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이야기
지난 겨울방학, 나는 로또를 맞은 기분이었다. 작년 내내 영어를 배웠던 헌터 대학교 ESL 사무실에서 내게 혹시 아르바이트 해볼 생각 없느냐고 연락이 왔던 것이다. 뭐지? 지원서도 넣은 적이 없는데 이렇게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걷어차지 않기로 했다. 돈이 필요했고, 또 교내 알바는 외국인 학생들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직업이라 경쟁률도 치열했다. 정식으로 지원서를 넣으면 영영 잡을 수 없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사무실 알바는 일명 ‘꿀의 알바’가 아닌가.
학교 사무실 알바라니, 그야말로 '꿀의 알바'가 아닌가!
공짜는 없다
반 년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제는 이 사무실이 왜 나에게 먼저 연락을 했는지 알 만큼 눈칫밥을 먹었다. 일단 이 사무실은 일손이 늘 부족하다. ESL 학생들과 평생교육원 학생들 수업을 등록해주고 질문에 응답해주는 게 우리의 일이다. 그런데 학생 숫자도 수업 개수도 너무 많다. 방문, 전화, 이메일로 하루종일 쏟아지는 문의를 받고 있노라면,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다 나오는 기본 정보들인데 왜 이렇게 게으르냐고 버럭 소리지르고 싶다. (그러나 나도 뉴욕에 오기 전에는 불안한 마음에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이메일로 꼬치꼬치 캐물어 본 터라 솔직히 할 말은 없다.) 여하튼, 우리 사무실은 “한가하다”는 말을 금기어로 삼는다. 약간의 틈이 생겨서 누군가 “오늘은 좀 한가하네”라고 말하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기가 불이 난 것처럼 울려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바쁘다.
'한가하네'라는 말은 전화를 부르는 주문이다!
영어에 능통하지 않고 모국어 억양이 심한 ESL 학생들을 상대하는 일도 쉽지 않다. 1분 걸릴 대화가 5분씩 늘어난다. 심지어는 통역이 필요할 때가 있다.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스페인어 하는 사람 바꿔주세요,’ ‘중국인 상담원도 없어요? 나 영어 못해,’ 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들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고용된다. 영어는 부족해도 다른 언어에 능통한 외국인 상담원들. 헌터 칼리지에 차고 넘치는 한국인 학생들이 사실상 나를 뽑아준 진정한 뒷배경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나는 말단 상담원 중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세금 떼면 최저임금밖에 안 되는 시급. 노동 강도를 생각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식 상담원으로 고용할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요구사항은 많은가!) 그래도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다. 틀에 박힌 듯이 굴러가는 사무실, 틀에 박힌 듯이 응답하는 근무시간 속에서 나는 새로운 것들을 배웠다. 턱없이 부족한 시급에 보상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시원한 오아시스처럼 가끔씩 찾아오는 ‘서프라이즈한’ 순간을 소개한다.
칼퇴근
가장 즉각적으로 놀랐던 사실. 한국 직장인들의 꿈인 ‘칼퇴근’이 이 작은 사무실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시계가 5시 땡치면 모두가 쏜살같이 떠난다. 4시 45분부터 전화기를 꺼놓고 창문을 닫아놓는다. 이 15분의 여유는 온전히 사무실을 떠날 준비를 할 시간이다.
이 시간 관념은 상당히 철저해서 상사도 뭐라고 개입할 수 없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상사가 일을 부탁해도 거절한다. 혹은 더 오랫동안 일하는 옆 동료에게 일을 맡긴다. 그래도 괜찮다는 태도가 만연해서 혹여 눈 밖에 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한 고참은 오후 2시부터 집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다들 웃어넘길 뿐 뭐라고 나무라지는 않는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5시까지 그 자리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약속한 시간만큼 일하면 문제될 것은 없다. 최저임금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렇게 퇴근 시간을 존중받을 줄은 몰랐다.
상사라는 존재감도 한국에 비하면 훨씬 가볍다. 물론 아랫사람이 윗사람 눈치를 보는 것은 만고불변의 생존전략이다. 하지만 상사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일을 ‘부탁해야’ 한다. 상사는 우리의 무조건적인 윗사람이 아니라, 우리보다 상위 기능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기능적인 면이 더 부각되는 것이다. 상담원 사이에서도 고참이 신참에게 경력 때문에, 혹은 나이 때문에 텃세 부리는 일도 없다. 자기 일만 제대로 하면 문제 삼지 않는다. 확실히, 위계 관계가 한국보다 유동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영어
여기서 일하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자극받은 것은 영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어 듣기다. 처음에는 수화기 너머 학생들의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고역을 치렀다. 말의 속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인이라도 억양이 모두 달랐다. 동부 출신들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혀를 굴렸고, 남부 출신 아저씨들은 목소리를 너무 깔아서 웅얼웅얼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거기에 이민자 2세 출신들은 약간의 독특한 악센트와 함께 유창하게 말을 해서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미국이 얼마나 거대한 대륙(!)인지 깨달을만큼 참 버라이어티한 억양들이었다.
역시 시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내 귀는 점점 트였고, 이제 웬만한 미국인들은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잘 못 알아들어도 ‘전화기 음질이 안 좋아서 제대로 못 들었다’고 입에 침 바르고 거짓말 하면 된다. 두번째 들으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다.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리스닝 실력은 모든 단어를 완벽하게 복사하는 기술이 아니라, 줄줄 흘러나오는 상대의 말 속에서 핵심어를 잡아내는 능력이라는 것. 그제야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왜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서로를 오해하는지 알았다. 이것은 순수한 ‘언어 능력’뿐만 아니라 ‘눈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눈치도 좋다!
전투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짜릿한 것은 매 순간 벌어지는 전투다. 이곳은 전쟁터다. 전쟁터에 노련한 지휘관과 어리버리한 이등병이 있듯이, 여기서도 십 년 이상 일한 고참 상담원들과 나처럼 몇 개월에서 몇 년 동안 학교 시간표에 맞춰서 알바하다가 그만두는 학생 상담원들이 나뉜다. 고참들은 원래 정규직이었다. 몇 년 전 학교 방침이 바뀌면서 모든 상담원들이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일할 수 없는 ‘학교 보조(College Assistant)’라는 이름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그때 전환 조건이 시급을 원래 월급과 비슷하게 맞춰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참 상담원들은 학생 상담원들보다 시급이 두 배 이상 세다.
그래, 가끔 속이 뒤틀린다. 고참들이 할 일을 은근슬쩍 학생 상담원에게 밀어버리고 인터넷쇼핑을 하는 것을 목격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시급 생각부터 난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누구는 시간당 만 원 받고 누구는 이만 오천 원 받는 게 말이 되는가. 오히려 나보다 일을 두 배 더 많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결국 고참이 고참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위기의 순간에는 해결사로 선봉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 전화는 선배님께서 처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7년, 10년, 16년, 30년. 이것이 이들이 이 사무실에서 근무한 햇수다. 그들은 그 동안 상사와 부서 책임자가 바뀌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고, 그때마다 바뀌는 사무실 시스템에도 적응해야 했다. 상대한 학생들도 누적된 숫자로 몇 십만 명에 이른다. 이 고참들의 가장 놀라운 점은 직업에 대한 태도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나의 직업이지만, 당신도 그 서비스를 받으려면 날 직업인으로 제대로 대접해줘야 한다.’ 한마디로 필요 이상의 감정 노동은 하지 않겠다는 소리다. 이들은 각자의 기준선이 있다. 상대가 그 선을 넘었다고 생각되면 학생이든 직속 상사이든 할 말을 다 한다. 나름 상냥한 말투이지만, 한국식 기준으로 봤을 때는 이런 무례한 상담원이 다 있느냐면서 까무러칠 정도다.
가령 이런 것이다. 한 번은 학생이 화난 목소리로 학생증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고 전화를 했다. 암만 설명을 해줘도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면서 계속 화를 내더니 전화를 뚝 끊었다. 그리고 1분 뒤에 다른 상담원에게 전화를 했다. 이 경우가 세 번 반복되자, 우리의 고참이 나섰다. 고참은 차분히 말했다. “난 이제 당신과 말하기 싫다. 당신 일에 관여하기도 싫다. 내 상사에게 연결시켜 줄 테니까 그 사람이랑 해결해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고객(학생)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태도도 놀랍지만 상사에게 직속으로 골칫거리를 떠넘겨버리는 배짱도 놀라웠다. 고참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골칫거리를 해결하려고 저 상사들이 돈 더 받고 일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헉.) 또 한 번은 이탈리아어 사무실이 평생교육원 산하로 합쳐지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상사가 우리가 새로 알아야 할 것들을 몇 가지 지적해주더니, 이탈리아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성격이 극도로 까탈스러우니 몇 배는 더 친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한 고참이 곧바로 반기를 들었다. “왜 그 학생들만 더 특별대접 해줘야 하느냐. 내가 그들을 고객으로서 존중하듯이, 그들은 나를 스태프로서 존중해줘야 한다. 예외는 없다.”
고참들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로 버티고 있어도, 사고 없이 하루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별 이상한 성격의 사람들이 전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가 겪은 불편을 ‘당신들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사죄한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계속 소리지르는 사람들이다. 고참들은 물론 물러서지 않는다. 언성을 높이지 않을 뿐, 그들은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서 ‘날 존중하지 않으면 널 도와주지도 않겠다’라고 돌려 대꾸한다. 이들이 한 명 한 명과 벌이는 전투는 참 볼 만하다.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어떤 직업이든 이 정도의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면 멋있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된 평화는 슬프다
나? 나는 이런 깡이 없다. 영어도 잘 되지 않는 처지에 싸울 짬밥도 없지만, 무엇보다 고객을 신으로 모시는 한국인의 비굴 모드가 뼛속까지 박혀 있는 탓이다. 나는 처음부터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자는 주의다. 수화기 너머로 분노의 기색이 들리면 냉큼 정중한 단어들을 골라써서 전투 자체를 무화시켜버린다. 그러면 문제는 대충 해결된다. 이렇게 나는 사무실에서 비정상일 만큼 친절한 (혹은 얍쌉한) 상담원으로 통한다.
하지만 어느 날 저녁, 나는 은행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내 갈 길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한국 상담원들은 그야말로 천사였다. 그녀들의 목소리는 살살 녹았고 말투는 상냥하기 그지 없었다. 사무실에서 수화기를 들고 온종일 거칠게 구르다가 이제는 고객의 입장이 되어 이런 상담원을 만나니, 갑자기 슬퍼졌다. 이 가장된 평화 아래 그녀들이 상처투성이일 모습이 눈에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들에게 전투는 허락되지 않는다.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사무실에서 힘겹게 겪고 있는 전투가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른다. 노동은 전투이고, 사는 건 전쟁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실을 보지 않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이다. 가장된 평화는, 편하긴 해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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