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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발 영화이야기

[청량리발영화이야기]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by 북드라망 2023. 5. 16.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오발탄>(1961) | 감독 : 유현목 , 주연 : 김진규, 최무룡 | 107분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영화 <오발탄>(1961)은 어느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암울함이 지속됐던 당시의 사회모습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작이다. 영화 <오발탄>이 한국 고전영화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건, 동명의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유현목 감독의 진지하고 풍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실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영상미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허나 대부분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액션영화 등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은 촬영기법이나 내용, 장르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제작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는 이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시 조명감독이었던 김성춘이 사비를 털어 겨우겨우 필름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초, 당시 전후 한국은 그야말로 폐허였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얼마 안 되어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서민들의 삶은 직격탄을 맞았다. 내가 살던 고향은 더 이상 '꽃 피는 산골'이 아니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넋 놓고 있었고, 기반시설이 전부 무너져 일자리도 없었다. 월남한 실향민과 집 없는 피난민이 뒤엉켜 값싼 노동력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던 시절이었다.

시내에는 ‘짚차’가 돌아다니고 회계사를 둘 정도로 재산관리를 해야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판자로 지붕을 얹고 거적으로 대문을 대신한 집에 사는 이들이 도시 속에 공존했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에는 가난이 부끄럽지 않았으나, 커져가는 상대적 빈곤 속에 돈 없는 설움은 극에 달했다. 그 시절, 가난에서 자국민을 구한 이가 ‘박정희’라 평가받으니, 5.16 군사쿠데타가 누군가에게는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가자, 어떻게?
어두운 골목길 ‘스탠드빠 서라벌’의 간판 아래로 오늘도 군복 입은 사내들이 휘청거린다. 그들은 ‘육이오 때 쓰고 남은 잔재’인 상이군인들이다. 영호(최무룡)의 옆구리에는 총상이 남아있고, 그의 친구 경식은 절름발이가 되었다. 정부는 그들을 국가영웅으로 칭송했으나, 현실은 전쟁에서 손상을 입은 피해자, 장애인이라는 인식과 차별이 존재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곳에서, 더군다나 불구가 된 그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그저 술에 취해 지난 군가나 부를 따름이다.

비틀거리는 영호는 집 앞에서 그의 형, 철호(김진규)와 마주친다. 충치를 뽑으러 갈 여유도, 돈도 없이 언제나 일그러진 얼굴로 ‘남의 재산이나 계산해주는 일’을 하는 철호. 영호는 그의 형이 못마땅하지만, 철호의 손에 딸린 식구가 자신을 포함해 여섯이다. 실성한 어머니, 만삭인 아내, 영호, 여동생 명숙, 막내 동생 민호와 딸아이. 그러니 꼬질꼬질한 잠자리에 몸을 구겨 넣는 수밖에 영호도 달리 방법이 없다.

제대 후 안 해 본 게 없는 영호, 그러나 곰은 커녕 아직 ‘토끼 한 마리’도 손에 넣질 못했다. 영호는 괜히 은행 앞을 서성거린다. 그는 “허수아비를 비웃는 까마귀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즈음, 우연히 만난 간호장교 오중위의 집에서 권총 한 자루를 발견한다.

 

우물물로 타는 목을 축이던 영호(좌측, 최무룡)는 형 철호(우측, 김진규)와 마주한다. 영호는 형을 존경하지만, 그의 삶을 따라하고 싶진 않다.



가자, 누구와?
한편, 영호의 친구인 경식은 동생 명숙(서애자)과는 연인 사이였다. 경식 비록 불구의 몸이 되었지만, 명숙은 그에게 결혼을 재촉한다.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고 벌써 2년이 지났으나, 경식은 명숙을 향해 제대로 걷질 못한다. 그를 향한 사랑의 미련도 있겠으나, 명숙은 서둘러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미칠 수 있어요?”

그러나 경식은 불구가 된 자신을 용납할 수도, 기다리는 그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건 명숙에 대한 사랑보다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키운 ‘자폐’에 가까웠다. 전쟁으로 불구가 된 건 그의 신체뿐만이 아니었다. 명숙은 결국 스스로 돈을 벌어서 이 집에서 나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당시 그녀가 가진 유일한 밑천은 자신의 몸, 뿐이었다.

어느 날, 철호가 일하는 계리사(회계사) 사무실로 전화가 한통 온다. 그의 누이동생 명숙이 서울중부경찰서에 있단다. 미군을 상대로 매춘을 하던 명숙은 경찰서에서 그의 오빠 철호와 마주한다. 그러나 무능력한 철호는 동생에게도 특별히 해 줄 말이 없다. 훈방조치 된 명숙은 철호와 함께 경찰서를 나와 서로 멀찍이 떨어진 채로 길을 걷는다.

카메라는 철호를 앞에 두고 길 건너편의 명숙을 함께 보여주며 그들의 걷는 속도에 맞춰 따라 움직인다(트래킹샷). 이도저도 아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을 대사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 연기하는 김진규 배우와 유현목 감독의 절제된 연출력 역시 돋보이는 이 장면은 한국고전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철호에겐 자신을 희생해 돈을 버는 명숙에게도, 사회구조 속의 희생양이 된 영호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여유가 없다.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무너진 그런 세상에서 철호가 지켜야한다던 ‘양심과 윤리’란 무슨 소용이냐고 영호는 묻는다. 그렇다. 그건 어쩌면 공동체의 ‘신뢰’ 안에서만 작동하는 원리인지도 모른다.

 

“형님 어금니만 해도 그래요. 푹푹 쑤시고 아픈 걸 견딘다고 절약이 되나요? 지긋지긋하게 살아야 하니까 문제죠. 왜 우리라고 좀 더 넓은 테두리까지 못 나가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왜 우리만 이 좁은 양심의 울타리 안에서 숨이 막혀야 해요?”


경찰서를 나와 명숙(좌측, 서애자)과 철호는 나란히, 그러나 따로 멀찍이 떨어져서 걷는다. 카메라는 그 둘을 말없이 따라간다.



가자, 어디로?
영호의 질문을 “마음 한 구석이 비틀려서 하는 억지”같은 말이라고 철호는 외면한다. 그러나 어차피 현실은 오중위와 함께 투신자살한 시인의 말마따나 “열편의 시마저 채워 줄” 여지조차 없는 메마른 세상이 아닌가. 오히려 철호야말로 ‘양심과 윤리’라는 이름으로 피폐하고 암울한 현실을 외면하려는 건 아닐까?

영호의 은행강도는 동료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붙잡힌 동생을 만나러 철호는 또다시 경찰서로 찾아간다. 그러나 영호 앞에서 역시 아무것도 해줄게 없는 철호는 얼굴만 바라보다 말없이 뒤돌아 나간다. 설상가상으로 만삭인 아내는 둘째를 낳다가 그만 죽게 된다. 허망하게 죽은 아내도 차마 볼 수가 없는 그는 영안실을 뒤로하고 비틀거리며 병원 밖으로 나온다.

먹고 살기 위해 여동생은 ‘양공주’가 되고, 또 다른 동생은 ‘은행강도’가 되어 버린 세상. 더는 못 참겠다. 차라리 나에게 더 많은 고통을 다오!! 철호는 지긋지긋한 충치 두 개를 뽑아내고 과다출혈로 택시 안에서 정신을 잃는다. 어디로 가냐는 택시 기사의 물음에 그의 어머니처럼 ‘가자’는 말만 되풀이 한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철호의 죽은 아내가 낳은 둘째아이 앞에서 명숙은 다시 일어서길, 다시 웃으며 살길 다짐하지만 어쩐지 되풀이되는 영호의 거짓말 같아 씁쓸해진다. 저들의 형편이 절대로 풀리지 않을 답답함에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딘지 가긴 가야 하는데...” 

1960~70년대 기록필름들은 많다. 너무나 생경한 모습에 그저 멀리 떨어져 ‘관객’이 될 뿐이다. <오발탄>은 그 판자지붕을 걷어내고 그 안에 ‘리얼한 삶’의 모습을 담았다. 그러자 카메라가 안으로 훅 밀고 들어온다. 그래서 송철호 가족의 삶을 떨어져서 바라만 보긴 어렵다. 감각의 확장과 생각의 유연함을 만들어내는, ‘고전’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에게 그런 ‘상상력’을 제공해 준다. 영화 <오발탄>도 그러하다.

 

 

글_청량리(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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