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가을에게 성숙(成熟)을 묻다
송혜경(감이당 대중지성)
“넌 나이에 비해 참 성숙하다!”라는 감탄은 요즘엔 ‘욕’이다. 불현듯 ‘동안'신드롬이 나타났고 우리는 그 언어가 만들어 놓은 성에 잠식당해버렸다. 물론 예전에도 어르신들에게 ‘회춘하셨다’는 말을 드리면 좋아하시긴 하셨지만, 그 말을 해드릴 수 있는 나이는 어느 정도 한정되어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등학교 애들마저도 자기 학년보다 높게 혹은 낮게 불리는 것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정도다. 고1이나 고2나 그게 그거지 싶은데 아이들한테는 또래에 비해 성숙해 보이는 게 몹시 불유쾌한 일인가보다. 그래서인지 다들 목소리에 어리광이 가득하다. 원래 목소리는 어딘가에 'keep'해놨다가 엄마랑 전화할 때만 드러난다.ㅋ 애들만 그런가?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들도 일상적으로 문자하고, 카톡하고 또 업무를 볼 때조차도 ‘~해주세용’ 등 콧소리를 내며 늘 어리광을 떨고 있지 않은가. 주위엔 이런 욕망이 만들어낸 식품, 의약품, 의류, 광고 등이 지천이다. 우리 시대, 이쯤 되면 어려지기를 한 마음으로 숙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다. 우리가 등 돌리고 있는 가치, 즉 인생이 성숙해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가을은 과일이 무르익어가는 계절, 즉 성숙의 시간이다. 입추(立秋)는 앞에 두고 자연의 흐름 안에서 한번쯤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영원히 젊어지는 방법??
어려지고 싶어 하는 열망은 우리 시대만의 특징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 열망은 생각보다 유서 깊은 것이었으니 기원전 500년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때 무위자연의 도가사상으로 유명했던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젖먹이를 닮아야 한다. “젖먹이는 뼈가 약하고 근육이 유하지만 악력이 굳지 아니한가! 젖먹이는 암수 결합을 모르면서도 발기하니 정기가 팽팽하게 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젖먹이는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아니하니 기(氣)가 잘 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르셀 그라네, 『중국사유』, 한길사, 2010, p.518
헉! 갓난아이 정도까지 어려지기를 바라다니. 이 시대의 열망은 우리보다 쫌 더 심한 거 아냐? 하지만 노자가 말한 ‘젖먹이’는 겉으로 보이는 외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게다. 노자가 갓난아이를 부러워한 이유는 갓난아기야말로 차고 넘치는 우주적 정기가 활발발하게 움직이는 신체였기 때문이었다. 궁극적으로 노자는 신선이 되기를 원했다. 신선은 우주와 교감하여 생사를 뛰어넘은 존재이자 영원히 지속되는 자연을 의미한다. 그라네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면, “신선은 바로 순수한 생명 그 자체다. 신선은 뛰노는 생명이요 즐기는 능력이다.” 관행이나 의례에 길들여져서 고목처럼 굳어버린 어른들과 달리 유연하고 생기 넘치는 ‘젖먹이’의 상태야말로 노자가 추구했던 신선 즉 자연과 가장 가까운 상태였던 거다.
당시 무속인들은 이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훈련방법을 개발해냈다. 생명에너지 덩어리였던 갓난아이가 어느덧 자라 돌이킬 수 없는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본래의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수련이 필요하다. 공짜는 없다. 우주의 생명력을 머금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 그들이 무엇을 연마했는지 귀 기울여 보자. 어쩌면 얼굴만 어려지는 것을 넘어서 뼛속까지 어려질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야산에서 홀로 야수들의 위협을 이겨내는 것, 우레와 광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물과 불의 갖은 시련을 물리치는 것, 이 모든 것은 초기의 무인(巫人)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이었다. 고대중국인들은 바로 이러한 무인들의 자질을 인정하여 무인들을 자신들의 수장으로 삼았다.
-같은 책, p.515
참으로 이상하다.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 어려지는 게 아니라 폭삭 늙어버릴 것만 같은데…….^^;; 왜 그들은 탱글탱글한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시련의 상황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두려움은 어떤 것일까. 저 처자처럼 눈이 땡글해지는 일? 제대로 앞을 볼 수 없는 일? 자신과 대면하는 일?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면 "예측할 수도, 손상시킬 수도 없는, 완전히 자생적인 생명력 그 자체"를 경험하게 된다. 생명이란 원래 그러하다.
노자의 신선이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하는 바,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오행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즉 시작하고(木) 성장하고(火) 성숙하고(金) 저장하고(水), 각 단계 사이를 매끄럽게 넘어가고(土). 이 흐름에는 서사가 숨어있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무속인들이 밤에 혼자 산에 올라가 야수들을 만났을 때, 천둥과 번개의 위협을 만났을 때, 또 숨 막히게 하는 물과 그 뜨거움을 참기 어려운 불을 견뎌내는 과정은 이런 식의 서사를 거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행의 원형적 순환이 그렇듯이 저장‧수렴(水)은 다시 시작(木)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 시대와의 차이가 확 드러난다. 우리 시대의 ‘동안’신드롬은 이 다섯 단계 중에서 화려하고 운동성이 강해보이는 木과 火단계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을 보여준다. 그 다음인 金과 水는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고 끝으로 치닫는 듯한 인상을 준다. 직선의 상상력에서 그 끝에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를 드는 것을 ‘꺾였다’는 부정적인 표현을 쓰는 거 아닐까. 여기서 우리에게 내재된 성숙(成熟)에 대한 두려움을 읽을 수 있다.
앞으로 달려가다가 더 가기 무서워 제자리에서 뛰는 것과 어차피 다시 되돌아올 것임을 알고 달리는 자의 포즈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앞의 사람은 두려움에 발을 동동 구를 것이고 뒤의 사람은 평온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용감하게 앞으로 나갈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멈춤 없이 영원을 달리는 것, 그것이 젊음이자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성숙, 반복 속의 여유
여름의 화(火)기가 가을의 금(金)기에게 우주를 운전하는 차 키를 넘겼다. 여전히 더운데 가을이 왔다니 믿기지 않는다구? 그렇다면 고개 들어 하늘을 보라. 요즘 따라 낮이고 밤이고 하늘이 청명한 자태를 뽐낸다. 입(立)절기는 아직 땅의 절기가 아니다. 입추에 드리운 가을의 금(金)기가 땅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을이 안 왔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땅에 붙어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일 뿐!
이쯤에서 가을의 키워드 성숙(成熟)의 의미를 되짚어 보자. 여기서 포인트는 바로 숙(熟)! 이 글자는 누릴 향(享)자와 둥글 환(丸), 그리고 연화 발(灬)로 나눌 수 있다. 향(享)은 ‘제사지내다’라는 뜻이 있고 ‘팽’으로 발음될 때는 ‘삶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숙(熟)자는 불에(灬) 충분히 삶은 음식을 졸여내 둥그런(丸) 제기에 담아 제사지낸다(享)는 뜻이 담겨있다. 그러므로 성숙(成熟)은 화(火)기에 충분히 노출되어 땀 좀 흘려줘야 이룰 수 있는 단계인 셈이다.
땅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남은 화(火)의 뜨거운 기운과 새로 등장한 금(金)의 건조한 기운이 음식을 삶다 못해 졸인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입추가 지난 다음에 말복이 턱하고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회남자』에서는 양력 8월이자 음력 7월인 신(申)월을 신음할 신(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이 달에 만물이 성숙의 단계 즉 열매를 맺기 위해 끙끙거리며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인간들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손 놓고 있지 않다. 따가운 햇살을 만들기 위해 함께 끙끙댄다. 이를테면 입추에는 기청제(祈晴祭)라는 제사를 지내 비가 오지 않기를 기원한다. 기청제를 지낼 때면 온 백성의 마음을 오직 하나의 염원으로 모으기 위해 금하는 것이 많았다. 성안으로 통하는 물길을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었다. 물을 쓰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소변까지도 보지 못하게 했다. 또 운우지정(雲雨之情)이 비를 부를까 싶어 부부가 각방까지 써야했다! 남의 집 이불 속까지 단속할 정도로 날씨가 맑기를 바랐던 것이다. 비가 그만 오고 건조해져야 벼도 과일도 속이 꽉 차고 껍질이 단단해진다. 그게 풍성한 수확으로 이어져야 다음 해에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살아 남기위한 것이니 절기의 마디를 넘는 간절함이 오죽했을까.
덥다. 인터넷에 성숙이라는 단어를 치자 벗은 언니들이 마구 등장해주신다.^^ 성숙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찾기 위해 벗은 언니들을 애써 외면(?)해야 하는 이 간절함은 누가 알리^^
내친김에 신(申)이라는 글자에 담긴 기운을 살펴보자. 신에는 세 가지 힘 즉 지장간이 꿈틀대고 있는데, 무쇠의 과단성(경금;庚金), 중재의 힘(무토;戊土), 저장과 수렴의 기운(임수;壬水)이다. 여기서 재밌는 규칙성이 발견된다. 각 입(立)절기가 여는 달의 지장간을 살펴보면 반드시 3개의 지장간이 들어 있다. ①해당 절기의 성질과 ②질적으로 다른 기운을 연결하는 중재의 기와 ③다음 절기의 기운이다. 입절기는 마치 차에 시동을 걸면서 제일 먼저 내비게이션에 갈 장소를 지정하고 안내에 맞춰서 질주하는 모양과 같다. 그렇기에 입추는 ①가을을 대표하는 금(金)과 ②여름과 가을을 이어주는 토(土) 그리고 ③겨울의 기운 수(水)를 품는다. 이는 불필요한 쭉정이는 과감하게 쳐내고(金) 안으로 수렴하는 기운으로 살을 포동포동하게 찌우며(土) 깊숙한 곳에서는 다음 해 농사를 위한 씨(壬)를 만들겠다는 가을의 계획표다.
좀 의외인 것은 입추에 김장용 무, 배추를 파종한다는 거다. 가을을 수확만 하는 절기인줄 알았는데, 새로이 씨를 뿌리다니 거참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을 가을의 계획표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오미(五味) 중에서 매운 맛(辛)은 금(金)에 배속된다. 무와 배추는 매운 맛에 속하므로 가을 금(金)기운을 품고 자란다. 그리고 그것을 토가 생해준다(土生金). 그리고 그해 김장한 김치로 가을에 수확할 쌀과 함께 겨울(水)을 날 준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쉼 없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살아있다면, 아니 살아있으려면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 반복은 계속될 것이다.
이것과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이 보여줬던 컨베이어 벨트와 차이점은 무엇일까? 산업용 컨베이어 벨트는 노동자와 호흡을 맞추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끊임없이 저 혼자 돌아간다. 그것은 리드미컬하지 않다. 반면 절기의 반복 속에는 리듬이 살아있다. 가만 보면 이 반복은 반복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절묘함이 있다. 우리가 늘 하는 말을 생각해보라. “작년 여름에 뭐 입었더라?” “작년 여름엔 날씨가 어땠더라?” 빨라졌다 느려졌다하는 리듬 속에 절기는 흐른다.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절기는 일 년 중 가장 바쁜 망종에 비해서 한가하기 그지없다. 수확을 앞두고 농부들이 과일과 곡식이 익어가는 풍경을 허리 펴고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다. 입추에 들어서 농부들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확의 규모를 통해 겨울과 다음 해를 어떻게 보낼지 궁리한다.
‘성숙한다’라는 거 이런 거 아닐까? 뜨겁고 따가운 태양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 그 성장통에 신음하는 것. 그리고 그걸 버틸 수 있는 것. 그리고 시작과 질주하던 때를 그리워하지 않고 다가올 한 풀 꺾인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조용히 다음을 준비하는 것. 이런, 생각보다 할 게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다 한 가지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걸 보자. 즉 그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시 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아는 마음이다. 거기에서 지금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과 쉴 때 맘 놓고 쉬고 일할 때 일하는 여유가 나올 테니까. 비록 음의 기운이 저 멀리부터 다가오고 있다하더라도 입추는 그간 차곡차곡 쌓아 놓은 양기를 토해내느라 무더울 것이다.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을 상상하면서 이 마지막 더위를 이겨내자!
인생 뭐 있어? 한잔 빨고 견디자! 이 시간을 즐겨보자! 어차피 영원회귀하는 이 인생^^
* 독자 여러분들께
소우 핫핫!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덥네요. @_@;; 대서(大暑)라
는 이름이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올여름입니다. 그런데 절기를 공부하면서 재밌는 것은, 덥긴 더우나 지칠 정도로 덥지는 않다는
거예요. 저는 원래 연례행사처럼 매 여름 크게 더위를 먹고 넋이 나가있거든요. 그러나 올여름은 더위에 ‘넋다운’ 되지
않았습니다!^^ 작은 더위(소서) 다음에 큰 더위(대서)가
오겠거니 예상이 되고, 이 더위가 가시고 곧 입추를 시작으로 해서 서늘한 가을이 올 것을 안 덕분이죠. 물론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 더위를 겪지 않으면 가을이 오지 않을 거라는 그림이 24절기의 큰 흐름 안에서 그려지니
무더위를 대하는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자, 기대되지 않으세요? 가을에 어떤 결실이 맺어질지 말이에요. 두렵다고요?ㅋㅋ 전
믿습니다. 봄과 여름을 겪고 가을을 맞이한 누구라도 손에 결실이 주어질 거라고요. 그게 쭉정이든 실한 알곡이든 내가 만들어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겠죠. 그 전에 일단 이 더위부터 잘 보내도록 해봐요.^^
※ 임진년 입추의 절입시각은 8월 7일 오전 11시 30분입니다.
'출발! 인문의역학! ▽ > 24절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이 차오른다, 추분 (2) | 2012.09.22 |
---|---|
이슬이 넘친다, 이슬-람(濫) 백로 (0) | 2012.09.07 |
처서, 모기의 입은 쉽게 삐뚤어지지 않는다 (0) | 2012.08.23 |
대서, 습기와 더위로 사는 법 (2) | 2012.07.22 |
소서, 음탕(?)하게 놀아보자 (11) | 2012.07.07 |
불들의 드라마, 여름 그리고 하지 (4) | 2012.06.21 |
댓글