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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타공인 고전평론가 고미숙, 근대성을 말하다

by 북드라망 2014. 4. 9.

우리의 신체와 무의식에 새겨진

'근대성'에 대한 탐사!





1. 선생님께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고전평론가’이시고, 그간의 저작활동에 비춰봤을 때, 이번에 출간하신 책들이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이라는 데에 놀라는 독자들도 적지 않을 듯합니다.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고미숙=고전’이라는 등식이 자리하고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일단은 ‘근대성이 뭐지? 왜 고전평론가가 저런 문제를 다뤘지?’라는 의문이 먼저 들 것 같은데요.      

“근대, 그러면 지금 우리 시대도 사실은 근대예요. 근데 더 구체화하면 20세기적 삶의 방식이나 세계관, 이런 걸 총칭하는 말이고. 정확하게 얘기하면 1894년 갑오년,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이네요. 그때부터 이제 어떤 지축이 막 흔들리면서 서구가 도래해서 1907년쯤 해서 근본적으로 개편이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우리는 모더니즘이라는 틀 안에서 자기를 보고 세상을 보고 삶을 기획하는 이러한 시대를 맞이한 거죠. 이걸 총칭해서 근대, 근대성 이렇게 말하고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드디어 화폐가 지배하는 시대가 됐잖아요? 이 화폐를 만들려면 노동, 그래서 노동이 아주 중요한 가치가 되고 그 다음에 화폐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상품을 소비하면서 쾌락을 누리고 즐기고 이런 걸 행복이라고 느끼는 그런 식의 표상들, 요런 게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죠.”



2. 선생님의 주로 공부하시고 글을 쓰시는 영역은 고전, 그러니까 ‘클래식’이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모더니즘’의 시대로 점프를 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근대성을 공부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박사 학위를 쓸 때는 고전문학을 했으니까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를 주로 공부를 했어요. 그러면 18세기, 19세기 하고 난 다음에는 당연히 그 다음에 어떻게 됐지? 이게 되게 궁금하죠. 그래서 거기 1894년에서 1910년 사이, 이걸 근대계몽기(라고 합니다). 그때 자료를 한 4~5년 너무너무 열심히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자료는 고전처럼 뭐 문집이나 역사 자료가 아니고 신문이에요, 다.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황성신문』 이런 건데, 특히 『대한매일신보』가 근대계몽기의 아주 핵심적인 매체거든요. 양이 어마어마한데 통독하다가 어깨를 한 6개월 동안 못 쓸 정도로 그걸 보고, 자료 입력 같은 걸 많이 했어요. 근데 그만큼 재밌었어요. 그래서 계몽가사집도 내고, 뭐 여러 가지 근대계몽기에 관한 글을 쓰면서, 굉장히 놀란 것은 지금 21세기에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떤 삶의 패턴이 그때 다 시작됐다는 거. 그걸 알고 ‘아, 여기가 기원의 장이구나! 여기를 집중적으로 탐사를 해야 우리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살게 됐는지를 알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그 자료 읽기를 바탕으로 해서 근대성 탐사 작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때 또 니체나 푸코에 의해서 서양 근대의 계보학, 이런 게 많이 90년대 이후에 들어오게 됐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한국의 근대성의 계보학, 이런 거를 독자적으로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양과는 다른 방식의 한국의 근대성, 에 대한 계보학 이런 거를 시도하게 된 거죠.”




3.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의 1권은 『계몽의 시대 :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의 탄생』입니다. ‘계몽’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대개 문맹퇴치라든가, 국권회복운동 같은 것을 제일 먼저 떠올릴 텐데요, 이 책에서는 기차(철도)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거든요. 기차와 부제의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이 어떻게 조우하게 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근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사실 기차와 함께, 시작이 된 것 같아요. 내가 광산촌에서 살아서 아는데, 일단 산과 산을 뚫어서 기찻길을 만들어야 돼. 그러면 거기 뭔가 생산 기지가 생기는 거죠. 그러면 기차가 들어오면 공간과 시간이 균질화돼요. 그럼 속도만 남는 거야. <설국열차>에서처럼 계속 앞을 향해 가는 것, 무조건 어디론가 가야 되는 것,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 이런 것들이 설정이 되잖아요. 그러면 이제 그 균질화된 시공간에 어떤 척도가 생겨요. 중세하고는 다른 종류의 척도. 그러면 중세에는 자연과 인간과의 감응, 이런 게 정치에도 중요하고 먹고사는 데도 중요하고 생사에도 다 중요한데 근대가 딱 오면, 인간이 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해져요. 그러면 인간이 민족이나 국민 단위로 딱 묶여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갑자기 민족주의라든가 국가 이런 게 아주 초월적 기호로 등장을 하게 되죠.”



4. 철도로 인해 시공간이 균질화되고, 거기에서 새로운 척도로 생겨난 것 중 하나가 민족주의라는 말씀인데요. 그렇다면 ‘민족성’이라는 것도 이때 생겨났다고 볼 수 있을 텐데, 한국인의 대표적 민족성으로 꼽히는 ‘한’(恨)이라는 것은 굉장히 전통적인 정서 아닌가요?

우리는 그걸(민족주의 또는 국가) 발견하는데 바로 식민지가 됐잖아요. 구제(할 대상으로)로서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는 이때, 정서적으로 한이라고 하는 게 등장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인은 굉장히 한의 민족이고, 「아리랑」과 김소월의 「초혼」, 「진달래꽃」 이런 것들에 의해서 한의 정서라고 구성이 됐는데……, 조선시대 판소리문학도 그렇고 조선시대에는 그렇게 한이 없었어요, 사실. 굉장히 해피엔딩이 너무 많아서 지나쳐서 좀 문제였고, 지나치게 한이 없어서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건 만들어진 거지, 그 시절에 만들어진 거죠. 그러면서 이제 영화나 대중문화 이런 게 끊임없이 ‘우리는 한을 내재한 민족이야’ 이런 식으로 계속 확산이 되어 갔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이걸로부터 벗어나려면 이게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기원을 좀 알 필요가 있다는 거죠. 


2002 년 월드컵 때 ‘다이내믹 코리아’가 등장하면서 그땐 아리랑도 완전히 한이 없는 아리랑이 됐고, 지금 21세기가 돼 보니까 한국인이 참 낙천적이고 굉장히 뭐라고 하나, 지나치게 액티브하고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이런 성격이 있구나를 인제 느끼는데, 아직도 이제 한이나 비극 뭐 이런 거를 굉장히 막 높이 평가하고 그러는 게 뭔가 굉장히 왜곡된, 그래서 그걸 좀 밝히는 의미에서 『계몽의 시대』를 쓰게 된 거죠.




5. 앞서 ‘기원의 장’으로서의 근대계몽기를 발견하게 된 것이 근대성을 탐사하게 된 계기가 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2권 『연애의 시대』의 부제는 ‘근대적 여성성과 사랑의 탄생’입니다. ‘사랑’이란 것이 어떻게 이 시대에서 기원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여성성과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얘기해 주세요. 

2권을 특히 쓰게 된 중요한 이유는 멜로드라마 때문인데……. 멜로드라마가 여성성과 사랑에 대한 왜곡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요. 21세기가 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이거는 뭐 점입가경의 상태인 거예요. 최근에 멜로를 보면 현실하고 너무 동떨어졌을 뿐 아니라 단순한 보상심리라고 하기에도 좀 심각할 정도로 판타지가 심해지고 있잖아요. 급기야 이제 재벌 2세에서 외계인까지 등장을 하시고, 유령처럼 막 출몰하고, 뭐 이런 거를 사랑의 낭만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일단 여성들이 왜 이렇게 남성이 대단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게 조금 이상하잖아요. 여성이 지금 많이 배우고 사회적 진출도 많이 하고 남성에 비해 경쟁력이 높아졌는데 왜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가진 남자를 원할까. 돈도 많고 그 다음에 잘생기고 나이도 어리고 그리고 초능력도 있고 이래야 되는. 그리고 이런 남자가 또 나만을 사랑해주는 순정파일 거라고 믿는 이 순진무구함. 이것도 너무 현실하고 안 맞잖아요.


그런데 이런 이미지가 왜 계속 이렇게 반복적으로 확산되고 소비되는가. 그런데 이렇게 될수록 사실 연애는 불가능해지고 연애하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지잖아요. 그럼 이런 여성성하고 이런 종류의 사랑의 판타지 그게 이제 어디로부터 유래했는가, 그래서 돌아가 보면 근대계몽기의 이광수를 만나게 되는 거죠. 이광수가 설정해놓은 어떤 그 사랑의 문법? 그게 아직까지도 계속 뿌리 깊게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그렇게 사랑이 설정이 돼버리면 여성은 그 사랑으로 자기 존재를 표현해야 되니까 세상이 아무리 여성해방과 자유를 성취해도 내면적으로는 다 이미 그런 사랑에 긴박이 돼버려요. 이런 사랑을 해야 내가 의미 있는 존재가 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지금  너무 사는 게 헛헛해……. 그러니까 지금 (멜로드라마가) 결핍을 생산하는 거처가 돼버렸잖아요. 이런 종류의 여성성, 이런 종류의 사랑의 판타지는 망상이다. 이 망상을 깨부수는 망치로서의 계보학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을 한 거죠. 


다른 가치는 약간 좀 희석이 됐잖아요. 민족이라든가 국가주의 이런 건 희석이 되고 가족주의도 뭐 조금 관계가 이완이 되는데 그럼 남는 게 정말 멜로적인 연애. 그래서 여성은 멜로에 빠지고 남성은 야동에 빠지고 그래서 연애와 성이 너무 분리되는 것도 굉장히 왜곡된 형태고……,  이건 둘다 변태잖아요 사실 이런 이미지로서만 연애를 갈구하는 것도 변태고 그냥 오로지 성적인 욕망만 흘러다니는 것도 변태고, 그러니까 이 둘은 어떤 격정의 멜로를 찍어도 결핍을 생산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모두가 상처받은 존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안에서 나를 치료하고 나를 위로해 달라고 하지 말고 이 배치 자체를 바꿔버리는, 그런 게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근대성 내부에서는 어렵다, 기원으로 가서 그 안에서 외부를 이렇게 콱 깨고 나와야 돼. <설국열차>에서도 계속 앞으로만 가갖고는 답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문을 박차고 나와야 다른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죠.




6. 선생님께서는 이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라는 책을 ‘양생’이라는 삶의 기술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양생의 지혜를 체득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데요, 그럼에도 양생과 거의 대척점에 있는 ‘위생의 시대’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근대성 자료를 볼 때 다른 거는 조금 예상을 한 건데, 이 위생 부분은 진짜 좀 놀랐어요. 민족주의자건 친일파건 하여튼 보수주의자건 누구나 너무 위생을 강조하는 거예요. 김옥균처럼  갑신정변의 풍운아도 서울 길거리의 똥오줌이 문제야, 이렇게 진단을 내리고 그러니까. 위생을 해야 우리나라가 발전할 거야 이런 식의 관념이 생긴 거잖아요. 그래서 위생국을 설치하고 가옥구조를 바꾸고 세금을 부과하고…… 위생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위생이 고생이다’, ‘위생이 원수다’ 이런 노래가 아주 줄기차게 나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리학이 진리라는 것은 바뀌지 않더라구요. 병리학이란 건 세균하고 몸을 분리를 해서 질병이 세균의 침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거고, 의학은 세균을 몰아내는 것. 이런 구조로 신체를 보는 게 병리학이잖아요. 그러니까 병리학이 들어오면 내 신체에 대한 어떤 상이 생기는 거죠. 깨끗한 것 더러운 것, 몸하고 몸 밖의 침입자, 이분법이 생기니까 이제 막 죽어라고 씻어 대는 거야. 하루에 몇 번씩 샤워를 해야 되고 집에 꼭 샤워실이 있어야 되고(……, 하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생관념이 생긴 거죠).


지금도 전염병이 계속 돌면 무조건 씻어라 이거밖에 없죠. 나중에 보면 거의 청결강박증이 되잖아요. 이 결과가 아토피라든가 여러 가지 면역계 질환을 낳는데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이 지구에 있는 물을 골수까지 다 빼먹게 될 거고 그러면 사막화되고 그래서 다시 미세먼지가 오고 미세먼지 오면 아무리 씻어봐야 도로 피부는 더 거칠어지고 이런 악순환에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지금 이런 식의 위생관념에서 일단 벗어나서 몸과 세계를 보는 그런 게 필요하기 때문에 『동의보감』 관련 작업을 한 몇 년 했잖아요. 이 위생관념을 벗어나려면 『동의보감』식의 신체관, 몸과 우주의 관계 이런 게 필요하다, 이거는 『동의보감』 3종 세트(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를 통해서 충분히 밝혔는데 그런데 그게 좋다는 걸 알아도 이 위생의 계보학적 근원 이런 걸 잘 모르면 여전히 같은 패턴으로 살면서 자기 몸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몸을 항상 어디 갖다 자꾸 맡기는 거죠. 세균을 몰아내면 돼,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면 돼, 그다음엔 정기검진 하면 돼……, 지금 뭐 검진이나 과잉진료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데도 이걸 못 끊고 있는 거죠. 『동의보감』 3종 세트는 그런 몸과 세계에 대한, 또는 질병과 치유에 대한 새로운 비전은 제시해 준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좀더 이 근대적인 위생관념의 뿌리 그 기원을 좀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자료가 소중한 거죠. 처음에 어떤 모습으로 들어왔는가, 들어와서 사람들의 신체를 어떻게 지배하고 재배치하게 됐는가, 그게 『위생의 시대』를 쓰게 된 이유죠.




7. 마지막 질문입니다. 근대계몽기가 지금 우리들의 삶의 패턴이 형성되는 기원의 장으로서 의미가 있었기에 근대성에 대한 공부를 하시게 됐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를 보는 것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보다 의미가 있을까요?   

<감이당>이나 <남산강학원>에서 강의를 해보면 의외로 그 근원이나 기원을 잘 몰라요. 지금 이렇게 살고 있어, 그런데 문제가 있어…, 그러면 동의해요. 그런데 마치 이게 절대적 진리처럼 주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하여튼 어떻게든 이거를 벗어나지 않고 보완수정을 하려고 하거든요. 근데 원래 이렇게 살지 않았고 그리고 우리나라는 특히 120년밖에 안 됐다는 거. 어느 날 느닷없이 들어온 거죠, ‘계몽의 시대’건, ‘연애의 시대’건, ‘위생의 시대’건.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우리한테 세팅이 된 거예요. 힘과 세계화의 질서 속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그냥 주어져 버린 거잖아요.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달려온 거예요. 그게 옳다, 그게 진보다, 그게 발전이다 이런 논리하에.


그런데 지금쯤이면 좀 ‘아, 이 길은 아닌가벼’라고 좀 생각을 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이 동력이 바로 계보학에 있다고 생각해요. 니체도 계보학을 망치라고 그랬잖아요. 지금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게 하나의 가상이라는 것, 세계를 보는 하나의 시선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계보학이 갖는 장점이 아닐까. 그래서 그 얘기를 이렇게 해주면 굉장히 깜짝 놀라요. 그리고 이광수 소설을 읽고 예전에 교과서에서 읽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보게 되는 기회가 되죠. 그러면 또 아, 이렇게 해서 내가 지금 요렇게 살고 있구나,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기획을 하고 있구나, 요런 거를 알게 될 때 충격과 함께 대안이 뭐냐고 묻기 전에 자기가 일단 이 표상에서 벗어나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설국열차>로 얘기를 하면 문을 박차고 나오는 힘, 그게 필요한 거예요. 여기 아무리 달려가도 뭐가 없어, 꼬리칸이나 머리칸이 같아, 이렇게 알면 나올 수 있잖아요. 나오면 뭐가 있는지 사실 몰라. 나왔더니 뭐가 있었어요? 북극곰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쟤랑 어떻게 살아야 되지’라는 생각을 그때 하는 거죠. 대안을 마련해놓고 그게 안전하다고 확인을 해서 사람이 삶을 바꾸는 게 아니라 일단 이 라인에서 나올 수 있는가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이 돼요.


※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은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나비와 전사』, 『이 영화를 보라』를 계몽·연애·위생이라는 주제로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4월 23일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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