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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 활보(闊步)

[활보활보] 나는, 밝고 온화한 J의 우렁각시!

by 북드라망 2016. 6. 10.

나는 부부의 활보다!


나는 11월부터 월요일마다 활동보조를 하고 있다. 내가 활보하고 있는 집은 40대 중반의 내 또래 장애인 부부의 집이다. 남편 O와 부인 J는 10년 전 지인의 소개로 결혼했다. 그들은 한때 여느 평범한 부부처럼 각자의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잘 나가던 때도 있었다. 소아마비로 하지 장애가 있는 O는 요즈음 주로 침대에서 생활을 한다. 그로 인해 O의 신변 처리 및 가정의 전반적인 일은 J의 몫이다. 부인 J는 한쪽다리 소아마비로 스쿠터를 이용해야 외출이 가능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장애인은 항상 우울하고 불행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이런 선입견은 다행히도 첫날 여지없이 깨졌다. 부부의 집에서 활보를 하면서 무엇보다 밝고 온화한 분위기에 깜짝깜짝 놀란다. 그 역할은 주로 J가 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만날때마다 잠들어 있는 O

센터 직원과 함께 O의 집에 처음 갔던 날은 O가 깊이 잠들어 있어서 인사도 하지 못했다. 밤낮이 바뀌어서 오전 내 잠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J가 대신 O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결혼하고 5년 정도 지나서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척추통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서 수술을 하다가 그만 신경을 건드리는 사고가 생긴 것이다. 그 후로 O는 산모의 산고에 비견될만한 통증을 항상 겪으며 살고 있다. 부부의 거의 모든 경제활동은 중단되었다.

이 통증병의 문제는 진통제가 듣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마약성패치를 달고 산다. 통증은 신경이 관할하기 때문에 날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궂은날에는 더더욱 컨디션이 제로에 가깝다. 밤새 통증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결에나 잠깐 잠이 든다. 월요일마다 그가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내 집인 양 인사를 한다. 잘 잤어요?라고.

잘 잤어요?



남자라서 불편해요

월요일마다 내가 하는 일은 평범한 가정집의 살림을 사는 정도이다. 주로 청소하고 빨래하고 점심해서 먹이고 머리를 감기면 된다. 그중에서 머리감기기가 가장 신경이 쓰였다. O씨가 상의를 탈의하고 침대가장자리에서 거꾸로 엎드려서 욕조에 손을 짚고 버텨주면 나는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노란 이태리타올로 등과 가슴, 겨드랑이, 팔까지 구석구석 비누칠을 하고 씻어내야 한다. 명목은 머리감기지만 반 목욕이나 다름이 없다.

J가 10년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어서 그리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가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부부는 예전부터 활보의 도움을 받아와서 인지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활보도 처음 하는 일인데다가 상대가 남자이다 보니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 날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보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자주 씻을 수 없기 때문에 O의 입장에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불편함을 이겨내다

이용자가 남자라서 생기는 미묘한 불편함이 정상적인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활보하는 감이당 친구들에게 내가 하는 활보활동에 대해 기회 되는 대로 말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그런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라 대체로 불편한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들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불편하기도 하고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배운 대로 라면 이용자의 손과 발이 되어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활보의 역할이다. 나는 O를 남자로 만나고 있는 게 아니라 이용자와 활보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몸이 불편하지 않다면 활보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활보의 기본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답을 할 수 있게 되자 불편했던 마음도 점차 사라졌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머리를 정돈하고 얼굴에 로션까지 바른 O의 모습은 반질반질 밤톨같이 예쁘다. 내 마음이 다 시원하고 뿌듯하다. (어라!! 이건 엄마 마음인디)


불편함을 이겨내니 절로 뿌듯해진다!



나는 부부의 활보

활보교육 받을 때는 무엇이든 활보 뜻대로가 아니고 이용자의 뜻대로 하는 거라고 배웠다. 하지만 나는 O와 있을 때는 O의 뜻대로, 그 외의 일들은 J의 뜻에 따른다. 왜냐하면 집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이 활동이 자유로운 J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O와 불편함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O가 남자이다 보니 속내를 드러내고 친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O와의 관계에서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J가 대신해 준다. J와는 O에 관련된 이야기나 음식, 살림에 관한 이야기까지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를 날것의 통증과 순간순간 대면하는 O를 바라보는 일은 참 괴로운 일일 것이다. 가끔 보는 나도 마음이 아픈데 말이다. 일주일 내내 그런 O곁에 있다가 월요일 하루 외출하는 J는 정말 즐거워 보인다. 그런 J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J의 우렁각시임을 자처한다. 그래서 나는 부부의 활보다!!!



글_박소영(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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