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_
삶을 견디는 기술로서의 문학
문화
북드라망 블로그에 연재하는 〈문화의 병렬 독서〉에서는 세계 문학의 고전을 읽으며 문학을 하나의 삶의 기술(art)로 사유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문학이 삶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제시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떤 책들은 삶을 이전보다 조금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문학은 삶의 부조리를 제거하지도, 인생의 의미를 단정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것을 웃을 수 있는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삶을 사랑하는 한 가지 방식일 것이다. 이 연재는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교훈을 도출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문학이 어떻게 삶의 부조리를 긍정하는 기술이 될 수 있는지를 살피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안천 옮김, 북노마드, 2025)을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이 책을 경유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앞으로 다루게 될 문학 작품들은 ‘인간의 삶은 왜 이토록 부조리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태어났는데, 사사키 아타루의 책이 그 지점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인간 삶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을 ‘부조리’라는 말로 설명한다. 인간은 태어남을 선택하지 않은 채 세상에 던져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삶을 살다가, 역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말대로 생과 사의 구조에는 필연적인 의미도, 합리성도 없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누군가 우리를 기억해 줄 것인지조차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나아가 이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욕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인은 이러한 부조리를 오래 응시하지 않는다. 생계를 유지하고 일상을 꾸리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차기 때문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연은 쉽게 권할 만한 대상도 아니다. 대신 우리는 행복의 추구, 자기계발, 성취의 목록들로 삶의 의미를 채운다. 저자가 지적하듯, 각종 버킷 리스트가 유행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선택했다고 믿는 욕망들조차, 헤겔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결과일 수 있다. 물론 이 연재의 목적은 ‘모조 욕망’을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삶의 부조리와 죽음의 고독이라는 질문을 너무 쉽게 다른 무언가로 덮어두고 회피한다는 데 있다.
사사키 아타루는 인간의 죽음을 의미화해 온 대표적인 장치로 국가와 종교를 든다. 국가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종교는 이 세계 너머의 영원한 삶에 대한 약속으로 죽음을 설명해 왔다. 그러나 그는 이 두 방식 모두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삶의 무의미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우리의 고유한 삶 전체를 저당 잡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삶의 부조리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사사키 아타루가 제시하는 대안은 예술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은 단순한 유흥이나 감상, 혹은 치유의 수단이 아니다. 그는 예술(art)의 어원—그리스어 techne가 라틴어 ars로 번역된 과정—을 언급하며, 예술을 “자연 내부에서, 때로는 이를 거스르며 살아남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예’, 더 나아가 ‘궁리’”(사사키 아타루, 2013, 166쪽)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예술은 유용성이나 재미의 기준으로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단련해야 할 삶의 기술이다.

이번 연재는 이러한 관점에서 문학을 읽는다. 문학은 인생의 해답을 제공하는 지침서가 아니다. 그러나 문학은 인간이 이 부조리한 삶의 조건을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이야기해 왔는지를 가장 정교하게 보여 주는 형식이다. 특히 고전은 오랜 시간 반복해 읽히며 각 시대 독자들의 질문을 견뎌 온 텍스트들이다. 따라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의미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복잡한 결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연재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권에서 생산된 문학 텍스트들을 겹쳐 읽고자 한다. 이는 비교를 통해 우열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지닌 부조리와 필멸성이라는 동일한 조건에 각 작품이 어떻게 응답해 왔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이는 곧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형식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완전한 답을 찾기보다는, 삶의 부조리를 견디며 웃음으로 통과하는 이야기의 기술을 익히는 것, 그것이 이 연재의 목표다.
이 연재의 첫 텍스트로 『오뒷세이아』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뒷세이아』는 흔히 영웅의 모험담, 기지와 언변으로 시련을 극복한 성공담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야기를 해야 했던 한 인간의 서사이기도 하다. 다음 글에서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살아남는 법을 보여 주는 텍스트, 『오뒷세이아』를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사사키 아타루, 『모두를 위한 철학 입문』, 안천 옮김, 북노마드, 2025.
사사키 아타루, 「우리의 제정신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달라를 요약한 기본 주기 21개」, 『이 치열한 무력을』, 안천 옮김, 자음과 모음, 2013.
<필자 소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예술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대학과 시민대학에서 문학과 예술을 강의한다. 서로 다른 언어권의 성장서사를 여성주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연구와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도망병과 힙스터: 소설로 보는 한국사회 70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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