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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블로그953

"말이 아니면 대화할 수 없는 걸까?" - 완전히 낯선 방법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운 1년. 활동보조와 소통(疏通) 일 년 동안 했던 활동보조 일을 마무리 지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달 뒤면 이 일을 완전히 그만둔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활동 보조 일을 하면서 느꼈던 소회를 적어본다. 1년 동안 여러 명의 이용자들을 만났다. 정기적으로 만났던 이용자들도 있었고, 대타로 일을 하며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이용자를 옮기기 위해 힘을 써야 할 때도, 배뇨 문제를 도와드릴 때도 아니었다. 상대와 소통하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가장 큰 피로감을 느꼈다. 활동보조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상대와의 교류가 중요하다. 물론 여타 서비스업도 상대방과의 관계가 중요하긴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서비스업은 손님을 응대하는 매뉴얼이 일정 부분 정해져 있다... 2016. 7. 6.
삼국사기를 통해 본 대무신왕 - '약소국이라도 이런 당당함은 있어야 한다' 통치자의 초상 : 정치란 무엇인가? ② ❙ 어린 왕자, 무휼의 지혜유리왕의 셋째 아들, 동명성왕의 손자인 무휼은 6살부터 국정에 참여한다. 아니 이럴 수가! 그리고 11살에 왕위에 올랐다. 바로 대무신왕(4-44년)이다. 김부식은 무휼을 이렇게 평가한다.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장성해서는 뛰어나게 큰 지략이 있었다.” 겨우 6살 때 무휼은 강대국의 압박을 물리칠 정도로 지혜로웠다. 부여왕 대소의 사신이 와서 작은 나라인 고구려가 큰 나라 부여를 섬겨야 한다고 협박했다. 왕을 비롯하여 신하들은 부여에 굴복하자고 의견을 모았으나, 무휼이 나서서 사신에게 말한다. “우리 선조는 신령의 자손으로서 어질고도 재주가 많았던 바, 대왕이 질투하고 모해하여 부왕에게 참소하여 말을 먹이게 하였다. 이 모욕 때.. 2016. 7. 5.
생일, 하면 역시 이벤트! 북드라망 4주년 이벤트에 참여하세요~ 사…사…사…사랑하는 독자님들, 북드라망이 창립 4주년을 맞았습니다! 오늘이 아니고, 내일! 내일(7월 2일)이 저희 북드라망의 (어쩐지 거창하지만;;) 창립 4주년입니다! 아, 올해도 생일을 맞을 수 있다니, 치킨집만큼은 아니어도 무수히 많은 출판사들이 생겨나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가운데 저희가 4년째 계속해서 책을 내고 있다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늘 저희 책을 꾸준히 읽어 주시면서, 블로그에도 계속 다녀가시고, 뉴스레터를 챙겨 봐 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원래 이런 말 잘 못하지만 4주년의 힘을 빌려서 해볼랍니다. 4…4…4…4랑합니다, 여러분!! 생일, 하면 또 역시 이벤트지요. 그리고 이왕이면 (저희가 생일자니까^^;) 독자님들의 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이벤트였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2016. 7. 1.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엮은이 인터뷰 "한국 근대성을 탐사하는 가장 재미있는 방법!"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 이해조의 , 이광수의 , 나도향의 』 엮은이 mini 인터뷰 목멱산(木覓山) 북동(北東)편 붓[筆]자루 모양의 동네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사는데 성은 문리요 이름은 ‘스(?)’라. 천성(天性)이 총명치 못하고 허리 부실하여 큰일을 맡길 만하지 못했는데, 성격 또한 수줍음이 많고 움직임을 싫어하여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 스물아홉에 우연히 지인(至人)을 만나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데, 시간이 지나매 더불어 함께 공부와 밥과 우정을 나누어 먹는 무리들이 늘어갔다. 이 지인은 스스로를 곰마음[熊心]이라 불렀는데, 스는 첫눈에 곰마음을 존경하였다. …… 원래 스는 단순하여 동시에 여러 일을 벌이지 못했는데, 이는 그가 금문(今文)을 위주로 학문을 시작했으면서도 사실상 고문(.. 2016.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