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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사주명리 인물탐구

강호동, 사주명리로 살펴본 복귀 가능성

by 북드라망 2012. 8. 9.

올까요? 안 올까요?

오늘도 북드라망을 찾아주신 여러분들, 혹시 <인간시대>라는 프로그램을 아시는지……(아신다면 연식이 좀…;;). 쉽게 말하자면 방송사가 다르기는 하지만 <인간극장>의 원조 격인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전원일기>, <장학퀴즈>와 함께 MBC 3대 장수프로그램(물론 저 두 개도 나중엔 MBC에서 사라집니다, 흑)이었으나 1993년 계속되는 시청률 저조로 결국 8년 만에 폐지된 안타까운 프로그램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진실씨가 1991년 <인간시대>에 출연해서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수제비만 먹었다는 사연을 공개해서 화제를 일으켰던 적도 있었구요. 좌우간 <인간시대>가 폐지된 후 신설된 프로그램은 <코미디 동서남북>. 이경규 아저씨가 MC였고, 1993년 최고의 유행어, 이휘재의 “롱다리~ 롱다리~ 롱롱~”이 탄생한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만기를 쓰러뜨린 씨름판의 악동 강호동이 정식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무대이기도 하지요.
 
예, 그렇습니다. 지난번 유느님에 이어 이번엔 저희 단골(맞으시죠?^^)이신 고차리님의 추천을 받아 강호동에 대해 파 보도록 하겠습니다(유느님은 유느님이었지만 강호동은 그냥 강호동이라고 할게요;; ‘행님’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_-;;).


어찌 보면 참 대단하단 생각도 듭니다. 계속 씨름선수를 했다면 씨름의 인기가 점점 시들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한자리 차지했을 만한 경력이었는데, 다 버리고 저렇게 낮은 자세(?)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요. 배역은 미약했을지 모르나 연예계 생활 시작 자체는 절대 미약하지 않았던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일단 사주부터 공개하고 시작할까요? 그런데 미리 고백할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사실 강호동의 생일이 음력인지 양력인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일단 네이버에 올라온 생년월일은 1970년 6월 11일. 70년대생이면 비교적 최근 사람(?)이기도 하고 연예인이라면 대중들이 기억하기 쉬운 양력을 사용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서 양력을 기준으로 사주를 뽑아 보았습니다(그런데 만약 음력으로 밝혀지면 저 고소하실 건가요? 이건 의지로 되는 게 아닌데, 흑흑).



양력으로 했다는 점, 시는 모른다는 점...이해해 주셔요. 흑. 일단 양간이 다섯 개! 딱 봐도 양기가 넘치더니 역시나!

일간은 임수. 임수는 다 아시겠지만 강호동의 몸만큼이나 큰 물입니다. 그런데 이 임수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고 일간 옆인 월간에 바로 붙어 있습니다. 바로 임임 병존인데요. 임임 병존은 강한 도화살, 즉 인기살로 봅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씨름을 할 수밖에 없는 타고난 몸 때문인지는 몰라도 1989년 열여덟의 나이에 백두장사로 등극하니 이때는 그에게 갑신(甲申) 대운이 들어온 때. 정말 갑목처럼 우뚝하게 씨름계에 등장한 그는 1992년 은퇴할 때까지 백두장사는 7번, 천하장사는 5번이나 합니다. 씨름선수로서 탄탄대로의 길을 걷던 강호동, 그런 그가 돌연 1992년 은퇴를 선언합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치더라도 채 10년이 되지 않는 선수생활을 그렇게 급격하게 마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기사를 검색해 보니 1991년부터 그의 씨름판에 조금씩 잡음이 섞이기 시작합니다.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를 했다가 씨름협회와 갈등을 빚고, 소속사와는 연봉협상을 문제로 마찰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어쩌면 요런 사단(?)들이 일어나게 된 이유 중 하나에 ‘갑신’ 대운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갑’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만큼 큼직한 변화를 속에 품고 있기도 한 그런 글자입니다. 그리고 뚫고 나오는 기운이기도 하구요. 그리하야 마침내 강호동은 1992년 학업을 이유(이건 뭔가요;; 학…학업이라니, 갑신의 신申이 인성이라 그랬을까요? ㅋ)로 씨름판을 뚫고 나와 93년에는 연예계에서 새출발을 합니다.

갑목은 강호동에게는 식상, 생시는 모르지만 연월일만 보면 사주에 식상이 없네요. 부족했던 기운이 들어와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망신만 당하고 끝날 것”이라는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그는 표현력과 순발력으로 똘똘 뭉친 식상 기운을 마구 떨치며 예능 꿈나무로 쑥쑥 커 나갑니다. 사주 원국에도 임임 병존 옆에 경금(庚金, 편인)이라는 커다란 조력자가 붙어 있는데요, 공교롭게도 이때의 대운에 경금과 마찬가지인 신금(申金)이 들어와 있습니다. 대부분 아시겠지만 이게 누구일까요? 바로 강호동을 연예계로 끌어준 당시 개그계의 큰바위(금이니까요 ㅋ) 이경규가 아닐까요?


잠깐 지나가는 이야기지만 때는 2008년 연말 그러니까 <2008 MBC 연예대상>이 방송되던 그날이었습니다. 이때 신인상 시상자로 이경규 아저씨가 나왔는데 “요즘 걸을 힘이 없다”며 강호동에게 안겨 나왔었더랍니다. 그리고 이날 모두의 기대를 깨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에겐 유느님이 소중하니까요~), 강호동이 연예대상 수상자가 되고, 수상소감에서 이경규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고 하고, 저는 분노의 마음을 가득 안고  MBC 홈페이지에 접속했었더랬지요. “이경규가 강호동한테 안겨 나올 때부터 알아봤다”는 글을 보며 ‘나는 어찌 이리도 순진했단 말인가’ 하며 통탄을 하였었는데……제가 지금 이 얘기를 왜 하고 있을까요!! 결론은 이경규는 강호동의 흐름에 딱 맞게 등장한 인성이었다는 거, 그 얘깁니다……녜녜;;


지금은 제가 마음을 많이 다스렸지만 이 당시에는 사실 너무너무 이들이 얄미웠습니다. 오늘 포스팅의 주인공이 강호동이기는 하지만, 이때 유느님이 수상 실패를 어찌나 아쉬워했던지!!


그리고 10년 뒤 1999년 그에게는 을유(乙酉) 대운이 찾아오게 됩니다. 을목의 특징은 유연함과 친화력, 게다가 강호동에게는 상관. 식신과 상관은 연예인에게 있어 절대적 무기! 연예계 데뷔 이후부터 1999년 이전까지 강호동은 주로 ‘소나기’의 호동이로 대표되는 몸개그를 펼쳤지만 1999년 이후 을목 대운을 단단히 탔는지 MC계로 입문하여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특히 2002년의 <MC 대격돌>에서는 ‘공포의 쿵쿵따’로 쿵쿵따 열풍을 일으키다가 <강호동의 천생연분>부터 국민  MC 반열에 오르기 시작하였지요. 2002년 이후 활약상에 대해서는 웬만큼 TV 안 보시는 분들이라고 해도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연예계를 떠나 있는 상태입니다. 왜 그런지도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패스하고 잠시 사주 원국을 살펴보면 일지는 술토, 월지는 오화, 연지는 술토, 술토와 오화가 반합을 이뤄서 화가 되어 있는 모양인데요. 강호동에게 화는 재성. 공교롭게도 2009년부터 바뀐 대운은 편재/편관 대운입니다. 병술(丙戌) 운이 들어와 있거든요. 술토는 또 화가 될 테니 결국 또 재성으로 범벅되어 버린 상태. 그래서인지 TV에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의 사업 확장 소식은 인터넷을 통해 종종 들려옵니다. 얼마전 ‘치킨 육칠팔’이라는 사업을 론칭했는데 코카콜라와 제휴하여 미국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있고, 필리핀에도 고깃집이 개업된다는 기사도 있고, 중국에 떡볶이집 냈다는 말도 있고, 육칠팔이라는 고깃집은 원래 잘 되고 있었구요. 이런 기사에 이런 대운을 보면 이 양반 과연 올 생각이 있을까 싶기는 합니다. 씨름판을 떠났을 때처럼 연예계도 그렇게 떠난 것은 아닌지, 괴강살을 일주, 연주로 가진 이 양반이 과연 한번 마음먹은 것을 쉽게 바꿀까 싶네요. 하긴 모르죠, 뭐~. 아직 시주에 두 글자가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한번 지켜보면서 그 두 글자를 추측해 봅시다요~. 끝!



추신 1 : 고차리님, 노력형 겸손이라는 말씀도 맞는 것 같아요. 타고난 걸로 보면 절대 겸손할 수 없는 괴강일주잖아요? ㅋ 그..그렇긴 하지만 제가 방송에서 본 바로는 여러 번 겸손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어...어쨌든 겸손해야 할 때는 굉장히 노력해서...그...그냥 제 느낌이 그렇다구요. ㅎㅎ

추신 2 : 고차리님처럼 궁금한 인사가 있으시면 댓글로 추천해 주세요! 안 해주시면 그냥 제 맘대로 골라 쓰죠, 뭐. 그까이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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