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음식쓰레기통이 없다?!

뉴욕과 쓰레기

뉴욕은 멋진 도시다. 여름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각기 다른 땀냄새를 풍기며 지하철에서 부대껴도, 살인적인 월세를 피해서 손바닥만 한 매트리스를 깔 공간을 찾다가 탈진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고향의 기억과 함께 뉴욕땅을 밟는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자산이다. 사람이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것, 이것이 내가 여기서 배운 명제다.

화려한 뉴욕의 모습. 뉴요커들은 쓰레기를 어떻게 버릴까?

도시의 이면

그런데 사람이 끌어들이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쓰레기도 끌어들인다. 뉴욕 사람 한 명이 생산하는 쓰레기는 어마어마하다. 일 년 반 동안 나는 이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가능성은 이토록 풍요로운 곳에서, 사람과 물건이 맺는 관계는 왜 이렇게 얄팍할까?

부와 문명은 뉴욕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패션의 거리들, 으리으리한 마천루, 전 세계에서 몰려든 고급 레스토랑. 그렇지만 이 번쩍거리는 풍경 속에서 개인이 물건과 관계 맺는 방식은 결국 하나다. 바로 쓰레기 생산이다. 무슨 물건을 구입하든 결국 폐기 처분되어 매일 산더미처럼 생산되는 뉴욕 쓰레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나 메트로폴리탄에서 상품의 운명이 다 똑같지 뭘 그리 새삼스럽게 유난 떠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새삼스러운’ 사실을, 상품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쓰레기가 미역처럼 부유하는 이 도시에 오기 전까지 나는 뚜렷히 깨닫지 못했다. 이 근사한 도시의 이면이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몹시 충격적이었다.

미국의 유명한 백화점, 메이시스. 연휴 때마다 크게 세일을 하지만, 실상 일 년 내내 세일한다는 것이 함정이다!

쓰레기가 나인가 내가 쓰레기인가

가령, 뉴욕 가정집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밀대 걸레는 일회용이다. 이 밀대 광고는 이러했다. 행복해 보이는 집안 풍경이 나오고, 과자를 먹는 아들과 밀대 걸레를 든 엄마가 등장했다. 그리고 엄마가 말했다. 아들이 부스러기를 흘린다고 더 이상 화내지 말라! 밀대로 밀어버리고 걸레는 버리면 된다! 청소도구를 사러 간 마트에서는 그 모델만 팔았다. 심지어 행주도 팔지 않았다. 행주는 키친 타올로 대체하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일회용은 아닐지라도 ‘몇 회용’으로 나온 물건도 있다. 뉴욕이 패션의 도시인 이유는 사람들의 패션 감각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옷 재고가 너무 많아서다. 뉴욕은 일 년 내내 세일 중이고, 사람들은 싼 옷을 사서 몇 번 입다가 휙 던져버린다. 또, 튼튼하고 좋은 물건인데 정작 몇 회만 쓰고 버려지는 물건도 상당하다. 뉴욕에는 정말 신기한 물건이 많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작 집 안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창고에 처박히거나 길거리에 버려지는 경우도 많다. 집 창고도 모자라서 아예 새 창고를 빌리는 서비스가 유행할 정도다! 몇 번 못 쓰고 처박힌 물건들은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신세라고 봐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여기는 ‘음식물 쓰레기’라는 개념이 따로 없다. 남은 음식물은 그냥 쓰레기다. 일반쓰레기 통에 시정부에서는 당연히 음식물 쓰레기통을 사용하기를 권장하고 있지만, 실제 가정집에 가보면 그 통은 텅텅 비어있다. 포장 음식을 사면 따라오는 부수물도 상당하다. 장을 보면 비닐봉지가 한국의 세네 배는 더 많이 쓰이고, 초밥을 한 줄 사면 간장을 다섯 개씩 넣어주며, 햄버거를 하나 사면 화장실을 며칠도 갈 수 있을 만큼 휴지를 두툼하게 넣어준다. 뉴욕에서 분리수거는 몇 년 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데, 분류하는 수준이 한국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보통 일반쓰레기와 비 일반쓰레기로 나뉘는 것이 다다.

내가 머무는 뉴욕 이타카하우스의 쓰레기통이다.
왼쪽부터 플라스틱, 일반쓰레기, 종이를 담는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음식물 쓰레기통은 없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는 매일매일 커다란 쓰레기가 한 봉지씩 산출된다. 이런 식의 생활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어가고 있다. 나는 결국 일회용 밀대 걸레를 샀고 이 물건에 중독되고 말았다. 청소를 끝낸 후 걸레를 빨지 않아도 되고 그냥 ‘휙 버리면’ 모든 게 깔끔히 마무리된다는 것은, 아, 정말 매력적이었다……. (뉴욕은 나를 철딱서니 없게 만든다^^.) 쓰레기가 유동인구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배출되는 도시. 지구의 입장에서 볼 때 뉴욕이 과연 매력적인 도시일까? 혹시, 암덩어리가 아닐까?

‘아낌’의 개념이 없는 곳

생활방식의 문제는 사고방식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미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는 ‘아낌’이라는 개념이 희박한 것 같다. 절약을 하더라도 그것은 돈과 물건이 넉넉지 않다는 필요에 의한 것이지, 잘 살기 위한 윤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아끼는 것은 궁상 떠는 일이다. (왜 아껴, 물건이 이렇게 많은데?)

누구는 미국은 가진 땅이 너무 넓어서 절약할 마음이 아예 안 생긴다고 농담을 던졌다. 한국처럼 노는 땅이 손톱만큼도 없어서 쓰레기를 돈 주고 팔아야 하는 실정이 아니라고 말이다. 글쎄, 이것을 두고 대륙의 스케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는 나라 전체가 대륙의 스케일로 철딱서니 없다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는 무조건 많은 이윤을 얻는 것이 단 하나의 목적이고, 이 목표달성을 위해 의미 없는 소비를 부추긴다. 이 상황 속에서 물건은 소모품 혹은 쓰레기 둘 중 하나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런 물질적인 풍요가 문명이 상징인 것처럼 말해지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물건을 사용하는 철학은 몹시 빈곤해진 것이다. 물건을 아끼고 제대로 쓰는 것은 궁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구에 대한 예의이자 내 삶에 대한 예의다. 나라는 존재가 이 지구상에서 숨을 쉬며 일정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겠다는 태도다.

맹목적인 소비는 공허를 불러일으킨다. 일상에 대한 철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물건들과 능동적인 관계가 단절되고, 소모하고 버리는 아주 얄팍한 관행만 남는다. 인간 관계가 단절되면 삶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세계 에너지의 50%를 쓰는 이 나라에서 80%의 인구가 우울 증세에 시달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뉴욕에서 절찬리에 광고 중인 "맨해튼 미니 창고” 서비스다.

이제는 집도 모자라서 창고까지 따로 빌려야할 만큼 1가구 당 물건이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창고를 빌릴 바에야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하는 게 더 맞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뉴욕에서 정신줄 잡기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뉴욕이 20세기 초에 세계 최고의 문명 도시로 성장할 때를 배경으로 쓰였다. 개츠비의 부유한 저택은 뉴욕의 교외인 롱아일랜드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피츠제럴드는 이 저택에서 뉴욕으로 가는 길목에 몹시도 황량한 쓰레기 계곡을 등장시킨다. 이는 20년대 초 퀸즈에 실제로 있었던 코로나 쓰레기 매립지였다. 개츠비가 옛 사랑의 부활을 꿈꾸며 환상적인 파티를 벌이는 교외와 부의 상징 뉴욕, 이 둘 사이를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이 쓰레기 계곡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계곡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나는 이 쓰레기 계곡이 피츠제럴드가 보여주고 싶었던 뉴욕의 이면,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뉴욕은 돈과 환상으로 점철된 아름다운 도시다. 환상을 쫓아 달려 온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이 도시에 끝없는 에너지를 불어넣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에는 끝없는 쓰레기 더미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도시 속에서 제대로 살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명품으로 즐비한 5번가를 걸어가면서도 한눈 팔지 말고, 이 물량 공세 속에서 내 몸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 몸이 쓰레기 속에 파묻히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미국인의 영원한 친구, 스와이퍼.

처음에는 일회용 걸레를 쓴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그 간편함에 중독되어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결국 손걸레를 부착할 수 있는 밀대를 인터넷에서 따로 주문하고 나서야 내 스와이퍼 중독은 끝났다.

글_김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