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함’이 만드는 세계
여러분이 알다시피, 말은 자신이 발화하는 것을 변화시킵니다. 덕분에 우리는 언뜻 수수께기처럼 보이는 기호와 의미의 더불어 태어남/인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연애 감정이 오가는 상황 혹은 혁명으로 지칭하는 말보다 앞서서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두 경우에는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말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도 같은 사람, 그 일의 창시자와도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사랑의 심판대 앞에서든 혁명진압 세력 앞에서든 자기가 만들어낸 그대로 상황을 책임지고 자기가 입 밖에 낸 말의 대가를 치를 자격이 있습니다. 그 말은 말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 이세진 옮김, 북노마드, 2015, 91쪽
‘말’에는 마법적인 힘이 있어서, 어떤 상황이나, 사물, 사람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것은 어느 정도 그 ‘말’이 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거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거나 같은 형태의 속담들은 사람들이 ‘말’의 힘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뿐이 아니다. 잘 정련된 말들로 조합된 시詩나, 잘 짜여진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들은 그것들을 읽고, 말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호명한다. 이를테면, 「소나기」 속 소년과 소녀의 안타까운 이야기, 「님의 침묵」의 ‘침묵’은 우리를 어떤 역사적 계열 속에 위치한 집단에 속한 사람, ‘한국인’으로 호명한다. 속담과 시와 소설의 말들이 그렇게 모종의 정체성을 우리에게 부여한다면, 우리가 일상어로 구사하는 말들은 우리 자신을 매번 재생산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자신이 겪는 어떤 일들에 대해 ‘짜증나’, ‘싫어’, ‘돌아버리겠네’라고 자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매우 쉽게 ‘짜증나고, 싫고, 돌아버린’ 사람이 된다. 말이 우리 자신, 전체를 만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의 지분이 결코 적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철학’을 한다, 또는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왜 하는 것일까? 여기에도 여러 이유들이 있을 수 있지만, ‘말을 배운다’는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좋다’와 ‘싫다’만 알고 있을 때는, 어떤 것에 대해 ‘좋음’과 ‘싫음’으로 밖에 ‘반응’할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좋음’과 ‘싫음’ 사이에는 무한에 가까운 스펙트럼이 펼쳐져 있다. 알고 있는 말이 많을수록 우리는 덜 ‘반응’하고 더 ‘생각’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 무수한 틈새마다 ‘좋음’과 ‘싫음’을 넘어서는 다른 가능성들이 있다. ‘말’은 그 ‘가능성’을 현실화 한다. 이 ‘현실화’가 쉼 없이 읽고, 쓰고, 공부하는 사람이 바라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부’, 책 제목을 따라서 보자면 ‘철학함’이란 단순히 어떤 ‘내용’, ‘지식’, ‘앎’을 익히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배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말’이 늘 어떤 ‘소통’을 전제한다면, 그것은 ‘나’의 재생산을 넘어선다.
“살아 있는 말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사전에 만들어진 담론의 암송과 다르지요. 그것은 대화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험입니다. 대화 상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에, 대화상대로 인하여 우리 자신이 생각했던 바, 우리 자신의 메시지 혹은 우리가 어떠어떠하다고 믿었던 바에 대해서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질문들에 초점을 맞추는 경험이에요. 일종의 게임, 다시 말해 기호들의 교환과 순환에 대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 같은 책, 94쪽.
요컨대 ‘말’은 말하는 사람의 세계를 바꾸고, 나아가 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오로지 ‘반응’만을 강요하는 한, 새로운 말을 모으지 않을 수 없고,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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