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0220

[내인생의주역] 고귀한 축적 고귀한 축적 山天大畜 ䷙ 大畜, 利貞, 不家食, 吉, 利涉大川. 初九, 有厲, 利已. 九二, 輿說輹. 九三, 良馬逐, 利艱貞. 曰閑輿衛, 利有攸往. 六四, 童牛之梏, 元吉. 六五, 豶豕之牙, 吉. 上九, 何天之衢, 亨. 주역의 大畜괘는 축적에 대한 담론이다. 우리 시대의 축적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증식하는 자산 축적에만 포인트를 둔다. 그 부가 어떻게 순환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담론은 풍부하지 못하다. 그러나 주역의 대축괘는 한마디로 우리 시대의 소유와 증식을 전복하는 담론이다. 즉 축적이 극에 이르렀을 때 대축괘는 모두 흩어버린다. 그래서 ‘하늘의 거리가 형통하다.’(何天之衢, 亨)고 한다. 어떻게 하나도 쌓인 것이 없을 때를 가장 큰 축적이라고 주장하는 걸까. 대축괘의 축적방식은 초반에는 위태롭.. 2020. 2. 18.
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과거는 사라지지 않지만, 떠날 수는 있다 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과거는 사라지지 않지만, 떠날 수는 있다 ““여기 다시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래”하고 나는 그가 가고 난 뒤 혼잣말로 소리쳤다. 외투를 걸친 채 욕실로 들어가 나 자신보다는 거울을 더 들여다보았다.”(14쪽) ‘혼잣말’에는 전제가 있다. ‘말’이 사실은 ‘상호적’이라는 전제다. 그럴 것이 ‘말’은 ‘의미’의 묶음이다. 그래서,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전달 받는다. 이를 두고 ‘소통’이라 부르는데, 이 시도는 대개는 실패한다. 오죽하면 정치인이고 연예인이고, 세상 전부가 ‘소통하자’고 달려든다. 다시 ‘혼잣말’을 살펴보자. 1인칭 화자(이하 주인공)는 소설의 3/2, 그러니까 클레어와 베네딕틴 모녀를 만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혼자 말한다. ‘말’을 .. 2020. 2. 17.
산울림 [The complete regular recordings in 1977-1966] - 이게 끝이 아니었다니 산울림 [The complete regular recordings in 1977-1966] - 이게 끝이 아니었다니 가지고 있는 많은 음반들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많이 가는 그런 음반이 한둘쯤……, 아니 서너장쯤, 음……, 아니 열 몇장쯤 있다.(더 늘어날 수도 있을 듯하지만) 오늘 소개할 음반도 그런 음반들 중 하나인데, 그 중에서도 매우 '스페셜하게 특별'하다. 말하자면 VVIP 같은 음반인데, 이었는데……. 무엇인고 하니, 밴드 '산울림'의 박스셋이다. 수록된 음반이 무려 8장이나 된다는 것 빼고는 특별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음반이 그렇게나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써놓고 보니, 음반이 8장이나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특별하기는 한 것 같지만, 어쨌든 두가지 사연이 있어서다. 하나는 이 음반을 구.. 2020. 2. 14.
『다른 이십대의 탄생』 - 항상 '관계'속에 있는 '나'에 관한 책 『다른 이십대의 탄생』- 항상 '관계'속에 있는 '나'에 관한 책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이십대 사람 세 명이 용인 수지에 있는 조그만 인문학 공동체에서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각자의 고민들을 안고 이곳에 찾아왔다지만, 대학도 직장도 아닌 이 곳에서 몇 년간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또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무엇보다 앞서 늘어놓은 것과 같은, 이상한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 세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차단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김고은, 김지원, 이동은, 『다른 이십대의 탄생』, 중에서 오늘, 우리가 사회적으로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여기에서 온다. 서로 간의 '공통점' 내지는 '교집합'이 없는 가운데, 또는 그걸 찾아내지 못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문제들이다. 이를테면, 아무렇지도 않게 .. 2020.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