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의 깊이, 일상의 넓이
1. 파라오의 저주
긴 겨울 방학이 끝나간다. 우리는 벼르고 별러,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기로 악명 높은 ‘랜드’에 가기로 했다. 새벽밥을 챙겨 먹고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 오늘 도착한 이곳은 바로 ‘롯데’다. 124층 높이로 솟아오른 롯데타워도 반가워라. 타워는 추위를 피해, 방학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자기 힘으로 다 긁어 모았노라 으스대는 것도 같았다.
삼십 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이 서 있었다. 시골에서 왔다지만 어디 기 죽을쏘냐! 기민하게 움직여 땡! 하는 소리에 우르르 맞춰 입장하여 롯데월드 1층에 딱 도착했다. 그런데 어구야! 쏟아지는 인파는 사방으로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향해 달려가는데 도대체 어디로 뛰어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당황해서 언뜻 보인 ‘와일드 윙’이라는 글자를 따라 일단 지하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와일드’라는 단어보다 모험을 더 자세히 표현할 단어가 어디 있겠는가! 지하에 있으니 그 심오함은 또 어떨 것이고? 일등으로 내려갔을 때에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들뜬 마음으로 오프로드 지프카 같은 것에 탑승을 했다. 갑자기 입구가 열리더니 동굴이 만들어졌고, 곧바로 화면을 통해 4D 정글 탐험이 시작되었다. 화면에서 열대 계곡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가끔 물까지 튀기도 했지만 완전히 가상체험이었다. 싱거워서 그 옆에 있는 ‘와일드 벨리’에 들어갔다. 또 4D 요람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참 난감했다. ‘랜드’를 참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단지 서두르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선, 놀이기구의 종류와 난이도 배치에 이르기까지 고루 지도를 보며 숙지를 했어야 했다. 지하에는 유아를 위한 놀이기구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겨우 깨닫고 다시 지상을 향한 계단을 오르면서, 우리는 ‘와일드’라는 단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어리석음도 반성했다.
1층에서는 이미 비명에, 곡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돌아다니는 롤러코스터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 슝 내려오는 기구들을 보니 일단 제일 높은 곳부터 시작해서 내려오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는 또 뛰어서 4층으로 올라갔다. 닥치는 대로 ‘파라오의 저주’라는 기구의 대기줄에 일단 섰다. 그제서야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부터 90분’ 도에 이르는 길은 하나였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파라오의 저주’에서 롯데월드를 시작하는 것이 틀림 없었다. 아이들과 나는 색색이 환하게 장식된 4층 복도에서 60분을 기다리면서 한 걸음씩 기구 앞으로 걸어갔다가, 남은 30분은 고대 이집트의 무덤 속 어두운 복도처럼 캄캄하게 꾸며놓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어찌나 시간이 안 가던지, 정말이지 저주받는 자의 심정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어젯밤은 기대로 잠을 설쳤고, 오늘 아침은 랜드 맛집에 대한 기대로 간식까지 참았다. 그렇게 진이 빠지자 어두운 공간에 대한 짜증이 확 치밀었다. ‘내가 여기를 왜 왔을까?’, ‘롯데는 놀이동산을 왜 이리 답답하게 만들어놓은 거야?’ 기대와 아쉬움, 깨달음과 허무함, 자책과 원망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90분은 과연 파라오의 저주였다.
사실 실제 ‘파라오의 저주’는 대단했다. 흔들거리며 약간 오르락내리락했다. 무엇보다 전체 설정이 괴기한 동굴 풍이어서 재미있었다. 흔들거리며 어둠 속을 통과하다보니 파라오가 왜 화가 났는지 알 것도 같았다. 파라오의 무덤이 있는 여러 동굴에는 금은 보화가 많은데 인간들이 무례하게 그것을 가져가려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대충 생각했다. 어쨌든 환영이 주는 쾌락에 몸을 맡기고 몇 분을 정말 이집트에 있는 것처럼 즐겼다.
‘파라오의 저주’를 나오면서 문득 왜 동굴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롤러코스터 하나를 덩그러니 놓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이렇게 다양하게 어둡고 긴 모험의 동선을 짜고, 그 내부 공간을 깊고 어둡게 각색할 필요가 있었을까? 오후에, 다시 또 한정 없는 시간을 기다려 ‘신밧드의 모험’을 탔다. 역시 신밧드를 만나기 위해서도 일단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환상은 동굴 속에서 더 증폭되는 것일까?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 영화관도 일단 컴컴한 굴 같은 곳에 들어가서 조금 앉아 있어야 감상이 가능하다. 인류 최초의 예술도 동굴 속 흔들거리는 불빛 아래에서 그려졌다. 나는 환영과 동굴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2. 도란도란 동굴 라이프
지난 화에서는 한반도 신석기 주거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늘은 구석기 주거에 대해 공부하자. 구석기 주거의 기본 형태가 동굴이다. 《공주 석장리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구석기 유적지는 석장리처럼 강변의 한데 유적지이거나, 동굴 유적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고고학은 구석기 수렵채집 흔적이 동굴에서 발견되곤 하기에, 구석기 주거 형태도 동굴을 통해 유추한다. 연천 전곡리에서 장난감으로 재현한 주거 모형과 석장리 야외의 재현물로 유추해보면 바위 그늘에 동물의 가죽이나 나뭇가지로 엮은 막 같은 것을 설치해서 머물렀을 가능성도 있다.
한반도 동굴 유적은 평양 근처의 석회암지대와 영월, 단양 등 강원도 남부와 충청북도 동부, 그리고 청주(舊 청원)의 석회암지대에서 나타난다. 동굴의 일반 크기는 강원도 정선의 매둔 동굴을 기준으로 했을 때, 길이가 30m 폭과 높이가 8m 정도 된다고 한다. 나는 매둔 동굴이나 단양의 금굴 등은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사는 곳인 세종 근처의 청주에 있는 청석굴에는 다녀온 적이 있다.
청석굴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한데 유적’과 ‘동굴 유적’ 모두 물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냥 교과서로만 한데 유적과 동굴 유적에 대한 정보를 접했더라면 이 두 장소 모두 물 가까이 있다는 점을 놓쳤을 것이다. 청석굴 앞에는 ‘옥화구곡’이라고 해서 카약과 패들보트를 탈 수 있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매둔 동굴 앞으로는 일년 내내 얼거나 마르지 않는 지장천이 흐른다. 단양 수양개 앞에도 구불구불 남한강이 흐른다. 공주 석장리 앞에는 금강이, 연천 전곡리 앞에는 한탄강이 흐른다. ‘동굴’이라고 해서 산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는데 기본적으로는 강을 끼고 있거나 근처에 안정적인 수원지가 있어야 했다. 구석기도 신석기도 물길 옆에 집을 짓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매둔 동굴처럼 지장천 바로 앞에 딱 붙어 있는 동굴이라면 다른 짐승들의 침입을 확인하고 막기도 쉬웠으리라는 추정도 할 수 있다고 한다(링크)
청석굴을 방문했던 때는 재작년 여름이다. 동굴 근처까지 이르자 안으로부터 시원한 냉기가 나왔다. 겨울이면 온기가 나올 것이다. 입구는 생각보다 컷는데 어른 열 명 정도는 나란히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였다. 선사유적이라 큰 관심을 못 받아서였는지 굴 입구에 ‘구석기 유적’이라는 작은 간판만 있고 내부에는 어떤 조명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덕분에 활짝 열린 입구와 달리 몇 걸음 들어가니까 완전히 깜깜해졌고 굴 바닥이나 벽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예 짐작할 수도 없었다. 아이들도 나도 여기저기 패인 바위 틈이나 튀어나온 돌부리에 넘어지면서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 핸드폰 조명이라도 켤까 했는데, 동굴 안에서는 그 빛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 앞에 가거나 뒤에 오는 다른 분들을 심하게 방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점점 더 좁아지는 탓에 위태로운 일방통행일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도 조명을 키지 않았다.
청석굴을 방문했던 것은 동굴에 사는 일이 도대체 어떤 느낌일지가 궁금해서였다. 내부는 매우 습해서 굴 입구에 불을 피울 수밖에 없겠다 싶었고, 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 있으므로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찾을 만했다. 먼저 들어간 사람이 임자이니 사람만 아니라 동물과도 동굴 자리를 놓고 다툼이 있었을 법하다. 그리고, 입구에 불을 피우면 벌레나 다른 동물들을 쫓을 수 있고 온기도 동굴 안으로 들일 수 있겠지만, 내부를 밝히기는 어려워 해가 뜨면 동굴 사람들은 바로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양양의 오산리나 시흥의 오이도에서는 움집 안에서 토기를 빚거나 실을 꼬는 신석기 주거 재현의 모형이나 그림 등을 볼 수 있는데, 구석기 동굴 안에서는 안정적인 빛을 마련할 수 없으므로 집 안에서 일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구석기에도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살았을까? 부부와 아이로 구성되는 근대적 가족 삼각형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함께 정을 나누고 아이들을 키우는 소규모 집단을 이루며 동굴 생활을 했을 것같다. 덕분에 동굴의 밤은 정답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가득하지 않았을까?
스티븐 미슨은 호모 에렉투스 때부터 직립 가속화의 길을 걸은 호모 종들은 음악성이 풍부한 전일적(holistic) 방식의 의사소통 체계를 발달시켰을 것으로 본다. 분절화된 언어는 아니었지만 함께 먹잇감을 찾고 아이나 노인을 돌보고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기 위한 운율감 있는 음성 언어를 썼을 법하다는 것이다. 스티븐 미슨은 인간의 경우, 직립에 따른 골반의 크기 축소로 인해 미숙한 상태로 태아를 낳게 되고 엄마와 아이 사이의 얼굴 마주침을 통해 사후에 다이내믹한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진화적 압력 때문에 이런 음악 언어의 발달이 자연스러웠으리라고 결론 내린다. 스티븐 미슨만이 아니다. 현대의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언어 사용에는 거의 의문을 품지 않는다.
호모 에렉투스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네안데르탈인 또한 언어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왜냐하면 서로 역할을 분담하는 계획적 집단 사냥과 복잡한 인공물 제작 기술의 전수, 그리고 야영지 모닥불 주변에서 이루어졌을 의사소통은 언어 없이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이스라엘 카르멜산맥에 위치한 케바라 동굴에서 호모 네안데르탈랜시스의 설골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설골은 말하는 능력을 위한 해부학적 전제 조건으로 위의 네안데르탈인 설골이 지금까지 발견된 유일한 예이긴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의 설골은 현생인류의 그것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스페인의 한 동굴 유적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유골의 염기서열을 분석해보니 언어 발달에 중요한 유전자인 FOXP2가 추출되었다(현재 연구 결과 기준). 이 유전자는 현생인류도 갖고 있다(헤르만 파르칭거,『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71쪽).
단양의 금굴이나 청석굴에서는 인골은 나오지 않지만 다양한 종류의 동물뼈가 발견된다. 원래 그 동굴에 살았던 동물로 보기는 어려운데 이 뼈에는 의도적으로 도축한 흔적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구석기 동굴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함께 사냥을 했든 어딘가에서 동물의 사체를 들고 왔든 협동 작업을 했을 것이다. 사실, 사냥의 위험을 공유하고 귀한 먹잇감을 나눌 정도라야 캄캄한 동굴에서 함께 살을 부비며 살 수 있을 것이다.
3. 연결성, 유동성, 복잡성, 침투성
청석굴 체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내가 생각하는 ‘동굴 라이프’의 가장 큰 특징은 깊이감이다. 성격이 소심해서일 수도 있는데, 나는 관광객이 수시로 드나드는 데도 청석굴이 무서웠다. 동굴을 방문한 다른 분들도 끝이 어디냐며 무서워들 하셨는데, 개인차가 있을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자주 들어가보지 못하는 곳이라 두려운 것이 아닐 수 있다. 동굴이라는 장소 자체가 그 안에서 수평 이동을 하든 수직 이동을 하던 의식이 가라앉는 느낌을 주면서 우리를 침착하게 한다. 평소 잘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무거운 깊이감이어서 예상치 못하게 더 당황하게 되는 것 같다. 이처럼 동굴은 일종의 의식적 긴장감이 동반되는 곳이다. 구석기인들은 이런 공간에서 잠을 자며 수다를 떨고 살았다. 그들에게는 이런 깊이감이 일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건축가 구마 겐고는 동굴의 이런 의식적 깊이감을 ‘연결’과 관련짓는다. 동굴에서는 여기가 아니라 저기가 의식되고, 차이 나는 이 둘 사이가 뚫려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구마 겐고는 동굴에서 착안했으나 이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장소를 ‘굴’로 다시 개념화하면서 공동성을 환기시키는 곳이라고까지 말한다.
“굴은 체험하는 장소, 현상학적 존재인 것 이상으로 이곳과 저곳을 연결한다. 굴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굴 저편에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며 굴은 그곳까지 뚫려 있다. 저쪽에 있는 것과 이쪽에 있는 것을 연결하는 것이 굴이다.
굴은 또 좌우를 연결하기도 한다. 왼쪽에 있는 공간과 오른쪽에 있는 공간이 굴을 매개체로 삼아 대화를 시작한다. 그런 식으로 굴은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를 겹겹이 연결한다. 굴은 동굴처럼 닫힌 것이 아니라 공동성을 환기시키는, 밝고 열려 있는 것이다.”(구마 겐고,『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44)
동굴에서 연결성과 공공성을 떠올리는 구마 겐고의 직관은 황당무계하지 않다. 실제로 인류 최초의 예술 즉 최고도의 각성 상태에서 이루어진 여기와 저기, 인간과 동물, 생과 사의 연결 표현이 바로 동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남프랑스의 라스코 동굴이라든가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이라든가 선사의 동굴 벽화를 가득 채우는 것은 수많은 동물들과 반인반수의 형상이다. 선사의 인류학자인 장 클로트는 세계 도처에 분포하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부족들의 암각화를 분석했는데 그는 다양한 동물상들을 비롯한 창조적 정령들로 가득 차있는 이들 암각화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가 바로 종 간의 관계성이다. 예를 들면 중앙아시아에서는 말과 황소, 사슴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고 알타이의 파지리크(사코-스키타이족) 문화에서는 말들을 매장할 때 항상 소의 뿔이나 사슴뿔을 같이 넣는다고 한다. 상이해 보이는 외양과 성격에도 불구하고 어떤 깊은 관련성이 암각화에서는 드러나는 것이다.
둘째는 유동성이다. 북아메리카 남동부, 켄터키 주의 테네시에서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동굴에 칠면조 암각화가 있다고 한다. 천 년 전 미시시피 문화에서는 칠면조가 용감한 전사였는데 친면조의 육수(肉垂; 늘어진 군살)가 그가 살해한 적의 머리 가죽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칠면조는 적의 머리를 벗기는 문화에서 강한 정신력을 상징한다. 장 클로트는 특정한 관념이 동물에게나 인간에게 고루 분유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유동성’이라는 개념을 쓴다.
셋째는 복잡성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수많은 황소들과 사슴, 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단지 그 지역에서 확인되는 동물의 재현이 아니라, 선사인들이 ‘몸집이 큰 육상 동물들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생명의 활기라든가 존재함의 역동성을 말하고자 했다. 사실적 형상에 대한 지시 목적이 아니라 사태의 전방위적 분석과 그것에 기반한 어떤 희망(생명력 가득한 삶에 대한 기도)을 담기 위해 그런 복잡한 기호가 선택되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장 클로트는 유동적이면서도 복잡한 세계에서 펼쳐지는 만물의 상호연결을 강조하면서 침투성이라는 특징을 든다. 그가 말하는 침투성은 모든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세계의 어떤 곳도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물적 인과성으로, 인연의 연관성으로 다 연결되기에 그렇다. 장 클로트는 이렇게 선사 의식의 특징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는 암각화를 보면서 인류에게 동굴이란 단지 지질학적 장소만은 아니라고 결론 내린다. 동굴은 ‘최초의 장소’이다. 내세로 열리기 때문이다. 내세란 생사의 저편이며 존재의 모든 숨이 불어져 나오는 곳이다. 자기가 지은 집이 아니라 어딘가 누가 쓰다가 버리고 갔을 법한 동굴이다. 하지만 모두의 동굴인 구석기의 주거터는 ‘지금, 여기’ 그 너머를 깊이 의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광대한 일상을 선물해주었으리라.
구석기인들이라고 하면 집 지을 능력도 없고 생계에 허덕이느라 여기저기 유랑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낮에 숲에서 동물을 사냥하고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더라도 밤에 동굴 안에 들어와 식구들과 이야기나 노래를 하고, 그 입구에 피운 모닥불로 동굴 내부가 어른거리는 것을 감지하면서 그들은 어떤 깊이감에 푹 빠지곤 했으리라. 그들은 유한한 삶과 무한한 인연을 동시에 생각하면서 낯선 동물의 밤 침입을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히 잠을 청했을 것 같다.
아이들 핑계를 대면서 벼르고 벼른 스트레스를 롯데월드에서 풀 꿈을 꾸었다. 도처의 동굴이 나에게 환영의 쾌락을 선사하겠다면서 유혹했지만 줄이 너무 길어 거의 응대하지도 못했다. 스트레스가 날아가기는 했다. 방학이라 밥 때가 너무 빨리 돌아온다며 짜증도 냈었는데, 학교 안 가도 되니 먹고 싶은 때에 밥뚜껑 열 수 있는 여유가 갑자기 고마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롯데 월드가 생각이 날 것 같다. 어떤 깊이감, 현실 너머의 환영, 그렇게 일상을 초월한 태초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 참고문헌 ※
구마 겐고,『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안그라픽스
장 클로트,『선사예술 이야기』, 열화당
헤르만 파르칭거,『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글항아리
# 구석기 동굴 생활 : https://www.youtube.com/watch?v=xr0f-hNfbv4&t=69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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