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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목차의 온도

[목차의 온도 - 듣기의 윤리] "정의로운 응답하기"_정의에 대하여 / 부정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by 북드라망 2026. 10. 16.

[목차의 온도 / 듣기의 윤리]

"정의로운 응답하기"_정의에 대하여 / 부정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문체는, 당연한 말이지만 쓰는 이를 많이 닮아 있습니다. 특히 글을 자주 쓰는 분들의 글에는 그 분의 성격과 지향과 마음이 묻어납니다. 편집자인 저는 그 마음을 그 냄새를 잘 느낍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체 가운데 김애령 선생님의 글이 있습니다. 철학자인 김애령 선생님의 글은 부드럽지만 예리하고, 분명하지만 단정하지 않고, 개념어로 쓰여진 철학책이지만 구체적 삶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 속에서도 사유에서 한 치의 두루뭉술도 허락하지 않는 철학자의 날카로움이 빛나는 애령 선생님의 글을 참 좋아합니다.

애령 선생님의 이런 면모가 잘 드러난 책 가운데 『듣기의 윤리』가 있습니다. 오늘 목차의 온도에서 살펴볼 책은 『듣기의 윤리』이고, 소개할 목차는 마지막 3부의 2장인 '정의로운 응답하기'의 첫번째 절 '정의에 대하여'입니다. 이 장이 시작하는 곳에는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인용이 에피그램으로 실려 있습니다. "정의에 관한 합리적 성찰은 (...) 듣는 것에서부터, 어떤 외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흔히 '정의'라고 하면 높은 목소리의 주장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정의에 관한 합리적 성찰'은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네요. 저는 '정의'뿐 아니라 어떤 사유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듣기의 윤리』 제3부 '떠도는 말'을 따라―응답하기의 2장 '정의로운 응답하기'의 첫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의로운 듣기'와 '정의로운 응답하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듣기의 윤리』를 찾아주세요.

"데리다는 정의를 '불가능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정의의 아포리아는 강렬한 이념과 불가능한 실천 사이에서 우리를 당혹에 빠뜨린다. 정의는 이념으로 지향되고, 법적 제도적 실천의 방향타로 매번 새롭게 요청되지만, 구체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념으로서의 정의는 어떤 구체적 형상으로도 규정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정의를 부르고, 정의를 찾는다.
현실에서 정의가 물어질 때는, 부정의를 발견할 때이다. 부정의한 현실이 정의를 일깨운다. 구체적으로 그 형태를 그릴 수는 없지만, '이럴 수는 없다'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정의를 부른다. 이때 정의는 비판의 척도이거나, 해체의 동력이다. 적극적인 규정이 불가능하다 해도, 우리는 부정적 규정을 통해 정의를 찾아간다."(김애령, 『듣기의 윤리』, 235~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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