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서는 에코실험실 파지사유의 넥스트 제네레이션
김고은(문탁네트워크)
7월에 인터뷰한 달팽이 쌤과 뚜버기 쌤이 파지사유의 ‘올드’한 세대라면 이번 달에 인터뷰한 참 쌤과 토토로 쌤은 파지사유의 ‘영’한 세대다. 참 쌤과 토토로 쌤이 모두 70년대생이니 영하다고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앞세대에 비하면 어리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연차도 짧으니 분명 영은 맞다.
두 분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지 오래 되진 않았지만, 내가 이곳에서 두 분을 만난 지는 꽤 오래되었다. 나와 참 쌤은 문탁네트워크에서 열린 초등한문서당의 선생님과 학부모로 먼저 만났다. <논어> 문장을 술술 암송하던 서인이는 그야말로 서당의 인재였는데다 워낙 서당에 오래 다녔던 터라 마지막엔 서인이 만을 위한 졸업식과 사진집을 만들어 주기도 했었다. 토토로 쌤과는 초반에 같은 세미나를 들었다. 내가 대학교를 자퇴하고 문탁네트워크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던 약 10년 전, 100일 수행 출범식에 참석해서 축하해 주시기도 하셨다.
그 뒤로도 두 분은 각자의 맥락에서 이 네트워크와 관계 서사를 쌓으셨다. 그리고 문탁네트워크가 문탁네트워크, 파지사유, 인문약방으로 분화하던 2021년부터는 파지사유에 적을 두셨다. 에코실험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셨고, 토토로 쌤은 ‘공생자 행성’을 운영하기도 하셨다. 공생자 행성은 지구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갈 좋은 방법을 강구하고 스스로 도전과제를 정해 실천하는 프로젝트다. 여러 사람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조직해서 꾸려내는 쉽지 않은 일을 특유의 성실함으로 멋지게 해내셨다. 참 쌤은 그림작가이기도 하셔서, 올해부터 ‘꼴랩’이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계신다. 꼴랩은 생각과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실험소다. 서로의 작업을 자세히 살피고 응원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돌보기도 한다.
두 분 선생님을 인터뷰하는 날, 파지사유에 계시던 선생님들이 인터뷰한다는 소식을 듣곤 다들 입을 모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쁜 사람들을 인터뷰하네~” 이 지면에는 일명 ‘파지사유의 예쁜 사람들’, 참 쌤과 토토로 쌤의 ‘영’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제는 공부해야지, 이제는 활동해야지
고은 두 분은 언제부터 파지사유에서 활동한다고 느끼셨나요?
토토로 2021년 공생자행성 할 때는 발만 살짝 담갔다고 할 수 있고, 정식으로 시작한 건 작년이에요. 그런데 저는 참 쌤 없었으면 안 했어요. 이건 사실이에요. 2021년 공생자 행성을 일 년 동안 순조롭게 진행했고 그걸 마무리한 걸로 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확대회의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저에게 무슨 일을 더 엮으려고 그러셨겠죠. 전 부담스러워서 딱히 뭘 하고 싶지 않았고요. 그래서 마음속으로 기분 상하지 않게,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다 시뮬레이션하고 갔어요. 가서도 이렇게 말했고요. “맡을 만한 역할이 없는 것 같아요.”, “재주도 없고요”
참 어? (고개를 갸웃하며) 근데 공생자 행성도 잘[하셨는데]….
토토로 그때도 이렇게 말했어요.(웃음) 참쌤이 “그게 재주죠~”하는 거예요.
참 사람이 참 안 변해.(웃음)
고은 참쌤이 보시기에 토토로쌤에게 어떤 재주가 있는 것 같으셨어요?
참 제가 2021년에 딱 다시 공부하러 온 거거든요. 그때 선생님이랑 에코 프로젝트를 처음 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보면 끼어 있는 세대기도 하거든요. 새로 오신 분 중에는 80년대생도 있고 더 젊은 분도 계세요. 저는 어떤 때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못 참고 말이 확 나갈 때도 있는데, 토토로쌤은 말씀을 되게 예쁘게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느끼기에 전에 왔을 때[문탁네트워크와 파지사유가 분화되기 전]랑 분위기가 좀 달랐어요. 더 부드럽고 유연해졌다고 생각했어요. 좀 다른 생각도 말해볼 수 있겠다, 싶었죠. 토토로 쌤을 보면서 이런 분이 여기도 계시네, 했어요.
고은 참쌤은 언제 파지사유에 들어오셨어요?
참 원래 서인이 때문에 왔다 갔다 하고, 그전에 마녀의 방 세미나(입문 세미나) 하고, 중간에는 못 나왔었어요. 근데 기후 위기에 관심이 엄청 많았던 때, 마침 여기서 에코 프로젝트를 한다는 걸 본 거예요. 이제는 공부해야겠다, 싶었어요.
고은 여기서 활동하고 있다고 느끼신 건 언제였나요?
참 그리고 그다음 해에 자누리손작업장 활동을 같이했어요. 어떻게 보면 화장품이니까 화학 쪽이잖아요. 못할 것 같았어요. 계량이 나랑 안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의외로 너무 재밌는 거예요. 뭐가 딱딱 떨어지고, 결과물도 딱 돼서 나오잖아요. 자누리손작업장에서 비누 만들고 있었을 때, 달팽이 쌤이 “토토로 쌤이랑 뭔가 꾸려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토토로 그렇구나. 몰랐어. 내가 파지사유에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때는 언제냐면요. 홈페이지에 왜 이렇게 내 글이 많아.(웃음) 많이 몰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내가 너무 달리고 있구나 느껴져요. 그럼 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해요.(웃음) 웃자고 하는 소리예요. 지금은 단위도 홈페이지도 세 개로 나뉘었잖아요. 활동하는 사람들도 쪼개졌으니까 할당되는 양이 좀 많은 편이예요. 어떤 날에는 파지사유 홈페이지에 내 글이 서너 개씩 올라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세미나 후기, 공생자 행성 일지, 풍경 사진, 이렇게. 그럴 때 뭔가 아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여요. 고수처럼 밑에서 조용하면서도 치밀하게 활동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런 마음도 있고, 또 다들 바빠서 못 쓰는데 시간 많은 내가 뭐라고 써서 올리는 게 낫지, 하는 마음도 있어요.
참 댓글 쓰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우리 그런 거 다 알 수 있잖아요. 마음 써서 댓글을 다시는 것 같더라고요. 멋지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함께해야 할 수 있는 일
고은 토토로쌤, 활동을 해보니 어떠셨어요?
토토로 지금까지는 혼자 끌고 가는 건 아니고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의 책임이에요. 내가 뭘 잘 못했을 때 어그러질 거라는 부담감은 덜해요. 그래서 생각보다는 어깨가 그렇게 무겁지 않아요. 근데 솔직히 일은 많아요. 숨차다고 느낄 때도 있긴 해요.
참 일을 하나씩 클리어하는 느낌? 근데 열심히 하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내가 못 하거나 안 한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고 안 하잖아요. 토토로 쌤이 그만큼 애정이 많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어요.(웃음)
토토로 아니야, 나는 좀 건조하고 참 쌤이 에너자이저에요. 예를 들어 플로깅 나갈 사람을 모집하면 저는 분위기를 살피다가 정 사람이 없으면 나가는 편이에요. 근데 참 쌤은 항상 먼저 손을 들어요. 진짜 신기해. 참쌤은 외부 활동을 거의 다 나가잖아요.
참 시끄러운 스타일 아니에요?(웃음) 저는 에코 프로젝트 처음 시작할 때도 생존 문제 때문에 들어오게 됐다고 그랬거든요. 앞으로 되게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살고 너도 살려고요. 살기 위해서는 뭔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것 같아요. 되게 단순한데, 내가 노력 안 하면 나중에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 후회할 것 같기도 하고. 저도 나서서 하는 걸 싫어하고 책임지는 걸 무서워해요. 근데 이건 나선다는 거라기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은데, 같이 있으면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손을 드는 것 같아요. 이때다,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근데 나가면 몸은 힘든데 좀 재밌지 않아요?
토토로 나는 외부활동을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나갈 때가 많아요. 특히 플로깅 같은 거 할 때는 화가 나요. 쓰레기 더미를 발견하고 노다지를 찾은 것처럼 기뻐하는 게 화가 나.(웃음) “누가 버린 거야”, “버려도 이런 데다 버려”
고은 에코프로젝트에서 하는 공부는 어떠세요?
참 재밌어요. 재미없으면 못 해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재밌고, 작업에도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림으로 녹여내려고 하죠. 그리고 공부하면서 사람한테도 영향을 받아요. 처음엔 ‘나랑 진짜 다르네’ 싶은데, 그걸 계속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묵혀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공부하면서 그 사람이 이해되기도 하고요.
토토로 저는 집중력이 엄청 약해요. 그렇다고 공부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어떤 때는 활동하는 것보다 공부하는 게 더 재밌어요. 옛날에 봤을 때는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걸 어느 날 보면 이해가 될 때가 있어요. 그 순간 굉장한 희열이 느껴지죠. ‘이거를 내가 이제 이해하네.’ 그리고 어려운 텍스트를 같이 읽을 때 그 어려운 내용을 꿰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누리 쌤이 얘기해주실 때 혼란스러운 게 싹 정리되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어요. 그런 게 정말 기뻐요.
고은 공부와 활동이 서로 연결된다고 느껴지실 때도 있으신가요?
토토로 되게 많죠! 공부 기반이 없었으면 억지로 끌려와 있는 느낌밖에 안 들었을걸요. 활동하면서도 ‘아~ 내가 이걸 왜 해야 돼?’ 그랬겠죠. 활동을 어떻게 사람만 보고 할 수가 있겠어요. 공부의 힘으로도 합니다.(웃음)
솔선수범하는 앞 세대, 책임감을 느끼는 뒷 세대
고은 아까 참 쌤께서 끼어있는 세대라고 말해주셨잖아요. 토토로 쌤도 격하게 동의하셨고요.(웃음) 그 얘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토토로 파지사유 활동가들 중에 60년대생을 맡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일을 너무 솔선수범해요.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어. ‘이거 그냥 하지 말자구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는데, 바쁘신 양반들이 되게 열심히 하면서 같이 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니까 ‘아니요~ 싫어요’라는 말을 못 해요. 60년대생 언니들이 열심히 안 하시면서 뭔가를 시키시면 “왜 그래야 돼요?”라고 딴지를 걸어 볼 텐데, 열심히 하시면서 먹을 거 사주시면서 하자고 하니까 따라 하게 돼요.
참 맞아요. 그게 되게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어디 가서 어린 대접을 받겠어요. 저는 늦되게 살았거든요. 대학도 바로 안 갔고, 졸업도 바로 안 했고, 같이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다 나보다 더 어렸어요. 어딜 가나 왕언니였거든요. 갑자기 마음도 어려지네.(웃음)
토토로 나도 이제 40대 후반인데 아직도 젊은이 대접을 받는 게 너무 신기해. 다들 나이가 들어가니까요. 60년대생 분들 보면 점점 그런 게 느껴져요. 더 노련해지긴 하지만, 체력이 달리시는 게 느껴져요. 주방일도 좀 덜 하셔야 될 것 같고. 젊은 우리가 더 많은 일을 해야 되는구나, 차세대 실무자가 돼야 되는 구나. 짐을 좀 덜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려면 역량을 키워야 되잖아요. 근데 저는 아직도 막내 느낌으로 일을 하고 있어.
참 이미 그런 마음이신 거 아니에요? 멋있다. 이미 어느 정도 실무자죠.
토토로 여길 다 운영해야 되잖아요. 돈도 벌어야 되고, 세미나도 기획해야 되고. 그걸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저분들에게 언제까지 다 해달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가끔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참 저번에 토토로 쌤이랑 같이 버스 정류장 가면서 이야기 나눴는데 ‘이 사람은 진짜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토토로 제일 큰 계기는 A 쌤이 많이 아픈 걸 보면서였어요. 이런 일이 이렇게 순식간에 닥칠 수도 있구나. 원래 일을 되게 많이 했잖아요. 누가 아프면 그 일을 누군가가 메꿔야 되는데, 그거를 내가 할 수 있을까. 60년대생 활동가 쌤들이랑 우리 70년대생 활동가들 나이 차가 6~7년 정도인데, 7년 뒤에 우리들이 그분들만큼 그만큼 주도적으로 책임감 있게 묵직한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있어요.
참 7년 뒤에는 토토로 쌤 방식대로 하면 되죠. 지금은 60년대생 선생님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 같은데요. 할 수 있을 걸 하시고 할 수 없는 건 안 하시던데,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 세상도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요.
토토로 내가 소극적인 자세를 좀 탈피할 수 있을까, 라는 마음도 있어요.
참 근데 선생님이 실제로 회의나 어떤 걸 할 때는 소극적이지 않으세요. 항상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얘기를 꺼내시고, 다른 방식을 제안하시는 게 토토로 쌤이에요.
누군가는 앞서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더 우월하다고 혹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오래도록 그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낭송 사자소학>을 풀어 읽으며 ‘부창부수夫唱婦隨’ 문장을 보고 화를 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주역>에 따르면 서로 대치되면서 조화를 이루는 한 쌍의 관계는 의존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음과 양은, 수렴과 발산은, 뒤서감과 앞서감은 서로가 서로에 의지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나는 파지사유 ‘올드’ 선생님들과 ‘영’ 선생님들을 연달아 인터뷰하며 한 쌍이 어떤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지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앞서서 길을 내려면 뒤서서 그 길을 함께 걷는 이들이 필요하고, 뒤서기 위해서는 앞선 자가 있어야 한다. 올드 선생님들이 벌이는 일들은 영 선생님들이 가진 새로운 감각으로 생기를 얻는다. 영 선생님들은 올드 선생님들의 꼬드김 덕분에 혼자는 할 수 없다고 느꼈던 공부와 활동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지금의 올드 선생님들에게도 ‘영’하던 시절이 있었다. 올드 선생님들이 그 당시의 더 ‘올드’하던 선생님들을 걱정하고, 그들만큼 해내지 못할까 부담감을 느끼시던 시기를 나는 기억한다. 지금의 영 선생님들 역시 언젠가, 어디선가 올드 선생님들이 되실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 중요하고 멋진 일은 영 선생님들이 가진 마음일지도 모른다. 본래 부담스러운 일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기꺼이 부담감을 짊어지는 마음, 너무 바빠서 버겁다고 말하면서 올드 선생님들을 걱정해 일거리를 하나라도 덜어주는 마음 말이다.
'공동체, 지금 만나러 갑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동체지금만나러갑니다] <감이당> : 무식하다고 혼나는 게, 실수가 들통나는 게 좋은 사람들 (0) | 2023.12.15 |
---|---|
[공동체지금만나러갑니다] 이동하는 신체를 가진 청년, 경덕 (0) | 2023.11.20 |
[공동체, 지금만나러갑니다] <인문공간 세종>: 끝도 없는 숙제의 길 위의 세 사람 (0) | 2023.10.23 |
[공동체, 지금만나러갑니다] 공부하고 실험하는 에코실험실 파지사유 (0) | 2023.07.17 |
[공동체, 지금만나러갑니다] <강감찬 청년고전학교>: 긴 시간 끝에 이곳에 도착한 청년 셋 (0) | 2023.06.19 |
[공동체, 지금만나러갑니다] 취업을 포기한 문탁네트워크의 세 청년 (1) | 2023.05.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