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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갑자와 12운성

[60갑자와 12운성] 장생, 태어나는 중인 존재— 미완성이 여는 첫걸음 ①

by 북드라망 2026. 3. 30.

장생, 태어나는 중인 존재
— 미완성이 여는 첫걸음 ①

박장금(하심당)


1. 장생, 드러남의 시작

“‘영화 창작과정에서 가장 싫은 순간이 뭐냐?’ 라는 질문을 받고 ‘스탠리 큐브릭’이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그 질문을 해봤대요. 스필버그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차에서 내릴 때”...스필버그 같은 사람도 (촬영 현장에 도착한) 차에서 내리기 싫은 거죠...‘안제이 바이다’라는 감독 인터뷰를 보면 엑스트라 500명이 대기하고 있는 촬영장에 가면서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한 다음, 차에서 내려 토하는 내용이 있어요. 왜 그럴까? 특히나 영화를 잘 찍는다는 분들이. 저도 그래요. “비가 와서 촬영을 안 하면 좋겠다.”, “현상사고가 나서 다 다시 찍었으면 좋겠다. 필름에 빛이 들어가면 좋겠다. 오늘 찍은 거 다 싫다.” 찍기 전엔 무섭고 찍고 나면 엿 같고.” (2015년 봉준호 감독 마스터 클래스, “극복되지 않는 불안과 공포: 영화 창작 과정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강연 녹취록 중에서)


봉준호 감독이 한 강연 내용 중 일부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촬영장에 도착해도 차에서 내리기 싫다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작품을 만든 거장임에도, 촬영을 시작하는 순간이 가장 두렵다는 것. 엑스트라 500명이 기다리는 현장으로 가던 안제이 바이다 감독은 차를 세워달라고 한 뒤 길가에서 토를 했다고 한다. 그 역시 신인이 아니라, 오스카 수상까지 한 거장 중의 거장이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능력도 있고, 많은 작품을 만든 감독조차 시작 앞에서 불안감을 느낄까. 

 

우리는 시작을 두려워한다. 나 역시 그랬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반드시 잘해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결심할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우리는 시작을 과정이 아니라 결과를 바로 내야 하는 것처럼 배워왔다.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따라붙는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겨울과 봄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이 있다. 아직 춥지만 겨울은 아니고, 그렇다고 따뜻하지 않으니 봄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시간. 겉으로는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변화가 이미 시작된 상태. 인월, 입춘이다.  자연은 그 시간을 서두르지 않는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고, 시작부터 열매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명리는 이 시간을 12운성 중 ‘장생’이라 부른다. 장생은 인간의 생의 주기로 보면,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나는 탄생의 순간이다. 아이는 열 달 동안 어머니의 몸 안에서 자란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다. 안개와 같은 시간을 지나며 서서히 형체를 갖추어 간다. 장생 이전은 형성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그리고 장생의 순간, 그 형상은 마침내 세상에 드러난다. 탯줄을 끊고, 자기 폐로 처음 호흡하며, 세상과 직접 만나는 순간. 그 첫 호흡과 함께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 울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나는 이제 여기 있다라는 존재의 알림이다. 이 순간이 바로 장생이다.


삶에서도 이와 같은 순간이 있다. 지금까지 모호했던 것들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아이디어로만 머물러 있던 것들,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어오던 일들, 감각으로만 존재하던 생각들이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무언가가 처음으로 드러나는 순간. 그 시작의 장면, 그것이 장생이다.

 



2. 인간, 장생적 존재
왜 인간의 탄생을 ‘장생(長生)’이라 했을까.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보면 인간은 분명히 특이하다. 사슴은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일어나 걷고, 말은 하루면 달린다. 침팬지도 몇 년이면 독립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10년, 때로는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 지구에서 가장 긴 유년기를 가진 종. 그것이 인간이다. 이것은 결핍일까, 아니면 전략일까. 동물행동학자 코나드 로렌츠(Konrad Lorenz)는 인간의 이 특징을 ‘네오테니(Neoteny)’라 설명한다. 유년기의 특징이 사라지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남아 있는 상태다. 다른 동물은 성장할수록 놀이와 호기심이 줄어든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어른이 되어서도 질문하고, 탐색하고, 배우려 한다. 그래서 로렌츠는 말한다. “호기심이 넘치는 어린이는 성숙한 침팬지의 철저한 동물적 본성과 결별한다.”고. 동물은 태어나면서 완성된 본능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미완성으로 태어나 끊임없이 배우고, 변형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점이 장생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장생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장생이란 오래 산다는 뜻이 아니다. 탄생과 동시에 열리는 가능성의 이름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은 길도 모르고, 힘도 부족하며, 방향도 불분명한 채 세계에 던져진 존재를 ‘영웅’이라 말한다. 영웅은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스승을 만나고, 동료를 만나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 간다. 그렇다. 인간에게 탄생은 시작이지만 누구나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웅이란 인간이 가진 잠재력, 장생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과학에서도 장생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너무 크기 때문에 완전히 성장한 상태로 태어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일종의 ‘조산 상태’로 태어난다. 출생 이후에도 뇌는 계속 발달하고, 신경계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재구성된다. 


우리는 완성된 채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다. 태어난 이후에도 계속 만들어지는 존재다. 삶 전체가 형성의 과정이며, 시작의 연속이다. 계속 만들어지는 가능성과 잠재력, 장생은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다.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미완’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미완은 결핍이 아니라 조건이다. 미성숙은 약점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이유는 미완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안정과 완성만을 추구하는 삶은 어쩌면 자기 존재를 축소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형성 중인 존재이며, 동시에 시작 중인 존재, 장생적 존재다.

 


3. 삶 속에서 계속되는 장생
장생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는 한 번의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상태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때를 떠올려보자. 처음 고전을 펼쳤을 때,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이상하게 끌렸다. 인연을 만날 때도 그랬다. 어떤 관계가 될지 알 수 없고,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설렘과 어색함이 동시에 올라오고, 기대와 함께 부담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는 시작됐다. 


삶의 방향을 바꿀 때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그만두고 공동체에 들어갔을 때, 서툴고 불안정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심당을 시작했을 때도 시작은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빨리 형태를 만들고 싶었고, 확실한 방향을 잡고 싶었고, 무엇이든 결과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안은 더 커졌다. 그 결과, 주변에서 욕을 실컷 먹었다. 그렇게 욕을 배터지게 먹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힘든 것이 당연한데, 나는 그 상태 자체를 문제로 여겼던 것이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왜 이렇게 확신이 없지. 왜 이렇게 서툴지. 이제는 안다. 그 상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불안은 시작의 신호였다는 것을.


장생은 확신 속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확실성과 함께 온다. 그래서 장생은 양가감정이 동시에 흐르는 시간이다. 무언가 될 것 같은 예감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끌림과 동시에 밀어내고 싶은 마음. 기쁨과 함께 올라오는 두려움. 그때가 장생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그 불안을 견디는 대신 조금은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기의 탄생이 완성이 아니듯, 장생은 기다림의 시간이다. 양가감정을 수용하며 그 시간을 아기의 성장을 기다리듯 보호하는 마음으로 통과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시작을 경험한다. 하지만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곧바로 멈춰버린다. 이건 잘 될까. 이 선택은 맞을까. 이 관계는 어디까지 갈까. 완성을 기준으로 삼는 한, 시작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나는 지금 완성의 단계에 있는가, 아니면 시작의 단계에 있는가. 이 질문이 바뀌는 순간, 불안의 의미도 바뀐다. 시작을 인정하면 그 불안은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감정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낼 수 있게 된다. “지금은 결론을 내리는 시간이 아니야. 지금은 시작의 시간을 잘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라고. 

 

ai 생성 이미지

 


4. 운명에 새겨진 장생의 기질
지금까지 우리는 장생을 시간의 흐름으로 살펴보았다. 태어남, 시작, 그리고 반복되는 첫 순간들. 그렇다면 이제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왜 어떤 사람은 시작을 쉽게 하고, 어떤 사람은 시작 자체를 어려워할까.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먼저 움직이고, 누군가는 끝까지 망설이는 걸까.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금세 가까워지고, 누군가는 오래 두고도 거리를 유지하는 걸까. 누군가는 시작에 거침이 없고, 누군가는 완벽히 준비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걸까.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것은 능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명리학은 이를 ‘기질’의 차이로 설명한다. 명리에서 12운성은 인간이란 생명체가 살아가는 방식인 동시에 그 흐름이 운명, 몸과 마음에 어떻게 새겨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타는 존재인 동시에, 특정한 리듬을 몸에 지닌 채 태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시작의 리듬을 강하게 타고나고, 어떤 사람은 축적과 유지의 리듬에 익숙하며, 어떤 사람은 마무리하고 전환하는 데 능하다. 즉, 12운성은 생사를 아우르는 주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에 새겨진 삶의 방식이다. 


장생 역시 두 가지 층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누구나 통과하는 ‘삶의 주기’로서의 장생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기질’로서의 장생이다. 우리는 모두 장생의 시간을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그 장생을 자기 방식으로 살아낸다. 시작이 자연스럽고, 새로운 것에 쉽게 접속하며, 가능성을 향해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장생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제부터는 이 타고난 장생의 기질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1) 시작하는 힘 — 가능성을 향해 움직이는 기질
 장생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막 태어난 아이와 닮아 있다. 아이에게 세상은 전부 처음이다. 빛도, 소리도, 냄새도, 사람의 얼굴도 모두 새롭다. 그래서 아이는 계산하지 않는다. 결과를 따지지 않고, 위험을 미리 상상하지도 않는다. 그저 손을 뻗고, 몸을 움직이며, 호기심으로 세상과 접촉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이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 이들은 주저 없이 움직인다. 이해한 뒤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면서 이해해 간다. 


장생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확실함보다 가능성을 선택한다. 안정보다 아직 열리지 않은 길에 끌리고, 익숙함보다 낯선 것에 반응한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빠르게 적응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쉽게 가까워진다. 누군가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일 수 있지만, 장생에게 중요한 것은 ‘준비’가 아니라 ‘시작’이다. 아이처럼 먼저 접속하고, 경험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이러한 기질은 삶의 초반이나 새로운 국면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면 개념을 빠르게 이해하고, 질문도 깊다. 강의를 들으면 구조를 먼저 파악하고, 책을 읽을 때도 핵심을 정확히 짚어낸다. 주변에서는 말한다. “타고났다.” “감각이 좋다.” 이들은 ‘처음’의 순간에 강하다. 하지만 이것은 타고난 기질의 결과이다. 능력이긴 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는 상태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발휘되는 순발력은 생명이 작동하는 힘이다. 

 


2) 열려 있는 상태 — 보호받고, 배우며, 확장되는 기질
장생은 계속 시도한다. 아이처럼 의도가 단순하고 계산이 없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을 쉽게 일으킨다. 아이가 실수를 반복해도 용서받듯, 미숙해도 이해받는다. “괜찮아.” “다시 해보면 돼.” 이러한 주변의 지지 속에서 장생은 시작을 계속 이어간다. 그래서 이들에게 시작은 두려움보다 즐거움에 가깝다. 의식주가 불안정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누군가 도와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생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모방을 잘하고, 스승을 따르며, 타인을 통해 세계를 익힌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빠르게 감을 잡고, 이해도 빠르다. 그래서 주변의 기대를 받으며 가능성의 싹을 키운다. 그러나 이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시작했다면 언젠가는 끝을 맺어야 하고, 보호받았다면 이제는 누군가를 보호하는 위치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장생의 기질은 마무리에는 관심이 없고, 시작만 하고 싶다. 하나를 마무리하기 전에 다른 것을 시작하고, 하나의 관계를 정리하기 전에 또 다른 관계로 들어간다. 그 결과 책임이 약해지거나 의존적인 상태에 머물 수 있다. 


장생은 끝까지 미완성으로 남는 상태가 아니다. 미완성에서 시작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다. 따라서 장생은 시작의 힘을 넘어 완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사주에서 장생을 찾고 적용하는 법은 다음주 월요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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