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하는 마음으로 걷다보니
12월 4일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사방이 컴컴할 때 집을 나섰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기자회견에 지지 방문을 가는 길이었다. 올해 다섯 번째 방문이다. 전장연에서는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권리와 관련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2월에는 경복궁역에서 치러진 삭발식에 참석했었다. 역 승강장안 출근인파가 뒤섞이는 현장에서 삭발하는 장애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내가 둘레길을 걷기 위해 준비하는 첫 단계는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 검색이다.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은 둘레길의 입구까지 지하철과 마을버스 등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공기처럼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투쟁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데다, 그마저도 예산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아 권리가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있자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함이 특권으로 느껴졌다.
이번 기자회견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위한 특별교통수단 예산과 관련 국토교통위원회가 증액한 금액(271억원)을 포함해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아침 8시 혜화역 5-3번 승강장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린지 10여분 만에 교통공사와 경찰 등이 순식간에 에워싸더니 ‘소란행위’를 했다는 명목으로 강제 해산시켰다. 밀지 말라는 외침과 지하철 못 타게 하라는 고성 속에서 사람들의 몸이 뒤엉켰다. 그들의 압박에 밀려 혜화역 바깥으로 나와서야 겨우 기자회견을 진행할 수 있었다. 전장연은 이 요구가 수용된다면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멈추겠다고 선언했다. 다섯 번 지지연대참석 하는 동안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기습적으로 강제로 쫓겨난 경우는 처음이었다. 2021년부터 시작한 투쟁이 3년차가 넘어가고 있는데, 이들의 요구는 여전히 묵살 당하는데 탄압은 더 가혹해졌다.
전장연의 투쟁을 응원하겠다는 생각으로 나섰던 길이 갑자기 막히는 순간 마음 저 밑에서 뭔가 불끈 치고 올라왔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강압적으로 제지당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나? 이 분들은 투쟁 내내 이런 폭력 앞에서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고 있었구나. 대단하시다, 응원한다는 등의 말로는 그 불끈함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도 언제라도 이런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는 어떤 두려움이었다. 동시에 함께 이 폭력에 맞서야겠다는 밀도 높은 연대감이기도 했다.
버틀러는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에서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이란 언제나 사회적 삶으로서, 각자의 관점과 처지를 바탕으로 한 일인칭적 성질을 넘어서는 보다 큰 사회·경제 인프라의 세계”와 매개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혼자 집을 나서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둘레길의 초입에 도착하면 이 길은 어떤 모습을 내게 보여줄지 설레기도 한다. 이정표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헤매기도 하지만, 목표했던 지점까지 다 걷고 나면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면 뭐든지 혼자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는다. 하지만 이것이 교통수단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한 결과라는 측면으로 보면 혼자서 해냈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사회적 인프라를 활용하여 이동할 권리를 누렸을 때야 얻을 수 있기도 한 성취감이다. 이러한 권리가 차별적으로 할당되어 있다는 사실을 온 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전장연의 투쟁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가다 보면 온 세상 사람들 다 만날 수 있겠다는 동요 가사가 있다. 집 앞의 탄천을 따라 걷다가 더 멀리 걸어 나가다 보니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길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에 감동하는 순간도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수다 떠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리고 연대하는 마음으로 나선 길에서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을 만났다. 그들이 겪고 있는 차별이 나와 동일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강압적으로 드러나는 순간 나는 그 차별에 연루되었다. 그리고 저항하는 그들이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도 더 절실하게 와 닿았다. 자꾸자꾸 걸어 가다보니 연결되는 온 세상은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네 번째 연대 방문차 국회의사당 역으로 갔던 8월의 어느 날, 나는 마이크를 잡고 연대발언을 했다. 어색하고 쑥스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전장연에서 배포했던 구호를 외쳤다. 그 구호가 온 세상에 뿌려져 차별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시 외쳐본다.
장애인에게 권리를!
차별은, 이제 그만!
동정은, 집어 치워!
혐오는, 쓰레기통에!
이윤보다, 생명을!
글_기린(문탁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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