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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동물병원에 갑니다

[지금동물병원에갑니다] 수의사, 한 마리 호모 사피엔스가 되다(上)

by 북드라망 2022. 2. 4.
남산강학원에서 공부하는 이제 갓 수의사가 된 박소담의 "지금 동물병원에 갑니다" 연재가 시작됩니다. 동물 병원에서 일하며 마주하는 질문들을 풀어낸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수의사, 한 마리 호모 사피엔스가 되다(上)


의사가 되지 못한 수의사

나는 수의사다. 일을 시작한 지는 반년도 안 됐다.

내가 수의사가 된 이유는 7년 전 지망 대학을 고르는 과정에서 잘못된 선택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왕이면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성적이 모자랐다. 그럼 뭐하지, 하고 고민하던 참에 친척들이 말해주길, 수의사야말로 요새 떠오르는 전문직이라지. 물론 거기엔 열댓 마리의 개‧고양이들을 싸게 맡기겠다는 친척들의 큰 계획이 있긴 했다. 그들의 염원이 통했는지 어쨌는지 나는 수의대에 들어갔고 결국 수의사가 되었다. 그것도 동물병원에서 개‧고양이를 다루는 소동물 수의사가 되었는데, 졸업할 때까지 별 생각이 없다가 결국 남들이 많이 가는 진로를 택한 것이었다. 직장을 구하는 기준은 간단했다. 첫째, 집에서 가까울 것. 둘째, 야간 당직을 서지 않을 것.

여기까지만 봐도 알겠지만 나는 그닥 열정적인 수의사는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지도 않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오해하진 마시라. 일을 시작하고 나서 더욱 느꼈지만 나는 꽤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훌륭한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열정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면허증을 따고서도 마지막까지 수의사가 될까 말까 고민했을 정도로 나는 무기력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런 무기력감이 나에게서만 발견되는 건 아니었다는 점이다. 수의대의 일상적인 분위기 역시 의욕 없긴 마찬가지였는데, 공부는 과락만 면하면 다 마찬가지고, 학교는 적게 나올수록 좋으며, 어떤 활동이든 가능한 한 최대한 지각하는 게 미덕일 정도였다(오죽하면 틈만 나면 지각하는 습관을 ‘수의대 타임’이라 이름 붙이기까지 했을까). 수의대에 들어갈 만큼 똑똑하고, 동물에게 애정이 있는 학생들이었음에도 말이다!

대체 이 무기력감의 정체는 뭘까? 의대에 못 들어갔기 때문에? 물론 동기들 중에는 나처럼 적당히 점수에 맞춰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 역시 성적만 된다면 동물보다는 사람을 다루는 의사가 되고 싶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게 단순히 동물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을, 수의사 일을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요즘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소동물 수의사는 사람 의사와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의사가 사람을 치료하듯 수의사는 개‧고양이를 치료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때로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치료가 정말 동물을 위한 치료인 건지 의구심이 들곤 했다. 보호자가 느끼기에 입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치석이 심하지도 않은 강아지 스케일링을 진행하거나, 그저 한 번 설사한 것뿐인데도 보호자를 안심시키려 약을 처방해야 했던 경우에 특히 그랬다. 의사로서 생각하기에 동물에게 처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나? 아니다. 환자인 동물이 나에게 처치를 해 달라고 요구했나? 더욱 아니다. 이때의 치료는 오직 동물을 데려온 보호자를 위한 처치였다. 오호라, 그렇다면 수의사란 동물을 치료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보호자의 니즈(needs)를 만족시키는 사람이구나!

 


왜 아무도 내가 수의사를 꿈꿨을 때 이 얘기를 해주지 않았던가! 그렇다. 수의사에게는 동물 이전에 보호자라는 존재가 있다. 어쩌면 보호자는 수의사가 다루는 동물보다도 우선시되는데, 일단 보호자가 없으면 치료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의사는 아무 동물이나 치료하지 않는다. 오직 보호자가 치료했으면 하는 동물들만을 치료한다. 그것도 보호자가 치료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결국 수의사의 치료는 보호자가 생각하는 치료의 범위 안으로 제한된다. 보호자 따위 무시하고 내가 생각하는 치료를 하겠어! 이렇게 말하는 지조 있는 수의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있더라도 찾기는 힘들 거다. 금세 백수가 되어 버렸을 테니까.

문제는 이 중요하신 보호자께서 제시해준 치료의 방향이 때로 성에 안 찬다는 점이다. 앞에 나온 예시가 바로 그렇다. 사람도 입 냄새가 나는데, 개들이라고 안 날까? 입 냄새가 난다고 굳이 스케일링까지 할 필요가 있나? 설사야 물론 큰일일 수 있지만, 한 번의 설사라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반드시 약을 받아 가는 건 또 뭔가. 이건 아무리 좋게 말한들 동물을 위한다기보다는 보호자 자신을 위한 치료였다. 수의사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겪는다. 그때마다 보호자에게 말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결국은 꾸역꾸역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치료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마다 회의감이 들게 된다. 내가 이러려고 수의사를 했나…. 동물을 인간 원하는 대로 다루려고?

 


동물이 되지 못한 수의사
그렇다면 한번 가정해 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의사다운 의사가 될 수 없는 건 보호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치고, 한번 보호자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나는 보호자 없는 동물만 치료하는 수의사다. 유기 동물 보호센터에서 일하고 돈도 물론 받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동물을 다룰 수 있으며 치료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과연 나는 만족할까? 의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게 될까? 보호자 눈치는 안 봐서 속은 시원하겠지! 하지만 한편으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바라던 것도 결국은 내 멋대로 동물을 다루는 것이었나? 그렇다면 보호자가 하고자 했던 바와 다를 건 또 뭔가? 보호자도 인간이고 수의사도 인간인데. 어떤 인간이냐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 원하는 대로 동물을 다룬다는 점은 둘 다 마찬가지였다.

결국 동물병원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이렇다. 동물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의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치료를 내세우려 기득권 싸움을 하는 것. 말로는 동물을 위해, 동물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 각자가 자기 원하는 대로 동물을 다루고 싶을 뿐이다. 이런 걸 치료라고 할 수 있을까? 훌륭한 의사들의 예시를 보건대, 그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하나같이 환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치료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병에 대해 진단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환자의 고통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라면, 치료자는 엉뚱한 곳을 치료하고 있는 셈이다. 부탁하지도 않은 치료를 강행하는 건 어찌 보면 폭력 아닌가? 문제는 동물을 치료하는 경우, 이런 폭력이 발생하기가 너무 쉽다는 점이다. 치료자는 인간이고 환자는 동물이니까. 치료자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선 안에서 환자의 고통을 상상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내가 만나는 보호자들 역시 자신들이 동물을 치료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지 모른다. 다만 그들이 상상한 동물의 고통이 너무 인간 중심적이었을 뿐. 입 냄새 때문에 스케일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보호자는 동물이 정말 스케일링을 필요로 한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동물의 입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자신이 괴로워했듯 동물도 같은 이유로 괴로워할 것이라 생각했을 테니까. 후자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보호자는 자신이 반려동물이 설사하는 걸 보고 괴로워하듯 동물 역시 그렇다 생각해서 약을 타가려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더라도 안다. 보호자가 생각한 동물의 입장이 정말 그 동물이 생각했던 바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그럼 똑같이 나에게도 묻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치료, 내가 생각하는 동물의 고통이 정말 그 동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라 장담할 수 있는가? 나 역시 내가 만났던 보호자들처럼 내 기준으로 동물의 생각을 지레짐작하고 있던 건 아닌가?

 


내가 수의사 일을 시작하고서 깨닫게 된 건, 내가 동물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동물에 관한 지식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인간의 시선 너머에 있는 동물의 시선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건 확신에 가득 찬 교과서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의 질병, 그것이 정말 동물에게도 질병이 되는지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의학도 인간이 만든 학문인 이상,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동물의 입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수의사의 치료는 늘 동물을 비껴가고 폭력을 낳게 될 위험성을 안고 간다. 내가 옳다고 믿고 진심을 다한 치료가 동물들에게 폭력이 될지 몰라서, 그럼에도 어떻게 다른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 몰라서, 나는 무기력했다.

글_박소담(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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