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체질을 찾아서
─편집자 k의 우리 아이 체질 분석기
아...안녕하십니까. 『닥터 K의 마음문제 상담소』 담당 편집자 k(닥터 K는 큰 K, 저는 작은 k, 이건 뭐래;;; 죄...죄송합니다)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시겠지만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딸 하나, 아들 하나로 큰애가 딸, 작은애가 아들입니다(금메달!! 호호). 또 아시는 분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시겠지만 이 아이들은 제가 생물학적인 출산 과정을 통해 낳은 아이들이 아니옵고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지요. 제가 양모(養母)라서 그랬을까요? 흑. 사실 『닥터 K…』 편집 초반에는 저희 아이들의 체질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저희 아이들의 체질이 제 머리에 ‘팍’ 꽂히게 된 사건이 생겼습니다.
체질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마에 써 붙이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서 웬만한 내공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체질을 한눈에 척 꿰뚫어볼 수는 없다고 합니다. 특히 체질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하는 것이 ‘표기’(表氣)라는 것인데요. 말 그대로 겉으로 표현되는 기운입니다. 닥터 K, 강용혁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체질 진단 후에 자신의 체질에 대해 반발(?)하는 환자들이 있다고들 하는데요, 예를 들어 나는 활발하고 시원시원 호탕한 성격인데 왜 내가 태양인이 아니냐 하는 식의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표기를 자신의 체질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라고 합니다. 그럼 체질 즉, 본성은 언제 ‘지대로’ 나타나느냐! 바로 위기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 얘기 다들 아실 것이어요. 친구 둘이 길을 가다 곰을 만났는데 한 친구는 재빨리 다른 친구를 버리고 나무로 올라가고, 당황한 나머지 친구는 어쩔 수 없이 죽은 척을 했는데, 곰이 죽은 척하고 있는 친구에게 충고를 하고 갔다지요. 저런 애랑 놀지 말라고. 기억해 두세요. 위기의 순간,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제 새끼들, 저희 집 토끼들(네… 저희 집 애들은 사람이 아니므니다…;;)도 마찬가지더라구요. 저희 아이들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제가 『닥터 K…』를 편집 중이었던 지난 9월 말, 그 중에서도 저희 집이 이사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저희가 이사를 한다는 것은 저희 아이들에게도 환경이 변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지 않도록 저는 이사 일주일 전부터 아이들에게 이제 몇 밤만 자면 이 집 말고 다른 집에 가서 살게 될 거다, 거기 가서도 엄마·아빠랑 재밌게 살자, 고 몇 번이나 말해 주었지요. 하지만 다 소용없었습니다. 새로운 상황이 닥치자 다 지 생긴 대로(본성대로) 행동합디다.
낯가림이 심한 태음토, 봉식
앞발을 접어서 몸 속으로 넣고 최대한 몸을 웅크립니다. 중성화 수술 후 심신이 불편할 때라 사진은 실물보다 훨씬 못 나왔어요;;
큰딸 봉식이(만 3세)는 새 집에 오자 얼음이 되었습니다. 2009년부터 함께한 아이인지라 이사가 처음도 아니었는데 아이는 그대로 얼어버렸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간식을 줘도 거부하며 알만 품었습니다(토끼계 용어입니다. 알 품기 혹은 저금통 자세로 대개 몸이 아프거나 심기가 불편할 때 저런 자세를 취합니다. 쉴 때도 저렇게 있기는 합니다. 사진 참조). 발걸음을 옮길 때에도 직립보행을 하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런 반면 막내아들 미토(만 3세지만 봉식이보단 어려요)는 짐이 도착하지 않아 텅텅 비어 있는 집을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새집 탐사를 5분 만에 마쳤습니다(5분 후 저에게 검거;;). 그렇게 저에게 돈오(頓悟)의 순간이 오더군요. 봉식이는 태음토, 미토는 소양토였던 것입니다.
하나하나 돌이켜 보니 봉식이는 정말 뼛속까지 태음토였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차로 이동할 때면 저는 아이들이 들어 있는 이동장을 무릎에 올려놓은 다음 이동장 문을 열고 손을 뻗어서 아이들에게 쓰다듬을 해주며 가곤 하는데 미토는 이동장 구석에서 편하게 자리 잡고 가는 반면, 새로운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태음토 봉식이는 한참을 방황하다 결국 제 품에 쏙 안겨서 목적지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사를 하던 날에는 도착을 해서도 제 품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애를 먹이기도 했습니다.
독립적인 동물인 토끼는 대개의 경우 주인 품에 안기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데 차를 타고 갈 때만큼은 제 발로 제 품으로 들어오는 봉식이를 보며 그동안 저는 역시 봉식이한텐 나밖에 없구나, 하는 착각을 했더랬는데 그것은 사실 일종의 ‘거처’(居處) 상태였던 것입니다. “새롭고 낯선 것에 겁이 많은 태음인이 오로지 익숙한 것만 붙잡고 있는 심리”(206쪽)였던 것이지요(보…봉식아, 엄마는 그래도 행복하다, 흑). 전에 살던 집에 이사를 왔을 때도 아무리 케이지 문을 열어주어도 3일간이나 밖으로 나오지 않고 버팅겼었지요. 이번 집에 이사를 와서는 앞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낮에는 얼음 상태로 있다가 밤에는 스텀핑(발구르기를 말합니다. 야생 상태의 토끼는 동료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발을 구르는데요. 이 쪼끄만 것들이 발을 굴러봤자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생각보다 정말 우렁찹니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토끼의 경우에는 나 엄청 화났어!! 이런 뜻입니다-_-;;)을 해대는 통에 이사 첫날 새벽에 아랫집에서 쫓아올라올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이렇듯 처음 맞게 되는 상황에서는 한껏 쪼그라붙지만, 태음인이 “마음고생이 많고 오래 걸리는 편이지만, 겁내는 마음을 극복하고 경험을 축적하면 점차 인정받게”(276쪽) 되는 것처럼 태음토 봉식이 역시 사흘 만에 집안을 평정하고 다시 서열 1위가 되었습니다(참고로 저희 집 서열은 봉식이-미토-저의 순입니다;;; 애들 아빠는 방문자 내지는 도우미 정도의 위치라 서열도 없음).
차 안은 아니지만 겁 먹었을 때는 저렇게 착한 표정으로 제 품에 착 앵깁니다. 저는 무조건 “좋아요~!” ㅋㅋ
서열이 정리된 지금도 봉식이는 저렇게 가끔씩 붕가붕가를 하며 자신의 우위를 확인합니다(-_-;;).
태음인의 심리적 특성 중에는 ‘치심’(侈心)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닥터 K께서는 ‘후까시’라고 정의하셨습니다.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센 척, 그리하여 “남들에게 대접부터 받으려는”(277쪽) 마음이 바로 치심인데요, 저희 집 토봉식이에게 이 치심이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사실 미토는 봉식이보다 좀 늦게 저희 집에 왔는데요. 미토를 입양하러 갔던 날 첫인사를 시키기 위해 당연히 봉식이도 데려갔었더랬지요. 보호단체 사무실 책상 위에 둘을 데려다 놓고 “봉식아, 동생이야”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식이는 미토에게 붕가붕가(사…사진을 봐주세요;;)를 시도했습니다(홈그라운드도 아닌데;;). 물론 이 행위는 암컷인 봉식이가 수컷인 미토에게 새끼를 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더, 더구나 봉식이에겐 자궁이, 미토에겐 고환이 없다는…쿨럭), 난 너보다 센 토끼야, 넌 내 밑이야, 그러니까 까불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라는 치심을 온몸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또 토끼들은 서열이 낮은 토끼가 서열이 높은 토끼를 핥아주게 되는데 치심으로 가득한 봉식이는 언제나 미토의 턱 밑으로 자기 머리를 들이밀어 넣거나 미토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넙죽 엎드립니다. 얼핏 보기에는 봉식이가 꽤나 겸손한 듯 보이지만 실은 ‘나를 섬기라’는 무언의 압력입니다. 치심의 극치라고나 할까요ㅋㅋ. 봉식이는 토끼라 괜찮지만, 그리고 다행히 봉식이의 치심이 미토에게 먹혔지만 사람인 우리들에게 치심이 발동하면 어찌될까요? “치심이 강해지면 낯가림이 없어지고 말투가 격해지면서 주변 사람에게 시비를 건다”(42쪽)고 합니다. 그래서 “대접은커녕 상대에게 거부감만 주는 것이 치심”(43쪽)이라고 하니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판단력과 적응력이 甲! 소양토, 미토
이제 소양토, 미토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봉식이에게 동생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던 중 그때 제가 한창 즐겨보던 <남자의 자격>에서 ‘남자, 새생명을 만나다’라는 컨셉으로 멤버들이 유기견과 생활하고, 입양까지 했던 적이 있었는데(여기서 덕구가 국진이 아저씨를 만났지요!), 그때 그 유기견들을 보호하던 단체가 바로 동물자유연대라는 곳이었습니다. TV에선 개들만 나왔지만 혹시 토끼도 있을까 하는 마음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고, 정말 토끼가 딱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미토였어요. 그동안 토끼 카페에서도 여러 입양글을 보았지만 미토처럼 제 눈을 확 잡아 끈 아이는 없었습니다. 바로 코끝의 하얀 점! 정말 봉식이랑 친남매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더랬지요. 암튼 그랬던 미토는 생김새와 달리 봉식이와는 정반대인 소양토였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순간 판단력과 적응력이 좋아 어디에 내놔도 크게 긴장하지”(96쪽) 않았지요. 이사 온 집에서 날개를 단 듯이 온 방을 휘젓고 다녔던 것처럼 처음 저희 집에 온 날에도 자기 영역 안에 응가를 흩어놓으며 영역 표시를 했고(;;;), 밖으로 내보내 달라며 철창을 물어뜯었고, 결국 겁도 없이 봉식이네 집을 방문하기도 했고, 두 다리를 쭉 뻗고 쉬면서도 처음 본 저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적응력 甲, (저를 괜찮은 보호자로 인식한… 하하!) 판단력 甲인 토끼였던 것이지요.
입양 당일 인어 자세(편한 상태에서 나오는;;)를 보여준 소양토 미토입니다. | 아직은 낯선(?) 여자일 저의 손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눈빛, “살아있네~!” |
눈치가 빨라 자기에게 득이 되는 행동이 무엇인가를 빠르게 캐치하는 소양토답게 미토는 자신이 이 집에서 편하게 살려면 봉식이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 자기가 살 길이라는 것을 빠르게 터득합니다. 그리고 외부 시선에 민감한 만큼 그것이 제가 바라는 바(둘 사이에 평화가 오려면 한 놈이 접고 들어가야 하는데 봉식인 절대 지려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제가 알았기에;;)였던 것도 알았던 듯합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봉식이에게 대시를 했지만, 뼛속까지 태음토였던 봉식이는 자신에게 낯선 상황을 발생시킨 미토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그때마다 텃세를 당한 미토는 언제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전 언제나 미토만 피해자인 줄 알았던 그 어느 날이었습니다. 동물병원에 가서 좀처럼 친해지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 하소연하면서 텃세의 여왕 토봉식을 성토하고 있던 그때! “봉식이도 꽤 깊게 물렸네요. 상처가 있어요”라고 수의사샘이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띄게(?) 미토를 공격했던 봉식이와는 달리, 미토는 저의 눈을 피해, 특히 저의 손길이 덜 가는 뒷넓적다리를 공략했던 것이지요. 저한테 공격적인 아이로 보이면 안 되니까요. 좌우간 강한 승부욕을 가진 소양토의 일면도 엿볼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참, 외부 시선에 대한 민감도는 사진을 찍을 때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요. 소양토인 미토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얼짱 각도로) 응시하는 사진이 많고, 봉식이는 제가 뭘 하든 말든 상관 안 한답니다.
자기 세수만 열심히 하는 봉식이와 세수를 할 때도 카메라를 응시하는 미토. |
“엄마, 나 빨리 쓰다듬어줘!! 오늘 하루 힘들었단 말이야!!” 하는 눈빛입니다. 귀를 뒤로 딱 붙이고, 얼굴은 앞으로 궁둥이는 뒤로 한 것이 쓰다듬을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절이 아니에요ㅠㅠ.
그랬던 미토는 서열 정리가 확실히 된 지금 저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제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제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고개를 숙입니다. 쓰다듬으란 뜻입니다. 자기가 하루종일 봉식이 수발하느라 고생했으니 이젠 네가 와서 날 좀 수발하라는 제스처입니다. 또 조금만 자기 비위에 맞지 않아도 저를 깨물거나 스텀핑을 해대던 봉식이와 달리 미토는 제게 언제나 순종적이고 친절했습니다만 이 역시도 서열 정리 후에는 봉식이만큼은 아니어도 저에게 싫다는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판이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지요. 그래도 미토는 무조건 자기만 대접받으려는 봉식이와는 달리 제가 어느 정도 쓰다듬어주면 저의 수고를 치하하며 제 손을 핥아줍니다. 소양토답게 의리(義理)가 있습니다. 태음토인 봉식이는 예의(禮儀)가 깍듯하죠, ‘난 서열 1위고, 넌(저요;) 서열 3위야!’라는…흑(체질별 인의예지[사단]의 관계는 『닥터 K…』 부록 ‘지피지기 체질탐구 ②’를 참고하세요!).
아이들의 체질을 파악하고 아이들과 함께했던 지난 몇 년을 돌아보니, 이제껏 그냥 지나쳤던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 보입니다. 우리 봉식이가 태음토라서, 우리 미토가 소양토라서 그때 그랬겠구나, 그게 스트레스였겠구나, 그렇게 하면 아플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사람들이 가끔 묻습니다. 토끼는 얼마나 사냐고. 저는 20년 산다고 합니다. 정말 20년을 살아서가 아니라 저희 아이들이 그만큼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저는 꼭 저희 아이들을 20년 살게 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이제마 선생의 말씀처럼 “사상의학의 원리를 깨우쳐 가히 온전한 삶”을 살게 하고 싶습니다. 토끼들이랑만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 모두의 ‘온전한 삶’을 위해 체질탐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주~욱!
“엄마, 우리 효도하면서 오래 살게요~”라며 두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그냥 믿어버릴랍니다. 하하! 미토는 눈 뜬 것이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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