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에필로그 : 『한서』 읽기, 반고의 마음 읽기

에필로그 : 『한서』 읽기, 반고의 마음 읽기 

 

- 강보순(사이재 연구원)


<몸과 우주 세미나 시즌1-『한서』 읽기> 종강 일. "우리가 『한서』 10권을 재미있게 읽었으니 글 ‘한번’ 써야하지 않겠어요?" 라는 길진숙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당연하죠!"라며 흔쾌히 답했다. 이렇게 응답한 건 평소 글쓰기를 좋아해서라거나, 『한서』에 대해 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어떤 마음이 동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한번’만 쓰면 되는 줄 알았기에 응한 것이었다. 그런 글쓰기가 장장 1년여의 프로젝트가 될 줄이야. 이것이 내가 『발견, 한서라는 역사책』을 함께 쓰게 된 연유다. 이 때 깨달았다. 아! 책을 쓴다는 건 거대한 비전으로 무장하고 준비해야만 쓰게 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인연과 더불어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구나. 
  어쩌다 쓰게 되었으니, 글쓰기는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글을 써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역사를 글감으로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써 내려가는 족족 선생님들로부터 퇴짜를 받으니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래도 퇴짜, 저래도 퇴짜! 도대체 어떻게 쓰라는 것일까? 그때 길진숙 선생님의 한마디. “『한서』를 그대로 읽어주는 게 아니라, 남들이 읽는 방식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강보순’이라는 사람이 『한서』와 만난 지점을 찾아보세요.” 내가 만난 『한서』라니. 대체 『한서』와 만난다는 건 뭘까?
  

선제 때, 소광·소수는 숙질지간으로 모두 태자의 스승이었다. 태부로 근무하길 5년이 되던 무렵, 태자가 12살이 되어 『논어』와 『효경』에 두루 통하자 이들은 선제에게 돌연 사임을 표한다. 그리고 이때 받은 퇴직금 황금 70근을 마을 사람들과 연회를 열어 모두 쓴다. 지위와 명성이 정점에 있을 때 사직한 것도 놀랍지만, 받은 퇴직금을 이웃들과 함께 쓴 것은 더 놀랍다. 반고는 이 장면을 주목한다. 나는 반고의 시선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한서』와 만난다는 건 곧 반고의 마음과 만나는 일이기도 하지 않은가.  
  

아마도 반고는 부귀권력을 모두 성취한 자의 그 다음 행보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것 같다.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건 자연의 순리. 여름이 계속되지 않는 것처럼, 잘 성취한 자에게 필요한 건 더 높은 성취가 아니라 잘 몰락하는 법이다. 반고는 소광의 삶에서 그 힌트를 찾았다. 소광이 소수와 더불어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난 건, ‘공을 이루고 물러나는 것은 하늘의 도’라는 노자를 공부했기 때문이고, 그 많은 황금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쓴 건, 부를 보존하고 물려주는 일이 자식들을 다투게 하고 게으르게 만들며,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원망을 불러오는 일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잘 몰락하는 법이 또 있을까. 
  

역사가 한 인간의 업적이라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는 영토를 넓히고 전쟁에서 승리한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한서』에도 분명 이러한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업적이란 한 인간을 드러내는 하나의 단면일 뿐, 어떤 면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면도 업적으로 삼을 수 있다. 반고가 황금 70근을 받은 것이 아닌 그 황금을 모두에게 베풀어 자기를 지키고 가문을 지킨 것에 주목하여 기록한 건 그 때문이다. 반고에게 역사란 일상을 잘 다스리는 문제와 분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본 『한서』는 이러한 일상의 업적들로 가득한 인간사였다. 
  

 

결국 『한서』와 만난다는 건, 『한서』에 담긴 인물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일상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거울삼아 내 마음을 비추어보는 일. 나아가 그 마음을 내 일상에서 실천해보는 일. 역사에 쓸모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외우고, 시험 본 후, 잊어버리는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삶과 분리되지 않는 실천지침서로서의 역사. 이것이 내가 『한서』와 만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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