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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해완's MVQ

해완's 뉴욕타임즈 마지막 이야기 - 가장 치열한 인류학의 현장, 뉴욕

by 북드라망 2015. 10. 30.


뉴욕, 인류학의 도시




1935년, 레비스트로스는 문화 현장 조사를 위해 브라질 열대우림으로 떠난다. 인류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책 〈슬픈 열대〉가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인류학 연구는 파죽지세로 진척되었고, 레비스트로스가 몸소 남긴 강렬한 이미지는 그대로 남았다. 일명, 오지로 떠나라! 였다. 인류의 다양성과 타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라는 사명을 띤 채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로, 남미로, 호주로, 더 멀리 또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지금 여기, 인류학의 현장


그러나 왜 문명화가 ‘덜 된’ 장소만이 인류학적 가치를 지닌단 말인가? 갈취의 대상이든 탐구의 대상이든 간에 왜 타자는 언제나 ‘비서구권’으로 정의되어야 할까? 이것이 바로 내가 문화인류학 입문 수업을 통해 배우게 된 질문이다. 아니, 교수가 이 질문을 직접 던진 것은 아니다. 내가 갑자기 이 질문을 떠올리게 된 것은 순전히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 때문이었다.


뉴욕의 시립대 중 한 캠퍼스의 풍경. 어느 캠퍼스을 가나 100가지가 넘는 국적의 학생들이 모여있는 것은 기본이다.



이들은 시립 대학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들이다. 학점 올리기에 골몰하고, 학교 끝나면 알바 뛰느라 정신없고, 필수 교양과목을 어서 듣고 치워버리고 싶어 하거나 미루다 못해 마지못해 수업을 신청한 그런 학생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문화 인류학 수업 시간에 그 누구보다 열성적인 발언자가 된다. 학생의 위치를 뛰어넘어,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특이한 조건’을 짊어지고 걸어와야 했던 삶의 대변자가 된다. 둘러보자. 백인, 흑인, 황인이라는 삼분 안에 다 포함될 수 없는 다양한 피부색 스펙트럼이 눈에 띈다. 이 역시 뉴욕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교실 풍경이다. 각색의 문화가 계획되지 않은 모자이크처럼 마구잡이로 엮여 있는 도시에서는 이를 두고 평범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대학 건물 한구석에서 인류학은 강의가 아니라 생생한 서사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인류학은 인간이 인간을 마주할 때 생기는 ‘낯섦’의 감정 속에서 태어났다. 그런 점에서 뉴욕은 참으로 인류학적인 장소다. 뉴요커들은 인류학 현장의 한복판을 매일 가로지르고 있다. 가장 문명화된 장소에 가장 길들여지지 않은 지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힙합 음악을 귀청 떨어지게 크게 듣는 남미 할머니, 잘 차려입은 양복을 입고 불어를 구사하는 흑인, 포장 음식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는 중국인 아줌마……. 지하철을 타고 반대편에 앉은 사람을 빤히 응시할 때마다 나 자신의 한계를 묻게 된다. 나에게 저 사람은 얼마만큼이나 ‘인간’인가, 하는 노골적인 질문을.




인종: 한국에서 뉴욕으로 이행하는 질문


인류학은 타자를 이해하는 학문이며, 이를 위해서는 일단 ‘나’를 구성해왔던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첫 발자국에는 늘 인종이라는 관문이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서구 역사에서 수많은 철학자들이 훌륭한 정의를 내렸지만 이것들은 그 ‘인간’의 자리에 흑인이나 황인이 오는 순간 다 무용지물이 되었다. 최고의 깊이를 자랑하는 온갖 철학들도 끝내 피부색이라는 가시적 껍질을 뚫지 못했던 것이다. 인류학은 이 유치함을 인정하고 출발한다.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는 듣기 좋은 선언 말고, 밥 먹고 똥 싸고 연애하는 여기 뉴욕 생활에서 피부색은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 관문은 쉽지 않았다. 친구들이 열심히 떠드는 동안 나 혼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때만큼은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흔히 한국을 가리켜 단일 민족이라고들 한다. 물론, 이는 사기다. 피가 섞였을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피와 피를 가르는 그 경계선을 대체 누가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 사기는 어찌되었든 먹혀 들어가고 있다. 한국이 타인종을 직접 마주대한 역사는 고작 1세기 밖에 되지 않았다. 15세기부터 식민지 개척한답시고 전 세계를 쏘아 다니면서 징글징글한 역사를 써왔던 서구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서는 여전히 검은 머리에 한국어를 쓰는 절대 다수의 이미지가 먹힌다. 이 다수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국적인’ 외모(한국에서 태어난 흑인 미군의 자녀들)와 ‘이국적인’ 문화(외국인 노동자들의 음식점), 그리고 ‘외국어’(다양한 방언)를 무시해 버릴 만큼 힘이 세다. 타자를 마주하는 불편함 따위, 콧바람 한 번 흥 불면 날아갈 만큼 별 것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내 마음 속에 인종이라는 개념은 흐릿하고 얕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인종 차별에 곱지 않은 시선만 보냈다. 21세기가 되었으니 백인과 흑인이 사이좋게 지내면 될 텐데, 뭐가 문제람? 결국 이번 인류학 수업은 진정한 의미에서 내가 한국에서 뉴욕으로 이행한 첫 발자국이었던 셈이다.


수업 시간의 한 풍경. 별 특기 없고 학점에 목 매는 평범한 학생들이지만 이 수업에서는 적극적으로 경험을 나눈다. 서로 울컥 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인종 차별의 문제는 ‘인종’ 자체다


모든 힘의 관계가 그렇듯, 인종 차별도 ‘우월한 백인 VS 열등한 흑인’, ‘괴롭히는 백인 VS 당하는 흑인’이라는 단순한 구도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진실을 보려면 인식의 층위로까지 내려가야 한다.


내 동료 학생들의 괴로움은 인종 간의 관계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지독히 불평등한 관계를 토대로 인종이라는 ‘객관적 개념’이 탄생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흑인과 백인의 관계는 이미 불평등한데 ‘흑인’이라는 개념과 ‘백인’이라는 개념은 중립적이라고 내세운다면 이는 형용모순 아닌가. 이런 사회 속에서 내 피부색을 인식하고 내 정체성을 세우려면 피해 의식을 내면화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미 나눠진 인종의 카테고리 속에서, 의지와 무관하게 이 카테고리 중 하나로 분류되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어디까지가 차별이고 어디까지가 차이인가? 어디까지가 편견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내 몸은 어디까지가 인종이고 어디까지가 나 개인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그대로 상대방에게 투사된다. 내가 나를 재단한 방식만큼, 나 역시 상대방을 재단할 준비를 하게 된다.


모든 인종은 동등하며 존중받아야 한다. 말은 쉽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렇듯이 복잡하다. 합리적인 인종 분류와 비합리적인 인종 차별은 단 한 번도 조화를 이룬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젊은이들은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 가령, 흑인이라고 다 같은 흑인이 아니다. 백인 차별주의자를 처벌하기 위해 흑인-역차별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피해 의식에 짓눌려 흑인-피해자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고, 현실의 장벽에 체념하여 흑인-피지배자에 머무르기도 한다. 오히려 흑인을 정형화하는 문화 기호에 (농구, 힙합, 재즈…….) 지친 나머지 반-흑인을 지향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인종 문제를 아예 회피해버리면서 비-흑인의 길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결국 탈색된 흑인, 즉 무의식중에 백인을 쫓아가는 흑인-백인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백인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최소한 인종 차별에 동참하지는 않는다고 자위하는 백인-양심주의자,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의식에 시달리는 백인-가해자, 타인종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백인-기피주의자……. 인종 차별에 맞설 만큼 용감한 사람도 많지 않지만, ‘흑인’이나 ‘백인’이라는 자의식에 개의치 않을 만큼 자유로운 사람은 극도로 드물다.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표지. 열대를 가로지르며 그가 남긴 에세이는 전 세계에 인류학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피부색이 선명하지 않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수많은 백인들이 건너가 대대로 살았던 남미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어머니는 백인이고 아버지는 피부색이 하얀 남미 출신이라면 어떨까? 이들의 아들은 까만 눈에 까만 머릿결, 눈처럼 흰 피부를 가졌음에도 여전히 설문조사에 ‘남미인(Latino)’을 체크해야 한다. 똑같은 외모를 가진 쌍둥이더라도 ‘로페스(Lopez)’라는 남미 출신 이름이냐 ‘제임스(James)’라는 앵글로 색슨 출신 이름이냐에 따라  사회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럴수록 인종이라는 개념은 우스꽝스러워진다.


한마디로, 인종 차별의 핵심은 ‘인종’이라는 개념이다. 인종이라는 개념이 지속되는 이상 차별도 분열도 계속 된다. 따라서 뉴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류학은 생존 전략일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인류학적 질문은 매 순간 평화로운 일상을 침입해 들어온다.




함성의 의미


저번 주, 대학 수업을 통틀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겪었다. 인류학 수업에서 ‘인종’ 파트가 끝나던 즈음, 한 학생이 용감하게 질문했다. 교수님은 출신이 어디십니까.


젊은 교수 갑자기 강의를 하다 말고 주춤했다. 처음이었다. 침이 사방에 튈만큼 열성적으로 강의하고 세상의 모든 인종차별주의와 맞서 싸울 것 같았던 이 양반이 말을 멈춘 것은.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미라고. 학생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누가 봐도 교수는 백인이었다. 눈이 까맣고 머리도 까만 곱슬이긴 했지만 남유럽 지중해 출신이라고 하면 누구라도 믿을 것이었다. 그런데 남미 출신이라니? 그의 영어에는 스페인어 악센트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의 이름은 남미 스타일이 아니었다. 다른 학생이 또 물었다. 성은 남미 출신이 아니신데요. 그는 조금 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기 성을 앵글로 색슨처럼 바꿨다고. 남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없이 거절당했던 아버지의 조치였다는 것이다. 마침내 기다리고 있었던 질문이 나왔다. 그럼 어디 나라 출신이신데요.


그는 잠깐 뜸을 들이고 답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라고. 푸에르토리코는 현재 미국령이 된 캐리비안 해의 섬으로, 뉴욕에서 가장 거대한 빈민층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인류학 수업을 맡고 있으며 우리를 열광하게 했던 젊은 교수. 굉장히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수업에 임해서 인기가 높다. 아버지에 의해 성씨를 간(?) 숨겨진 과거를 갖고 있는 사람. 어떤가, 딱 봐도 남미인 같나? ^^



그 순간,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백인 학생들마저도 열광했다. 교수는 민망한 얼굴로 얼굴을 긁적거릴 뿐이었지만. 모두들 이 함성의 의미를 오해하지 않았다. 이는 백인을 배척하고 ‘비-백인’ 클럽에 가입한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백인과 남미인, 미국인과 푸에르토리코인이라는 카테고리 사이에 끼인 채 그가 겪어야 했을 고난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안고 와야 했을 고민과 험난한 삶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선생과 학생 할 것 없이, 우리는 이 도시에서 ‘나’와 ‘너’의 위상을 끊임없이 다시 질문해야만 하는 같은 입장에 놓여 있었다.


뉴욕의 한 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늘 말하지만, 풍성한 '사람들'이야말로 뉴욕의 최고 자산이다. 최고의 인류학 현장이다.



과학계에서는 인간을 피부색(인종) 별로 분류할 수 있는 유전적 근거가 아예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종이란 철저히 추상적 개념, 뼛속까지 ‘시각적 환영’인 셈이다. 자칭 사유하는 동물인 인간이 또 사실 얼마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가. 고로, 누구나, 어느 ‘인종’이나 가리지 않고 이 환영을 깨뜨리는 전쟁에 동참해야 한다. 그 순간 인류학은 삶으로 걸어 들어온다. 역시 뉴욕은 가장 치열한 인류학의 현장일 수밖에 없다.



글_김해완




● 이번을 마지막으로 뉴욕 타임즈 연재가 끝납니다. 이제는 ‘뉴욕 생활’을 넘어서 깊이 있게 뉴욕의 지층을 살펴볼 시점인 것 같습니다. 곧 뉴욕에 살았던 (혹은 뉴욕을 사랑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곁들여 뉴욕을 새로이 소개하는 연재가 시작되니, 기다려주세요! 지금까지 소소한 뉴욕 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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