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난지생명길에서 만난 숲
쓰레기산이 숲으로?
나의 검색 알고리즘에 매번 뜨는 소식은 걷기에 관련한 정보다. 둘레길 걷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을 자주 검색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로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를 추천하는 기사가 떴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시작하는 길로, 예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바뀐 후 그 공원들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더 추워지기 전에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차일피일 미루며 언젠가는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에서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 라는 책의 서평에서 ‘노을공원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되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다섯 곳의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노을공원에서 나무를 씨앗부터 길러 옮겨 심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걷기 좋은 길이라고 했는데, 쓰레기더미 위에 숲을 만들었다고?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1월 셋째 주 일요일 하늘은 흐렸고 비 예보도 잡혀 있었다. 마음먹은 참에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니 가늘게 보슬비가 흩날렸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역 옆으로 걸어가다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났다. 난(蘭)초와 지(芝)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난지도였던 한강 둔치의 섬이 15년 동안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가, 19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지금의 공원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었다. 월드컵을 열었던 경기장에 옆으로 천변의 산책로에 대형 할인점까지 들어서서 예전을 짐작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코스를 따라 차도를 걸어가다가 하늘공원입구로 접어들었다. 길을 나서기 전에 책을 사서 훑어보고 왔기 때문에, 하늘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의 경사면에 저절로 눈이 갔다. 쓰레기 매립을 끝내고 공사를 시작할 때 침출수나 가스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쓰레기 산 위를 반영구 특수필름으로 덮었다고 한다. 그 위로 꼭대기에는 120센티미터, 경사지에는 50센티미터의 흙을 쌓아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했다. 공사한 후 시간이 지나면서 경사지에 쌓았던 흙들이 빗물 등에 쓸려 내려가면서 썩지 못한 쓰레기들이 그대로 드러난 곳에, 시민모임 사람들이 함께 나무를 심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 2011년이라고 했다.
고맙다, 꾸지나무야
경사로를 오르다보니 나무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고마운 나무 숲’ 이라는 숲 표지목이었다. 책에서 보았던 표지목이라 반가웠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나무 숲 사이로 드문드문 비닐 쓰레기들이 보이기도 했다. 공원의 경사면 중에서도 비닐 쓰레기가 가장 심한 곳에 꾸지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꾸지나무는 가장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는 선구식물로 알려진 아까시나무 조차도 자라지 못하는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나무란다. 그래서 모임의 사람들은 이 나무를 ‘고마운 나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무를 심던 초창기 닥나무를 주문했는데 실제로 공급받은 나무가 꾸지나무였다는 것을 여러해 심고 키운 후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몇 그루 섞여왔던 닥나무는 거의 죽었는데 꾸지나무는 꿋꿋하게 쓰레기더미의 흙에서 뿌리를 내려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사연을 간직한 나무다. 한 겨울이라 여름에 빨갛게 열린다는 열매를 보지는 못했지만, 쓰레기산을 터전으로 삼은 생명력을 떠올리니 표지목 근처에 오래 눈길이 갔다.
공원의 경사면에 자라는 어린 나무들을 살펴보며 걷다보니 하늘공원 정상에 이르렀다. 가을이면 잘 가꾸어진 억새밭에 사람들이 모여 든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억새들은 모두 베어지고 둘러쳐진 밧줄과 버팀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로 난방공사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보였다. 특수 필름으로 덮여 있는 쓰레기산에서 쓰레기가 분해되면서 분출되는 가스를 공원 곳곳에 연결된 난방공사의 가스관을 통해서 재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공원 정상에 서니 한강의 다리들이 보였고, 흐리긴 했지만 북한산과 관악산까지 보여서 시야가 탁 트이는 맛이 있었다.
하늘공원에서 내려오니 노을공원으로 이어졌다. 노을공원시민모임에서 운영하는 나무자람터까지 올라가니, 나무를 가꾸는 묘판이나 여러 도구들이 모여 있는 터가 보였다. 여기서 2011년부터 공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을 시작했나보다. 전체 공원의 절반 가까이의 경사면에 나무를 심고 빗물을 모아 물을 주면서 보살폈던 이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문외한인 내 눈에도 파란색 대형 물통에 써진 글씨나, 한쪽에 세워진 표지목 더미를 보니 시간의 흔적이 느껴졌다. 가늘게 흩뿌리는 비는 여전했지만 텅 빈 장소 주변을 돌아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계절의 분위기를 상상해 보았다.
생명의 씨앗을 싹 틔우는 이야기
노을공원을 둘러보고 내려와 마포난지생명길의 나머지 구간을 걸었다. 노을공원의 경사면을 따라 걸으면서 내내 쓰레기와 함께 묻힌 흙속에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들을 보았다. 십 년을 훨씬 넘는 시간을 이 척박한 곳에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손길을 생각했다. 그 손길을 “이 땅의 생명이 품은 변화의 힘에 운 좋게 동승한 것”(위의 책 207쪽) 이라 여기는 마음도 떠올랐다. 저자가 책에서 거듭 밝혔던 자연의 순리, 공존을 지향하는 자연이 모든 존재를 살리는 방향을 향해 멈춤 없이 변화해가는 그 이치를 체득할 수 있다는 장(場)이 거기 있었다.
쓰레기산을 숲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시작한 후 첫 활동은 1만 그루의 백두산미인송 어린나무 심기였다. 백두산에서 받아온 씨앗으로 키운 나무로 다시 북으로 갈 수 없게 되어 이곳으로 보내진 나무였다. 이 나무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토양이 맞지 않았을 수도 또는 옮겨 심는 과정에서 어린 나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렇게 나무는 살리지 못했지만 심고 가꾸는 내내 드나들던 곳에서 어린나무들을 발견하면서, 이들의 꿈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위해식물이라고 터부시하는 식물들이 먼저 뿌리를 내리고 그것들이 죽어서 분해가 되면서 땅은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러면 또 다른 생명들이 뿌리를 내리는 사이 황무지는 점점 숲이 되어 갔다. 인간들이 위해식물이라고 분류했을 뿐, 자연에게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조율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은 고라니까지 깃들어 사는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우리가 쓰레기를 만들고 버릴 때 그 행위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떠올리는 건 쉽지 않다. 노을 공원에는 그 결과의 일부가 있다. 그 곳에서 자연과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협력하여 함께 살기를 바라는 노력이 이루어낸 숲을 볼 수 있다. 인간이 지나간 곳에 남겨진 폐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을 수 있다. 애나 칭이 『세계 끝의 버섯』에서 송이버섯의 이야기를 찾아 벌목으로 폐허가 된 숲으로 들어갔다면, 우리는 쓰레기산을 감싸고 있는 숲의 이야기를 찾아 노을공원으로 가보자. 공원을 걷다보면, 숲이 전하는 생명의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봄이 오면 함께 가요, 우리^^
글_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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