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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소설극장] "요사이 젊은 사람들은 반쪽 병신이다" - 송영의 「월파선생」

by 북드라망 2014. 6. 20.

한국근대소설, 등장인물소개로 맛보기  

 "요사이 젊은 사람들은 반쪽 병신이다"

 


맛볼 소설 : 송영, 월파선생, 『조선일보』, 1936년 2월 23일 ~ 3월 10일



시놉시스 







1930년대 어느 촌락에서 십수 년 동안 글방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온 월파선생. 성공의 비결은 바로 그가 한문뿐 아니라 신학문에도 지식이 있다는 것. 즉 구학문과 신학문의 장처와 단처를 딱 알맞게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서 정당한 것만 가지고 또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것(이 본인의 생각). 홀아비로 무남독녀 숙희를 살뜰히 키우며 면장과 지주 등 동리 유지들에게 존경받는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닥친 시련은 바로 건너편 마을 한가운데 나타난 사립강습소. 이 사립강습소를 세운 젊은 청년 박선생은 처음 보는 서양체조와 창가를 가르치고 농민강좌를 열고, 학예회를 개최하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벌여 학생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어, 그 결과 월파선생의 시중의숙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더 이상 참기 힘들어진 월파선생은 시중의숙의 몇 안 남은 학생들을 데리고 자신만의 학예회를 만들어 보려 하는데, 그 와중에 구장(區長: 예전에 시골 동네의 우두머리를 이르던 말)의 막내아들인 길동이마저도 사립강습소로 떠나 버리고 만다. 학예회가 좌절되고 재기의 희망이 전부 사라진 즈음, 월파선생은 마을 유지 김참봉과 주재소 순사 등에게 사립강습소 박선생의 사상과 행동이 불온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잘 모르겠다고 말은 하였으나 속마음은 고소함을 감출 수 없는데……….



잇 신(it scene) 



- 소설 첫 장면. 이른 새벽 동산에 올라 건너편 마을의 사립강습소를 뚫어지도록 바라보며 "엥히, 건방진 녀석 같으니"라고 일갈하는 월파선생의 모습.



- 열 명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남은 쇠락한 시중의숙의 수업시작 장면. 반장격인 길동이가 경례를 외치면 아이들이 월파선생에게 인사를 한 뒤 선생은 훈화말씀을 하고, 노래와 소제로 수업을 시작하는 모습. 소제하며 부르는 노래 가사는 이렇다. 


"1절 : 쇄소응대(灑掃應對)는 수신의 근본이니 / 아침이면 뜰 쓸고 마루걸레 쳐봅시다,

 / 더러운 먼지를 천리 밖으로 털어버리면 / 우리의 마음도 가을의 창공이 될 것이로다.  

 2절 : 온고지신은 우리의 할 일이니 / 배운 건 또 익히고 익힌 건 또 배울지로다

 / 송시삼백(誦詩三百)하고 불능전대(不能專對)하면 소용이 없으니 / 언행일치를 위주합시다."



- 월파선생의 의숙에 다니다가 박선생의 사립강습소로 옮겨 간 학생이 아직 의숙에 다니는 아이들을 때리고 월파선생을 욕하며 지나간 후 분해서 우는 아이와 월파선생의 대화 장면. "왜들 그러니"

  "길동이 자식이 괜히 와서 때리고 욕을 하고 갔어요."

  "음"

  "선생님, 길동이가 저희보고 글방 떨거지라고 해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리고 선생님이 케케묵었대료."

  "자기 학교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고 우리 선생님은 늙은 바……"

  "듣기 싫다! 이놈들아, 못나게 맞고만 돌아다니니. 어서 들어가서 글들이나 읽어라!"



- 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농감(소작인을 지도ㆍ감독하고 소작료를 받아들이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하는 김참봉이 월파선생을 찾아와 회사로 투서가 날아왔다든지, 품삯꾼들이 예전처럼 호락호락 일을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하며 사립강습소의 박선생이 뭔가 부업에 대한 지도도 해준다던데 아는 바가 없냐고 묻자, "그야 박선생이 그렇게 건방져지라고 하지는 안 했겠죠. 허…… 하여간 세상이 말짜니까요……" 하며 군자답게 환한 웃음을 짓는 월파선생의 모습. 이때 그는 "비록 박선생이 미우나 절대로 훼방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얼마 아니 있으면 책보 싸고 쫓겨갈 가련한 청년이니 더한 훼방은 너무 잔인하며, 뿐만 아니라 남의 흉을 드러내거나 남 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소인의 할 짓이라는 것을 노인답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월파선생 : 중촌리와 대촌리 일대 마을에서 학식 높기로 명성이 자자했던 노인. 15여 년 전 시중의숙을 차려, 한때는 백여 명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칠 정도로 인기가 있었음. 온 동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어느 집이든 관혼상제의 모든 절차, 축문, 택일, 이름 지을 일 등이 생길 때 모두가 월파선생을 찾았고, 따라서 마을에서 큰일이 있는 집에 월파선생의 흰 구레나룻 달린 얼굴이 번뜩이지 않을 때가 없었음. 사서삼경과 성리학과 퇴계 및 율곡의 유학에 대한 지식, 그리고 중국의 양계초(량치차오: 중국 청나라 말에서 중화민국 초의 정치가·사상가. 입헌군주제를 주장하여 무술변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함)류의 신사상을 한데 섞어 놓은 것이 그의 지식. 그가 제일 분개하는 것은 요사이 젊은 사람들은 반쪽 병신이라는 점. 신학문의 뿌리도 실상은 구한문에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신학문에 다소 경솔히 날뛰나 구한문에 대한 지식에는 너무나 무식한 것이 불만. 한편으로 한문에 능한 중년 이상의 지식계급은 너무 신학문에 몰이해하여 딱하게 여김. 자신은 신학문과 구한문의 사단취장(捨短取長 : 장단을 가려서 격식에 맞춘다는 뜻으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점은 취한다는 말)을 잘한 것같이 스스로 믿고 있음. 따라서 "반편 병신들이 되어 있는 완고패와 신학문패를 통틀어 비웃어"댐. 그러나 대촌리에 등장한 젊은 박선생이 세운 사립강습소 덕에 시중의숙의 앞날이 불투명해짐. 이상하게도 전력을 다해 잘 가르칠수록 아이들은 달아났고, "월파선생, 월파선생" 하던 학부형들의 태도도 쓸쓸하게 변하여들 감. 나날이 쇠락해 가던 의숙에 그나마 친분과 의리로 막내아들을 보내던 구장마저도 자신의 아들을 사립강습소로 보내자, 박선생에 대한 증오가 "휴화산 속같이 그의 가슴속에서 소리없이" 커짐. 그러던 중 박선생이랑 박선생이 이끌던 농민강좌의 학생들이 형사들에게 끌려가는 일이 생기고, 소식을 들은 월파선생의 두 눈은 "공포심과 일제 앞잡이들인 경찰놈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참. 잡혀 가는 그들을 따라 움직이는 동네사람들의 행렬을 뒷동산에 올라 보고 집으로 돌아온 월파선생을 맞이한 건 세상이 무너진 듯 울어서 퉁퉁 부은 외동딸 숙희의 얼굴. 


::: 월파선생의 한마디 : (아침에 모여 인사하는 시중의숙 학생들에게) "이놈들아, 예하는 것이 이게 무슨 모양이냐. 날마다 일러도 이 모양이냐? 예하는 법이 상반신을 사십오 각도만을 꾸부린다고 몇 번이나 일러주었니? 엥히 고연 놈들, 다시 다시, 례!"

(월파선생은 어떻게 신학문에 통하게 되었냐는 김참봉의 물음에) "원 천만에요, 조금 짐작만 하지요. 허, 이건 다 우스운 소리지만 언젠가 젊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뉴턴의 만유인력이니, 박테리아니, 수증기니, 전지니, 나파륜(나폴레옹)이니 하고 몇 마디 말을 했드니 깜짝들 놀라든걸요. 허……."



박선생 : 사오 년 전, 대촌리에 나타나 사립강습소를 차린 젊은이. 어느 중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에서 몇 해 돌아다니다 학교를 세웠다고 함. 처음에는 서양 체조와 창가를 가르쳐 동리 사람들이 "학교라고는 미친 지랄만 가르치고 광대 소리나 가르친다"고 반대들을 했으나, 밤마다 동리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했고,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을 깊이 사귀어서, 지금은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박선생의 학교에 다님. 박선생은 학교 설립 초기 학부형들의 완고한 태도를 깨뜨리기 위해 학예회를 개최하고 농민강좌도 열었음. 초기에는 물론 딸들이 학예회에서 기생춤(서양춤이었음)을 추는데 놀란 학부모들이 퇴학을 시켰으나, 농민강좌에 열심히 온 젊은패들이 중간에서 열심히 활동을 해 다시 복학시키는 데 성공. 동리에서 나날이 박선생에 대한 칭송이 높아져 감.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아서 부모를 따라 간도로 이사하게 된 어느 학생은 며칠을 박선생을 붙잡고 울었던 일도 있음. 월파선생에게도 깍듯하게 대하며 예를 갖출 줄 아는 젊은이. 하지만 농민강좌에서 한 교육과 연설 등 때문에 나중엔 일제 형사들에게 끌려감. 그의 품속에는 월파선생의 딸 숙희가 보낸 편지가 품어져 있음. 


이리 신나게 가르쳐주니 “월파선생, 월파선생 대신에 박선생, 박선생” 하지요……



숙희 : 일가붙이가 없는 월파선생의 외동딸. 아버지 월파선생에게 일곱 살에 『계몽편』, 아홉 살에 『열녀전』을 배우고, 열두 살 때는 시운법을 습득함. 총명하여 한 번 배운 것을 잊지 않고 글씨의 획도 번듯하며 한시도 꽤 잘 지을 뿐 아니라 침선(바느질)도 꽤 잘함. 인근에서 숙희 처녀의 칭찬이 자자한 편. 아버지가 사립강습소 때문에 학생들에게 짜증도 내고 스스로 화도 내고 하는 것에 아버지께서 항상 저에게 안심입명(安心立命: 천명을 깨닫고 생사와 이해를 초월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음)하라고 일러주시지 않았냐며 위로할 줄 아는 지적이고도 자상한 딸. 박선생이 형사들에게 잡혀 간 뒤 아버지에게 자신도 모르게 박선생이 왜 잡혀 갔는지 묻는 숙희의 품속에는 박선생이 써 보낸 편지가 품어져 있음.    

::: 숙희의 한마디 : (마을 유지들마저 자신을 배신한 데 화가 난 월파선생을 위로하며) "아버지, 안심입명하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지요. 되어가시는 대로 살어가시죠."



김참봉 : 월파선생 동리의 제일가는 부자. 소작인 출신이지만 현재는 동척의 농감으로 마을의 둘도 없는 유지 행세를 하고 있음. 금테안경을 쓰고 새끼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는 등 매우 사치스러워 보이지만 월파선생의 눈에 얼굴만은 상스러워 보임.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부를 기반으로 면협의원 일까지 하고 있는데다가 손자인 상남을 월파선생의 시중의숙에 보내고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인물. 월파선생을 배신(?)하고 손자를 사립강습소에 보내더니 어느 날 오래간만에 월파선생을 찾아와 농민강좌패들이 말썽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늘어 놓음.


::: 김참봉의 한마디 : "젊은 녀석들이 요새 와서는 계를 그만두자거나 저금이 소용없느니 하면서 말썽을 부린답니다. 그 중에 봉길이 녀석이 더해요. 그런데 선생, 그 녀석도 농민강좌에 다니기 전에는 여간 순박한 녀석이 아니었는데요, 오죽해 그놈 별명이 소였던가요."



구장 : 월파선생의 지기로, 시중의숙을 지어주고 해마다 강좌비로 학생들이 내는 벼를 거둬 준 인물. 형제 이상으로 흉금을 터놓고 지내온 사이. 하지만 그 역시도 마을에 공립학교를 세우는 일로 김참봉과 면장과 함께 월파선생 집을 찾아왔다가 자기도 모르게 박선생의 칭찬을 하고 마는 실수(?)를 저지름. 결국 시중의숙에 내내 보내던 막내아들 길동이를 사립강습소로 보내게 됨.


::: 구장의 한마디 : (박선생을 칭찬하는 구장의 말에 샐쭉해진 월파선생이 자네 아들도 그리로 보내라고 하자 놀라며) "아니, 선생님도 망령이슈……. 내가 아무리 뭣하기로 우리 놈에게는 한문을 완성시켜 주고야 말걸 그려우."



 

 

송영(宋影)
 
극작가이자 소설가. 본명은 무현(武鉉). 1903년 서울 출생. 1922년 배재고보 중퇴 후
염군사(사회주의 경향의 문인들의 단체)에 참여. 같은 해 일본으로 건너가 공장 노동자로 생활. 1925년 문단에 데뷔하여 본격적인 작품활동 시작. 1945년 8월의 조선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결성에 가담, 이후 1946년 월북. 1979년 사망


송영 소설 선집 - 10점
송영 지음, 박정희 엮음/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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