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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병렬 독서

[문화의 병렬 독서] 사랑과 성장의 문법: 『이성과 감성』 (1811) 다시 읽기

by 북드라망 2026. 4. 29.

사랑과 성장의 문법: 『이성과 감성』 (1811) 다시 읽기

글쓴이 : 문화


1. ‘로맨스 소설’이라는 오해와 그 너머
우리에게 『오만과 편견』의 작가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짧은 생애 동안 모두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그녀의 작품에는 혼사 문제라는 중요한 줄거리가 반복된다. 더 정확하게는 18세기 영국 젠트리 계급—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양반 계층—의 미혼 남녀가 연애하고 결혼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작품 속 어머니들은 혼기가 찬 딸들을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이 나 있고, 당사자인 딸들에게도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은 역시 중요한 문제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결혼에 도달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제 짝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Jane Austen, by Cassandra Austen. Pencil and watercolour, circa 1810 NPG 3630. ©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이러한 결말 구조로 인해 오스틴은 종종 ‘결혼 제도를 긍정하는’ 작가, ‘여성 독자층에 한정된 감상적 취향’의 작가로 오해되기도 한다. 이러한 통념은 대중 서사에서 오스틴이 인용되어 온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요즘은 인기가 덜하지만 1990년대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흥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만과 편견』 등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흥행하는가 하면, 직간접적으로 제인 오스틴의 연애 서사를 차용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여러 편 등장했다. 감성이 메마른 모태솔로 남성이 감성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여성을 만나 점차 사랑을 알게 된다는 한 영화(<유브 갓 메일>)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두 남녀의 차이를 설명하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든 제인 오스틴이 대중 서사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그녀의 작품을 전 세계 독자들이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스틴 소설에 따라붙은 명성은 때때로 그녀의 작품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하며, 오스틴 소설의 다층적인 구조를 놓치게 한다. 사실 오스틴 작품에서 연애나 결혼은 세간의 기대처럼 낭만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오스틴의 인물은 로맨틱한 감정에 도취된 인물과 거리가 멀뿐더러 그런 인물들이 등장하더라도 대체로 불행한 결말을 맞는다.


이를테면 오스틴의 소설에서 첫사랑에 대한 결벽증적인 집착은 어김없이 패배한다. 그의 작품에서 진정한 사랑은 첫눈에 반하거나 온갖 세속적 조건을 초월한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오해와 실수라는 온갖 우회로를 통과한 후에야 찾아온다. 현대 철학자 지젝은 오스틴의 연애 서사가 ‘오인 없이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철학적 교훈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정신현상학』(헤겔)의 소설 버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참고). 실제로 오스틴 소설의 인물들은 감정에 휩쓸려 오판하기도 하고, 이성적 판단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발현이 아니라, 오해와 실패를 경유하며 형성되는 하나의 인식 과정이다.

 


2. ‘한 숙녀’가 쓴 소설
먼저 제인 오스틴의 연애 서사가 18세기 영국 젠트리 계급이라는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펼쳐진다는 데 주목해 보자. 두 남녀의 결혼이 성사되는 데에는 당사자인 두 남녀의 ‘순수한’ 감정 못지않게 출신 가정이나 경제적 상황이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그의 작품에서 감정의 발전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감정이 어떤 경제적 토대에서 발전하느냐는 것이다. 연수입, 상속 재산 등에 대한 정보는 인물의 외모 묘사보다 더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당대 여성의 구체적인 현실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오스틴의 이야기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제한된 시대적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여성에게 재산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던 시절, 여자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장차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가정의 천사’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시대에 여성에게 요구되는 규범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중산층 젠트리 가문의 여성들에게는 ‘가정의 천사’라는 규범을 따를 것이 요구되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처럼 당대의 규범 바깥에 있는 경우, 그 여성은 결국 가족의 선의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여성 주인공은 바로 가정의 천사라는 규범이 지배하던 시절의 젠트리 계급의 딸들이다. 제인 오스틴 역시 이러한 규범이 지배하던 시절의 젠트리 계급의 여성이었다. 제인은 대다수의 여성이 결혼을 했던 그 시절 젠트리 계급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평생 독신을 유지했고 역시 결혼을 하지 않았던 언니 카산드라와 함께 가난한 목사관의 살림을 도맡았다. 오스틴의 글쓰기는 이러한 노동 가운데 이루어졌고, 당연히 조용한 작업실에 앉아 집필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족이 그녀를 필요로 할 때면 언제든 글쓰기를 멈추고 달려가야 했다.


제인 오스틴이 살아생전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지 못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첫 장편소설 『이성과 감성』 표지에는 그녀의 이름 없이 by a Lady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이는 젠트리 가문 딸의 문필 활동이 바깥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던 당대의 분위기, 여성 작가에 대한 당대의 편견과 무관하지 않다. 출판 과정에 관여했던 오빠 헨리나 언니 카산드라 등 가까운 사람 몇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책 출간이 비밀이었던 탓에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제인 오스틴의 조카는 “이성과 감성”이라는 책 제목을 두고 고모 제인의 작품인 줄도 모르고, 책 제목이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Sense and Sensibility(1811) 표지 
저자의 이름란에 제인 오스틴의 이름 대신에 By a Lady로 표기되어 있다.

 

『이성과 감성』이 인기를 얻고 차례로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하는 동안에도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은 표지에 인쇄되지 못했다. 대신 네 편의 장편소설에는 “『이성과 감성』의 작가(Author of Sense & Sensibility)”라는 표기가 등장했다. 그냥 ‘레이디’가 아니라 “『이성과 감성』의 작가”가 된 것이다. 이는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이 출판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스틴의 사후에야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표기된 『노생거 사원』, 『설득』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오빠 헨리가 쓴 제인의 짧은 생애에 대한 전기가 포함되었고, 그제서야 ‘한 숙녀’의 뒤에 가려진 ‘제인 오스틴’이라는 인물이 세상에 알려졌다.

 

 

Pride and Prejudice(1813) 표지 
저자의 이름란에 Author of Sense and Sensibility로 표기되어 있다. 

 

3. 이성과 감성, 대립에서 통합으로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진 두 자매 엘리너와 메리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오스틴의 첫 장편소설 『이성과 감성』(1811)은 역시 오스틴의 연애 서사에 나타난 주요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연애는 처음 생각한 것을 교정하고 진리로 나아가는 일종의 운동 과정이다. 작품들을 관통하는 또 다른 특징은 앞서 언급했듯 이야기가 18세기 영국 젠트리 계급 현실이라는 구체적인 무대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성과 감성』은 가부장 대시우드 씨의 죽음 이후 평생 살던 집에서 내쫓기게 된 젠트리 계급 모녀들의 상황에서 시작된다. 대시우드 씨는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존에게 계모와 세 딸들에게 유산의 일부를 나눠주는 자비를 베풀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엘리너와 메리앤의 이복 오빠 존 대시우드는 근시일 내에 ‘출가외인’이 될 누이들에게 자기 재산을 떼어주는 것을 아깝다고 느끼고, 결국 처음 생각했던 액수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돈을 주는 것으로 체면치레를 하고는 계모와 여동생들을 집에서 내보내기로 한다.


이렇게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평생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인데, 바로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두 자매의 사랑도 함께 시작된다. 먼저 시작된 것은 언니 엘리너의 사랑이다. 엘리너가 호감을 갖는 대상은 얄궂게도 자기들을 내쫓는 원수 같은 시누이의 남동생 에드워드다. 누이의 새 집 방문 차 들른 에드워드는 물려받은 유산이 거의 없는 엘리너와 다르게 부자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을 재산이 상당한 장래가 유망한 청년이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눈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좀처럼 진척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된다. 무엇보다도 경제적 격차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다. 군식구들이 하루빨리 집을 떠나기를 바라는 오빠 내외의 눈치를 받는 중이던 엘리너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데리고 새로 얻은 셋집으로 이사를 가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언니 엘리너가 감정 표현에 신중한 반면, 동생 메리앤은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엘리너는 감정을 즉각 표출하기보다는 절제하는 인물로, 호감을 느끼는 남자에게도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존경’이라는 표현을 택할 만큼 신중하다. 하지만 동생 메리앤은 절제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 만큼 감정 표현을 중시하는 인물로 언니의 신중함에 대해 동의하지 못한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답게 메리앤의 연애는 급속도로 진행된다. 고향을 떠나 새 집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메리앤은 산책길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존 윌러비라는 젊고 매력적인 청년에게 구조된다. 두 사람은 이 일을 계기로 열정적인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두 자매의 사랑은 얼마 안 가 모두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위기는 두 자매가 가진 각각의 기질과 관련이 있다. 엘리너의 지나친 신중함은 관계가 진척되는 것을 막는다. 엘리너와 에드워드가 서로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사이에 루시 스틸이라는 적극적인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엘리너와 에드워드와의 관계는 시작도 못하고 흔들리게 된다. 메리앤의 사랑 역시 순탄하지 않다. 영원한 사랑과 변치 않는 감정을 약속하던 윌러비는 갑자기 떠나고 다른 여성과 결혼하게 된다. 결국 두 자매는 모두 그녀들이 가진 극단적인 기질, 즉 한쪽은 지나친 절제 다른 한쪽은 감정의 과잉이라는 문제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을 잃는 경험을 한다.


여기에서 『이성과 감성』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성과 감성』의 원제는 “Sense and Sensibility”인데 오스틴은 여기에서 역시 우리말로 이성과 감성으로 옮겨지는 reason/feeling이라는 대립 쌍 대신에 sense/sensibility를 택하고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두 조합 모두 ‘이성과 감성’이지만, 제인 오스틴이 선택한 sense/sensibility는 reason/feeling과 엄연히 다르다. 서구 철학 전통에서 reason/feeling은 분명히 대조되는 개념으로 전자가 진리를 보증하는 능력이라면, 후자는 이를 방해하는, 통제해야 할 것에 가깝다. 오스틴의 시대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때로 특히 이는 젠더 논쟁과 결합하면서 더욱 논쟁적인 질문이 되었다. 이성과 감성을 각각 남성과 여성의 자질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대표적이다. 반면, 오스틴이 선택한 sense/sensibility는 명확하게 대비되거나 위계가 있는 단어 쌍이 아니다. 『이성과 감성』의 번역자 김선형이 지적했듯이 두 단어 모두 “자신이 감각한 것을 바탕으로 주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통합해 판단하는 능력” (김선형, 『디어 제인 오스틴: 젊은 소설가의 초상』, 엘리, 2025, 46쪽)이라는 뜻의 sensible의 의미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유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제목은 두 자매의 연애 서사가 전개되는 과정이 이성과 감성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 두 가지가 서로 상반되어 보이지만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에 엘리너는 감정의 절제를 중시하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신중한 판단은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녀가 연적인 루시에게 에드워드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한 것, 가까운 사이인 동생 메리앤에게도 속마음을 말하지 못한 것은 상대에게 감정적 타격이나 명성의 실추가 있을 수 있다는 고려 때문인 것이다.


메리앤은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망설임이 없다는 점에서 오직 감성만이 충만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메리앤 역시 사랑의 실패 이후 중병에 걸렸다가 회복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절제와 신중함을 재발견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때 메리앤의 감성은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에너지로 작용한다. 이렇게 『이성과 감성』은 두 자질의 균형을 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오스틴은 이성과 감성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성적 판단’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이미 감정에 의해 조건지어져 있다는 사실을 서사적으로 보여준다. 오스틴이 보여 주는 연애와 결혼의 서사는 단순히 남성=이성, 여성=감성이라는 이분법적 젠더 구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이분법적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 전제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소설 『이성과 감성』은 reason/feeling에 대한 젠더화된 논쟁—즉 이성은 남성이고 감성은 여성이라는 당대의 지난한 논쟁—에 대한 오스틴식의 답변일지도 모른다.

 


4.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
이 작품은 성격이 다른 두 자매의 성장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스틴이 만든 현실에서 열정과 신중함이 없는 사랑은 결국 실패한다. 윌러비가 대표적이다. 그는 매번 열정만으로 행동하다가 결국 많은 여성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위기를 모면하려고 매번 임기응변으로 살다가 결국 사랑 없는 결혼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사랑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은 브랜든 대령이다. 엘리너의 동생 메리앤을 일찌감치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그는 메리앤이 젊고 매력적인 윌러비와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을 묵묵히 지켜본다. 이 묵묵함은 상대의 감정을 깊이 이해했기에 가능한 신중함이었다. 그 역시 젊은 날 낭만적 열정에 도취되어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시련을 통해 감정을 과시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진짜 상대를 만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는 식의 낭만적 믿음이 복잡한 현실 속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사랑은 운명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변화 속에서 선택하고 책임지고 성장하려는 의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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