 놀랐다. 장애인들이 공부하기에는 이 공간은 꽤 불편했다. 베어하우스는 경사 때문에 몇 번 이동하다보면 활보가 죽어날 것 같고, TG건물은 휠체어가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 책상을 보여줄 수 없었다....... 좀 그랬다. 나의 이용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더 고민을 해본다.



박준오(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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