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리와 역사로 살펴 본 한의학 이론의 형성
한의학의 형성과 발전은 중국의 지리와 역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한학자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 선생님께서는 한의학의 갈래에 대해 흥미로운 말씀을 하신 바 있지요. 중국의 의학은 세 가지 방면으로 발전했는데, 침뜸을 위주로 한 경락학(經絡學)과 약초를 채취해 치료하는 본초학(本草學), 마지막으로 전염병을 치료하는 상한론(傷寒論)이 그것입니다. 경락학의 대표적인 서적은 전편에서 언급한 한의학의 아마존 정글 ‘황제내경(黃帝內經)’입니다. 중국의 시조라 할만한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와 신하인 기백(岐伯)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이에 맞서는 본초파의 좌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분은 세상의 모든 풀을 직접 맛보고 무려 70여 가지의 독에 중독된 농사의 신,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입니다. 그의 이름을 내건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 본초파의 비급이지요. 그렇다면 돌림병을 치료하기 위해 탄생한 절세의 의서는 무엇인가? 전설상의 인물인 삼황오제(三皇五帝)와 비견되는 의성(醫聖)으로 존경 받는 후한(後漢) 말 장중경(張仲景)의 『상한잡병론(上寒雜病論)』이 바로 그것입니다. 강호에는 무림(武林)만 있지 않습니다, 의림(醫林) 또한 당당히 존재하고 있던 것이지요. 경락파, 본초파, 상한파의 팽팽한 대결! ^^;
북방 경락파
노촌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색깔이 다른 의술의 발달은 중국의 지리적 특성과 밀접히 연관되어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남선북마(南船北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양자강 이남의 지방에서는 강이 많아 배를 타고 다니고, 북쪽은 산과 들이 많아 말을 몰고 다닌다는 이야기지요. 이처럼 기후와 지형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질이 다르고, 발생하는 질병 또한 차이가 있을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노촌 선생님은 경락학이 북방에서 발달했으며, 그 이유로 황량한 자연환경을 언급하십니다. 매년 봄 서울의 하늘을 덮치는 모래바람, 즉 황사의 발원지인 황하(黃河) 유역. 제가 직접 가본적은 없으나 누런 모래폭풍은 생각만 해도 입안이 꺼끌꺼끌해지는 기분입니다. 한마디로 비옥함과는 거리가 먼 와일드한 곳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도 몸이 아프면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는 것마냥, 주변에 쓸만한 풀 뿌리는 전부 말라비틀어졌고... 어쩌겠습니까? 하는 수 없이 풀 없이도 질병에 효험 있는 침과 뜸이 발달했고, 그것이 집대성되어 『황제내경』이라는 집단 저술로 탄생했다라는 이야기이지요.
남방 본초파
반면에 강남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누린 지역입니다. 삼재(三才)는 천·지·인을 가리키는데, 삼국지에서도 지리(地利)를 얻은 자는 오나라의 손권(孫權)이지요. 이곳은 양자강이 도도히 흘러 외부에서 쳐들어가기도 어려울뿐더러, 물산이 풍부해 살기 좋지요. 화려한 강남문화의 융성은 이런 지리적 요인을 기반으로 합니다. 주변에 널린 것이 초목이니 자연스레 약초를 캐는 데 용이했을 터이고, 따라서 본초학이 발달하지 않았을까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를 일이나, 본초학을 집대성한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註)』를 편찬한 ‘중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도홍경(陶弘景)과 16세기 위대한 의학자이자 박물학자이며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저자인 이시진(李時珍)은 모두 강남 사람입니다. 도홍경은 중국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학자였으며, 이시진은 양자강 중류에 위치한 호북성(湖北省) 출신이지요. 단 두 사람의 사례이지만, 본초학의 양대 거목이 강남을 지역구로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강남이 본초학을 발전시키는데 유리함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천 상한파
전편에서 잠깐 언급했던 상한론은 그럼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을까요? 노촌 선생님은 사천(四川) 지방을 말씀하십니다. 사천 짜장으로 익숙한 이곳은 강남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천혜의 지역입니다. 양자강으로 둘러싸인 강남과 달리, 사천은 험준한 절벽과 거친 급류를 뚫어야 겨우 도달할 수 있지요.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 제목만 봐도 딱 감이 옵니다. 사천 지방을 보통 파(巴)와 촉(蜀)이라 부르는데, 촉으로 가는 길은 ‘난(難)’하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하게 빡세다는 말이지요. 도대체 얼마나 힘들기에(?) 한 구절을 인용하면 ‘촉도지난 난어상청천(蜀道之難 難於上靑天)’하다. 촉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은 푸른 하늘(!)을 오르기보다 더 어려워라! 허허... 그렇군요.
오늘날 삼협댐이 세워진 그 지역, 예전에 삼국지를 읽으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지요. ^^ 가기는 어려우나, 막상 들어가면 별천지의 등장! 이를테면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곳이라 할까요?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들은 적벽대전(赤壁大戰)을 기억하실 겁니다. 네네, 양조위와 금성무가 출연했던 그거요. 제갈량의 동남풍, 화살 10만개, 연환계 등등.. 실제로 적벽의 싸움을 판가름한 것은 역병(疫病)의 대규모 발생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물론 연의(演義)에서도 강남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한 북방의 군사들이 전염병을 앓았다라는 이야기도 살짝 비치나, 그 영향은 꽤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상한(上寒), 즉 풍한사기(風寒邪氣)가 일으키는 외감열병(外感熱病)은 이 시대에 특히 발생 빈도가 많아집니다. 말했다시피 장중경은 일족의 2/3를 상한으로 잃지요. 적벽의 대규모 역병 또한 단순히 풍토병이기보다 상한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전염병은 갑자기 출현하고, 파괴력이 엄청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스페인 군인이 옮겨온 천연두에 큰 타격을 받은 것처럼, 한마디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질병인 셈이지요. 면역이 없으니 추풍낙엽처럼 대량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상한의 유행과 적벽의 역병이 같은 종류라면 그 역시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질병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 진원지가 사천과 같이 외부와 차단되고 저습한 지역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보게 됩니다. 이에 대해 가노우 요시미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도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중국에 유입되어 상한을 일으키지 않았을까라는 게 가노우 요시미츠의 설입니다. 그런데 ‘전염병에 적합한(!) 환경을 갖춘 인도’라… 인도에 대해 이야기 들은 바는 그저 갠지스 강에서 모든 생활을 해결한다는 게 전부입니다. 그 생활이란게 식수, 용변, 빨래 등등..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니 단정짓기는 어려우나, 저 표현이 참 대단하군요. ;; 인도의 질병 유입설이 사실이라면, 다양한 경로로 사천 지방에 먼저 들어와 이종교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쨌든 고립되어 있는 지역을 전염병 혹은 돌림병의 발생 장소로 지목한 노촌 선생님의 안목은 대단합니다. 불통(不通)하면 통(痛)한 법이지요. 이처럼 지리적 관점으로 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니 그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듯 합니다. 그럼 상한이 몰아친 삼국시대 이후의 의학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천하는 유비, 조조, 손권도 아닌 엉뚱한 사마씨(司馬氏)에 의해 통일을 이루나, 그것은 더 큰 혼란의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이와 함께 펼쳐지는 한의학의 계보를 쭉 더듬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 다음 주에는 삼국시대 이후의 의학에 관해 포스팅됩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김동철(감이당 대중지성)
한의학의 형성과 발전은 중국의 지리와 역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한학자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 선생님께서는 한의학의 갈래에 대해 흥미로운 말씀을 하신 바 있지요. 중국의 의학은 세 가지 방면으로 발전했는데, 침뜸을 위주로 한 경락학(經絡學)과 약초를 채취해 치료하는 본초학(本草學), 마지막으로 전염병을 치료하는 상한론(傷寒論)이 그것입니다. 경락학의 대표적인 서적은 전편에서 언급한 한의학의 아마존 정글 ‘황제내경(黃帝內經)’입니다. 중국의 시조라 할만한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와 신하인 기백(岐伯)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이에 맞서는 본초파의 좌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분은 세상의 모든 풀을 직접 맛보고 무려 70여 가지의 독에 중독된 농사의 신,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입니다. 그의 이름을 내건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 본초파의 비급이지요. 그렇다면 돌림병을 치료하기 위해 탄생한 절세의 의서는 무엇인가? 전설상의 인물인 삼황오제(三皇五帝)와 비견되는 의성(醫聖)으로 존경 받는 후한(後漢) 말 장중경(張仲景)의 『상한잡병론(上寒雜病論)』이 바로 그것입니다. 강호에는 무림(武林)만 있지 않습니다, 의림(醫林) 또한 당당히 존재하고 있던 것이지요. 경락파, 본초파, 상한파의 팽팽한 대결! ^^;
타잔 같은 복장이지만;; 신농(神農)은 중국 삼황 중 한 명으로 흔히 '염제(炎帝) 신농'으로 불립니다. 황제 헌원씨 이전에 한족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북방 경락파
노촌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색깔이 다른 의술의 발달은 중국의 지리적 특성과 밀접히 연관되어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남선북마(南船北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양자강 이남의 지방에서는 강이 많아 배를 타고 다니고, 북쪽은 산과 들이 많아 말을 몰고 다닌다는 이야기지요. 이처럼 기후와 지형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질이 다르고, 발생하는 질병 또한 차이가 있을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노촌 선생님은 경락학이 북방에서 발달했으며, 그 이유로 황량한 자연환경을 언급하십니다. 매년 봄 서울의 하늘을 덮치는 모래바람, 즉 황사의 발원지인 황하(黃河) 유역. 제가 직접 가본적은 없으나 누런 모래폭풍은 생각만 해도 입안이 꺼끌꺼끌해지는 기분입니다. 한마디로 비옥함과는 거리가 먼 와일드한 곳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도 몸이 아프면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는 것마냥, 주변에 쓸만한 풀 뿌리는 전부 말라비틀어졌고... 어쩌겠습니까? 하는 수 없이 풀 없이도 질병에 효험 있는 침과 뜸이 발달했고, 그것이 집대성되어 『황제내경』이라는 집단 저술로 탄생했다라는 이야기이지요.
남방 본초파
반면에 강남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누린 지역입니다. 삼재(三才)는 천·지·인을 가리키는데, 삼국지에서도 지리(地利)를 얻은 자는 오나라의 손권(孫權)이지요. 이곳은 양자강이 도도히 흘러 외부에서 쳐들어가기도 어려울뿐더러, 물산이 풍부해 살기 좋지요. 화려한 강남문화의 융성은 이런 지리적 요인을 기반으로 합니다. 주변에 널린 것이 초목이니 자연스레 약초를 캐는 데 용이했을 터이고, 따라서 본초학이 발달하지 않았을까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를 일이나, 본초학을 집대성한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註)』를 편찬한 ‘중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도홍경(陶弘景)과 16세기 위대한 의학자이자 박물학자이며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저자인 이시진(李時珍)은 모두 강남 사람입니다. 도홍경은 중국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학자였으며, 이시진은 양자강 중류에 위치한 호북성(湖北省) 출신이지요. 단 두 사람의 사례이지만, 본초학의 양대 거목이 강남을 지역구로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강남이 본초학을 발전시키는데 유리함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본초파의 본초도보도례(本草圖譜圖例)에서는 삽화가 포함되어 이해를 돕습니다. 오른쪽은 산란(山蘭), 왼쪽은 춘란(春蘭)입니다. 산란은 국화과 다년초로 여름과 가을에 채취하며 산후수종, 황달, 감기, 탈항, 기관지염 등의 증상에 효능이 있고 춘란은 지혈, 손발 튼데, 화상, 동상, 외상출혈에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사천 상한파
전편에서 잠깐 언급했던 상한론은 그럼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을까요? 노촌 선생님은 사천(四川) 지방을 말씀하십니다. 사천 짜장으로 익숙한 이곳은 강남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천혜의 지역입니다. 양자강으로 둘러싸인 강남과 달리, 사천은 험준한 절벽과 거친 급류를 뚫어야 겨우 도달할 수 있지요.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 제목만 봐도 딱 감이 옵니다. 사천 지방을 보통 파(巴)와 촉(蜀)이라 부르는데, 촉으로 가는 길은 ‘난(難)’하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하게 빡세다는 말이지요. 도대체 얼마나 힘들기에(?) 한 구절을 인용하면 ‘촉도지난 난어상청천(蜀道之難 難於上靑天)’하다. 촉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은 푸른 하늘(!)을 오르기보다 더 어려워라! 허허... 그렇군요.
오늘날 삼협댐이 세워진 그 지역, 예전에 삼국지를 읽으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지요. ^^ 가기는 어려우나, 막상 들어가면 별천지의 등장! 이를테면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곳이라 할까요?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들은 적벽대전(赤壁大戰)을 기억하실 겁니다. 네네, 양조위와 금성무가 출연했던 그거요. 제갈량의 동남풍, 화살 10만개, 연환계 등등.. 실제로 적벽의 싸움을 판가름한 것은 역병(疫病)의 대규모 발생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물론 연의(演義)에서도 강남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한 북방의 군사들이 전염병을 앓았다라는 이야기도 살짝 비치나, 그 영향은 꽤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공이 적벽에 이르러 유비와 싸워 유리하지 못했다. 여기에 더욱이 큰 병이 있었다. 관리와 병사들 가운데 죽은 자가 많아서 이에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수,『정사 삼국지 위서 무제기』, 민음사
상한(上寒), 즉 풍한사기(風寒邪氣)가 일으키는 외감열병(外感熱病)은 이 시대에 특히 발생 빈도가 많아집니다. 말했다시피 장중경은 일족의 2/3를 상한으로 잃지요. 적벽의 대규모 역병 또한 단순히 풍토병이기보다 상한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전염병은 갑자기 출현하고, 파괴력이 엄청나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스페인 군인이 옮겨온 천연두에 큰 타격을 받은 것처럼, 한마디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질병인 셈이지요. 면역이 없으니 추풍낙엽처럼 대량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상한의 유행과 적벽의 역병이 같은 종류라면 그 역시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질병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 진원지가 사천과 같이 외부와 차단되고 저습한 지역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보게 됩니다. 이에 대해 가노우 요시미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맥닐에 의하면, “기원 초 수세기에 걸친 중국 병의 역사는 지중해 세계의 여러 지방과 비슷했다. 치사율이 높은 새로운 전염병이 육로 또는 해로를 통해 멀리 중국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나쁜 병의 발원지는 전염병에 적합한 환경을 갖춘 인도였을 것이다. (중략) 중국·인도 사이의 교통은 선진(先秦) 시대에 이미 개통되었지만 병의 이동을 위한 객관적 조건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 숙주인 사람의 이동 양태가 변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가노우 요시미츠, 『몸으로 본 중국사상』, 소나무
인도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중국에 유입되어 상한을 일으키지 않았을까라는 게 가노우 요시미츠의 설입니다. 그런데 ‘전염병에 적합한(!) 환경을 갖춘 인도’라… 인도에 대해 이야기 들은 바는 그저 갠지스 강에서 모든 생활을 해결한다는 게 전부입니다. 그 생활이란게 식수, 용변, 빨래 등등..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니 단정짓기는 어려우나, 저 표현이 참 대단하군요. ;; 인도의 질병 유입설이 사실이라면, 다양한 경로로 사천 지방에 먼저 들어와 이종교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합니다.
중국 지역별 기후 분포, 그림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고립되어 있는 지역을 전염병 혹은 돌림병의 발생 장소로 지목한 노촌 선생님의 안목은 대단합니다. 불통(不通)하면 통(痛)한 법이지요. 이처럼 지리적 관점으로 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니 그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듯 합니다. 그럼 상한이 몰아친 삼국시대 이후의 의학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천하는 유비, 조조, 손권도 아닌 엉뚱한 사마씨(司馬氏)에 의해 통일을 이루나, 그것은 더 큰 혼란의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이와 함께 펼쳐지는 한의학의 계보를 쭉 더듬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 다음 주에는 삼국시대 이후의 의학에 관해 포스팅됩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지난 연재 ▽ > 한의학의 고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의 시대에 대세였던 처방과 인물들 (0) | 2012.01.03 |
---|---|
한의학 고전의 아마존 정글?! -『황제내경』 (2) | 2011.12.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