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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방제와 병법

음을 보충해 열을 다스리는 새로운 전략, 육미지황환

by 북드라망 2015. 6. 10.


적을 온전하게 두고 승리하는 기묘한 비책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




오후만 되면 얼굴에 열감이 오르는 증상이 있다. 이런 열감은 시도 때도 없이 들이 닥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에 조용히 찾아오며, 얼굴 전체를 붉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광대뼈 부근에 새악시 같은 홍조로 드러난다. 이런 열을 조열(潮熱)이라고 한다. 밀물과 썰물을 의미하는 조수(潮水)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후만 되면 열감이 오르는 조열은 밀물과 썰물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조열의 또 다른 별칭은 ‘허열(虛熱)’이다. 허(虛)는 실(實)과 음양으로 연결된다. 허열이 있다면 실열(實熱)도 있다. 실열은 잉여의 열기다. 감기로 인한 발열이 실열의 예가 된다. 외사(外邪)의 침입으로 인해 생긴 잉여의 열이 실열이라 할 수 있다. 허열은 남아도는 열이 아니다. 음(陰)과 양(陽)의 편차로 인해 발생한 상대적인 열이다. 여기서 음을 수(水)로 양을 화(火)로 생각하자. 신체는 음과 양, 즉 물과 불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이 균형이 깨지면 질병이 생긴다. 양이 부족하면 음이 남아돌고, 음이 부족하면 양이 남아돈다. 둘 다 병리적인 현상이다. 양 부족을 양허(陽虛), 음 부족을 음허(陰虛)라 한다. 허열은 음(물)이 부족해서, 즉 음허로 인해 생긴다. 음(물)이 부족하면 상대적으로 양(불)이 부각되며 이것이 허열(조열)로 나타난다. 양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음이 모자라서 발생하는 열(火)이다. 이를 음허(陰虛)에 의한 허열, 즉 ‘음허열(陰虛熱)’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음허 증상에는 조열 이외에도 잠잘 때 땀이 나고, 손발바닥에서 열이 나는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음허열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불이 나면 물이나 소화기로 불을 끈다. 불을 직접 끄는 방식으로 화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허열을 그렇게 다스려선 곤란하다. “이러한 화는 몸의 근본에 해당하므로, 보호해야지 손상시켜선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화는 양이 남아서 생긴 화가 아니고, 음이 허해서 생긴 화이다. 음이 양을 제약할 수 없어 양이 위로 올라와서 화가 생긴 것이므로, 사법(瀉法. 제거하는 법)을 써서 없애면 안 되며 응당 보호해야 한다.” (왕멘즈, 『왕멘즈 방제학 강의』, 오현정 옮김, 전통의학, 2010, 370쪽) 다시 말해, 허화(虛火)는 열화가 과도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부각된 것이기 때문에, 이 불을 끈다면 원래 가지고 있던 양기의 적정 수준이 줄어들 것이다.


음허열일때 열을 내린다고 불을 끄는 처방을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따라서 허열을 다스리려면 양은 온전하게 두고 음을 조절해야 한다. 음(물)을 조절한다는 건 음을 보충한다는 뜻이다. 음허열이 음의 부족으로 생긴 현상이니 음을 보강하는 것은 당연한 치법이다. 그래도 열이 잘 꺼지지 않으면 불을 조절하는 것도 차선책으로 쓸 순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인 음을 보하는 것이 앞선 치료가 되어야 한다. 몸에서 중요한 것은 음양의 균형이다. 양을 제거하는 것도 이론적으론 음양의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때는 음양이 모두 하향 평준화된다. 음이 부족하면 음을 채워야지 양을 덜어내선 안 된다. 이를 균형이라 말 할 순 없다.



손자병법에서는 적군을 온전히 두고 승리하는 방법을 최선의 방책으로 여긴다. 중요한 것은 승리이지 파괴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면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것이 손자가 생각하는 ‘도리’다. 만일 “도리가 통하지 않으면 비로소 완력을 쓴다. 모든 순서는 “먼저 예를 갖추고 나중에 군대를 쓴다[先禮後兵]”는 원칙에 따른다.”

- 리링, 『유일한 규칙』, 임태홍 옮김, 글항아리, 2013, 150쪽


“군사를 쓰는 법에 있어 적국을 온전하게 두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고, 적국을 격파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적의 군단을 온전하게 두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고, 그들을 파괴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 위의 책 34쪽



음허에서도 음허에 의한 화기(적군)을 온전하게 두고 균형(승리)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쓰는 약이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음(水)을 보강하여 양(火)을 잡는 치법에 적합한 방제다. 육미지황환은 6가지 약재로 구성되어 있다. 숙지황, 산약, 산수유, 목단피, 복령, 택사가 그 여섯 가지 약이다.


숙지황은 지황을 9번 찌고 말리기를 반복해서 만들어진다. 이른바 구증구포(九蒸九曝)라고 하는 이런 제조과정을 거치면 하얀 지황이 검고 찐득하게 변한다. 검은 색은 오행(五行) 중 수(水)의 색이고 찐득한 형태 또한 진액(수분)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음을 뜻한다. 이렇게 수(水)의 기운을 담고 있는 까닭에 숙지황은 “신수(腎水)를 자양(滋養)하고 진음(眞陰)을 보(補)(『의학입문』)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음은 생리적으로 곧 수(水)다. 숙지황은 음(수)을 확보하여 음허를 치료하는 중요한 약재이며, 육미지황환의 군약으로 쓰인다. 산약은 ‘마’를 이른다. 마는 끈끈한 속살을 가지고 있어서 비와 폐의 진액을 보충해 준다. 산수유 역시 “음을 강하게 한다.”(의학입문) 요컨대 숙지황 뿐 만아니라 산약과 산수유도 진액을 생성하여 음을 확보하는데 일조한다. 이 세 가지 주요 약재들에 힘입어 육미지황환은 양(화)을 훼손시키지 않고도 음(수)을 보강해서 허열을 잠재울 수 있다. 나머지 약들을 이 세 약의 자음(滋陰)을 돕는다. 기존의 묵은 수분을 밖으로 빼주고(복령, 택사) 어혈을 풀고(목단피) 혈액순환을 시켜서 신선한 음을 확보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준다.


육미지황환은 음(水)을 보강하여 양(火)을 잡는 치법이다.



일상에서도 짝을 잃은 마음이 허열처럼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원인 모를 불안감의 경우가 그렇다. 짝(음)을 잃은 잉여의 양이 허열을 만들 듯, 음적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은 길을 잃고 불안을 낳는다. 음양은 시간성을 띠며 갈마든다. 낮은 밤으로 밤은 낮으로 번갈아들며 서로의 상태가 되려 한다. 그래서 음과 양은 절대적인 위치와 영역을 고수하지 않는다. 이런 이치는 관계의 장에서도 응용될 수 있다. 만남은 이별을 예고하고 이별은 다른 만남을 약속한다든지, 태산을 넘으면 평지를 본다는 등의 가벼운 경구에서도 음양 교대의 법칙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시간에 따라 몸도 마음도 세상도 관계도 바뀐다. 매번 양상은 다르지만 크게 보면 음양이 번갈아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 하루가 시작되지만 주야의 교대라는 음양의 일정한 주기가 반복되는 것처럼 말이다. 원인모를 불안감은 이러한 교대 주기를 거부하고 싶을 때 주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소유를 지속시키려는 욕심은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다는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재물이건 사람이건, 내 곁에 들어온 것은 시간이 지나면 흘러나간다. 이처럼 소유와 비움을 서로 짝이 된다. 소유가 양적인 상태라면 비움은 음의 상태라 할 수 있다. 만일 언젠가 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소유의 상태는 음이라는 짝을 잃은 허열로 뜬다. 그것이 바로 이유 없는 불안과 공허함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음허의 상태를 치유하는 것은 시절 마다 다르게 변하는 인연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것이 음을 확보해서 허열을 끄는 육미지황환의 치법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사소한 다툼으로 화가 치미는 것도 음허의 이치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인식 작용을 ‘양적인식’, ‘음적 인식’으로 구분해보자. 어린 아이들일수록 선과 악을 날카롭게 나눈다. 삶에서 필요한 분별능력을 키울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어른이 될수록 선악으로 구획될 수 없는 이면의 서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선악, 시비, 호오의 이분법을 넘어설 때 비로소 유아적 틀을 벗어나게 된다. 이렇듯 선과 악 등을 명징하게 나누는 유아적 이분법적 윤리가 양적 인식이라면, 선악을 구획할 수 없는 ‘너머’의 서사를 계보학적으로 탐색하는 것이 음적인 인식이다. 음의 인식이 부족하면 허열성 양적 인식이 항진된다. 허열성 양적 인식은 사건과 사물을 구체적이고 분석적으로 파고든다. 거기서 시시비비가 갈리고 자기에게 잘못이 없다는 판단이 일어나면 화가 난다. 세네카가 “화의 최대 근원은 “나는 죄가 없어.” 혹은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라는 생각이다.”(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화에 대하여』, 김경숙 옮김, 사이, 130쪽)라고 했던 것도 자기방식으로 분석된 작은 조각을 놓고 시비의 감정을 이입시켰기 때문이다. 이때 분노의 허열을 다스리는 방법은 분노 자체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가 일어나게 된 전제를 바꾸는 것이다. 세네카는 “우리 중에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말로 우리의 ‘나는 죄가 없다’는 전제를 뒤집는다. 화를 다스리기 위한 세네카의 이런 전제의 전복은 음의 인식을 통해 허열성 양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것도 양을 훼손시키지 않고(혹은 적을 온전하게 두고) 음을 다스려 허열을 끄는(승리하는) 육미지황환식 해법이라 할 수 있다.



글_도담


왕멘즈 방제학 강의 - 상 - 10점
왕멘즈 지음, 오현정 옮김/전통의학
유일한 규칙 - 10점
리링, 임태홍/글항아리
화에 대하여 - 10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김경숙 옮김/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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